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수확의 묘미 (6)
* * *
그날 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술집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어울리고 있다.
그중 한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드라마 봐야 하는데. 너 태블릿 PC 가져왔지? 이리 줘 봐.”
“술 마시려 나와서까지 무슨 드라마야.”
“오늘 진짜 중요한 장면 나온다고 했단 말이야.”
티격태격하는 커플을 보던 친구들이 피식거렸다.
“강재하 팬이라더니 진짜 팬심이 엄청나네.”
“우리 재하 배우님 드라마는 무조건 본방으로 봐야 한다고.”
여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들어 올렸다.
“특히 어제 ‘청룡검신’ 1화 놓쳐서 오늘은 꼭 봐야 해.”
여자는 곧바로 ‘청룡검신’을 틀었다.
덩달아 친구들도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10분이 채 되지 않아 그들의 얼굴빛은 곧 흙빛이 되어버렸다.
“뭐야, 이거? 원래 조선 시대에 이런 중국식 월병이 올라오는 거였어?”
“판타지 사극인데 뭘 바라. 고증 따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봐.”
“아무리 왕이 악귀가 들렸어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 목을 졸라?”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점점 얼굴이 험악해지는 그들이었다.
“세종대왕을 너무 능멸하는 거 아냐? 이거 너무하네.”
“기생들 입은 것 좀 봐. 왜 치파오를 입혀 놨어?”
“역사 판타지라도 정도가 있지. 이건 퓨전 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었어.”
불만으로 아우성치던 친구들이 결국 태블릿 PC를 빼앗았다.
“야, 차라리 베일릭스나 보자. 이번에 한태주 나오는 ‘데스 게임’ 올라왔대.”
“그거 19금이잖아. 나 잔인한 거 싫어하는데. 누구 죽이는 것도 보기 싫고.”
“하여튼 까다롭기는. 일단 1화 보고 판단하면 되잖아.”
옹기종기 모여 화면을 응시하던 친구들.
화면을 가득히 채운 한태주의 배달원 모습에 키득거렸다.
“어떻게 한태주는 이런 역할을 해도 간지가 나냐.”
“기럭지가 좋아서 그래.”
“카리스마가 좔좔 흐르잖아, 한태주 자체에.”
드라마에 빠져 5분과도 같은 50분이 지나간 그때.
화면이 검은색으로 바뀌더니 ‘다음 화로’라는 버튼이 떴다.
눈 깜짝할 사이 1화가 지나간 것이다.
“야, 우리도 슬슬 해산해야지.”
술집 주인의 눈치를 보던 남자가 친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친구들은 흥분으로 고취된 상태였다.
심지어 ‘청룡검신’을 봐야 한다던 그의 여자친구는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야, 뭐해? 빨리 다음 화 눌러!”
* * *
동 시각.
집에서 땅콩을 까먹으며 티비를 응시하고 있는 황유나.
그녀의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다.
인턴 기자로서 유능함을 인정받은 그녀가 부여받은 임무는 드라마 리뷰 기사.
올해 최고의 기대작 중인 하나인 DBC의 ‘청룡검신’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티비를 보던 그녀의 얼굴은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진짜 이걸 리뷰해야 한다고?”
어제 1화도 재미가 없어 겨우겨우 기사를 썼던 그녀였다.
인턴 기자인 만큼 아직은 워딩을 조심했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솔직한 감상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아웃패치에서는 다들 ‘청룡검신’에 대한 좋은 평들을 써서, 더욱 비교되었다.
대부분은 드림액터스에서 돈을 먹인 홍보성 기사들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지만.
그 기사들을 본 황유나는 그저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커뮤니티 반응도 안 보나 봐. 지금 전개며 연기며, 총체적 난국인데 어떻게 저리 찬양할 수 있지?”
인내심을 끌어모아 드라마를 보던 황유나.
그녀는 30분이 지나자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더니,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 우성림에게 전화했다.
“선배님. 저 지금 청룡검신 보고 있는데요. 이런 논란거리 드라마를 정말 계속 리뷰해야 해요?”
