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아버지와 아들 (8)
* * *
약 한 시간 후.
1화 상영이 끝나자 극장 안에 불이 켜졌다.
어둠 속에 잠겼던 표정들이 완연이 드러난 순간.
그들은 다들 모황국 감독을 향해 아우성쳤다.
“다음 화, 다음 화는요?”
“거기서 끊으면 어떡해요. 궁금해 죽겠네.”
“우리가 촬영했어도 이렇게 편집하니까 다음 화를 전혀 예상 못 하겠어요.”
배우들, 제작진, 그리고 관계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다음 화를 외치는 이때.
자리에서 일어난 모황국 감독은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다음 화가 궁금하시죠?”
“네!”
“그럼 다음 화는……”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끌던 그가 싱긋 웃었다.
“베일릭스에서 직접 보시죠.”
“감독님!!”
“태주 씨도 가만히 있는데 왜 다들 이렇게 난리예요.”
모황국 감독이 태주를 가리켰다.
1화의 끝이 태주가 진행요원에게 총을 맞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태연하게 있던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저희가 애원해도 어차피 다음 화 안 보여주실 거잖아요.”
“흐흐, 그렇죠.”
“그리고 저희가 다음 화를 갈구할수록 감독님이랑 제작자님은 더욱 좋아하실 거고요.”
씩 웃으며 정곡을 찌르는 태주에게 이덕량이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 태주 씨한테는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요!”
“촬영해서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배우들이 이렇게 재밌어하다니, 그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얼마나 뜨거울지 기대되는군요.”
함께 1화를 시청한 베일릭스의 본부장도 상기된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입니다. 이번 설 연휴에 공개될 ‘데스 게임’을 위해서, 다 함께 열심히 응원합시다.”
“파이팅!”
지난 몇 개월간을 동고동락한 모두가 한마음이 된 순간이었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실에 앉은 차용석은 김진수 팀장과 대화 중이다.
“태주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좀 늦는 것 같네.”
“아까 인우 씨한테 연락 왔는데요. 시사회 끝나고 감독님이랑 한잔하고 온답니다.”
“그래?”
차용석의 눈이 반짝였다.
“편집본 반응이 어지간히 좋지 않으면 그렇게 회식하지 않을 텐데. ‘데스 게임’ 편집본이 잘 나왔나 본데?”
“그러니까요. 아까 인우 씨도 통화할 때 흥분돼 있더라고요.진짜 재밌대요, 진짜로.”
“하아, 베일릭스 다시 결제해야겠네. 구독료 아까워서 끊었었는데.”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던 그들.
김진수는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쳤다.
“그런데 대표님, 이번에 윤수안 씨 매니지먼트는 정말 저희 쪽에서 하는 겁니까?”
“맞아. 수안 씨 부탁도 있었고 드림액터스와의 계약도 끝나서, 3개월 단기 계약 맺었거든.”
“그럼 정식으로 윤수안 씨랑 계약하는 건 어떨까요?”
“글쎄……. 수안 씨가 드림액터스한테 데인 게 있어서 그런지 매니지먼트에 소속되는 걸 좀 꺼리더라고.”
“그럼, 태주 씨한테 부탁해서 운이라도 띄워 볼까요? 정식 계약?”
“태주한테?”
김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 친하잖아요. 예전에 잠적했을 때, 태주 씨 전화만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건 그렇긴 한데….”
차용석은 생각에 잠겼다.
둘이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특히 윤수안이 태주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듯했다.
요즘 그녀가 보이는 행보는 스타가 아닌 배우, 그 자체였으니까.
예전이었다면 예뻐 보이는 역할, 잘할 수 있는 역할을 골랐을 그녀는 최근에 도전을 연이어서 하고 있었다.
삶에 찌든 역할로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사랑하게 된 정의로운 경찰.
두 작품 모두 만만치 않은 역이라, 예전의 윤수안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개 작품의 승패로 인해 윤수안의 위치가 변동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예측이었다.
이제껏 스타성과 빼어난 외모, 찰떡같은 작품으로 안전한 길을 택한 그녀가 도전한답시고 고른 작품으로 이미지도, 연기력도 망할 수 있었기 때문.
“태주한테 부탁하는 건 보류. 우선 이번에 수안 씨 만나면 좀 진지하게 얘기해 봐야겠어.”
“요즘에 촬영장하고 집만 왔다 갔다 한다던데요. 연락도 잘 안 되고요. 어디서 보시려고요?”
“이번에 손우현 선배랑 김선정 선배 결혼하잖아.”
차용석이 눈을 찡긋거렸다.
“윤수안 씨가 거기 참석한대. 태주한테 들었으니 확실한 정보야.”
* * *
1월 초.
신년부터 함박눈이 오는 이때, 서울의 한 호텔에 수많은 하객이 몰렸다.
오전 11시에 진행되는 결혼식을 위해 태주도 일찍부터 도착했다.
그의 등장에 신부, 신랑 측 하객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한태주다! 와, 진짜 잘생겼다.”
“오늘 한태주가 사회 본대.”
태주는 여러 사람에게 붙잡혀 사인과 사진을 찍어줬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신부 대기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온통 하얀빛으로 눈이 부셨다.
태주는 멍하니 순백의 신부를 바라보았다.
