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디자이너와 그의 뮤즈 (6)
얼마 후, 포털 사이트에 속보로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한태주, 이선우 주연의 좀비 스릴러 영화 ‘탈출’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희소식이다.
해당 영화의 제작사 ‘현필름’ 측을 통해 양군보 감독은 “경쟁부문에 진출하게 되어 무척 감격스럽다”라며, 이 모든 것은 주연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성과라고 자평했다.
한편, 외신에서도 칸 영화제가 좀비 스릴러 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린 것에 놀라움을 보이고 있으며, 다들 ‘탈출’이 얼마나 많은 부문에서 수상할지 기대하는 중이다.
특히 ‘탈출’에서 열연을 펼친 주연배우 한태주와 이선우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두고 각축을 벌일지 많은 외신이 주목하는 터.
5월 중 개최될 ‘칸 영화제’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다.
-스타뉴스, 우성림 기자-
핸드폰에 뜬 연예란 기사를 열심히 보던 태희가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이거 봐봐, 우리 오빠 칸에 진출했다!”
“칸? 칸이 뭔데?”
친구들이 옹기종기 태희의 곁으로 모여든 이때.
태희의 짝꿍인 도준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설명했다.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엄청 유명한 영화제야!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고도 할 수 있지.”
자신이 설명할 기회를 뺏긴 태희가 씩씩거림에도 도준이는 신이 나서 말을 멈출 줄 몰랐다.
“경쟁부문에는 20편 정도의 선택받은 작품들만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작품 중에서 수상 여부를 가리게 돼. 그 반열에 든 것만으로도 진짜 대단한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도준이 너도 이번에 태주 오빠랑 같이 영화 찍었지?”
“응, 여기 기사에 나오는 양군보 감독님 영화 ‘탈출’에 태주 형 아들로 나왔어.”
점점 자신이 아니라 도준이에게 쏠리는 관심.
괜스레 질투가 난 태희가 입술을 비죽였지만, 도준이는 눈치 없게 신나서 말을 계속했다.
“나 5월에 태주 형이랑 같이 프랑스 간다!”
“그만 자랑해! 몇 번을 하는 거야!”
심술이 가득한 태희가 결국 도준이의 볼을 잡아당기며 성을 냈다.
* * *
한편, 영화 ‘탈출’로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또 있었다.
마루야마 회장과 식사를 함께하던 마범수 대표였다.
“이야, 한태주가 칸에서 또 일내게 생겼네요. 제가 현필름 측에 연락해 봤는데, 영화 ‘탈출’ 판권 관련해 100여 개국에서 판매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 한태주의 영향이 크다는 건 역시 부인할 수 없다네요.”
마범수의 설명에 마루야마 회장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태주의 진가를 칸에서도 알아본 거겠지.”
“이미 ‘데스 게임’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은 알렸으니까. 이제 남은 건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연기로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느냐, 그게 관건이죠.”
“한태주가 연기 잘하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
“연기 잘하는 배우일수록 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법이죠.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관객들이 실망하는 때도 부지기수고요. 적당히 잘해서는 관객들이 만족스러워하지를 않으니까요.”
“톱배우들이 흔히 겪는 딜레마지 않나? 원래 하던 연기를 하면 연기가 정체되어 있다고 욕을 먹고, 그렇다고 급격하게 연기 변신을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그런 면에서 한태주는 제법 영리한 배우예요.”
마범수가 턱을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의도적으로 자기가 그런 작품들을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르가 비슷한 걸 연달아서 하지 않더라고요. 연기도 매번 다르고요.”
“본인 자체가 연기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친구야.”
마루야마가 씩 하고 웃었다.
“그래서 내가 한태주란 배우를 좋아하는 거야. 본인 일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래서 회장님께서 저희 드라마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거고요.”
“당연하지. 한태주가 나온다고 하니 작품에 눈이 가더군.”
마루야마 회장이 마범수와 기분 좋은 잔을 나누었다.
그는 한태주가 주연으로 확정된 드라마, ‘굿맨’의 추가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마범수를 만나는 터였다.
예전부터 한태주와 연이 있었고,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낭만 고양이’와 영화 ‘탈출’에도 추가 투자를 했던 마루야마 회장은 한국 연예계에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었다.
한번 투자를 결정하면 팍팍 밀어주지만,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매우 신중하다는 것도 유명했고.
마범수와 이야기를 진행하는 지금, 투자는 거의 확정된 분위기였다.
“그런데 회장님, 저희 드라마에 추천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재일 교포라고 했던가요?”
“아, 그래. 원래는 일본에서 연기한 친구인데 자기 뿌리가 궁금하다고 한국까지 와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어. 한국어도 수준급으로 잘해.”
그 말에 마범수가 알겠다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개성 있고 불같은 연기로 소문이 난 친구 아닙니까.”
“그렇지? 연기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니까.”
기대감 가득한 마루야마 회장에게 마범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친구 연기 괜찮은 건 압니다. 그러나 저희 쪽에서는 배역들은 전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기로 합의되어 있어서요.”
“오히려 좋지. 그 친구, 워낙에 자기 연기에 자신이 있어서 오디션에서 오히려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스타일이거든.”
“그런데 이번 오디션에서는 한태주 씨와의 합을 제일 우선으로 볼 예정입니다. ‘굿맨’이란 드라마가 한태주 씨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드라마 속 빌런들도 태주 씨와의 케미가 중요할 거 같아서요.”
