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수확의 묘미 (2)
* * *
태희의 손을 잡고 온 놀이공원.
태희가 회전목마를 타는 것을 나란히 보던 두 남녀의 눈이 똑같은 이유로 흔들렸다.
“태주한테 전화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유독 안절부절못하는 한유경은 태희의 사진을 찍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태희가 그토록 고대하던 야간 개장 놀이공원이었기에 일단은 이곳에 발은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는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찬가지로 태주가 걱정스럽던 차용석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애써 괜찮다는 헛웃음을 지었다.
“에이, 태주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요. 괜한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결혼 미루는 게 좋겠어요. 아니, 태주가 결혼할 때까지 우리 결혼은 없는 걸로 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경 씨?”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차용석이 펄쩍 뛰었다.
“태주가 기분 안 좋은 거랑 우리 결혼이 무슨 상관입니까?”
“용석 씨도 봤죠? 아까 태주가 납골당에서 나왔을 때, 표정 안 좋았던 거. 왜 안 좋았는지 알아요?”
한유경의 말에 차용석은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태주 말로는 부모님 뵙고 오면 늘 기분이 별로라고 했는데…….”
“우리 셋이서 행복해 보여서 기분이 안 좋았던 거라고요. 부모를 잃은 태주는 나랑 태희랑 같이 살면서 그 슬픔을 겨우 극복해 냈는데. 용석 씨랑 태희랑 나랑 이렇게 셋이서 가족처럼 화목했으니…….”
그 말에 차용석은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주가 그렇게 속 좁은 아이는 아닌데….”
“속 좁은 게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걸 두려워하는 거예요.”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굳어있던 태주를 회상하던 한유경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렸을 적에 한꺼번에 부모를 잃었던 기억이 상처가 된 게 분명해요.”
“겉으로만 어른이지, 속에는 아직 상처가 많은 모양이네요.”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치료하지 않으면, 곪기 마련이잖아요. 태주는 나랑 태희 때문에 아픈 티도 제대로 못 냈을 거예요. 어린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 아파요.”
차용석은 그런 한유경을 이해한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유경 씨와 태희를 아끼듯, 태주를 그 이상으로 아끼고 있어요. 태주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용석 씨.”
한유경이 코를 훌쩍였다.
어른인 줄 알았던 조카가 아직 어릴 적 받은 상처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 그저 미안했다.
* * *
한편, 태주가 차를 끌고 패기롭게 온 곳은 한강 근처였다.
옹기종기 커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그가 겨우 찾아낸 곳은 으슥한 곳의 벤치.
[그냥 웬만하면 집으로 가지 그러냐.]옆에서 들려오는 이중협의 목소리에 태주가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안쓰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중협이 보였다.
‘아빠는요?’
[너희 아빠는 고모랑 용석이 옆에 있어. 나 혼자 온 거야.]‘그쪽 따라가라니까요.’
[내가 널 두고 어디를 가냐.]이중협이 그의 옆에 앉더니 대뜸 말했다.
[네가 아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거 알아.]‘형, 그건……’
[나는 처음부터 부모가 없어서, 솔직히 너의 상실감은 잘 모르겠어. 다시 부모님이 나타나면 네가 마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다시 아빠를 잃는다는 두려움에 네가 무서워하는 것도.]차가운 바람에 태주가 움츠러든 순간, 이중협의 따스한 시선이 그를 감싸왔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 너희 아빠는 널 참 많이 사랑하신다는 거. 그리고 너도 그 사랑을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알아요, 저도.’
복잡한 머리를 떨구던 태주에게, 문뜩 어린 시절의 한 파편이 스쳐 지나갔다.
* * *
태주가 8살일 무렵.
크리스마스 때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기상한 태주는 문뜩 짜증을 부렸다.
“가기 싫어, 촬영장.”
“태주가 왜 이럴까. 옷 입고 얼른 가야지.”
“가기 싫단 말이야. 친구들은 다들 엄마, 아빠랑 놀이동산 가는데 왜 나만 촬영가야 해!”
