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이슈 메이커 (3)
옆에서 애벌레 분장의 남자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줬을 때도, 관중들이 그를 보고 환호했을 때도, 태주는 믿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대기실에서 무대를 보고 있던 박인우도 마찬가지.
그는 후다닥 복도로 나가 지나가던 스태프를 붙들었다.
“저기,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미스터 웜을 이길 리 없을 텐데요?”
“보시다시피 이겼잖아요.”
스태프가 무대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희 쪽에서는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답니다. 로저 싱클레어를 꺾고 올라온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2라운드에서 얼마나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지 말이죠.”
“로… 로저 싱클레어요? 저 애벌레가 ‘영스터 뮤지컬’ 주연인 로저 싱클레어?”
박인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쥐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흔들다가 곧이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대표님이네?”
박인우가 전화를 받으며 태주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들어서고.
곧이어 그가 격하게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남겨진 스태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하네. 2라운드에 진출한 걸 좋아하기는커녕 싫어하는 것 같은데?”
* * *
동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차용석이 전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들어오자, 팀원들이 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박 실장한테 전화 온 거죠? 무슨 일이래요?”
“지금 박 실장, 태주 씨 데리고 스케줄 소화하는 중 아니었어요? 마스크 스타였나?”
“벌써 끝났대요? 상대가 강력한 상대라고 했잖아요.”
“그게….”
차용석이 자신도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1라운드에서 승리하고 2라운드로 올라갔다는데.”
“네? 상대가 누구였는데요?”
“로저 싱클레어. 하, 이걸 어떡하나, 스케줄 다 꼬이게 생겼네.”
난감한 표정의 차용석과는 달리 직원들은 기뻐서 난리가 났다.
“역시 한태주 씨! 미국 가곡을 노래한다고 해서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저력을 발휘했군요!”
“한태주 씨 걱정을 괜히 했다니까. 어련히 잘할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김 팀장, 송 대리. 태주한테 들어온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다 꼬이게 생겼다고.”
그 말에 김진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XTV의 ‘영스터 뮤지컬’이라면, 특별 출연 아니었습니까?”
“아니야. 그쪽에서 태주를 시즌 4의 전학생으로, 그러니까 정식 캐릭터로 등장시킬 모양인가 봐.”
“정식 배역이요? 진짜로요?”
“그쪽 메인 피디가 인우한테 직접 제의한 거야. 확실해. 그리고….”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비중도 상당하다고 들었어. 기존 주인공인 로저 싱클레어랑 투탑이라고 하던데.”
* * *
영스터 뮤지컬.
XTV의 대표 드라마이자 전 세계적으로 현재 제일 인기 많은 틴에이저 드라마 중 하나.
배경은 고등학교지만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모두 성인으로, 성숙한 로맨스-뮤지컬 코미디를 표방하는 드라마이다.
시즌 2에서 최고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는 시즌 3을 거치며 다소 지지부진한 전개와 배우들의 사생활 문제로 살짝 인기가 내려앉은바.
올해 안으로 촬영이 들어간다는 시즌 4는 제작진이 절치부심해서 제작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제 태주 씨는 노는 물이 달라졌네요. ‘데스 게임’으로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하더니 ‘영스터 뮤지컬’에서도 주연 자리로 콜이 오고.”
“하실 거죠, 대표님?”
직원들의 아우성에 차용석이 신중히 답했다.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아무리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드라마라고 해도 덥석 물 수는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태주가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들이 너무 많아.”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전에 한유경에게 들었던 잔소리가 잠시 떠오른 탓이리라.
-애가 놀 시간도 없고, 맨날 스케줄, 스케줄. 지금 미국에만 얼마나 있었는지 알아요? 태주는 집밥 먹어야 힘내는 앤데!
머리를 흔들고는 차용석이 말을 이었다.
“태주, 조만간 한국으로 일시 귀국해야 할 거야. 우리 쪽에 들어온 스케줄들 있잖아.”
“여러 건 있죠.”
송유리 대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당장 N사에서 들어온 웹툰 트레일러 광고, 그리고 루이스 모드 화보 촬영이 급하네요.”
“그럼 윤수안 씨 영화 시사회 갈 시간은 안되나?”
