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톱스타의 비밀 (2)
태주의 등장에 스튜디오 스태프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순간.
정신없이 들떴던 공기가 그에게로 몰려 한껏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살짝 창백해진 듯한 태주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했다.
그러나 이채가 도는 밤색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기대를 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에 인사하는 태주.
그리고 곧장 PD에게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태주입니다.”
눈을 반짝이는 태주와 시선이 마주친 PD는 헛기침했다.
“안녕하십니까.”
진짜로 올 줄 몰랐다는 듯, 태주의 손을 마주 잡은 PD는 그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그때, 침묵의 공기를 가르는 호통이 있었으니.
“다들 뭐해, 방송 준비하지 않고! 오늘 뉴스 날려 먹을 셈이냐!”
국장의 힘찬 목소리에 얼어붙었던 촬영장의 마법이 깨졌다.
다들 제 자리에서 방송을 준비하는 이때.
박인우가 국장의 뒤를 이어 9시 뉴스 진행자와 함께 촬영장에 들어섰다.
태주는 차례로 아나운서와 국장과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진 앵커입니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씨. 김태익 보도국 국장입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탐색하듯 빤히 보는 국장의 시선에 태주가 씩 웃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가 보도국에 단독 인터뷰하는 건 이선우 선배님 이후로 제가 두 번째라고 들었거든요.”
“원래 배우들은 연예국에서 따로 다루지만. 태주 씨가 ‘데스 게임’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이뤘는데, 우리 쪽에서 초청을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태주의 눈치를 살피는 듯 묘한 표정의 국장이 천천히 덧붙였다.
“지금 태주 씨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은 시사국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앵커님.”
태주가 조선진 앵커와 눈을 마주쳤다.
“‘데스 게임’뿐만 아니라 저의 개인사와 관련된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앵커님께서 진솔하게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태주가 덧붙이는 말에 국장과 앵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그분이요?”
그러다 저쪽에서 뒤늦게 달려오는 한 노신사를 본 국장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대법관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당연한 일이죠.”
강원경이 태주를 보며 복잡한 눈을 마주쳤다.
“어린 조카 혼자 이 일을 마주한다는 건, 내 양심상 용납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그가 태주의 연락을 받은 건 불과 두 시간 전.
태주가 ‘9시 뉴스’에 출연해 모든 정황을 밝힌다고, 그에게 도움을 부탁한다고 하니 강원경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이게 그에게 남은 유일한 속죄의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경이의 자식인 태주에게 그가 큰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이기도 하고.
“태주의 아버지는 저의 이복동생이었습니다. 오늘 태주의 개인사를 밝히는 인터뷰에서, 저는 최선을 다해 태주를 뒷받침하겠습니다.”
9시가 가까워지는 시각.
태주도, 강원경도 다들 마이크를 차고 방송을 준비하는 가운데.
태주는 옆에 있던 강원경에게 슬쩍 귀엣말을 건넸다.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당연한 것을.”
강원경이 태주에게 미안한 눈빛을 마주쳤다.
“자랑스러운 조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일 뿐이다.”
* * *
얼마 후.
9시가 조금 지난 이때, 늦은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은 다들 ABS 뉴스를 보는 중이다.
화면에 가득 찬 태주를 응시하던 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와, 한태주가 지상파 뉴스에도 다 나오네.”
“데스 게임으로 요즘 인지도 장난 아니잖아. SNS 팔로워 수가 1,000만으로 늘었다는 것 같던데.”
“토미 로즈 쇼에도 나온다잖아. 얼마 전에 오피셜로 떴어.”
“대단하네. 언제 한국 연예인이 거기 초대받은 적이나 있었나?”
그때, 한태주를 인터뷰하던 앵커가 질문을 바꾸었다.
“이렇듯 한태주 씨는 흥행이면 흥행, 연기면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믿고 보는 배우이자 대한민국의 톱스타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태주 씨의 아버지와 관련해 ‘출생의 비밀’이라는 이슈가 불거졌는데요.”
한창 티비를 보던 사람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디어 그들이 제일 궁금하던 주제가 나온 순간.
카메라는 한태주와 나란히 앉아있던 강원경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둘째 큰아버지 되는 강원경입니다. 오늘 저는 모 신문에서 쓰인 태주에 관한 기사가 순 거짓말이며, 태주의 아버지는 사생아가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려 합니다.”
“그 점을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이걸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강원경은 지난 세월, 고이 간직하던 서류들을 카메라 앞에 비쳐 보였다.
그것은 강대원과 한윤희의 혼인신고서였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가 어머니 몰래 빼돌린 서류가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저희 아버지는 저희 어머니와 이혼하고 난 뒤, 새어머니였던 한윤희 선생님과 정식으로 재혼하셨습니다. 그러니 전혀 불륜이나 사생아 같은 몰지각한 단어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점, 밝힙니다.”
“그럼 모 일보에서 나온 기사에 나왔던 정보들은….”
“조작이고 모함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히 경고합니다.”
강원경은 태주를 힐끔거리다 카메라를 보고 선포했다.
“저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고, 한태주 배우가 당당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축복받은 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든 태주한테 거짓으로 똥물을 튀기려고 한다면, 법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이야, 법관 출신 큰아버지 정말 든든하다.]‘그러게요.’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강원경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고모, 이중협, 회사 식구들을 제외하고 이렇게 믿음직한 아군은 처음이었다.
