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디자이너와 그의 뮤즈 (7)
* * *
동 시각, C&K 컴퍼니.
큰 소리가 나는 대표실 안에서 세 사람이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어떻게 찰스 그 양반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그동안 그 양반 패션쇼에서 얼마나 비위를 맞춰줬는데. 그 브랜드 모델 한번 하려고!”
“종현아, 원래 패션계 사람들이라는 게 변덕이 심하잖아. 그리고 막말로 계약서에 사인했던 것도 아니었고. 지나가는 말로 했던 거잖아.”
“그래. 쌔고 쌘 게 패션 브랜드인데, 너무 그쪽에 집착하지 마.”
“그냥 브랜드가 아니야. 명품 중의 명품인 루이스 모드라고!”
안종현이 더욱 언성을 높였다.
“지금 한태주 그 애송이한테 앰배서더 자리 빼앗긴 거라고. 나는 그게 기분이 나쁜 거야!”
씩씩거리던 안종현이 대표와 이현식 팀장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다 된 밥을 한태주가 낚아채 가 버렸다고. 형이랑 누나는 내가 한태주한테 밀린 게 자존심 상하지도 않아?”
“그건 그러네.”
대표는 문뜩 이현식 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차용석 대표도 참 의리 없지. 루이스 모드 앰배서더 건은 자네가 안종현 데리고 진행 중이었던 거 알면서 감히 뺏어?”
그 말에 이현식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한바탕 안종현이 난리를 치고 난 후.
대표실의 공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탁, 탁.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대표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한태주 기세가 무섭네. 백시영을 치고 나간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이제는 종현이까지?”
“죄송합니다.”
“이 팀장.”
잔뜩 고개를 숙인 이현식에게 대표가 상기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요즘 세상에 명품 앰배서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잖아. 배우한테 고급 이미지를 심어주고,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가치를 알릴 기회라고.”
“네,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그렇게 일을 안이하게 처리해?”
“대표님, 그게…….”
“차용석이 키우는 한태주냐, 자네가 키우는 안종현이냐. 누가 봐도 승자는 우리라고 인정하도록 만들어야지. 이러다가 이선우도 제치겠어. 이 팀장, 자네는 쪽팔리지도 않아? 후배한테 밀리는 이 모양새가 보기 좋냐, 이 말이야.”
“……아닙니다.”
“그럼 더 열심히 해, 직접 발로 뛰든 머리를 굴리든 우리 밥그릇은 뺏기지 말라고!”
날카롭게 찌르는 대표의 말에 이 팀장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입술을 꽉 깨문 그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넘실거렸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네, 알겠습니다. 보도자료 정리해서 스타뉴스 측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대표님,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진수 팀장이 기분 좋은 듯 휘파람을 부는 이때.
그가 전화를 끊길 오매불망 기다리던 팀원들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팀장님?”
“태주가 지금 뉴욕에서 ‘루이스 모드’ 화보 찍고 있다네요.”
“오, 그럼 정식으로 앰배서더 자리에 오른 거래요? 그래서 한국에도 보도자료 돌리는 거고요?”
감탄을 이어가던 직원들이 설레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아권에서 루이스 모드 앰배서더가 나온 건 한태주 씨가 처음 아닌가요?”
“그렇죠.”
“태주 씨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특히나 찰스 루이스가 직접 골랐다는 점에서요.”
“태주 씨는 워낙에 다양한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고급스럽고 단정한 이미지를 루이스 모드 측에서 특히 마음에 들어 한 거겠죠.”
“이제 루이스 모드도 날개를 달았네요. 한태주 씨의 앰배서더 영입으로 인해 새로운 활력이 더해질 거예요.”
마치 승전보가 전해진 듯 사무실 내 분위기가 한껏 들뜬 가운데.
김진수 팀장은 홍보팀에 전달할 보도자료를 준비했다.
* * *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의 사람들이 하품하며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이때.
몇몇 사람들은 연예란의 기사를 보며 눈을 번쩍 떴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댓글의 반응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한태주 진짜 잘 나가네. 루이스 모드가 아시아인을 앰배서더 선정한 건 처음이지 않나?
-한태주는 진작에 명품 모델을 했어야 하죠. 프로포션도 좋고 무엇보다 마스크가 맑고 단정하잖아요.
-얼마 전에 뉴욕 패션쇼에서 찰스 루이스하고 독대했다더니, 이걸 위한 전초전이었나? 한태주가 찰스 루이스가 개인적으로 선물한 옷 입고 왔다는 말도 있던데.
-이미 예전부터 밑밥을 깔고 있었네요. 역시 한태주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니까요.
한편, 아침 일찍부터 이 기사를 읽는 사람은 또 있었으니.
독립영화 추가 촬영을 위해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온 윤수안이었다.
대본을 확인하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핸드폰을 보던 그녀.
한태주의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아 한창 읽는 중이었다.
발그레한 얼굴로 핸드폰에 얼굴을 고정한 그녀 옆으로 감독이 불쑥 나타났다.
“한태주 씨, 진짜 잘 나가네. 과연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얼굴이라고 할 만해.”
신이 나서 말한 감독은 옆에 있던 윤수안의 묘한 표정을 마주하더니.
자신이 혹시 실수했을까 싶어 화들짝 수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넥스트 엔터의 얼굴은 태주 씨도 있지만, 우리 수안 씨도 있지.”
“감독님, 설마 제가 태주 씨 질투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 그게….”
“저는 태주 씨가 이만큼 잘 돼서 너무 기뻐요. 하지만….”
