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월드 스타의 길 (2)
MC가 전해준 말에 태주가 몸을 벌컥 일으켰다.
영어권 나라에서 베일릭스 랭킹에 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를 자막이 아닌 영어 대사 그대로 감상하는 게 익숙한
영어권 사람들인지라 더욱 그랬다.
특히나 ‘데스 게임’은 한국적 정서가 물씬 들어간 드라마.
그래서 영어권 나라에서의 1위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축하드립니다.”
한껏 들뜬 MC의 말에 태주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MC가 유쾌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겹경사네요. 출연하신 영화 ‘광대’가 런던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관심
을 받는 것도 그렇고, 베일릭스 드라마 ‘데스 게임’이 영국에서 1위를 차
지한 것도 그렇고요. 소감 한마디 하시죠.”
카메라를 가리키는 손을 따라 태주가 의연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데스 게임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드
라마는 보면 볼수록 더욱 재밌는 작품이니, 계속해서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각 같은 태주의 얼굴에 한껏 상기된 혈색이 도는그때.
스튜디오 밖에서는 그 모습에 붉어진 소녀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보인
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제작진은 못내 만족스러운 듯 소곤거렸다.
“아시아권 배우라 시청률 걱정을 좀 했는데, 일단 관심은 확실히 끈 것
같군.”
“실시간 시청률 보고 들어왔는데, 지난주 시청률보다 3퍼센트 오른
10퍼센트입니다.”
“오, 좋아!”
촬영장 분위기가 밝아진 이때.
MC는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희는 토크쇼로 다시 돌아와 볼까요?”
***
얼마 후, 한국.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던 스타뉴스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
다.
“아, 좀! 랭킹 한 계단 올라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홍은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녀가 보고 있던 모니터에는 데스 게임의 랭킹이 떠 있었다.
마치 자기 작품처럼 실시간으로 랭킹을 확인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포효에 옆에 있던 후배들도 동조했다.
“그러니까요. 비영어권은 진작에 1위로 올라섰는데, 영어권 넘기가 그
렇게 힘드네요.”
“그래도 영국에서 베일릭스 1위를 차지한 게 어디예요. 저는 한국 드
라마가 영국에서 1위 했다는게 아직도 안 믿기는데….”
“재밌으면 세계적으로 통한다는 게 이번에 증명된 거죠.”
그때, 홍은지의 눈이 불타올랐다.
“맞다. 지금 태주 씨 BTC 인터뷰하고 있겠네. 얼른 써줘야지, 이 좋은
소식을!”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하던 홍은지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던 가운데.
동영상 속 한태주의 훤칠한 모습에 그녀의 얼굴은 점점 상기되었다.
빠르게 내뱉는영어에 막힘 없는 제스처, 그리고 열정적인 목소리까지.
홍은지는 다시 한번 배우 한태주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야, 우리 태주 씨는 못 하는 게 없다니까. 어쩜 애가 매번 노력해서
이렇게 성장하다니.”
그때, 미국에서 유학하고 왔다던 후배가 쓱 고개를 내밀었다.
“태주 씨 영국 공영 방송하는 거 리뷰 따고 계신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 기자들이 하나둘 홍은지에게 몰려든 가운데,
여기저기서 영어에 자신 있는 후배들이 한두 마디 꺼냈다.
“솔직히 원어민처럼 잘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자신감 있게 하는 모습
이 보기 좋네요.”
“일단 악센트하고 목소리에서 먹고 들어가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들려요”
“애초에 외국에 산 적이 없는데 이만큼 하면 엄청나게 잘하는 거지. 통
역사 없이 생방송 하는 것도 대단한 거아니야?”
홍은지가 뿌듯한 얼굴로 노트북을 열었다.
“얼른 리뷰 기사 써서 올려야지. 태주 씨의 소식에 목마른 사람들한테
는 단비가 될 테니까.”
***
동 시각, 드림액터스.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대표실에서 장희재와 탁시준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다름 아닌 ‘청룡검신’.
200억을 들여 야심 차게 제작한 드라마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 가라앉
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2화를 방송했는데, 연예계, 시사게 할 것 없이 비난이 터져
나왔다.
