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아버지와 아들 (6)
핸드폰을 확인하던 한유경 옆에서 달걀을 젓고 있던 차용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요연 선배가 많이 참은 겁니다. 장 대표님이 연예계 복귀도 막으셨지, 그렇다고 옆에서 다정한 남편이 되어 준 것도 아니지. 그리고 다른 여자들하고….”
“하여튼, 그쪽 업계 사람들이란.”
한유경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차용석이 억울한 듯 항변했다.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저처럼 유경 씨만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매니지먼트 업계에 많아요.”
“용석 씨도 예쁜 여자들 보면 마음 바뀔지 누가 알아요.”
“무슨 소리세요. 유경 씨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마음에 들어찼는데.”
그 말을 들은 태주는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우웩, 닭살.”
옆에서 수저를 놓고 있던 서동락도 킬킬거리고 난리가 났다.
“고모님한테 저런 일편단심 애인이 생기셨다니!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신다.”
“우리 고모가 훨씬 아깝지. 예쁘지, 능력 좋지.”
괜히 투정을 부려보는 태주였다.
하지만 차용석을 보는 그의 시선에는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이미 차용석은 그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소속사 매니저 그 이상으로 그를 챙겨주는 가족.
자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뜨거움이 태주도, 고모도 감명시킨 게 분명했다.
차례차례 준비된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르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태주는 영화 조연출을 하느라 살이 빠진 동락을 챙겨주었다.
“많이 먹어라, 동락아. 너 진짜 피곤해 보인다.”
“피곤하기는, 조연출 생활이 다 이렇지.”
영화 ‘탈출’의 조연출을 하며 고되지만 보람찬 생활을 하는 서동락의 얼굴은 유독 밝아 보였다.
그런 그에게 차용석이 물었다.
“영화 준비는 잘 되어가요?”
“네.”
서동락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양군보 감독님이 지금 최종 편집에 들어갔거든요. 이제 곧 칸 영화제에 제출할 거예요.”
“경쟁작으로요? 아니면 비경쟁작?”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감독님은 경쟁 부문에 출품하고 싶어 하시는 눈치더라고요.”
“아하.”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제까지 좀비 영화가 경쟁 부문에 진출한 적은 없었는데…. 뭐, 출품하는 건 제작사랑 감독님이 상의해서 결정할 권한이니까.”
“제작사 측에서도 반반이에요. 안전빵으로 비경쟁으로 넣을지, 아니면 경쟁 부문으로 넣을지.”
“하긴, 워낙에 작품이 좋아서 경쟁 부문에 넣어도 승산은 있겠어요.”
그때, 방을 돌아다니던 태희가 손에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뛰어왔다.
“오빠, 이거 뭐야? 결혼식 사회?”
“태희야, 그거 어디서 났어.”
태주가 황급히 종이를 숨기자 한유경은 다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년 1월에 있을 손우현과 김선정 결혼식에서 태주가 사회 진행을 맡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손우현 씨 결혼식 사회 벌써 연습하는 거야? 나 참, 너도 준비성 철저하다. 그냥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해도 잘할 것 같구만.”
“존경하는 선배님들 결혼식인데, 그럴 수는 없죠.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요.”
차용석은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다.
“생애 첫 결혼식 사회지? 축가도 부른다며. 잘해봐.”
“솔직히 긴장돼서 몇 번이고 거절했었는데요. 우현 선배님이 제가 자기가 아는 스타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라면서. 친척들 앞에서 가오 살려달라고 부탁하시는데, 그럼 어떡해요.”
“이번에 태주 네가 사회 보는 거 봐서, 우리 결혼식 때도 너한테 사회 부탁할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유경 씨, 괜찮죠?”
차용석의 말에 한유경이 새초롬한 표정을 했다.
“어머, 누가 용석 씨랑 결혼해 준대요?”
“잠깐만요, 고모.”
태주는 진동으로 울리는 전화기를 확인했다.
“네, 승민이 형. 가족끼리 식사하기로 했다고요? 어, 저희도 오라고요? 음…….”
