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월드 스타의 길 (4)
* * *
13년 전.
드라마 촬영장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ABS 세트장에서 찍는 오늘의 드라마는 대한민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즐거운 나의 집’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 비결인 아역배우 한태주도 촬영장에 참석했다.
잘생긴 외모와 성인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빼어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한태주.
밝고 예의 바른 성격으로 촬영장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였다.
“태주 어디 갔어요?”
“출근하자마자 찾는 게 태주네, 감독님이 아니고.”
“아니, 그게 아니라….”
멋쩍은 표정의 스태프가 재빨리 변명했다.
“태주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봐야 힘이 생기는 것 같아서요. 애가 워낙에 예쁘니까.”
그녀의 말에 옆을 지나가던 동료가 말을 덧붙였다.
“지금 태주 바빠. 오늘은 아빠랑 같이 왔거든.”
그 말에 스태프들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이랑 같이 왔어?”
“하긴,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지금도 대본 연습하고 있겠네요.”
평소에 태주는 엄마랑 같이 다녔지만. 오늘처럼 촬영 날이 휴일일 때면, 아빠가 데리고 올 때가 있었다.
“태주 아버님은 여느 피디님 그 이상으로 엄하시네.”
“태주 아빠,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하지.”
“안녕하세요, 조감독님.”
옆에서 불쑥 나타난 주인식이 혀를 끌끌 찼다.
“나보다 더 엄격한 양반이라고, 저 양반이.”
“정말요? 감독님도 태주한테 제법 엄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야. 나는 저분에 비하면 발끝만큼도 못 미쳐.”
주인식은 저쪽 구석에서 대본을 연습하고 있는 태주와 태주의 아빠를 힐끔거렸다.
한껏 미간을 찡그린 한재경은 태주에게 뭐라고 말했고, 태주는 그에 지지 않고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부자지간에 흐르는 뜨거운 공기가 촬영장 전체에 흐르는 것 같은 건 느낌 탓일까.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태주의 안정적인 연기와 작품에 대한 탐구심은 아빠의 지도 덕분이라는 것을.
* * *
그날 밤.
늦은 저녁에 촬영장에서 돌아온 태주는 저녁을 빨리 해치우고 곧바로 방에 들어갔다.
그런 아들이 걱정되었던 태주의 엄마, 송혜진은 큰 눈을 깜빡였다.
“같이 후식이라도 좀 먹지. 여보, 태주 거실로 불러 와.”
“내버려 둬. 혼자서 거울 보면서 연습하고 싶은 표정이 있다고 했어. 하고 싶을 때 해야지, 흐름 끊기면 나중에는 하기 싫어져.”
거실에서 태주가 지금 들어간 드라마 대본을 분석하고 있던 한재경은 안경을 쓸어올렸다.
그는 늘 태주보다 먼저 대본을 분석해서 아들과 함께 연습하고는 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같이 연습하는 게 훨씬 힘이 된다면서.
그렇지만 송혜진이 보기에는 그가 너무 지나친 것처럼 보였다.
아들의 완벽한 연기를 위해 다른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 그런 무심한 아빠처럼 보였고.
송혜진은 냉큼 그의 옆에 앉았다.
“우리 얘기 좀 해.”
한재경은 안경을 벗으며 아내를 힐끔거렸다.
마치 전쟁에 참전한 장수 같이 한껏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여보, 내가 그동안 당신이랑 태주 봐서 참았는데.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송혜진은 차가운 표정의 한재경을 보고 애원하듯 말했다.
“당신, 태주한테 너무 냉정하잖아. 지금도 봐봐, 애한테 과일이라도 먹자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말했잖아, 여보. 연기라는 건 흐름이 중요하다고.”
남편의 항변에도 아내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한테 좋은 말 좀 해줘. 태주, 아직 10살이야.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애한테 더 잘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 노력해라. 왜 이런 소리만 하는 거야.”
“그렇게 물러서는 저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딱딱한 어조의 남편 말투에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아직 어리잖아. 애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크는 건데, 좋은 말 좀 해주면 안 돼?”
그녀는 남편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다소 엄격한 한재경의 표정에 한 줄기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 * *
얼마 후.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온 한재경은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욕심을 태주를 통해 채우는 건 아닐까?”
그가 태주에게 연기연습을 열심히 시키는 건, 다 태주가 좋은 배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 또한 태주처럼 배우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현실의 한계를 느끼고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연습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한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한계.
지금 생각하면 그것 또한 다 핑계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태주만큼은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밀어주고 싶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은, 태주가 더욱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돕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연기의 기본기를 닦고, 작품에 충실할 것을 가르쳤다.
잘생긴 외모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게 연예계라는 걸 알기에 더욱 연기에 공을 들였던 그였다.
그렇지만 그 또한, 아이가 버겁게 여긴다면….
“내가 그동안 태주를 너무 밀어붙인 것 같아.”
아내의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일까.
밖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들어온 한재경은 닫혀 있던 아이의 방을 똑똑, 두드렸다.
“태주야.”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태주는 문을 발칵 열었다.
그러더니 화들짝 대본을 앞으로 내밀었다.
“연습하고 있어요.”
“아니야, 아빠는 너 감시하러 온 게 아니라….”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태주를 본 한재경.
어쩌다 아이와 자신의 관계가 이렇게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이의 책상에는 온통 연기에 관한 책들과 커다란 거울이, 침대에는 여러 가지 표정이 그려진 스케치북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아이의 인생이 연기뿐이라는 것이, 한재경은 마치 자기 잘못 같았다.
“태주야. 연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 말에 태주의 동그란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였다.
“아빠!”
“진심이야. 태주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연기하는 거, 아빠는 보기 싫다. 대사 외우는 거, 캐릭터의 감정을 분석해 가면서 공부하는 거, 태주가 괴로우면 할 필요 없어.”