역사 왜곡, 조연 샤오웨이의 지나친 분량 등등 비판 거리가 넘쳐나는
가운데.
결국 휴방을 결정한 드라마는 1달간의 재정비를 선언했다.
하지만 광고주들이 하나둘씩 손절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드라마의
방영까지 위협이 가는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DBC 측에서는 방영 중단을 조심스레 논하는 전화
가 걸려 왔다.
그 말인즉슨, 자사 방송국에서는 더 이상 송출이 불가하다는 뜻을 내
비친 것.
국장과 통화를 한 탁시준은 장희재에게 이 무거운 소식을 전했다.
“아무래도 저희 드라마, 조기 종영을 해야 할듯싶습니다.”
“조기 종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재정비해서 방영할 생각을 해야지.”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탁시준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애써 숨겼다.
“광고주도, 방송국도 다 발을 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어떻게 방영을 이어갑니까.”
“출연료는 8회까지 다 줬잖아.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방영을…….
“모두가 저희 드라마를 거부하는 추세입니다. DBC 국장이 그러더군
요. 돈에 눈이 멀어서 이 드라마를 편성한 게 그렇게 후회가 된다고.”
그 말에 장희재는 주먹을 꽉 쥐었다.
“터진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군.”
“대표님, 지금 이대로 버티고있으면 손해는 더욱 막심하게 불어날 뿐입니다. 한시라도빨리 철수하는 게 낫습니다.”
탁시준의 설득에도 장희재는 고집 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철수는 무슨. 어떻게든 잘 손봐서 손해를 메꿀 생각을 해야지. 시준이
너 이런 거 전문이잖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해!”
얼마 후.
대표실을 나온 탁시준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야.”
탁시준은 돈만 생각하는 장희재에게 이제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복도를 걷던 그의 눈에 띈 매니지먼트 2팀.
밤늦은 시각까지야근하던 직원들이 눈에 띈 탁시간은 조용히 안으로들어갔다.
유독 조용한 공기가 흐르는 사무실 안.
그는 모니터에 ‘데스 게임’이 틀어져 있던 남자 직원의 어깨를 짚었다.
“경수야.”
“본… 본부장님!”
자사 작품이 아닌 다른 걸 보는 것이 찔렸던 직원이 황급히 모니터를가렸다.
그렇지만 탁시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너도 데스 게임이 재밌지?”
“네…. 네?”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 봐.”
잠시 망설이던 직원이 기어들어 가는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저희 회사가 이 작품을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룡검신 같은 드라마가 아니라요.”
탁시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태주 씨 안목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태주 씨가 ‘데스 게임’의 흥행으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있는지 보면 알 수 있죠.”
한번 입이 터진 직원은 말을 멈출 줄 몰랐다.
그가 마우스를 클릭해서보여준 포털 사이트의 톱에는 ‘한태주’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이것 보세요.BTC 월드 와이드 프로에 한태주 씨가 출연했는데, 런던 국제영화제에 영화 ‘광대’로 초청받은 소감과 ‘데스 게임’의 흥행에 대해서 아주 흥미롭게 잘 말했어요.”
영상을 보던 탁시준이 굳은 입대를 달짝거렸다.
“한태주가 이렇게 말을 잘했던가?”
“원래 자기 작품에 있어서는 자부심이 대단한 배우잖아요. 그런데 영어로도 말을 참 잘하네요.”
직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의의미를 탁시준은 잘 알았다.
드림액터스가 한태주를 놓친 건 최악의 수였다는 것.
탁시준이 한숨을 쉬며 향한 곳은 흡연실.
지난 5년간 간신히 끊은 담배에 절로 손이 가는 순간이다.
“……
뿌연 담배 연기에 휩싸인 탁시준의 손이 양복 안주머니로 향했다.
탁시준이 품에 간직했던 종이를 바스락거렸다.
하얀 봉투에 써진 세 글자.
사직서였다.
***
해가 저물어깜깜해진 저녁 7시.
겨울철의 영국은 무척이나추워 태주는 밤색 코트를 것까지 세워 단단히 챙겨입은 채였다.