차용석의 말에 송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태주 씨가 아무리 빨리 와도 늦을 거예요.”
“아쉽게 됐네. 이번에 윤수안 씨 영화평이 좋아서 VIP 시사회 때 태주가 가면 힘이 될까 했는데.”
“충분히 영화가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 대표님. 그리고 임강현 씨랑 고성열 씨가 가잖아요.”
직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에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바쁜 태주 괜히 불러서 힘들게 하지 말자고.
* * *
사람들로 북적이는 XTV 드라마국.
주안 산토스는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이크 이 친구, 정말 너무하네. 분명히 우리 드라마에 한태주 출연시키겠다고 했는데, 2라운드까지 진출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마스크 스타’에서 이렇게 잔류하면 우리 드라마 촬영은 어떡하라고.”
그때, 그를 발견한 작가가 황급히 달려왔다.
며칠째 대본에 매진하느라 밤을 새워 얼굴이 칙칙했다.
“어떻게 됐어요?”
그를 쫓아온 여자가 황급히 물었다.
“한태주, 설득했어요? 출연하겠대요?”
“몰라, 매니저한테 말해 놨는데 확답은 안 줬어.”
“한태주 스케줄 정리가 덜 된 거 아니에요? ‘마스크 스타’는 어떻게 됐는데요?”
“한태주가 2라운드에 진출했어.”
“그래요?”
그녀가 놀라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My life 같은 구닥다리 곡으로 상대를 이겼다고요?”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알았겠지만, 한태주가 부르는 노래는 전혀 촌스럽지 않았어.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느낌이었다고.”
“찍어둔 거 있어요?”
“나중에 방송으로 봐. 아무튼 조만간 한태주와 그의 매니저랑 미팅하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주안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이것 하나만 알아 둬. 우리의 목표는 한태주를 시즌 4에 정식 출연시키는 거야. 성사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자고.”
“당연하죠, 보스.”
피곤함이 짙게 자리 잡은 여자의 얼굴에 한 줄기의 빛이 스쳤다.
“한태주를 우리 쇼에 출연시킬 수만 있다면, 저는 며칠 더 안 자도 돼요.”
* * *
그날 저녁.
저녁을 먹고 나온 태주는 마지막까지 자신과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박인우가 태주를 보호하며 능숙하게 양해를 구해, 어린 남자아이와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 형 덕분에 살았네.”
“나밖에 없지? 내가 말이야, 대표님보다 더 믿음직하게 널 지켜줄 거라고.”
“용석이 형도 덩치는 좋은데?”
“그 형은 헬스용 근육이야, 나는 실생활용 근육이고. 그럼 내가 더 좋은 거 아냐?”
박인우의 넉살에 태주가 크흡, 웃어버렸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어스름이 져 있었다.
커피를 한 잔씩 사서 방으로 들어간 그들.
한동안 방안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박인우는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고, 태주는 얼마 전에 제작사로부터 받은 드라마 ‘굿맨’ 대본을 탐독 중이었다.
한창 타이핑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대사를 외우던 태주가 시린 눈을 비볐다.
“형, ‘굿맨’ 오디션 말이야, 다음 주라고 했지?”
“응. 다음 주 금요일. 야, 드디어 한국에 들어가네.”
박인우가 고개를 돌려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네가 굳이 오디션까지 참석할 필요는 없지 않냐?”
“무슨 소리야?”
“아니, 안 그래도 한국에서 스케줄 할 거 많아서 피곤할 텐데.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해서. 팬미팅도 두 탕이나 뛰어야 하잖냐.”
“아, 서울이랑 도쿄.”
태주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손을 모았다.
아역배우 이후 처음으로 갖는 팬미팅.
예전에 임강현의 팬미팅을 다녀온 이후, 팬미팅에 대한 로망은 더욱 커졌다.
오로지 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그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으니까.
해서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팬미팅을 준비했다.
그런 와중에 태주에게는 중요한 일정이 또 있었으니, 바로 ‘굿맨’ 오디션 참석이었다.
박인우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오디션까지 소화하는 건 네가 너무 피곤할 것 같아.”
