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월드 스타의 길 (7)
* * *
한편,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이때.
벽면에 크게 걸려 있는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직원들이다.
달칵.
대표실에서 피곤에 찌든 얼굴로 나온 차용석이 직원들을 발견했다.
“아직도 안 갔어, 다들?”
“쉿!”
박인우가 차용석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 태주 말하고 있잖아요.”
티비 속 태주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맞은편의 MC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희 ‘데스 게임’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길, 그래서 안 본 시청자분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고, 욕심도 많네. 베일릭스 1위면 됐지 뭘 더 바라?”
말과는 다르게 차용석은 내심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태주가 저런 말을 하는 건, 그만큼 자기 작품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리라.
이윽고 태주의 인터뷰가 끝났다.
홀린 듯 티비에만 시선을 고정하던 직원들도 겨우 숨을 돌렸다.
“왜 이렇게 빨리 끝났죠?”
“5분 만에 끝난 느낌인데.”
“지수 씨, 우리 20분은 족히 보고 있었어요.”
“아이참. 누가 몰라서 이래요?”
여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태주 씨 인터뷰가 재밌어서 시간이 빨리 흘렀다는 뜻이죠.”
“자, 자. 다들 시간도 늦었으니 빨리 얘기할게.”
차용석은 직원들이 한데 모인 김에 그들에게 말했다.
“올해 상반기에 태주 팬미팅 예정되어 있잖아. 2번 하면 어떨까?”
“안 그래도 저희가 팬클럽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해 봤는데요, 대표님.”
태블릿 PC를 가지고 온 직원이 말을 이었다.
“연희대 대강당 대관한다는 전제로, 2번은 부족할 것 같고. 적어도 3번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신청 인원이 많을까?”
“물론이죠. 태주 씨가 아역배우 시절부터 팬들이 있었는데, 팬미팅은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경쟁도 치열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럼 3번으로 일단 진행해 보고, 만약에 신청 인원이 많으면 좀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가자고.”
“대표님, 저도 드릴 말씀 있는데요.”
태주의 매니저, 박인우가 손을 들었다.
“XJ에서 매년 여는 신년 파티 있잖아요. 거기도 초청받았습니다.”
“아, 그거.”
“그런데 그 파티에 장희재 대표님이 참석을 확정 지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태주, 거기 가도 될까요?”
“못 갈 이유가 뭐가 있어? 당연히 가야지.”
차용석이 눈을 번뜩이며 박인우에게 말했다.
“태주가 장 대표한테 꿀릴 게 뭐가 있다고. 게다가 XJ의 한서경 부회장이 우리 태주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던 그때.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던 한 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대…, 대표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잔뜩 흥분한 듯한 직원은 차용석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이거, 스팸 메일은 아니겠죠?”
“좀 진정해 봐, 나도 영어를…. 인우야, 네가 읽어 봐라. 너 영어 잘하잖냐.”
박인우는 자신에게 넘어온 핸드폰 속 메일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잔잔하던 그의 눈길이 불타오른 건 한순간.
“이거…… 진짜로 스팸은 아니겠죠?”
“뭔데 그래, 도대체!”
“토미 로즈 쇼에서 태주하고 심요연 선배님, 그리고 채이진 씨한테 출연 제의가 들어와서요.”
“토미 로즈 쇼?”
그 말에 차용석이 눈을 번뜩이며 핸드폰을 낚아챘다.
메일 속 보이는 토미 로즈, 그리고 태주의 이름.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토미 로즈’ 쇼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참 흥분했던 차용석을 가라앉힌 건 박인우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거…. 직접 출연 요청이 아니라, 원격으로 출연하는 조건인데요?”
* * *
다음날, 오전.
대한민국은 여전히 ‘데스 게임’ 열풍이었다.
그리고 이곳 제작사 ‘스튜디오 S’에서도 직원들이 다들 컴퓨터로 관련 기사를 보는 중이다.
“와, 데스 게임이 아직도 1위예요.”
“지금 전 세계가 데스 게임 열풍이라니까요.”
고개를 흔들던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태주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진짜 태주 씨, 작품 고르는 눈이 대박이다. 솔직히 모황국 감독님 저번 작품이 7년 전이고, 흥행도 안 돼서 그닥 믿음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작품을 냉큼 한다고 했을까?”
“그러니까 한태주 씨 선구안이 거의 예지안 수준이라니까요. 예전에 ‘광대’도 오디션 봐서 들어간 거 보세요. 그것도 이탁원 감독 복귀작이라 전혀 기대 없었는데, 결국 성공시킨 거.”
“한태주 씨가 선택한 작품은 다 뜬다 이거죠. 그럼 우리 작품도….”
말을 잇지 못하던 직원의 얼굴이 상기됐다.
그녀의 기대감에는 다 근거가 있었다.
‘데스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한태주가 차기작으로 정한 드라마 ‘굿맨’은 물론.
곧 나올 영화 ‘탈출’에는 신드롬적인 관심이 쏠렸다.
특히나 한태주가 출연한 작품들에는 스토리가 있어서, 그 점이 언론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단순히 개런티를 많이 줘서가 아닌, 감독과 이야기를 보고 작품을 결정했다던 한태주.
대부분이 돈으로 결정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다소 신선해 보이는 태주의 행보였다.
작품과 감독, 그리고 자신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한태주의 뜻이.