울상이 되어 찡찡거리던 태주는 양팔을 허우적댔다.
결국 옷을 갈아입히던 엄마 대신 아빠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태주야. 오늘 촬영하기 싫어?”
“싫다고! 나도 놀고 싶어!”
평소에는 엄한 아빠 앞에서까지 응석을 부리는 태주.
그런 태주에게 아빠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태주야.”
간결하게 부르는 이름에 태주는 꿀꺽, 긴장된 침을 삼켰다.
평소처럼 엄하게 잔소리할까 봐 잔뜩 굳은 가운데.
아빠는 그를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태주가 오늘 엄마, 아빠하고 온전히 시간 보내고 싶어서 촬영장에 가기 싫은 모양이네.”
“응….”
“그런데 태주는 엄마, 아빠만큼이나 연기도 좋아하지?”
“응!”
귀신같이 자신의 속을 잘 아는 아빠에게 태주가 커다란 눈을 뜬 그때.
아빠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둘 다 하면 되겠다. 오전에는 연기, 오후에는 엄마, 아빠하고 놀이동산 가기.”
“하지만 놀이동산은 낮에만 열잖아.”
“아니야, 밤에도 열어! 야간 개장이라고 들어 봤어?”
아빠의 말에 태주는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역시 아빠는 모르는 것 하나 없는 킹왕짱이었다.
* * *
“좋은 적도 많았는데…….”
비록 자신에게 엄했지만, 자신을 연기적으로는 한 번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태주에게 최고의 아빠였다.
작품 속에서 수많은 아버지가 있었지만,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빠가 좋았다.
영화를 좋아하던 아빠 덕분에 연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런 아빠였기에,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해서 귀신으로 나타난 아빠에게 더욱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귀신은 한을 풀면 성불하니, 아빠가 그에게서 떠나갈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이렇게는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아요, 또다시 이렇게는….’
[그런데 그리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던데.]‘그게 무슨 소리예요?’
[너희 아빠, 자기 소원이 너 클 때까지 지켜보는 거라더라.]‘…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싶은 귀신은 없잖아요.’
[자식이 이승에 남아있는 귀신 중에 간혹 자식들 곁에 이렇게 붙어있기도 해. 물론 매우 힘들지, 고통을 안고 이승을 떠도는 거니까.]‘그래서 정확하게 저희 아빠의 한이 뭐래요?’
[그건 나도 몰라. 아니, 알아도 말 못 해.]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하며 태주를 마주했다.
[그걸 알아내는 건 네 몫이니까.]그 말에 태주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빠의 한이라니, 그건…… 고민하지 않아도 뻔하지.’
생전 아빠는 늘 자신이 좋은 배우, 위대한 배우, 존경받는 배우가 되길 원했다.
자신의 꿈을 이어받은 아들에게, 한재경이 원하는 건 그것 하나뿐일 터였다.
‘아빠의 한은 제가 잘 자라서 위대한 배우가 되는 거겠죠. 그럼 저만 잘하면 돼요.’
‘아빠는 제가 늘 남들보다 뛰어난 배우가 되기를 원했어요.’
[그럼 네가 이선우처럼 더 톱으로 올라선 다음에 나타나도 됐겠지. 왜 굳이 지금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해?]‘그건……. 제가 제대로 연기하나 감시하기 위해서….’
이중협은 태주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안타깝다는 듯 마주 보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대화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있다더니, 그 말이 맞구만.]* * *
한편, 혼자서 한강 벤치에 앉아있는 태주를 발견한 누군가가 있었다.
“저 사람, 한태주 아냐?”
“야, 이 밤중에 한태주가 여기에 왜 있어.”
사진을 찍어 얼굴을 확대해보는 그.
“맞는 것 같은데? 혼자 뭐하는 거지? 누구 기다리나?”
그때, 핸드폰으로 전화하던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사인받을걸.”