윤수안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태주 씨한테 연기로 질 수 없죠. 그러니까 저,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으이그, 욕심쟁이.”
감독은 대견하다는 듯 윤수안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괜찮은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욕심을 낸 그녀는 최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한태주였던 건가….’
기사 속 태주의 사진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간 윤수안을 본 감독은, 자신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라이벌이란 언제나 좋은 법이지. 자극받아서 더욱 발전하게 되니까.’
한편, 윤수안은 재빨리 태주에게 문자를 남기는 중이었다.
-이제 곧 피셔 감독 영화 촬영 들어간다면서요? 쉬지도 못하고 힘들 테지만, 그래도 힘내요! 응원하고 있으니까.
* * *
늦은 저녁. 베벌리 힐스 스트리트.
저녁노을이 가득 들어찬 이곳에 영화 스태프들이 모여 있다.
영화 ‘나의 미래’를 찍는다는 말에 구경 나온 동네 주민들도 몇몇 보였다.
밤색 떡볶이 코트 차림의 태주는 대본을 보다가 그들의 사인 요청을 몇 번이나 받았다.
“다들 모여 봅시다.”
그때 리허설을 위한 앤디 감독의 콜에 태주와 디에고가 한데 모였다.
마당에서 동선과 대사를 맞춰본 후 잠시 쉬는 시간.
그 새 주변에 바글거리며 모여든 구경꾼들을 본 태주가 디에고에게 속삭였다.
“디에고 씨 인기가 대단하네요.”
“무슨 소리야, 다들 너 보러 온 건데.”
디에고가 주변을 힐끔거리며 앤디에게 시선을 돌렸다.
“능력 좋네요, 감독님. 이런 부촌에 사는 지인이 있었나 보죠?”
“그렉이 자기 집을 촬영장소로 빌려주겠다고 해서요. 1년 전부터 받아놓은 약속이었죠. 흐흐.”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앤디.
태주도 덩달아 들떠 오늘 촬영이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본 촬영을 진행해야 할 시간.
배우들이 자리에 위치하자, 앤디가 마이크에 대고 힘찬 목소리를 외쳤다.
“레디, 셋… 액션!”
* * *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던 베벌리 힐스.
어스름이 내린 길가에 차가 한 대 주차되더니, 이내 노신사가 내렸다.
앤디와 똑 닮은 푸른 눈을 신경질적으로 깜빡인 그.
“저기서 뭐 하는 거지?”
앤드류 피셔는 눈썹을 씰룩이다, 익숙한 광경을 발견했다.
수많은 구경꾼에 둘러싸인 한 무리의 촬영팀이었다.
“또 촬영이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 들어가려던 그는,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은 모두에게 비치는 빛이야. 당신한테만 비치는 별은 세상에 없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리, 날 놔줘.”
구구절절 울리는 목소리에 홀린 듯 앤드류가 그곳으로 향했다.
구경꾼들을 비집고 다가간 그의 시선에 한창 촬영 중인 배우들이 들어왔다.
핏발이 선 디에고의 절박한 모습.
그 밑에 깔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한태주.
그리고 그들의 연기를 지도하는 앤디 피셔의 모습.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지만, 앤드류 피셔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앤디가 얼마나 디렉팅을 잘하나 보자, 하는 비뚜름한 마음에 지켜보기로 한 거였는데.
그는 점차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나른한 얼굴로 리를 설득하는 태주의 모습에, 더더욱.
얼마 전, 이글맨 촬영을 하고 간 백시영의 껄렁한 모습과 대조되는 깊이 있는 한태주의 연기.
앤드류의 얼굴이 점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젖어갔다.
* * *
“오케이, 컷!”
몇 번의 테이크 후, 감독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와, 미쳤다.”
“연기가 정말 미쳤어. 정신없이 봤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태주가 감독에게 다가갔다.
모니터를 보던 앤디의 표정이 환해지던 순간.
그는 태주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리와 진의 격렬한 감정선이 잘 연결되어서 좋았어요. 이제 남은 건 진의 과거 행적들인데요.”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감독님.”
시놉시스를 넘기던 태주가 앤디에게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진이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다는 설정이 붙었던데요.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번 지원할 만큼 자기 꿈에 대한 열망이 뛰어난 친구고요.”
시놉시스 상 진은 가수 지망생.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톱 4까지 간 유망주였지만, 도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멘탈이 무너졌고. 그것을 계기로 그는 삶이 뒤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리는 티비에서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진을 처음 보게 된다.
“그렇죠. 그래서 가수라는 꿈에 부풀었던 그 시절은 최대한 밝게 갈 생각입니다.”
“세트장에서 찍나요?”
“아, 그건 제가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앤디가 눈을 찡긋했다.
“우리 영화에서 제일 찬란하게 빛나는 씬인 만큼,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나오게 찍을 예정입니다.”
그때.
스태프가 앤디에게 슬쩍 귀엣말을 전했다.
“피셔 감독님이 방금 왔다 가셨답니다. 촬영 내내 보셨다고 하는데요.”
“그래요?”
놀라기보다는 덤덤한 표정의 앤디.
“혹시 일부러 이 부근에서 찍으신 건가요? 아버지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태주의 떠보는 말에 앤디가 찔리는 듯 헛기침을 했다.
“물론 아니죠. 내가 그깟 아버지를 왜 신경 쓰겠어요.”
그러나 그의 얼굴은 요동치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듯, 한껏 흔들리고 있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