임강현과 함께 차를 타고 GV가 열리는 극장으로 향한태주. 극장 앞에 다다르니 크게 울리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태주가 임강현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그들을 향해 플래시가 쉴 새 없
이 터져댔다.
“한태주다!”
“데스 게임의 주인공이야!”
그들을 향한 관심은 극장을 들어가는 내내 이어졌다.
대기실로 향한 태주는 이탁원 감독과 염수정을 마주하고서야긴장을풀 수 있었다.
“밖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왕이라도 온 줄 알았어요.”
태주의 말에 임강현이 킬킬거렸다.
“저 사람들한테 너는 왕이나 다름없지.”
임강현의 말에 태주는 멋쩍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사실 그는 ‘데스 게임’의 인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가장 와닿는 건 SNS 팔로워의 급격한 증가.
90만 정도였던그의 팔로워는 100만, 200만을 넘어 지금은 3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호텔에서 데스 게임 봤는데, 재밌긴 하더라. 요연이 언니랑 네케미도 정말 좋았어.”
염수정이 눈을 반짝이며 태주에게 물었다.
“데스 게임이 대박 나니까너도 기분 좋지? 태주야, 솔직하게 말해 봐.”
“저는 지금 ‘광대’에 온 신경이 쓰여서요. 영화에 관심 가져주시는 관객분들께 저희 영화의 숨겨진 매력들을 더욱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으이그, 능글맞게 저렇게 빠져나가는 데는 선수라니까!”
“그냥 대놓고 자랑해, 기분 좋다고!”
염수정과 임강현이 입을 모아 장난스럽게 태주를 타박하는 그때. 진행요원의 안내로 그들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커다란 극장이 수많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영화 ‘광대’ GV를 위해 참석한 사람들은 태주의 등장에 크게 손뼉을쳤다.
참석이 예정되어 있던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가 자리해 있었다.
다들 복도에 껴서라도어떻게든 태주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태주가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한태주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오는 함성.
태주는 얼굴이 붉어짐을 숨길 수 없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영화 ‘광대’의 매력을 알리느라상기되어 있었다.
***
“아이고, 힘들다.”
GV가 끝나고 간단한 저녁 식사 후, 태주는 곧장 호텔 밤으로 돌아왔다.
관객과의 대화에 온 힘을 쏟았더니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 ‘광대’를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관객들은배우 한태주에게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태주는 자신과 임강현의 라이벌 관계, 염수정에 대한 존경심 등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자기 작품뿐만이 아니라, 무대에 올라와 있는 배우들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들도 같이 소개했다.
영화 GV 인데 자신에게만 쏠리는 관심이 미안했던 태주의 배려에, 다들 그 진심을 느낀 듯했다.
저녁 식사 내내 태주를 챙겨주고 그를 알아보는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걸 보면.
“강현이가 이따가 펍 가자고 했는데. 시간좀 남았지?”
“응.”
박인우의 대답에침대에서 뒹굴뒹굴하던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 핸드폰을 들었다.
“밀린 답장부터 하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쉴 새 없이 메시지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동안 바쁜 일정 때문에 미처 확인을 못 했던 것들이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서 온 수많은 축하 메시지들.
태주가 출연한 ‘데스 게임’의 흥행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와, 데스 게임 몰입력 대단하다. 나 자기 전에 잠깐 1화만 보려고 베일릭스 켰거든? 그런데 6화 전편 다 보고 밤을 꼴딱 새웠지 뭐냐 이거 진짜 재밌다.
– 너의 첫 번째 팬으로서 내가 영화 후반부 작업하느라 바쁜데도 불구하고 데스 게임 전편을 다 보았지. 나의 평은… 5점 만점에 5점! 역시 한태주 너의 연기는 좋았다!
윤지호, 서동락을 비롯한 설채빈, 강승민 등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중에서 태주의 마음속에 가장깊이 박힌 메시지는 윤수안에게서 온것이었다.
-조금 질투가 나려고 하네요. 태주 씨한데. 저도 배우로서 욕심이 생겨요. 앞으로 저도 열심히 해서 태주 씨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줄래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