“하지만 아빠, 나는 연기할 때가 제일 즐거운걸요.”
“억지로 그런 말 하는 거라면….”
“아빠.”
태주가 화가 난 듯 한재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어요. 좋으니까,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하니까.”
그 말에 한재경은 아이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이라도 눈에는 자신의 진솔한 감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아이의 눈은 그렇게 맑고 투명할 수가 없다.
거짓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태주의 눈.
그 눈을 마주 보던 한재경의 눈동자가 젖어 들어간 건 순간이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법, 연예계에서 롱런할 방법 등을 고민했는데.
태주는 그저 연기가 재밌어서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며 하고 있었던 거다.
“태주가 아빠보다 낫네.”
아이는 알 수 없는 말에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애프터 파티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여느 때보다 한층 조용한 태주의 눈치를 보던 이중협.
그는 어느 순간 한재경이 없어진 것을 눈치채고 태주에게 달려간 참이었다.
하지만 태주의 옆에서 황금색 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태주야, 너희 아버님, 성불하셨냐?]‘네.’
그 말을 하는 태주의 얼굴은 개운해 보였다.
그동안 아빠에게 느꼈던 해묵었던 애증이 훅 내려간 것 같달까.
아역배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쭉 아빠의 인정을 받고 싶었었다.
연기를 시작한 것도 영화를 좋아한 아빠 덕분이었고, 아역 때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 덕분이었으니까.
이번에 런던 국제영화제의 수상으로, 드디어 아빠의 인정을 받은 지금.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배우로서 자긍심을 인정받은 것만 같아 뿌듯했다.
‘아빠한테 인정받는 건 제 평생의 꿈이었어요.’
[그리고 네 아빠의 꿈은 네가 좋은 배우로 자라나는 것이었고.]고개를 끄덕이던 이중협이 물끄러미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 약간 섭섭해지려고 그런다. 너는 내 인정은 안 바라는 거냐?]그 말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 기준은 엄청 까다롭잖아요. 형한테 인정받으려면 몇십 년은 더 걸릴걸요. 그러니까 앞으로 제 옆에 계속해서 붙어 계세요. 제가 연기로 형을 설득할 때까지.’
[아이고, 이거 제대로 악담하네. 나도 명색이 대장 귀신이라지만 성불하는 게 내 소원인데.]이중협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 태주가 씩 웃음으로 응수했다.
평생을 애증하던 아빠가 떠났음에도 마음 한구석이 구멍 뚫린 듯 그리움으로 시리게 느껴지지 않는 건, 분명 이중협 덕분이다.
그런 태주를 보던 박인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부터 애프터 파티, 그리고 지금까지.
“기쁜 거야, 슬픈 거야. 표정이 다채로우니 알 수가 없네.”
오랫동안 태주와 함께했지만,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태주의 복잡미묘하면서도 다채로운 그 기분을.
* * *
몇 시간 후.
미국 선플라워 프로덕션에 디에고가 앤디를 보기 위해 와 있다.
촬영 스케줄을 논의하던 디에고는 문뜩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앤디, 그거 알아? 요즘에 내 팔로워 수가 엄청나게 늘었어. 배우 인생 30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야.”
“데스 게임 때문이죠?”
“그런 것 같아.”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디에고에게 앤디가 대답했다.
“요즘 세상은 글로벌하다니까요. 임팩트 있는 드라마 한방이면 아웃스타 팔로워 3배 되는 건 시간 문제죠.”
“아니, 나 같은 아저씨한테 도대체 왜 100만이나 되는 팔로워들이 붙는 거냐고?”
겉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사실 디에고는 기분이 좋았다.
데스 게임 1화에 특별 출연으로 한태주와 연기한 그의 등장이 제법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데스 게임을 보던 시청자들은 그를 ‘마초남’, ‘카리스마 맨’이라 부르며 무척이나 반겼다.
더불어, 한태주와 같이 출연할 ‘나의 미래’에도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린 건 덤이다.
“이제 슬슬 한태주를 미국으로 불러들여야죠. 영화의 촬영을 본격적으로 들어갈 시점이니까요.”
“한국에서 스타트를 잘 끊은 것 같아. 영화 초반부를 잘 잡아놓았으니 앞으로 순조롭게 잘 찍히겠지?”
“글쎄요, 아마 그때보다는 애먹을걸요.”
“어째서?”
앤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지금 한태주가 ‘데스 게임’으로 월드 스타가 됐잖아요. 우리 영화에도 그만큼의 관심이 붙을 거다, 이 말이죠.”
런던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한태주가 이렇게 클 줄 몰랐는데.
그때를 회상하던 앤디는 앞으로의 촬영에 기대된다는 듯 손을 비볐다.
“긴장해서라도 잘해야겠어요. 월드 스타 두 분을 모시고 아무렇게나 영화를 찍을 수는 없잖아요.”
* * *
영화제 일정이 끝나자 태주는 곧장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염수정, 이탁원 감독은 런던에서 며칠 더 지낸다 했고, 임강현은 라디오 때문에 지난밤 돌아간 뒤였다.
이른 아침에 공항에 도착한 태주.
어느새 몰려든 파파라치들과 팬들의 모습에 그는 다소 당황했지만, 성실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기 직전.
베일릭스 차트를 확인하던 박인우가 목을 켁켁거렸다.
“왜 그래, 사레들렸어?”
“아니, 그게 아니라… 켁켁!”
연신 헛기침하던 박인우가 자신이 보던 핸드폰을 태주에게 건넸다.
“이거 봐봐!”
화면을 보던 태주가 자기 눈을 비볐다.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데스 게임’이… 월드 랭킹 1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