예전에는 그의 행동이 미련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태주가 손을 데는 작품마다 이렇게 성공하다니. 혹시 미다스의 손 아니에요?”
“아무튼, 한태주 효과가 굉장하네요. 역시 한태주!”
“우리 드라마는 아직 촬영도 전인데 벌써 이 정도로 관심이 쏠리면 어떡하자는 거죠?”
“관심 없는 것보다 훨씬 낫지 뭘 그래요.”
여직원이 동료 직원들에게 말을 이었다.
“예전에 우리가 얼마나 홀대받았는지, 잊었어요? 그 주인식 스타 감독님이 연출하신다 해도. 우리 드라마, 인지도도 없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방송한다고 하니까 연예지들이 다들 비웃었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한태주 씨가 잘된 게 더욱 통쾌해요. 우리 드라마는 무려 한태주 씨가 택한 거니까!”
한껏 고취되어 있던 직원들 사이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여러분, 뭐 하는 겁니까?”
마범수가 굳은 얼굴로 사무실에 등장하자, 잔뜩 흥분한 얼굴의 직원들이 그를 마주했다.
“저희 드라마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를 않아요, 대표님.”
“저희 드라마에 투자하겠다는 분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PPL 문의도 오늘만 40건 들어왔고요.”
그들의 말을 듣던 마범수의 얼굴은 점차 복잡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직원들에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우리는 좋은 드라마, 시청자들 앞에 내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피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대표님, 그게….”
“드라마 준비나 더욱 철저하게 하세요! 심은설 작가한테 연락해서 극본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주인식 감독한테는 연출 방향을 문의해서 혹시라도 무리한 설정이다 싶으면 우리 쪽에서 잡아줘야죠.”
마범수의 일침에 직원들이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숙이자.
쾅!
잔뜩 벌게진 얼굴로 마범수가 대표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망연자실하게 보던 직원들은 주섬주섬 얼굴을 찰싹거렸다.
“그래, 우리가 너무 흥분했었네.”
“역시 대표님 클래스. 이런 상황에도 무게감 있게 중심을 잡아주시다니.”
“우리는 우리 일만 열심히 하자고요.”
한껏 들떴던 이들은 평소의 업무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번 피워진 들뜸의 불씨는, 여전히 그들 속에 남아 있었다.
* * *
한편, 대표실로 들어온 마범수.
홀로 남은 그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소리 없는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역시 한태주라니까!”
그 또한 한태주의 선전에 기쁜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모두가 한껏 들떠 있는 이때, 대표인 자신마저 긴장감을 놓아버리면 프로덕션의 기강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 엄격하게, 냉정한 모습을 보인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쁜 것을 어떻게 참냐고.”
한태주의 성공은 곧 그의 기쁨이었다.
이제는 ‘데스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한태주의 차기작에까지 수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굿맨’이 최대의 수혜작이었다.
사이코패스 주인공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와 신인 작가의 조합.
게다가 이름도 낯선 케이블 방송국 KTS에서의 방영.
모든 게 낯선 것투성이이었던 드라마는 한태주의 차기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지금, 넘치는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성스럽게 작품을 만들어야 해.”
마범수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자신에게 되뇌듯 말했다.
“한태주가 말했듯이, 작품의 성패는 작품이 재밌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으니까.”
* * *
얼마 후, 뉴욕의 한 건물.
그곳을 통으로 전세 내 쓰고 있는 이곳 스튜디오에는 여러 스태프로 붐볐다.
그들은 미국의 최대 인기 쇼 ‘토미 로즈’의 스태프들.
쇼의 호스트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토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남자는 토미의 친한 지인, 그렉이었다.
일전에 방송 일을 같이하며 친해진 그렉에게 토미가 도움을 청한 까닭.
‘데스 게임’ 관련해서 한태주를 쇼에 초청하는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렉은 원격으로 한태주를 쇼에 초청한다는 말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직접 스튜디오로 초청해야 좋지 않겠어? 원격으로만 인터뷰한다고?”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데스 게임’, 그 자체라고. 그러니 한태주와 그 외 배우들은 원격으로 인터뷰하면 그만이야.”
“그럼 당신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했다며 후회하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렉이 커피를 마시며 그에게 속삭였다.
“한태주는 실물로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원격 출연이면 뭐해, 화면 속 2D일 뿐인데. 그의 분위기, 제스처, 표정 등을 제대로 담지 못할 거야.”
“도대체 한태주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자네가 이토록 극찬인지 모르겠어.”
“그럼 그와 영상 통화 한번 해볼래? 지금 연결해 줄 수도 있는데.”
그렉이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를 뒤지자 토미가 귀를 쫑긋했다.
“그럼, 부탁 좀 하지.”
“기다려 봐. 간간이 연락은 하는데, 지금 한국이 밤이라서….”
수화음이 울리고, 곧이어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렉,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지금 통화 가능해요, 태주?”
-지금 화보 촬영 중이라 시간을 많이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한태주의 모습에 토미는 거친 숨소리를 냈다.
동양인 배우라고 해서 뭐 얼마나 아우라가 있을까 했다.
그런데 한태주는, 그가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멋있었다.
짙은 감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태주가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
그렉을 향해 싱긋 웃는 모습.
자신이 그동안 가졌던 동양인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저희 쇼에 직접 출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