다짜고짜 불평을 늘어놓은 후배를 우성림은 차분하게 응수했다.
-일단 2화까지는 리뷰해 봐.
“일단은…… 이라뇨?”
우성림의 목소리가 비밀을 말하듯 점점 작아졌다.
-그 드라마, 3화 방영까지 안 갈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금 ‘청룡검신’에 협찬했던 광고주들이 줄줄이 발을 빼는 추세거든. 내가 확인한 곳만 벌써 10곳이 넘어.
“에? 아직 그런 기사는 못 봤는데요?”
-기사는 내일 오피셜로 올라올 거야. 내가 지금 작성하고 있으니까, 확실해.
스타뉴스 사무실에서 기사를 완성하고 있던 우성림.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방영 전부터 논란이 많던 드라마잖아. 진작에 터져도 터질 문제였지. 다른 문제도 아니고, 역사 왜곡을 제대로 했으니.
“그럼 태주 선배 혜안이 맞았네요. 원래 ‘청룡검신’ 주연 자리가 태주 선배한테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 거절했잖아요.”
-나, 가끔은 태주 씨가 무섭더라. 꼭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예측하고 ‘데스 게임’을 선택한 것 같아서 말야.
수화기 너머 우성림이 혀를 내둘렀다.
-지금 홍 선배가 데스 게임 관련해서 특집 기사 준비하고 있거든.
“데스 게임이요? 아, 그거 지금 월드 랭킹에 진입했죠?”
-그 이상이야. 비영어권에서는 1위에 오른 상황이라고.
그 말에 황유나가 자리에서 벌떡 튀어 올랐다.
“1… 1위요?!”
-그렇다니까. 그래서 이 기사 마무리 짓는 대로 런던으로 넘어갈 거야, 태주 씨 단독 인터뷰 따러.
“저도, 저도 갈래요!”
-안 그래도 네 것도 끊어놨어. 가서 우리가 태주 씨 승리의 순간을 잘 취재해 오자고!
전화 통화를 하던 두 기자는 그때를 상상하며 환히 웃어댔다.
* * *
한편, ABS 뉴스 보도국.
설 연휴인 지금, 국장실에서 얘기 중인 두 남자의 대화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ABS의 뉴스 국장과 9시 뉴스의 메인 연출자는 한참이나 격한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 데스 게임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우리도 한태주 인터뷰 하나 따와야 하는 것 아닐까?”
메인 피디가 고개를 흔들었다.
“국장님, 뉴스 국으로서 가오가 있죠. 저희를 도대체 뭘로 보시는 겁니까.”
“다른 데 빼앗기는 것보다 우리가 독점하는 게 낫잖아.”
국장은 방금 들어온 정보를 연출자에게 전달했다.
“지금 DBC가 히드로 공항에서 한태주 독점 인터뷰를 한다는 소문이 있단 말이야.”
“DBC가요? 아니 왜요? 거기는 ‘청룡검신’을 한창 띄우고 있었잖습니까.”
“지금 ‘청룡검신’이 대형 논란에 휩싸였으니까 그렇지. 드라마에서 발 빼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모양이야.”
“아직 2화밖에 방송 안 됐는데, 벌써부터 발을 뺀다고요?”
“광고주들이 광고를 철회한다는데 지네가 뭘 어쩔 거야.”
국장이 심란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표면적으로는 1달간 결방을 한다는 것 같더라, 그동안 재정비해서 3회부터 다시 방영하는 거로. 그런데 지금 역사 왜곡이다 뭐다 해서 시청자들 분노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배우들에 대한 분노도 상당하더라고요. 특히 강재하가 그랬잖아요. 판타지 사극으로서 이 작품이 너무 재밌었다고요. 다들 역사의식에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 생각이란 게 있으면 발 뺄 거야.”
국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
“아무튼, 우리도 특파원한테 연락이나 해 봐. DBC한테 한태주 독점 인터뷰 뺏길 수는 없잖아!”