* * *
동 시각, 서울지검 검사실.
야근하던 강승민은 하품하면서 서류를 넘기는 중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한 지 오래다.
핸드폰으로 틀어놓은 ABS 뉴스를 힐끔거리던 그.
티비 속 강원경은 태주의 아버지와 고모에 대한 진실들을 밝히는 중이었다.
적법한 자식들인 그들을 자신의 어머니, 박숙자 여사께서 보육원으로 보내 버렸다고.
성을 한 씨로 바꿔 버린 것도 그녀의 짓이라고.
“나이스, 아버지. 그렇게 딱 부러지게 나와야 태주 도와주러 간 보람이 있죠.”
한참 집중하던 강승민에게 흠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렸으니.
밖에서 커피를 사 들고 온 정 수사관이었다.
“커피, 땡큐.”
멋쩍은 표정을 짓던 강승민이 화면을 끄려 하자, 수사관이 그를 말렸다.
“그냥 티비로 보시죠. 지금 다들 이거 보느라 난리예요.”
“난리가 났다고요?”
“그럼요. 국민 아역 출신 한태주에게 이런 가정사가 있는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도 법조계 명문가 출신의 친가가.”
한태주가 ABS 9시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수사관이 옆자리에 있던 강승민을 힐끗거렸다.
그는 커피를 사며 들은 사람들이 수군대던 말을 완전히 다 옮기지는 않았다.
한태주와 강원경이 동반 출연한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하나는 한태주의 아버지와 고모가 가족에게 버려졌는데도 잘 자랐다는 반응.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그들을 무자비하게 버린 강씨 일가에게 전부 책임이 있다는 반응.
‘검사님도 이런 가정사를 다 아셨던 걸까?’
늘 총명한 눈빛을 반짝이던 그의 상관은 오늘따라 멍해 보였다.
특히 티비 속 태주와 강원경을 보는 그는 몇 번이고 의자에서 들썩거렸다.
금방이라도 야근을 철회하고 그 자리로 가고 싶다는 듯이.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아니, 그게…. 지금 검사님 할머님 되시는 분의 치부가 전부 까발려지시는 것 같아서요.”
그 말에 강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응수했다.
“사실만 말하는 건데요, 뭘. 그리고 당신이 저지른 짓이 천인공노한 일이긴 하잖습니까.”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정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그에게 말했다.
“할머님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집안 식구잖아요. 혹시라도 검사님께 피해가 갈까 봐 그렇죠.”
그 말에 강승민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무슨 우리 집안 후광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줄 압니까?”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나는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하나도 지장 없습니다.”
“그럼 검사님, 저 말씀 드릴 게 있는데요.”
늘 웃음기 가득 방글거리던 정 수사관의 굳어진 얼굴에 강승민은 바짝 긴장했다.
“뭔데 그래요?”
“좀 부탁드릴게요.”
정 수사관이 그에게 수줍게 수첩 하나를 내밀었다.
“사촌 동생 사인 정도는 받아주실 수 있죠? 저 한태주 팬이라는 거, 검사님도 아시잖아요.”
* * *
얼마 후, 평창동 자택.
고요한 이곳에는 분노에 찬 노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를 모시던 둘째 아들 부부는 진작에 짐을 빼서 나간 뒤였다.
노모를 홀로 죽게 내버려 두냐는 박숙자의 호통에 강원경은 이렇게 대꾸했다.
-어머니 등쌀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몇 명이나 더 말려 죽이려고 그러십니까. 저희 아내를 그렇게 괴롭히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태주까지 건드리려 하시잖아요.
“미친 거야, 그놈이 정말….”
홀로 방에서 서성거리던 박숙자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한국일보의 국장이었다.
-여사님, 둘째 아드님과는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뉴스에서 초를 치고 있잖아요!
“무슨 소리야, 여 국장.”
-ABS 뉴스 보세요.
박숙자가 서둘러 티비를 틀자.
한태주와 나란히 있던 강원경이 보였다.
“잠깐, 나중에 통화해.”
전화를 끊은 박숙자가 화면에 집중한 이때.
인터뷰의 맥락을 파악한 박숙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둘째 아들에게 지독한 분노를 느꼈다.
“이놈이 미쳤나, 어떻게 어미를 거스르고 제멋대로 일을 저질러!”
국영방송에 나가 어미의 치부를 다 까발리는 꼴이라니.
지상파 뉴스만큼 파급력이 큰 매체도 없는데 말이다.
얼굴이 창백해지던 박숙자는 서둘러 전화를 들었다.
믿을 건 그녀의 큰아들뿐이었다.
한 번도 그녀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던 큰아들.
작은아들과는 다르게 야심도 많고, 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취했다.
통화음이 몇 번이나 흘렀을까.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박숙자는 아들에게 애원했다.
-나 좀 구해줘라, 시경아. 네 동생이 뉴스에서 미친 짓 하는 것 봤지?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냉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왜 먼저 싸움을 거셨어요. 어차피 질 싸움이었는데.
“뭐…, 뭐라고?”
-한국일보로 기사 내기 전에 원경이 낌새도 좀 살피셨어야죠. 요즘에 원경이, 유경이랑 한태주랑 잘 지내보려는 것 같던데요.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잔뜩 흥분한 박숙자의 귓가에 매정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잘못한 거 다 인정하시고 항복하세요. 솔직히 어머니, 많이 잘못하시긴 했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