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디자이너와 그의 뮤즈 (1)
* * *
다음 날 오전.
잠이 덜 깬 박인우와 장진혁은 호텔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중이다.
“이야, 여기 소시지 진짜 맛있다. 베이컨도 대박이야. 역시 미국 돼지가 기름지고 맛있네!”
“그런 것만 드시다가는 건강 해치십니다. 그것보다, 단백질 쉐이크 어떠십니까? 제가 몇 개 가져온 게 있습니다.”
“야, 너는 그런 것까지 대표님 닮아가냐?”
“형, 진혁 씨, 저 왔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장진혁과 투덕거리던 박인우는 옆자리에 앉은 태주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뭐야, 아침부터 이런 멋진 모습이면 반칙이잖아!”
태주를 힐끔거리던 장진혁도 포크를 떨어뜨렸다.
머리를 정리하고 옅은 하늘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태주의 모습에 놀라서였다.
태주는 태연하게 토스트를 베어 물며 대꾸했다.
“왜, 나는 아침부터 이렇게 꾸미면 안 돼?”
“아니, 뉴요커답고 좋기는 한데. 그럼 우리가 너무 초라해 보여서 그렇지! 명색이 한태주 매니저인데!”
“괜찮아, 형은 안 꾸며도 멋있어.”
“네 앞에서 그런 말은 안 통하거든. 너는 원래도 무지 잘생겼는데 이렇게 꾸미니까 더 잘생겨졌잖냐!”
그 말에 태주의 옆에 있던 앙투안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사체가 좋으니 더욱 꾸밀 맛이 났죠. 원래 사람은 끊임없이 꾸미고 갈고 닦아야 한다니까요.]그 말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아침부터 이렇게 꾸민 건 다 앙투안의 조언 덕이었다.
그의 조언대로 옷을 입고 머리를 다듬었을 뿐인데,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자신이 가진 기본 아이템들을 센스 있게 매치해 입히는 안목을 보니, 역시 앙투안은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앙투안의 한을 풀어주는 게 더욱 망설여졌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싶은 마음 반, 부담스러운 마음 반이었다.
태주는 자신이 그 옷을 입음으로써 찰스 루이스가 보일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찰스 루이스가 이 디자인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 곤란했고.
그러나 앙투안이 온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는 옷을 입어 보고 싶다는 마음 역시 간절했다.
사실은, 앙투안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다.
도대체 앙투안의 디자인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찰스 루이스는 그걸 봉인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대단한 옷이길래 앙투안 모드가 자신의 최고의 역작이라 칭하는 걸까?
‘정말 미치겠네…….’
들릴락 말락 한 태주의 말을 들은 이중협이 귀를 쫑긋했다.
태주와 다닌 지 어언 2년째.
태주의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아는 그였다.
그는 앙투안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태주에게 속삭였다.
[신중히 생각해라. 앙투안은 한을 풀고 날아가면 끝이지만, 너는 산 자의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 죽은 자의 한을 푸는 건 단순히 거기서 끝이 아니라 산 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거, 너도 더 잘 알잖냐.]‘맞아요. 산 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죠. 그것이 어떤 의미로든.’
조용히 듣던 태주의 눈이 반짝였다.
* * *
얼마 후.
태주는 박인우, 장진혁과 함께 베일릭스 본사 빌딩으로 향했다.
베일릭스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위해서다.
다음 주에 있을 ‘데스 게임’ 베일릭스 행사는 뉴욕의 한 해변을 통으로 빌려 드라마 속 게임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이벤트였다.
그곳에 태주는 주연 배우로서 참석하는 것이었고.
“정말 재밌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여러 참가자와 함께 게임을 즐겨 봤는데요. 정말 신나더라고요.”
“안 그래도 한국에서의 행사 덕분에 저희 행사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치솟은 상태랍니다.”
관계자가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번 행사에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요?”
