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이슈 메이커 (7)
그 말에 태주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차용석과 마주쳤다.
민소예가 아직도 자신에게 미련이 있다는 건 그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박인우가 생각보다 현명하게 처신했다는 것도.
“연예인 병 아니에요. 저 그렇게 못돼먹은 놈 아닙니다.”
박인우의 항변을 듣던 태주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오해해서 미안해. 그리고 형 덕분에 뉴욕에서의 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옆에서 인우 형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 많은 촬영 스케줄을 다 소화하지 못했을 거예요.”
“태주야, 역시 너밖에 없다.”
“형 뉴욕에서 엄청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칭찬 좀 해주세요, 용석이 형.”
그 말에 차용석이 크흠, 헛기침했다.
“그래, 인우 덕분에 태주가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온 건 맞지. 수고했어, 박 실장.”
그 말에 박인우의 얼굴이 금세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차용석이 씩 웃더니 태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할리우드가 널 부르나 보다, 태주야.”
그리고는 대견하다는 시선을 보낸다.
“마스크 스타 다음 라운드 진출했다며? 역시 우리 태주, 오래된 노래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다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가곡이라는 점도 통했고요.”
“그러면 ‘영스터 뮤지컬’ 드라마는? 시즌 4에 공동 주연으로 제의받은 건 절대로 운이 아니야.”
박인우가 옆에서 신나서 끼어들었다.
“영스터 뮤지컬 피디가 ‘마스크 스타’ 현장에 직접 태주를 보러 왔었죠. 뭐, 태주가 연기 잘하는 건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서 증명됐으니,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나 봐요.”
“그럼 태주야, 네 생각은 어떠냐?”
곰곰이 생각하던 태주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낭만 고양이’랑 역할이 겹치는 것 같더라고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영스터 뮤지컬’은 XTV의 대표 드라마야. 이미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고. 거기에 주연으로 들어간다 한들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은데.”
[용석이 눈에 욕심이 그득한데? 널 월드 슈퍼스타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나 보다. 하긴, 내가 매니저라도 그럴 것 같긴 한다만.]이중협의 말을 듣던 태주가 차용석을 바라보았다.
XTV에 주연으로 캐스팅 받았다는 말에 한껏 들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은 닥친 일들부터 해결하죠, 형. ‘영스터 뮤지컬’에 대한 답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굿맨’ 오디션 준비부터 해야 해요.”
“정말 네가 오디션에 동행하려고? 변장한 모습으로?”
태주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네, 그게 배우들의 긴장감을 낮추면서도 그들의 연기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하긴,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한태주보다 조연출이랑 대사 맞춰 보는 게 훨씬 낫겠다. 부담감도 덜하고.”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이다 무언가 생각난 듯 덧붙였다.
“이번 오디션에는 추천으로 들어온 배우들이 여럿 된다고 하더라.”
“추천이요?”
“제작사랑 투자사 측에서 추천한 배우들 말이야. 오디션을 통해 뽑히는 건 마찬가지인데, 누구인지는 일단 인지하고 있다는 거지.”
옆에서 박인우가 끼어들었다.
“그중에 재일교포 배우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마루야마 회장님이 추천한 배우라던가?”
“아, 맞아.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배우, 마루야마 회장님이 재일교포 출신이라 일부러 챙겨주는 것으로 보여. 연기가 좀 거칠더라고, 정형화되지 않고. 드라마 판에 잘 적응할지도 모르겠어.”
차용석이 태주를 보며 말했다.
“여러모로 너랑은 정반대야.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한태주랑은 완전 다른 스타일이라고.”
* * *
며칠 후, 연예계는 여러 소식으로 들썩였다.
그리고 여기, 대학로의 한 극단의 배우들이 무대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너 윤수안 영화 봤어? 헬퍼?”
“저는 개봉한 그 날 봤죠. 윤수안 팬이라서 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얼마 전에 관객 1만 명 돌파했다고 하던데요. 영화가 재밌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보나 봐요.”
“윤수안 팬들만 봐도 그만큼은 충분히 되겠다. 바이럴 마케팅도 엄청 하더만.”
심술이 난다는 듯 입가를 비죽거리던 배우들은 성이 난 목소리로 성토했다.
“정당하지 않은 싸움이지. 실력 있는 무명 배우들만 죽어나는 거라고.”
“독립영화판에도 스타들이 끼어들면 어떡하냐. 자기네들 물에서 놀아야지, 송사리들의 몫까지 먹으려 들고.”
“이래서 소위 말하는 스타 배우들이 싸가지가 없다는 거야. 진짜 절박한 배우들이 게네 때문에 빛을 못 보잖아.”
극장에 모여있던 배우들의 불만으로 한껏 열기가 달아오를 무렵.
옆에서 대본을 들고 중얼거리던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뒷담이냐?”
갑자기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극단 동료들이 휙 고개를 돌렸다.
“석대 오빠, 거기 있었어요?”
한 손에는 대본, 한 손에는 대걸레를 들고 무대 청소를 하던 남자가 덧붙였다.
“어차피 다 실력으로 이기면 상관없는 거잖아.”
그 말에 동료가 코웃음 쳤다.
“오빠는 일본에서 한국 온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뭘 모르네요.”
“맞아요. 이 바닥이 실력으로만 풀리는 줄 알아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결국 제작진은 인지도 높은 배우, 잘생긴 배우, 스타들을 쓴다고요. 독립영화도 윤수안 나오니까 이렇게 잘 되는 거 봐봐요.”
