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수확의 묘미 (3)
* * *
동 시각, 영국 BTC 방송국.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회의실에서는 수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태주가 우리 월드 와이드 쇼에 단독 출연하는 거 기사 떴네. 파리 패션위크 끝내고 한태주가 런던 넘어올 때쯤에 보도하려고 그랬는데.”
“내려달라고 요청하지, 그랬어요. 아직 출연 확정된 거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하고.”
“이미 늦었어. 한국 언론에서도 이거 그대로 받아써서 벌써 소식을 뿌렸거든. 어뷰징 기사만 수십 건이야.”
머리를 긁적이던 국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주변을 훑어보았다.
“엠바고로 하기로 했는데, 이걸 벌써 인터넷에 뿌릴 건 뭐냐고. 어떻게 된 거야?”
“누가 한국인 교민 커뮤니티에 이 소식을 흘렸는데, 이걸 인터넷 언론사가 넙죽 받아먹은 모양입니다.”
“뭐야, 사라 네가 흘린 거야?”
갑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에 한국계 영국인, 사라 황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왜 이래, 나는 프로라고.”
“하긴, 사라 네가 그럴 리 없지. 너만큼 냉정하고 프로다운 사람은 내 평생 본 적 없으니까.”
사라는 칼 단발을 뒤로 넘기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국장님.혹시 모르니까 한태주 말고 다른 배우도 섭외하면 어떨까요. 데스 게임에 함께 출연한 심요연 씨라든가?”
“아니야, 한태주 단독으로 가는 게 나아.”
“한태주 혼자만으로 1시간을 꽉 채울 수 있을까요?”
“충분히 단독으로 다룰 가치가 있어.”
망설이는 사라에게 국장이 확신에 찬 시선을 마주했다.
“최근에 K-컬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추세잖아.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제일 핫한 톱스타가 바로 한태주라고. 게다가 요즘에는 베일릭스 덕분에 해외 팬들도 많이 생겼고.”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아요?”
월드 와이드쇼의 진행자인 사라는 종이를 뒤적였다.
“솔직히 우리 시청자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들이 주인데, 뭘 다뤄야 공감대가 형성될지…”
“휴식기에 있는 디에고 크루즈를 영화 공동 주연으로 끌어낸 것만 해도 다룰 건 많지.”
“아, 그랬죠?”
사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휴식기에는 절대로 작품 안 한다던 디에고가 한태주랑 같이 영화를 찍다니! 이번에 한국에서 크랭크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리고 이번에 한태주가 파리 패션위크 참석한 후에 런던 국제영화제에 남우주연상 후보 자격으로 온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있으면 한태주가 주연인 ‘데스 게임’이 베일릭스에서 공개되잖아요. 요즘 한국 드라마들 쏠쏠히 월드 랭킹에 드는 추세인데, 그 드라마도 안착하면 좋겠네요.”
사라가 씩 웃었다.
“그럼 우리는 진정한 월드 스타, 한태주를 게스트로 모시게 되는 거니까요.”
* * *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태주는 박인우의 테블릿 PC로 여러 기사를 확인했다.
인터넷이 끊기기 전, 미리 기사들을 캡처해둔 박인우의 센스 덕분이었다.
기사를 읽던 태주는 문뜩 고개를 들었다.
“인우 형, 나 궁금한 거 있어.”
종이를 뒤적거리던 박인우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뭔데?”
태주는 조금 전 공항에서 봤던 팬들의 아우성을 상기하며 중얼거렸다.
“한국인들은 그렇다 치고, 외국인들한테도 내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게 신기해서.”
턱을 쓸어올리던 태주는 그 이유를 생각하려는 듯 깊은 사색에 빠졌다.
비행기에서 스친 외국인들은 기가 막히게 그를 알아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광대’의 효원으로, 누군가는 ‘낭만 고양이’의 고영민으로,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를 아역배우로 기억했다.
“전 세계 톱 10위, 그리고 아시아권 랭킹 톱 3위 내에 들었으면 굉장한 인기를 얻은 거지. 그리고 ‘광대’도 평가 좋았잖아.”
자신의 공적인 마냥 한껏 자랑하던 박인우의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려 있었다.
“좋은 작품이니까 해외에서도 다들 알아보는 거지, 너의 진가를.”
“흥흥.”
그 말에 태주는 얼굴이 빨개졌다.
박인우의 칭찬에 이중협은 물론 옆에 있던 한재경마저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다.
언제나 칭찬은 좋으면서도 어색했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에 아빠가 저리 기뻐하니 괜히 신이 났다.
그날 납골당에서 괜한 투정을 부린 이후 아빠와 공식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눈에 최대한 안 띄려고 했다.
그렇기에 아빠가 저리 좋아하는 모습에 한 줄기의 희망이 보였다.
들뜬 마음에 태주가 입꼬리를 들썩였다.
“형, 그런 칭찬 더 해줘.”
“엥? 네가 웬일이야. 칭찬은 낯간지럽다고 하지 말라는 애가.”
“여기 카메라도 있으니까 좀 더 칭찬해달라고.”
태주가 눈앞에 있던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의 파리 패션위크 일정을 찍는다며 ‘노블’ 촬영팀에서 설치해 두고 간 거치캠이었다.
“뭐야, 카메라에 대놓고 너 칭찬하는 건… 내 전공이지!”