* * *
동 시각, 베일릭스 한국 지사.
밤이 깊은 시각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퇴근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은 푹 잔 사람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데스 게임 조회 수는 증가 추이가 어떻게 되나?”
“무척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습니다.”
한껏 흥분한 직원이 박숭원 본부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한국 랭킹은 1위까지 올랐고요. 비영어권은 1위를 굳혔습니다. 그리고 지금 월드 랭킹은….”
“3위? 벌써?”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박숭원이 눈을 비비적거려 봤지만.
모니터에 떠 있는 ‘데스 게임’의 수치는 분명 ‘3’이었다.
월드 랭킹은 5위에만 들어도 기적이라던 그들의 염원이 통한 것일까.
“본사에서 노났네, 노났어.”
박숭원이 중얼거린 말을 직원들이 신나게 받았다.
“작년에 1,000억 들인 드라마만 3편이 망했잖아요. 그런데 저희 드라마는 총 300억 들었는데 벌써 이 정도 성과면, 엄청난 거죠.”
“월드 랭킹 3위면, 2주만 있어도 그 파급력이 엄청난데.”
“본부장님도 참.”
직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3위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세요?”
“역대 한국 드라마가 아무리 인기가 많았어도 그 이상 간 드라마는 없었어. 인기 많았다던 ‘낭만 고양이’도 9위가 최고였다고.”
“‘데스 게임’은 그 이상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걸요. 혹시 알아요? 더 올라갈지.”
“그래? 그럼 한… 2위까지는 바라볼까? 아무리 그래도 미국의 ‘미스터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따라갈 수 없을 테니까.”
베일릭스를 통틀어 월드 랭킹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스터 스트레인지 시리즈.
직원들도 그 기록은 깨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기적이란 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 * *
몇 시간 후.
곤히 잠들어 있는 태주를 옆에 있던 박인우가 흔들어 깨웠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흥분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태주야, 웰컴 투 런던 히드로 에어포트.”
“도착했어…?”
“아이고, 피곤한가 보네. 나 잠깐 사무장님이랑 얘기하고 올게. 정신 차리고 있어.”
박인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태주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눈을 비볐다.
그의 잠을 깨워주려는 듯 이중협이 장난스러운 얼굴을 들이댔다.
[태주야, 이 귀여운 녀석!]“앗!”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태주.
그런 그의 눈앞에 박인우가 상기된 얼굴을 들이댔다.
“태주야, 우리 좀 늦게 내려야겠는데?”
“응? 나 빨리 내려서 홀가분하게 차에 타고 싶은데.”
“아니, 그게…. 아무튼 좀 늦게 내리자. 지금 데스 게임 때문에 난리 나서 기자들이 밖에 진을 치고 있나 봐.”
“기자들이? 데스 게임 공개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그런 반응이 온다고? 국내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해외에서도 지금 반응이 세게 오는 모양이야.”
박인우가 흥분한 채 자신의 핸드폰을 켠 그때.
그동안 온 부재중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쌓이는 광경을 태주는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와, 형. 이게 다 뭐야?”
“뭐기는.”
박인우는 태주에게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월드 스타의 탄생을 축하하는 메시지지.”
* * *
몇 시간 후.
인파를 피해 비행기에서 늦게 내린 태주는 느지막하게 게이트로 향했다.
모자, 마스크를 쓴 채 VIP 게이트를 벗어난 태주는 생각지도 못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한태주 맞나?”
“잠시 질문 좀 받아주세요!”
“베일릭스에 공개된 ‘데스 게임’이 지금 월드 랭킹 3위까지 치솟았습니다. 혹시 그 드라마의 주인공 한태주 씨가 맞으신 가요?”
영국 언론, 한국 언론 할 것 없이 태주의 눈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유.
공개 하루 만에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데스 게임’.
그 주인공인 한태주의 등장에 다들 열광해서 그를 주목하는 가운데.
태주가 마스크를 벗고 상기된 얼굴로 그들과 마주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한태주입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