“너희, 영화나 보고 말하는 거냐?”
추석대가 강인한 턱을 쓸어올렸다.
“거기서 윤수안 정말 연기 잘하던데.”
“원래 배우는 감독 놀음이라고 했어요.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감독이 잘 찍었겠죠.”
“그럼 그 감독한테 눈도장 찍어서 잘 연출된 것도 배우 역량이겠지. 내가 보기엔 너희, 찌질해 보인다.”
“오빠!”
발끈한 동료들에게 추석대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전조차 안 하고 포기하는 게 더 못난 거야. 너희 말처럼 우리는 밑에서 발버둥 치는 송사리들이야. 그럴수록 이런 환경을 불평하며 남의 성공을 시기할 게 아니라 더 노력을 해야지.”
“그런 오빠는, 우리한테 잔소리할 자격이나 돼요?”
버럭 화를 내던 동료가 일침을 놓았다.
“한국에 온 지 5년이나 됐는데 맨날 대학로에서 연극만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드라마 오디션 지원했잖아.”
그 말에 배우들이 코웃음을 쳤다.
“한태주 나온다는 그 드라마요? 오빠, 그거 된다는 보장 있어요? 경쟁률 장난 아니던데.”
“맞아. 이번에 날고 긴다는 배우들 다 거기 오디션 지원했더라.”
“한태주랑 대립하는 역할이라 비중도 상당하다나 봐. 심사위원석에 한태주도 있다고 하니까, 아마 그 사람 눈에 잘 들어야겠지?”
“난 한태주 눈에 들려고 가는 거 아냐. 한 판 맞붙으러 가는 거지.”
재일교포 추석대가 눈을 반짝였다.
“난 한태주랑 연기로 대결해서 이길 자신 있거든.”
* * *
폭풍우가 치는 전날은 고요하다 했던가.
드라마 오디션을 진행하는 ‘스튜디오 S’도 폭풍전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프로필을 넘겨보던 두 남자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드라마 ‘굿맨’은 주연인 한태주, 윤수안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를 오디션으로 뽑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배우가 ‘굿맨’ 오디션에 응시하기 위해 프로필을 제출했다.
그들의 연기는 내일이면 볼 수 있을 터다.
그러나 주인식 감독과 제작자 마범수는 좀 더 나은 배우를 뽑기 위해, 그들의 프로필을 일찍이 파악하는 중이다.
지원자들이 프로필에 적어놓은 작품들 속 그들의 연기를 보기도 하고.
한참을 일에 몰두하던 주인식이 곧 시선을 멈춘 프로필이 있었으니.
“그런데 얘는 뭐야? 추석대?”
“일본 이름은 카에데 추라고 하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식 이름으로 바꾼 모양이야.”
“그럼 재일교포?”
“그렇지. 마루야마 회장님이 직접 추천하신 친구라고.”
“아, 나 인맥 오디션, 그런 거 제일 싫어하는 거 모르시나.”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주인식이 프로필을 넘겨보았다.
빽빽하게 들어찬 작품 리스트들을 읽던 그의 눈길이 점점 가늘어졌다.
“한 거라곤 죄다 연극뿐인데? 티비나 영화 쪽 필모그래피는 전혀 없는 모양이야?”
“거기 그렇게 쓰여 있는 걸 보면, 그렇겠지.”
“티비 연기가 뭐 빙다리 핫바지인 줄 아나. 우리는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이것저것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친구가 아니라.”
한숨을 내쉬던 주인식에게 마범수가 말했다.
“잘 가르치면 쓸만할지도 모르지. 이 친구, 대학로에서 평판 들어보니까 연기로 날린다고 하던데. 교포들 특유의 악센트 같은 것도 없대.”
“대학로에 연기 못하는 배우도 있어?”
콧방귀를 뀌던 주인식이 말을 이었다.
“연극판에서 연기 잘하는 애들은 연기 부심이라는 자존심이 있기 마련이야. 연기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해서 우리 같은 피디들은 상업적으로 돈만 밝힌다고 생각하기 일쑤라고.”
“그래서?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 나는 마루야마 회장이 추천했든 아니든 그냥 다 공평하게 볼 거야. 누가 추천했다는 건 나한테 아무 메리트가 없어.”
“그건 당연하지. 그래서 태주 씨도 이번에 변장까지 해 가면서 오디션을 본다는 거 아니겠어?”
“진짜로 변장한 대? 사람들이 한태주가 조연출로 변장한 거에 속을까?”
“한태주 씨가 그리 일을 허술하게 진행하는 남자는 아니잖아?”
그 말에 주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배우들도 심사위원석에 있는 한태주보다 조연출하고 대사를 맞추는 게 훨씬 낫겠지.”
“태주 씨도 똑같은 소리 하더라. 자기가 연차는 꽤 되지만,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몇몇 배우들은 자신이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것을 아니꼽게 볼 수도 있다고.”
“그래봤자 한태주 커리어가 대단한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
“아니, 배우 한태주보다는 조연출하고 대사를 맞추는 게 배우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고 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던데.”
마범수의 말에 주인식은 순간 멍해졌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배우가 상대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기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그동안 그가 만났던 배우 중 이 정도로 작품에 공을 들인 이는 없었다.
“한태주가 나보다 낫네.”
“자네보다 훨씬 낫지. 그러니까 내일 오디션에서 기대해 보자고.”
마범수가 주인식을 보고 눈을 찡긋했다.
“내일 한태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즐거운 충격을 줄지 말이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