태주의 물음에 남자가 흥분한 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특히 저희가 맨해튼 비치에서 준비한 게임은, 드라마에 나왔던 걸 실제로 재현시켜 달라는 시청자들의 많은 요청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아, 성 빼앗기 게임이요.”
강화도에서의 촬영을 회상하던 태주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 씬은 정말 여러모로 재밌었죠. 해변에서 파티를 여는 것 같다가, 갑자기 서바이벌 모드로 바뀌어 버렸으니까요.”
“다들 배우님과 함께 게임을 한다는 점에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계자가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여러모로 바쁘실 텐데 배우님께서 저희 ‘데스 게임’ 홍보 일정에 충실히 참여해주시는 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음에 기쁠 뿐입니다.”
“토미 로즈 쇼에도 곧 출연하신다면서요? 정말 기대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비쳤다.
“뉴욕이 한태주 씨를 주목하고 있는데, 얼마나 바쁘시겠어요.”
“네?”
“찰스 루이스의 초대로 루이스 모드 패션위크에도 참석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눈을 반짝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창립자의 초청이라면, 곧 중대한 발표도 있는 건가요?”
“예를 들면, 루이스 모드의 앰배서더 발표라든가?”
“하하, 아직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받아 가는 것뿐인걸요.”
“아무튼 기대됩니다. 데스 게임의 한태주 씨는 대부분 허름한 옷만 입고 있었는데, 패션위크에서는 멋진 옷을 입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거잖아요.”
“물론이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앙투안을 힐끔거렸다.
“정말 최고의 모습으로 갈 겁니다.”
* * *
그날 저녁.
태주는 호텔에서 수 벌의 옷들을 마주했다.
“이게 다 뭐야?”
“루이스 모드에서 보내준 옷들이야.”
박인우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옷들을 훑으며 대꾸했다.
“원래 패션위크에 초청받은 손님들은 대개 그 브랜드 옷을 입잖아. 이것들 찰스 루이스가 직접 엄선해서 보내준 거라고 하더라.”
“그래?”
태주는 옆에서 앙투안이 옷들을 훑는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옷과 태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라면 더 어울리는 디자인을 입힐 텐데…. 최고의 피사체에는 최고의 옷으로 예우를 갖춰야지.]‘그 말에 책임질 수 있죠? 날 위해 최고의 옷을 입혀주겠다는 그 말.’
불쑥 튀어나온 태주의 말에 앙투안이 눈을 깜빡이다, 맥락을 파악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죠!]그의 말에 태주는 온전한 결심이 섰다.
“형, 이 옷들은 일단 보류하자.”
“뭐?”
“패션쇼에는 내가 따로 준비한 옷을 입고 갈까 생각하고 있거든.”
그 말에 앙투안은 환희의 미소를 반짝였다.
그러나 루이스 모드 쪽에서 보내준 옷을 거절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에 박인우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니,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옷들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못 입을 지경이냐?”
“안 입겠다는 게 아니야, 형. 어차피 이 옷들은 일주일 후에 돌려주면 되잖아. 그럼 토미 로즈 쇼 녹화 때 입으면 어떨까 해.”
태주의 제안에 박인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겠는데? 토미 로즈 쇼는 1, 2부로 나누어져 있으니까 1부 때는 우리가 가져온 보드레 옷, 2부 때는 루이스 모드 옷을 입으면 되겠다.”
“맞아, 그렇게 하면 괜찮겠지?”
“그래도 네가 패션위크에 왜 이 옷들을 거절하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아.”
박인우가 혼란스러운 시선을 태주와 마주쳤다.
“그래도 명색이 루이스 모드 패션위크인데 좀 갖춰 입고 가야지. 대충 입고 가면 거기 디자이너한테도 실례라고.”
“나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서 입고 가려는 거야. 그리고 지금 갖고 온 옷보다도 훨씬 멋있을 테고.”
“하, 나는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네가 이 옷들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네가 좋아하는 옷 입어.”
두 손을 든 박인우의 황당하다는 표정에 태주가 미안한 듯 덧붙였다.