한유경을 힐끗거리던 태주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단 얘기는 해볼게요. 네, 들어가세요.”
태주는 전화를 끊고 고모를 사람들 없는 부엌으로 데려갔다.
한유경은 낌새를 눈치챈 듯 물었다.
“승민이 형이라면, 강승민 검사? 그쪽이 왜 너한테 전화하니?”
“연말에 가족끼리 식사하는데, 저희도 오라고 하네요.”
한유경은 안 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때, 태주의 옆에서 조용히 있던 아빠가 넌지시 말했다.
[어렸을 적에는 유경이가 원경이 형을 그렇게 따랐었는데…….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이제껏 태주의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아빠가 처음으로 비친 의견.
태주는 묘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아빠는 고모가 가족하고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의지할 만한 어른이야, 원경이 형은. 만나서 직접 과거 일을 솔직하게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주는 고모에게 말했다.
“저랑 같이 가요, 고모.”
“……가고 싶니?”
“저하고 피가 섞인 이들이잖아요. 평생 가족이라고는 부모님하고 고모밖에 몰라서 그런지, 그쪽이 우리한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긴 해요.”
태주의 담담한 태도에 고모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피가 섞였는데 이끌리는 건 당연한 건가.”
* * *
12월 말의 어느 저녁.
태주는 고모와 함께 고급 한식당을 찾았다.
그곳에는 한 쌍의 부부, 그리고 강승민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태주와한유경을 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 우리 집안 얼굴이 있네.”
“정말 반가워요.”
제일 반가워하던 강승민의 어머니는 태희를 찾았다.
“태희는요?”
“태희는 학교 숙제 때문에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다고 해서요. 일단 저희만 왔습니다.”
매끄럽게 말하는 태주에 비해 한유경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식사가 나오고 조심스러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강승민, 강원경 등과 안면이 있던 태주는 그래도 순조롭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너희 할머니가 예술 쪽으로 아주 재능이 뛰어났어. 그림도 잘 그리셨고, 동화구연도 아주 수준급이셨지.”
“옛날에 꿈이 성우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하하, 그럼 제가 그쪽 피를 물려받았군요.”
넉살 좋은 태주와 달리 한유경은 한껏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강원경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유경아.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냐. 아무튼 이제라도 우리가 다시 가족으로 뭉쳤으니, 잘 지내보자.”
“어떻게 그렇게 뻔뻔해요?”
한유경이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울화가 터져요.”
“유경아, 잘해보기로 했잖냐.”
“아니요, 저는 안 되겠어요.”
그녀의 붉어진 눈매에는 원망만이 가득 차 있었다.
“오빠랑 나를 그렇게 버린 순간, 우리는 가족의 연이 끊어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인제 와서 다시 가족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할 수가 있냐고요.”
“유경아.”
“그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마요.”
한유경은 이 자리를 못 견디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태주야, 미안해. 고모 먼저 가볼게.”
* * *
한껏 붉어진 얼굴로 한유경이 그 자리를 뛰쳐나간 가운데.
뒤에 남아있던 이들은 다들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
“지금 만나자고 한 게 너무 섣부른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강원경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래도…… 유경이를 오랜만에 보니까 좋았단다.”
태주도 고모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운 것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모는 늘 이성적이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눈앞에 싫은 사람이 있더라도 그 앞에서는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진짜 어른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이렇게 격한 감정을 토해낸 것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고모는 늘 그랬어요. 나랑 태희만이 진짜 자기 가족이라고.’
그 말을 들은 태주의 아빠, 한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경이는 아마 평생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물론 원경이 형 쪽에서는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유경이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거지.]한재경의 말에 이중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렇게 한이 깊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그게 맞고요.]과거를 회상하던 한재경의 얼굴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그늘졌다.
[차라리 기대를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헛된 희망은 무거운 현실보다 더 실망스럽다는걸, 그때 깨달았죠.]* * *
약 30년 전.