“사진 찍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워하던 사람들은 멀리서 찍은 흐릿한 사진들만 몇 번이고 돌려볼 뿐이었다.
* * *
며칠 후, 아침.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는 활력이 넘쳤다.
홍보자료 작성에 여념이 없던 직원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일에 집중했다.
밤샘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그들은 열정으로 활활 타올랐다.
김진수 팀장이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데스 게임’ 공개까지 진짜 얼마 안 남았어요.”
그 말에 직원들의 조용한 대꾸가 이어졌다.
“네.”
“안 떨려요, 다들? 왜 이렇게 태평해요?”
“당연히 떨리죠, 팀장님. 지금 저희가 조용한 건 폭풍전야나 다름없는 거라고요. 폭풍전야!”
송유리 대리는 한껏 흥분해 말을 이었다.
“지금 언론사들에서 난리예요. 데스 게임 보도자료 돌리는데 다들 한태주 씨, 인터뷰 딸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 귀중한 시간에 태주 씨는 해외 스케줄을 이행해야 한다니!”
“이번에 파리 패션위크와 런던국제영화제를 노블 측에서 따라간다고 했었죠?”
“취재팀 꾸려서 간답니다. 한태주 씨의 첫 파리 패션위크를 취재해서 3월호에 싣는다고요.”
김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에 데스 게임이 국내에서만 터질지, 해외에서도 터질지 그게 정말 궁금해요.”
“모황국 감독님 말씀으로는 국내용으로 만드셨다고 하던데요? 거기 나오는 게임, 문화가 다 한국에 맞춰져 있다고요.”
“하지만 재밌는 작품은 문화 막론하고 다 통하는 법이죠. 그리고 데스 게임에는 한태주가 있잖아요.”
김진수의 말에 사무실 전체에 끄덕거림이 전염되는 가운데.
“맞아요. 의외로 해외도 국내만큼이나 빠르게 반응이 올 수 있어요. 사실 이번에 해외 측 인터뷰 타진해서 연결된 곳이 있는데요….”
송유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무실이 놀라움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진짜로요? 해외 언론 중에서도 제일 공신력 높은 그곳에서, 한태주 씨를 단독 인터뷰하길 원한다고요?”
* * *
다음날, 늦은 밤.
드라마 ‘데스 게임’ 관련해서 여러 인터뷰를 한 태주는 헐레벌떡 차를 타고 공항으로 온 참이다.
그의 곁에는 든든한 박인우와 이번에 새로 뽑은 로드매니저, 장진혁이 함께했다.
열정이 넘쳐 다소 뚝딱거리는 그는 태주보다 한 살이 적었다.
“배우님, 마스크 드릴까요?”
깍듯이 마스크를 내미는 장진혁에게 태주가 친절하게 답했다.
“괜찮아요, 진혁 씨.”
“잘하고 있어, 진혁아!”
장진혁을 격려하는 박인우를 본 태주가 큽, 하고 웃어버렸다.
“왜 웃냐?”
“아니, 형이 로드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후배 받은 게 감회가 새로워서.”
“네가 톱스타 된 것만큼 감회가 새로울 게 있겠냐.”
흐뭇한 표정으로 태주를 보던 박인우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팬들을 보고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팬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매번 감회가 새롭고.”
곧 태주에게 수많은 편지와 꽃다발들이 날아들었다.
“파리 잘 다녀오세요. 베일릭스에서 공개되는 드라마도 잘 볼게요!”
“응원에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그를 따라오던 이들 중에는 연예지 기자들도 있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태주 씨, 영국 국영방송 BTC에서 한태주 씨를 단독 인터뷰한다는 소식이 있던데요. 혹시 ‘데스 게임’의 흥행을 예측한 그쪽의 대비인 건가요?”
우성림의 말에 태주가 홱 고개를 돌렸다.
회사에서도 극비로 유지되던 인터뷰 약속을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에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인터넷에 속보 떴어요. BTC에서 한태주 씨, 단독 취재해서 생방송으로 내보낸다고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