“이해해 줘, 형. 최고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그 말에 앙투안의 눈이 번뜩였다.
[최고의 모델이 내 옷을 입어주다니! 그 결심,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그때, 한숨을 쉬던 박인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 옷이길래 네가 이 옷들을 거절하는지 보자고. 어느 가게로 가면 되냐? 무슨 브랜드야?”
“내 옷은 가게에서 사는 게 아니야. 만들어야 해.”
그 말에 박인우가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떴다.
“무슨 옷을 지금부터 만든다는 거야?”
“가능해. 패션쇼까지는 아직 1주일이나 남았고, 그 안에 옷 만들 수 있는 조력자가 있으니까.”
“네가 뉴욕에 아는 디자이너라도 있어?”
“있어.”
태주가 확신에 찬 시선을 박인우와 마주쳤다.
“내가 말했었나? 우리 고모 친구가 일전에 베일릭스 패션 콘테스트 우승자 출신인데, 여기 뉴욕에 살고 있다고.”
* * *
한 시간 후, 뉴욕의 노천 카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내부 구석에 태주가 초조하게 앉아있는 이때.
박인우가 어떤 여자와 함께 다가와 그 테이블에 앉았다.
“태주야.”
고개를 든 태주의 눈앞에는 단발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자그마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단번에 태주를 알아본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태주 맞구나! 세상에, 왜 이렇게 잘생겨졌니!”
“안녕하세요.”
“나 기억하지? 너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우리 같이 놀이동산 갔었잖아.”
태주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탕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그녀는 미국에 사는 고모의 삼십년지기 친구, 호민주였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줌마.”
“아줌마? 아직 40대도 안 되었는데 아줌마? 이것 봐라, 한태주 배우님. 나 아직 한창입니다!”
크게 웃어젖힌 호민주는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태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렸을 적부터 한유경과 친구였던 그녀는 패션을 전공, 해외로 나가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 정착했다.
그녀는 베일릭스 패션 예능에서 1등을 한 게 계기가 되어 유명해졌다.
“세상에, 그 어렸던 태주가 이렇게 커서 스타가 됐을 줄이야. 이따가 사인 좀 해줘, 우리 남편이랑 딸이 네 팬이거든.”
“당연하죠.”
“그런데 너,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태주는 가방에서 옷 디자인이 담긴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지난밤, 앙투안이 이야기해준 옷을 최대한 묘사하려 애를 쓴 디자인이었다.
“이것 좀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옷이야?”
대수롭지 않게 보던 그녀는 디자인을 보자마자 얼굴이 확 바뀌었다.
놀라움과 경외심이 빠르게 그녀의 얼굴을 스친 그때.
고개를 든 호민주는 태주에게 기대감 어린 시선을 마주쳤다.
“뭐야, 이건? 누구 디자인이야?”
“그게 궁금하세요?”
“당연하지.”
그녀는 태주를 향해 미심쩍은 시선을 번쩍였다.
“이런 세련된 디자인은 처음 봐. 얼핏 봐서는 루이스 모드 쪽 색채도 풍기는 것 같고…. 잠깐, 이거 진짜 그쪽 미공개 디자인 아니야?”
“에이, 제가 그걸 어떻게 구했겠어요.”
“하긴, 그렇지. 네가 무슨 수로 루이스 모드 디자인을 손에 넣었겠어.”
고개를 흔들던 호민주가 재차 물었다.
“근데 이걸 만들어 달라고? 왜?”
그 말에 박인우가 대신 대답했다.
“태주가 루이스 모드 패션쇼에 초대받았거든요. 그런데 이 옷을 입고 간답니다. 괜찮을 것 같으세요?”
“괜찮다마다요, 세상을 발칵 뒤집을 디자인인데요?”
처음의 유쾌함은 어디로 간 채, 호민주는 무섭도록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뭐랄까, 루이스 모드가 독점한 세련됨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격이랄까?”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