서울의 한 보육원에 몇 명의 대학생들이 봉사하러 방문했다.
그중에는 한국대 법대생인 강원경도 섞여 있었다.
아이들로 북적이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귓가에 원장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부하느라 노느라 여러 가지로 바쁠 텐데, 보육원까지 무료 수업 봉사를 와주시고. 정말 감사드려요.”
“…….”
“원경아, 집중해야지.”
동 대학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강원경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여러 아이를 훑어보던 강원경은 재빨리 원장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곳에 봉사를 온 네 명의 대학생들은 각자 한 교실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영어를 맡은 강원경은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모여있는 교실로 향했다.
얌전히 모여 있던 수십 쌍의 눈들이 그를 쳐다보자,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원경입니다. 오늘 여러분들한테 영어를 알려드리려고 왔는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학생들을 쭉 훑어보던 강원경의 눈에 맨 앞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눈매의 소년 역시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혼란 속에 수업은 시작되었지만, 정작 수업을 진행하는 강원경의 정신은 딴 데로 날아간 뒤였다.
맨 앞에서 총기 있는 눈동자를 반짝이던 소년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지난 수년간 자신이 찾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시간이 어떻게 흐른 지도 모르게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 그때.
강원경은 맨 앞줄의 소년이 나갈세라 재빨리 붙잡았다.
“너, 이름이 뭐니?”
강원경의 다급한 질문에 소년이 대답했다.
“한재경이요.”
그 순간 강원경은 자신도 모르게 소년을 껴안아 버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친 듯이 보육원 봉사를 다니며 찾아다닌 일이 열매를 맺었다.
“재경아, 원경이 형이야.”
“…원경이 형?”
얼떨떨한 듯 소년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그를 세게 밀쳤다.
“이제 형 아니에요. 남이에요. 내 가족은 우리 유경이뿐이라고요.”
때마침, 문이 드르륵, 열리며 들어온 한 소녀.
“오빠, 왜 이렇게 안 와!”
늘 같이 점심을 먹던 오빠가 안 와서 직접 찾으러 온 자그마한 소녀.
5~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재경에게 와서 딱 붙더니 경계심 가득 찬 눈초리를 강원경에게 보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유경아. 나 누군지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그 말에 그들 남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강원경이 결국 무너졌다.
“미안하다, 재경아, 유경아.”
“아저씨?”
“이제야 너희들을 찾아서 미안해. 그렇지만 그동안 너희를 열심히 찾아다녔어. 너희들한테 오빠, 형 노릇을 하기 위해서….”
그 말에 소년이 삐뚜름한 입을 내밀었다.
“우리를 버렸으면서 왜 다시 찾으러 왔어요?”
“너희를 버린 게 아니야!”
강원경이 무릎을 꿇어 어린아이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이들 남매를 보육원에 갖다 버린 건 맞지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형이 열심히 노력해서 독립한 다음, 너희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어.”
“……진짜요?”
“그럼. 형은 너희들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 줘.”
강원경의 진심 어린 시선에 소년의 굳어진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한 번에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원경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육원을 방문해 그들 남매를 챙기는 정성에, 재경의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유경도 이복 오빠를 잘 따랐고, 재경은 법대생 이복형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어서 그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아직 법대생인 그와 당장 같이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강원경과 점점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
“너희들이구나, 우리 원경이 방해꾼들이.”
보육원에 찾아온 박숙자는 원장에게 거액의 돈을 쥐여주며 한재경과 한유경 남매를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라 지시했다.
마지막까지 한재경은 박숙자에게 맞서 항의했었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려야 해요! 원경이 형이 우리 데리고 산다고 했어요.”
“걔가?”
박숙자는 비릿한 미소로 한재경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원경이는 너희가 불쌍해서 잠시 동정한 것뿐이야. 걔가 너희들 같은 곁다리를 형제로 취급이나 할 것 같니?”
그렇게 강씨 집안과의 인연이 다시 끊겼다.
한재경이 12살, 한유경이 6살 때의 일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