박인우가 태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카메라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우리 태주는요, 참으로 멋진 친구입니다. 누구보다 연기를 사랑하는 건 물론, 자신이 맡은 작품에 열과 성을 다해요. 끊임없이 노력하죠. 그것뿐인 줄 아세요?”
칭찬을 듣던 태주가 점점 얼굴이 익어가던 사이.
“형, 인제 그만….”
“우리 태주는 얼굴도 잘생겼는데 비율도 모델급으로 끝내줘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바로 성격! 팬분들을 사랑하고 팀원들을 아끼는 마음이 아주 따뜻해서 제가 늘 감동하는 부분이랍니다!”
어느새 듣고 있던 주변 스태프들까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 모습을 본 태주는 더욱 얼굴이 익어갔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 * *
태주가 화장실에 간 사이.
칭찬 세례를 퍼부은 박인우가 혼자서 킬킬거렸다.
“귀여운 녀석. 스타인데 하는 짓은 평범한 대학생 그 자체란 말이야.”
그때.
박인우의 옆에 앉아있던 스타일리스트가 그를 톡톡 건드렸다.
“실장님. 이번에 백시영도 파리 간다는 거, 사실이에요?”
“네, 사실이에요.”
“그럼, 정말 백시영이 아벨 패션위크에 초대받아서 파리 간다고요?”
박인우의 얼굴이 굳어지며 착잡함이 스쳤다.
“아벨 수석 디자이너가 그렇게 백시영을 좋아한대요. 매년 초대장을 보내주면서 VIP 대접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마약 사건 이후 메인 모델에서는 교체되었어도 아직 그쪽 사랑을 받는 모양이에요. 패션위크에도 초대받은 걸 보니.”
스타일리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도 참 보는 눈 없네요. 우리 태주 씨가 마스크나 비율이 훨씬 훌륭한데. 금욕미와 퇴폐미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잘 어울리는 배우가 어디에 있다고.”
“사실…. 태주한테도 아벨 쪽 오퍼가 안 들어온 건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스타일리스트가 박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럼 왜 우리는 보드레 쪽 패션쇼만 참석하는 거죠?”
“우리 쪽에서 거절했거든요.”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백시영하고 태주하고 둘이 붙여놓겠다잖아요. 둘 사이가 불편한 거 뻔히 알 텐데, 굳이 붙여놓겠다는 저의에 우리가 동참할 이유도 없고요.”
박인우는 일전에 차용석과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필요 없어.아무리 아벨이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해도 백시영하고 태주를 동시에 뮤즈로 기용하는 건, 모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 * *
장장 14시간의 비행 후.
태주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품을 애써 숨기며 비행기에서 내리자 그들은 VIP들이 이용하는 게이트로 안내받았다.
태주가 박인우와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자신을 에워싸는 수많은 환호성과 플래시를 마주했다.
“오오, 한태주다!”
“세상에, 화면에서보다 실물이 더 멋있잖아!”
“분위기 정말 독보적이다!”
핸드폰과 카메라 렌즈를 태주를 향해 치켜든 사람들은 한껏 흥분되어 보였다.
태주의 주변을 에워싼 보안요원들이 그들을 제지하기 어려워할 정도의 수였다.
태주는 자신에게 건네는 편지와 꽃다발들을 받으며 쑥스러움에 싱긋 웃어 보였다.
빽빽이 달려드는 팬들 사이를 헤치고 겨우 빠져나온 태주는 호텔로 향하는 차에 올라타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 후…. 진짜 놀랬네.”
“이럴 줄 알았어. 네 인기가 해외로 진작에 뻗어나갔다는 걸 내가 알았다니까!”
“그러게, 그분들이 내 작품들을 다 알고 있더라고.”
태주도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낭만 고양이, 광대, 그림자 무사, 심지어 마지막 승부까지.”
“이야, 데스 게임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사람들 몰리면 어떡하냐.”
박인우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내일도 각오해야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네 인기 대단한데?”
* * *
본격적인 일정은 다음날부터 시작이라.
늦은 오후에 호텔에 도착한 태주는 저녁을 먹고 강에 산책하러 나왔다.
아니, 말이 산책이지 사실은 촬영이었다.
‘한태주의 파리 생활’이라는 이름의 생활 필름이랄까.
태주는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보드레’의 의상을 입고 파리의 센강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다니는 ‘노블’ 촬영팀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어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영상.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고 귀여워하는 태주의 웃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에 스태프들의 눈에서는 하트가 뿜뿜거리는 것 같았다.
“진짜 잘 찍힌다. 태주 씨 옷 태는 둘째치고,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이야!”
“보드레 옷이 저렇게 멋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솔직히 하이패션이라 좀 난해하다고 생각했거든.”
“한태주 씨가 모델 된 이후에 200매출이 200퍼센트 증가했대. 옷이 모델 버프 받는 것도 있지만, 옷 자체도 멋있어.”
그때, 저편에서 전화 통화를 마친 박인우가 살짝 굳은 얼굴로 태주에게 다가왔다.
“태주야, 이걸 말해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뭔데?”
“아벨 측에서 또 연락이 왔어. 널 쇼에 초대하고 싶다고. 내일 오후 2시래.”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아벨’에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태주를 초대한 것이다.
“글쎄, 곤란할 것 같은데.”
스케줄을 확인한 태주의 미간이 난감한 듯 찡그려졌다.
“그때는 보드레 쇼에 참석하고 있는 시간이잖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