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디자이너와 그의 뮤즈 (4)
태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쇼룸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의 카메라에 태주를 담던 우성림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태주 씨, 여기요!”
고개를 돌린 태주가 우성림과 황유나를 알아보자, 씩 미소를 지어 주었다.
눈앞의 한태주는 쏜살같이 없어졌지만, 뒤에 남은 기자들은 그의 미소에 홀린 듯 황홀한 표정을 지어댔다.
“한태주는 역시 실물파라니까. 어쩜 사람이 저렇게 고급스럽냐, 인간 명품이야.”
“찰스 루이스가 직접 쇼에 초대할 만하네요.”
우성림은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아까 한태주가 입은 옷, 어디 브랜드야?”
“어디 브랜드긴, 당연히 루이스 모드 거겠지.”
“아닌 것 같았는데. 루이스 모드라기에는 좀 더 세련됐고 감각적이었어.”
“이번에 루이스 모드 쪽에서 한태주한테만 보내준 옷인가? 혹시 이번 시즌에 특별히 준비하는 새로운 디자인?”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까 태주가 입은 옷이 아른거렸다.
그때,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던 태주의 시선에 찰스 루이스가 들어왔다.
그는 백발의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차게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태주에게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리고 태주의 앞에 바로 선 순간, 그는 그저 입술만 뻐끔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까무러칠 듯 놀란 정신을 애써 바로 세웠다.
한태주가 왜 앙투안의 분위기와 손길이 듬뿍 묻어있는 듯한 옷을 입고 있는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한태주에게 향하는 그의 열렬한 시선은 당연한 듯, 언론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루이스 모드의 창립자의 초대를 받고 온 한국의 톱스타, 한태주는 그만큼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한태주 씨.”
찰스가 가까스로 내뱉은 목소리는 한껏 갈라져 있었다.
“그 옷은…….”
[알아봤구나, 친구.]앙투안은 그런 찰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디자인한 옷이지. 네가 봉인했던 옷이고.]“찰스 씨라면 아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 옷이 어떤 옷인지요.”
앙투안에서 찰스에게 시선을 옮긴 태주는 조용히 덧붙였다.
“제가 들은 얘기입니다만, 그 어떤 아름다운 예술도 혼자서 독점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더군요. 세상 밖에 내놓아 여러 사람에게 선보여야 비로소 예술의 가치가 있는 거라고요.”
그 말에 찰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태주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채 찰스를 지나쳐갔다.
태주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러 사람의 높은 관심이 남았다.
“‘루이스 모드’에서 저런 옷도 만들었었나? 다른 브랜드 아니야?”
“아니야, 분명 루이스 모드 라인이야. 다만, 근 몇 년간은 저런 신선한 디자인은 못 본 것 같은데.”
“찰스 루이스가 한태주를 직접 초대했다면서. 저 옷도 직접 선물한 건가?”
자신에게 향하는 수많은 시선이 꽂히던 순간, 찰스 또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를 황급히 따라오던 비서가 그의 심기를 살폈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속은 알 수 없는 흥분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태주가 떠나기 전, 남긴 말 때문이었다.
‘분명 그 말은 앙투안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어.’
아름다운 예술은 혼자서 독점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예술은 세상 밖에 나와 여러 사람에게 보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그런데 한태주가 왜, 어째서, 자신에게 그 말을 했단 말인가?
그것도 앙투안의 옷을 입고서?
* * *
태주는 등장한 순간부터 패션쇼 내내 주목받았다.
그의 양옆에 앉은 유명인들도 연신 관심을 가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영국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로저 싱클레어는 다소 말수가 적었지만, 미국 팝가수 미첼 커티스는 붙임성 있게 말을 걸어왔다.
“데스 게임, 재밌게 봤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6화를 내리 다 봤을 만큼요.”
“감사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들을 실제로 해 보고 싶더라고요. 정말 재밌어 보였어요.”
“이번 주말에 맨해튼 비치에서 ‘데스 게임’ 관련한 행사를 하는데, 실제로 드라마에 나온 게임을 진행합니다. 시간 되시면 구경 오세요.”
태주의 말에 미첼은 눈을 반짝였다.
“오오. 그럼 구경 가야겠네요!”
한창 수다를 떨던 중, 로저는 태주가 입고 있는 양복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옷, 찰스가 직접 선물한 옷이죠?”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궁금했어요.”
평소 옷에 관심이 많다던 미첼도 거들었다.
“루이스 모드 라인 같은데 그보다는 훨씬 신선한 디자인인걸요. 찰스가 개인적으로 선물해서 당신한테 입혀 본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반응 보려고?”
그들의 의문에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 옷이 어때 보이는데요?”
“말해 뭐해요, 좋죠.”
미첼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사실 요즘에 루이스 모드 디자인이 좀 하락세잖아요. 고리타분한 디자인만 내놓는 것 같던데, 당신이 입은 건 완전 좋네요.”
“여기 사람들, 다들 당신만 쳐다보고 있는 거 알아요?”
로저의 말에 태주가 주변을 살피고서야 눈치챘다.
자신에게 향하는 수많은 시선이 뜨겁게 내리꽂히고 있다는 것을.
그 시선들은 쇼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해서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 * *
얼마 후.
쇼가 끝나자마자 찰스 루이스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서둘러 확인할 것이 있어서였다.
그는 사무실 깊숙한 곳에 있던 금고를 열더니, 이내 낡은 노트를 한 권 꺼냈다.
노트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찰스와 앙투안의 패션 노트’.
하도 오래되어 바스러질 듯한 종이들을 소중히 넘기던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앞에 아까 본 태주의 양복 디자인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 앙투안의 디자인이야. 분명하다고. 그런데 어떻게 한태주가 앙투안의 옷을 입고 올 수 있지?”