“대표님하고 감독님이 부탁하신 거라, 나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어. 그리고 빌런들과 합을 맞추는 건 나니까. 내가 그들과의 케미를 잘 형성할 수 있는지 오디션에서 확인하려고.”
“그래, 그럼 오디션에 참석하는 게 맞겠지.”
“뭐, 솔직히 걱정되기는 해. 나 같은 애송이가 무슨 심사를 한다는 거냐고 삐뚜름한 눈으로 볼 배우들이 있을 것 같아서.”
“주연배우가 케미스트리 맞는 배우를 직접 보겠다는데, 자기들이 뭘 어쩔 거야.”
박인우가 당당한 눈길로 태주를 사로잡았다.
“넌 어떨 때 보면 배려심이 지나치더라. 너는 주연배우야, 자신감을 가져.”
[인우가 오랜만에 어른스러운 말 하네. 나도 저 말에 동의.]이중협도 고개를 끄덕이는 말에 태주가 씩 웃었다.
그의 웃음기 있는 얼굴에 박인우도 덩달아 웃은 건 덤이다.
“한국 들어가기 전에 XTV 드라마국 팀원들과 미팅 있는 거, 잊지 말고.”
“알아, 내일 오전이잖아.”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 일정을 얼추 끝낸 이때, 그의 머릿속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한 듯했다.
그런 그를 보던 박인우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진정 모르는 모양이다.
한태주란 이름 석 자가, 지금 미국에서 얼마나 핫해졌는지.
* * *
그날 밤.
태주는 자기 전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제일 먼저 전화한 건 태희였다.
한국에 간다는 말에 태희는 굉장히 들떠 하면서도, 이내 뿌루퉁한 말투로 퉁퉁거렸다.
-자꾸만 도준이가 자랑해, 오빠랑 프랑스 칸에 간다고. 나는 한 번도 오빠랑 해외여행 간 적 없어서 섭섭했어.
“미안해. 오빠가 태희도 해외여행 데리고 가 줄게.”
-하지만 오빠가 너무 바쁘잖아! 이번에 한국 와서는 나랑 꼭 놀기야, 알았지?
“알았어, 꼭 놀아줄게.”
귀여운 투정이 가득한 태희와의 통화가 끝난 그때.
그는 핸드폰에 걸려 온 전화에 눈을 크게 떴다.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그가 전화를 받았다.
“흠흠. 수안 씨, 웬일이에요?”
-아니, 그게….
당황한 듯한 윤수안이 이내 도도한 목소리를 냈다.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다음 주에 태주 씨 한국에 들어온다면서요.
“네.”
-저 이번에 독립영화 찍은 거, 곧 개봉하거든요. 시사회 하는데, 태주 씨도 오나 해서요.
“저는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 갈 거 같아요. 저 요즘에 바쁜 거 잘 알잖아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태주.
윤수안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
태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황급히 통화를 갈무리했다.
-됐어요, 그럼. 바쁜 사람 괜히 방해했나 봐요.
뚝 끊긴 통화에 옆에서 이중협이 끼어들었다.
[너 생각해서 전화한 사람한테 왜 이리 딱딱하게 구냐?]그 말에 태주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너무 딱딱하게 굴었어요?’
[당연하지.]이중협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칭 여심 킬러라는 그는 태주에게 할 말이 많았다.
[내가 널 보면서 늘 생각하는 거지만, 너는 여심을 너무 읽을 줄을 몰라. 그러니까 제대로 된 연애가 안 되지.]그 말에 태주가 코웃음을 쳤다.
‘무슨 소리예요, 형.’
[아까 윤수안 통화하는 거 들어보니까, 네가 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물씬이던데. 왜 그리 딱딱하게 굴었냐?]‘그럼 직접 가면 더 좋아하겠네요.’
태주의 그 말에 이중협이 벙쪘다.
[뭐야, 너 윤수안 시사회 가려고? 그런데 분명히 통화로는 안 간다고 했었잖아?]‘안 간다고는 안 했는데요.’
[어떻게 된 거야, 밀당이야?]‘비밀입니다.’
이중협이 재밌다는 듯 킬킬거리며 태주를 쫓아왔다.
[재밌는 건 좀 같이 나누자, 태주야! 이 형 마음도 같이 설레게!]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