“그걸 어떻게 평가할 건데? 한태주가 직접 심사라도 하기라도 하나?”
그 말에 마범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방향으로 추진 중입니다. 합이라는 건, 배우 본인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요.”
* * *
동 시각, 미국 뉴욕.
외출할 준비를 하던 태주의 방에 박인우가 찾아왔다.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한 그가 냅다 태주를 껴안으며 던진 말.
“우리 영화,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했다!”
“탈출? 진짜로?”
“그렇다니까!”
태주도 박인우도 흥분된 시선을 서로에게 맞추었다.
“솔직히 ‘탈출’이 예술성이 짙기보다는 오락성이 강한 영화라서 걱정했어. 이제껏 칸 영화제에서 그런 류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린 적이 별로 없었잖아.”
“걱정도 참.”
태주가 피식 웃었다.
“형, 자신감을 가져! 우리가 언제 안 되는 일에 배팅한 적 있어?”
“하긴, 한 번도 없었지!”
자신감 넘치는 태주의 태도에 덩달아 박인우가 한껏 어깨가 올라갔다.
지잉.
그리고 박인우가 방금 도착한 메일을 확인한 순간.
그는 묘한 표정으로 태주에게 말을 걸었다.
“태주야, 마범수 대표님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왜, 드라마 일정 때문에?”
“아니, 그게…….”
박인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너, 한국 오는 대로 ‘굿맨’ 오디션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네.”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각 화에 빌런들이 나오는데 다들 너랑 엮이는 역할이잖아. 너와 대사 합을 보고 싶으신가 봐. 어떻게 할까?”
자신이 아직 그럴 위치가 아니라 생각한 태주가 부담스러움에 고개를 저으려던 순간.
옆에서 듣고 있던 이중협이 끼어들었다.
[난 네가 오디션에 참석해도 좋을 것 같은데.]‘솔직히 제가 그 정도 위치도 아니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닐까요? 캐스팅은 감독님과 제작진 분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제작진이 너한테 오디션에 참석해 달라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주연배우인 네가 직접 배우들을 보고 케미와 흐름을 파악하라는 거 아닐까?]이중협이 자기 경험을 떠올리며 충고를 이어 나갔다.
[결국 극에서 다른 배우들과 연기로 합을 주고받는 건 태주, 너잖아. 특히 격렬한 씬이 많은 경우에는 배우들의 케미가 무척 중요하니까.]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의 완성도는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는 뭐든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 형, 제작사 측에 나도 오디션에 참석한다고 전해 줘.”
“오케이. 그럼 그렇게 답장 보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박인우.
“어, 대표님이 전화하셨네.”
전화가 걸려오자 서둘러 받았다.
“네, 대표님. 태주와 같이 있습니다.”
말을 이어 나가던 그의 눈이 왈칵 커졌다.
그리고는 서둘러 통화를 종료하더니 그가 태주와 흥분한 시선을 마주쳤다.
“태주야, 지금 XX 스튜디오로 오라는데? 루이스 모드 측에서 SS 시즌 화보 제안이 들어왔다고, 피팅 맞춰보재.”
* * *
태주는 박인우와 함께 황급히 스튜디오로 향했다.
수많은 스태프가 옷을 들고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는 가운데.
한쪽에는 태주를 기다리고 있던 차용석과 찰스 루이스가 보였다.
태주를 발견한 찰스는 버선발로 그를 맞이했다.
“잘 왔어요, 우리 뮤즈!”
그는 환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제가 일전에 말했었죠. 여태까지 제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것 같았다고요. 그런데 당신을 만난 순간, 다시 살아난 것 같았죠. 그래서 제가 밤을 새워 옷을 만들어 봤습니다.”
찰스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불렀다.
“민주, 그 옷들 좀 가져와 볼래요?”
“네!”
힘찬 목소리의 여자가 옷을 품 안에 가득 들고 달려온 순간.
“아줌마!”
호민주가 태주를 보고 환히 웃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찾았냐는 태주의 눈길에 찰스가 눈을 찡긋했다.
“전 진작에 민주가 그 옷을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베일릭스 패션프로그램 우승자에 대한 소문은 뉴욕에 익히 퍼져있거든요. 그리고 이런 섬세한 자수는 민주밖에 놓을 수 없고요.”
찰스가 여러 옷을 태주에게 대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옷을 입고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아,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당신의 핏이.”
루이스 모드 특 전속 모델과 앰배서더 자리가 눈앞에 주어지니, 태주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흥분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얼마 후, 태주가 붉은 자수가 놓아진 검은 양복을 입고 촬영장에 나타나자.
눈부신 조명 속 연신 플래시가 터지고 태주의 늘씬한 자태가 카메라에 오롯이 담긴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찰스 루이스의 주름진 눈에는 젊은 열정이 가득 찼다.
“앙투안 이후로 내가 이렇게나 영감을 받는 존재가 또 있었던가.”
그는 옆에 있던 차용석에게 속삭였다.
“오늘 당장 한태주 씨를 ‘루이스 모드’ 전속 앰배서더로 임명하는 계약서에 사인합시다.”
차용석이 헤벌쭉 찢어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스 모드’를 대표하는 앰배서더는 전 세계적으로 8명.
이제 한태주가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대표 얼굴이 되는 셈이었다.
찰스는 흐뭇한 미소로 태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동안 구태의연한 영광에 젖어있었던 루이스 모드가, 드디어 한태주라는 새로운 파도를 타고 다시 일어날 것 같다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