찰스 루이스는 노쇠한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러나 이건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이 디자인은 앙투안이 남긴 유작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걸….”
그때, 그를 따라온 비서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찰스를 살피는 그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표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괜찮네.”
찰스는 서둘러 공책을 내려놓았다.
“그보다, 오늘 쇼는 어떤 것 같나?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비서에게 찰스가 추궁했다.
“솔직하게 말해 봐, 톰.”
“그게, 사실은….”
톰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찰스에게 보고했다.
“한태주 씨가 입은 그 옷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한태주 씨에게만 선물하신 옷이 아니냐며, 궁금증이 급증하고 있어요. 혹자는 이게 우리 측에서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는 신상이 아니냐며 기대감을 품는 상황입니다.”
“…….”
“어떻게 된 겁니까, 대표님?”
잠시 고민하던 찰스의 주름진 얼굴에 의연한 결심이 선 순간.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톰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만간 한태주하고 독대 자리를 만들어 봐.”
그 말에 비서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찰스와 한태주 사이에 그가 모르는 교감이 있음을 확신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태주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임명하는 것도 추진해 보고. 이번에 뉴욕에 온 김에 루이스 모드 광고도 찍고 가면 좋을 거 같은데.”
찰스가 눈을 반짝였다.
“이참에 한태주를 우리 뮤즈로 확정 지어야겠어.”
* * *
얼마 후.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배우 1팀에서는 한창 열띤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루이스 모드 쪽에서 태주 씨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임명하겠다는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확실히 찰스 루이스가 태주 씨를 괜히 패션쇼에 초대한 게 아니었어. 생각한 바가 있으니까 그랬던 거야.”
“소문으로는 찰스 루이스가 태주 씨를 아껴서, 자기가 직접 만든 옷을 선물로 줬다는 말도 있던데요.”
“무슨 옷?”
“이 옷이요.”
직원이 노트북 화면에 뜬 기사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찍힌 태주의 사진에 다들 감탄을 내뱉었다.
“오, 이건 좀 멋있다. 이게 진짜 루이스 모드 옷이야?”
“루이스 모드 좀 올드 패션이라고 욕먹고 있던데. 태주 씨가 입은 건 괜찮네요.”
“생각해 보면 태주 씨는 루이스 모드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요.”
송유리가 꿈꾸는 듯한 눈을 반짝거렸다.
“불변의 클래식, 한태주 씨 그 자체잖아요.”
“흠흠. 아무튼 이건 대표님하고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이건 또 뭐지? 마스크 스타?”
김진수의 질문에 한 직원이 대답했다.
“XTV에서 ‘마스크 스타’ 파일럿판에 태주 씨 출연을 타진해 왔는데요. 현지에서 태주 씨랑 XTV 피디랑 만난 거 같은데, 조만간 답을 줄 것 같답니다.”
“오, 이번에 ABS에서 미국으로 수출한 그 예능 프로그램 말이지?”
김진수가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이번에 파일럿판 출연진이 빵빵하다고 들었는데. 미국 언론에서 나오는 말로는 쟁쟁한 사람들로 가득하대.”
“태주 씨도 나가면 좋겠다. 이번에 ‘데스 게임’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였는데, 쐐기를 박으면 좋잖아요.”
“내 말이.”
김진수는 팀원들과 기분 좋은 시선을 나누었다.
“이왕 태주 씨 잘 된 거, 더 잘되면 좋지.”
* * *
그 주 주말.
뉴욕의 맨해튼 해변에는 여러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베일릭스가 주관하는 ‘데스 게임’ 관련 행사가 열리기 때문.
오늘은 ‘데스 게임’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함께 게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태주는 채이진, 심요연과 함께 해변으로 걸어가고 있다.
채이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태주는 그녀 또한 뉴욕 패션위크에 게스트로 초청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진 씨는 ‘아벨’ 브랜드에 초청받아서 가셨군요. 예전에 거기 모델로 서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2년 전인가, 오디션 봐서 아벨 패션위크에 선 적 있었어요. 그때도 감격스러웠는데, 이번에도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일개 모델로 간 거랑 초대받아서 간 거랑 정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좀 더 대우받는 느낌이었나요?”
“네, 대우받는 느낌은 역시 좋더라고요.”
채이진이 주근깨 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장으로 향한 태주.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해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첨을 통해 게임을 참여하는 이들 외에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어마어마했다.
태주와 다른 배우들이 도착하자 베일릭스 관계자는 그들을 맨 앞에 세웠다.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들의 인사에 관중이 한창 함성을 질렀다.
다음은 태주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한태주입니다. 오늘 안전하고 즐거운 게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해변이 떠나가라 큰 환호성이 쏟아지자 깜짝 놀란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건 감출 수 없었다.
그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었으니까.
* * *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행사가 끝난 후.
쉴 틈도 없이 태주에게 수많은 인터뷰가 밀려들어 왔다.
‘데스 게임’의 인기에 주연 배우들을 취재하러 베일릭스 행사장까지 쫓아온 수많은 미국 연예 언론들이었다.
특히나 태주는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질문을 던졌고, 태주는 성실히 답변했다.
그러던 중, 한 리포터가 태주에게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데스 게임’이 헤아릴 수 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당신도 벼락스타가 된 것 같은데요. 이렇게 갑자기 유명해지면 당황할 법하잖아요. 지금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 질문에 옆에 있던 박인우가 불쾌한 내색을 내비치려던 순간.
태주는 재밌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는 박인우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포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기했죠. 미국에서 유명해지는 걸 통해 제가 더 올라갈 곳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태주는 당황한 리포터에게 재치 있게 덧붙였다.
“이미 한국에서는 매우 유명했거든요, 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