평소 털털하던 김선정은 오늘 곱게 단장하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어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태주야!”
그녀에게서 하이톤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주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어머 얘, 너한테 축하받으니까 부끄럽다.”
얼굴을 붉히던 김선정은 태주를 가까이 불러 안색을 살폈다.
“너 어제 밤새웠니? 피곤해 보인다.”
“아, 네. 결혼식 사회랑 축가 준비하느라고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밤새 결혼식 사회와 축가를 준비한 그였기에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태주는 생애 첫 결혼식 사회를 본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해 있었다.
“우현이 오빠가 괜히 너한테 짐을 지워줘서는.너무 부담되는 거 아니니?”
“아닙니다. 잘할 수 있어요.”
태주는 김선정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저,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요.”
“넉살이 더 늘었네.”
그때, 신부 대기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머, 수안아. 오랜만이다! 너 왜 이리 예뻐졌니!”
김선정이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무채색의 셔츠와 스커트를 입은 윤수안이 단발을 찰랑이며 태주에게 눈인사를 했다.
[머리 잘랐네? 심경의 변화라도 있나?]‘글쎄요.’
“언니, 진짜 결혼 축하드려요. 우현 선배님이랑 언니 너무 잘 어울려요.”
부럽다는 듯한 윤수안의 눈길에 김선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이 태주와 윤수안을 번갈아 오고 가던 순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네?”
“너무 멀리서 인연을 찾지 마, 수안아.인연은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거든.”
그 말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윤수안을 힐끔거렸다.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예비 며느리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냐, 태주야?]옆에 있던 아빠가 주책맞게 말하는 소리에 태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 * *
오전 11시.
손우현과 김선정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식장에 하객들이 가득 들어찼다.
사회자석에서 태주는 연신 보던 종이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긴장하지 마, 태주야. 원래 사회는 자신감이라고!] [네가 두 선배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진행한다면 별다른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을 거다.]‘네….’
일전에 사회를 많이 봤다던 이중협의 조언과 아들을 걱정하는 아빠의 말이 머리에 꽂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야겠어요.’
좀 더 편해진 마음으로 태주는 식장을 둘러보았다.
연예계의 연기파 배우인 손우현과 감초 같은 배우인 김선정은 가까운 이들만 하객으로 불렀다.
가족들 반, 연예계 종사자 반으로 구성된 하객들은 다들 태주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 손우현이 턱시도를 입고 등장하자, 태주는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럼,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이시자 오늘의 주인공인 손우현 선배님께서 나오시겠습니다. 신랑, 입장!”
떨리는 목소리로 진행하는 태주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손우현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은 것을 봤다.
그리고 곧이어 아버지의 손을 잡은 김선정이 버진로드를 천천히 걸어왔다.
신랑과 신부가 주례 앞에 서자 그 후로 결혼식은 물 흐르듯 빠르게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태주는 좋아하는 선배들의 결혼에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버렸다.
사회를 보면서도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던 태주.
그는 자신이 축가를 할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흠흠.”
마이크를 들고 나간 태주에게 김선정과 손우현이 기대하는 눈길을 보내는 가운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퍼지는 뜨거움에 태주는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제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님 두 분이 결혼하신다니,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선정 선배님은 제가 아역배우 시절, 요리 프로그램에서 만났을 때부터 저를 엄마처럼 잘 챙겨주신 분이셨고. 손우현 선배님은 양군보 감독님의 독립영화에 같이 캐스팅되었을 때, 저를 올바른 연기로 이끌어 주신 장본인이십니다. 두 분께는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태주의 말에 뭉클함을 느낀 손우현이 괜히 코를 찍찍거렸다.
“감사하긴 뭘……”
“두 분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제가 폴라리스의 ‘영원한 사랑’ 불러드리겠습니다. 선배님들, 결혼 축하드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음원이 재생되자 태주는 재빨리 마이크를 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쁠 때 곁에 있는 사람은 사랑이고,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은 인연이래잖아~ 그러니 널 앞으로 영원히 아껴줄게, 내 인생의 전부인 너를 영원히 사랑할게~”
노래가 계속될수록 김선정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신부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손우현이 그녀를 다독였지만, 그 또한 감동으로 젖어 있었다.
축가가 끝나자 그들은 누가 뭐랄 것 없이 태주에게 다가갔다.
“고마워, 태주야. 정말 고맙다.”
김선정이 눈물 젖은 눈을 마주치며 환히 웃자, 손우현이 엄한 목소리를 냈다.
“정말 너란 녀석은……, 결혼식에서 내 여자 울리면 어떡하자는 거냐!”
“그러는 선배님이 더 우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나도 울리고 말이야!”
손우현이 눈물을 훔치며 태주에게 씩 웃어 보였다.
그의 미소에 태주도 미소가 흘러나왔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별다른 말이 없어도 가족 같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태주에게는 손우현과 김선정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배님들.”
“고마워, 태주야.”
“내가 더 고맙다.”
손우현과 김선정 부부는 태주를 향해 부모와 같은 미소를 내보였다.
“짜식, 언제 이렇게 커서는….”
그 모습을 보던 태주의 아빠도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태주가 언제 저렇게 큰 건지….]아들에 대한 한은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이중협이 그런 그를 힐끔거렸다.
그에게서 무언가 다채로운 감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