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물과 불의 연기 (6)
흥분한 남자는 주변 친구들에게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어쩐지 내가 오디션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이상하다 했어. 조연출하고 대사의 합을 맞추라는 것도 이상했고.”
“야, 흥분 좀 가라앉혀.”
“맞아, 한태주가 왜 분장하고 그러고 있었겠냐. 그리고 다른 오디션장에서도 종종 조연출들이 대사 맞춰주고는 하잖아.”
“아니. 너희도 알잖아, 조연출들 대사 맞춰줄 때 그냥 대충대충 라인만 확인하는 거. 그런데 이번 오디션 조연출은 연기에 진심이었다고.”
잔뜩 흥분한 남자가 말을 계속하려 했지만, 친구들은 그를 진정시켰다.
남자가 오디션에 떨어져서 헛소리하는 거로 생각한 것이다.
“좀 진정해. 너 지금 오디션 떨어져서 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솔직히 너 연기 못해서 떨어진 건 맞잖아. 나중에 실력이나 더 키워서 당당하게 오디션 합격하라고. 크크.”
“맞아, 맞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친구들의 반응.
남자는 억울한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이번 오디션은 제작진의 짜고 치는 고스톱, 농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 * *
한편, ATC 방송국.
제작진으로 가득 찬 회의실에는 여기저기서 눈치 보기 바빴다.
가운데 앉은 메인 프로듀서, 윌이 어두운 얼굴로 손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옆에 있던 작가가 그를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봐. 한태주가 신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들어가는 드라마도 있다잖아.”
“‘데스 게임’ 이후에 더 바빠진 것 같아.”
“원래 한태주는 한국에서 톱스타였어. 이제는 월드 스타가 됐지만.”
“그래서 XTV에서도 노리고 있는 거 아냐. ‘영스터 뮤지컬’ 시즌 4에 로저 싱클레어랑 공동 주연으로 낙점할 생각인 것 같던데?”
그 말에 제작진의 표정이 근심으로 어두워졌다.
“누가 봐도 우리랑 XTV면 당연히 그쪽을 택하지 않을까?”
“메건, 벌써부터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는 그만큼 좋은 대본이 있잖아.”
“그렇지만 한태주가 이제 막 월드 스타로 뜬 지금, 분명히 메이저 쪽을 택할 거야.”
“XTV도 우리랑 똑같이 케이블인 건 마찬가지잖아.”
“그렇지만 그쪽은 ‘영스터 뮤지컬’이란 히트작을 가진 제작사지. 우리는 시청률이나 인지도 쪽에서 한참 부족하고.”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작가 한 명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한태주가 작품 선택할 때요. 방송국 인지도 그런 거 말고 작품성 하나만 본다고 한 것 같아요”
“그래?”
“이번에 선택한 ‘굿맨’. 그것도 한국 케이블 방송국에서 우리처럼 작품성 하나로 들이밀은 극본이었대요. 그런데 한태주가 다른 걸 뿌리치고 그걸 차기작으로 택했다는 것 아닙니까.”
“너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이런 정보는 제가 또 빠르잖아요.”
직원의 말에 메인 프로듀서의 표정은 살짝 풀렸다.
그때, 그의 노트북에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왔다.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온 메일임을 확인하고는 흥분의 눈초리를 번뜩였다.
“제발, 제발!”
마우스 클릭 몇 번에 모니터를 가득 채운 이메일.
실눈으로 읽기 시작한 그는 이윽고 눈을 크게 떴다.
“오마이 갓, 예스!”
화면을 가득히 채운 메일에는 다음 주, 한태주가 뉴욕에 도착하면 ATC 방송국에서 미팅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 *
며칠 후, 서울의 한 촬영장.
이곳에서는 N사의 인기 웹툰, ‘인어 왕자’의 웹툰 트레일러 촬영을 하고 있다.
태주는 새벽부터 나와 촬영 준비를 했다.
인어 왕자인 만큼 허리 밑으로 청록색의 인어 분장을 하고, 하얀 얼굴에는 푸른색과 초록색이 반짝이는 메이크업을 하는 중이다.
옆에서 유키가 신기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꼭 가부키 할 때와 비슷하군요. 우리도 이렇게 원색으로 좀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거든요.]‘저 괜찮나요?’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 고모와 태희에게 보냈다.
곧이어 고모한테서 답장이 왔다.
-이런 왕자 있으면 납치해서 신랑으로 삼고 싶다. 내가 정말 많이 예뻐해 줄 수 있는데.
격한 애정이 담긴 고모의 문자에 태주가 큭큭대는 순간.
스태프들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태주 씨, 한국에 얼마나 머무르세요?”
“글쎄요, 정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어머, 그럼 그 소문이 맞았네.”
스태프가 발랄한 눈을 찡긋했다.
“할리우드에서도 태주 씨 부르는 러브콜이 많다던데요.”
“하하,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막 미국에 가서 미팅도 하고 그래요?”
옆에서 태주의 머리를 만지던 스태프가 끼어들었다.
“선진 씨는 연예란도 안 읽어? 이번에 태주 씨, 미국 유명 드라마에 캐스팅 논의 중이라잖아. 영스터 뮤지컬이라고.”
“영스터 뮤지컬? 나 그거 완전 팬인데! 태주 씨 거기 주연으로 출연하면 나 정말 감동할 거예요.”
그때, 저 멀리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총총히 걸어왔다.
여러 스태프에게 씩씩하게 인사한 그녀는 이윽고 태주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태주 선배님. 송고은입니다.”
“안녕하세요.”
태주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광고 모델로 확정되었다는 기사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C&K 컴퍼니에서 염수정의 후계자로 밀어주는 여배우인 그녀.
송고은은 활짝 웃으며 씩 이를 보였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태주와 나란히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는 혼자서 킥킥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수안 언니가 질투하겠다, 선배님이랑 같이 이렇게 공주-왕자 컨셉으로 광고 찍는 거 알면!”
“네?”
“모르셨어요? 수안이 언니, 진짜 질투심 많아요. 크크.”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다시 총총히 뛰어간 그녀.
태주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요즘 애들이란,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요.’
그 말에 이중협과 유키가 풉, 웃은 건 덤이었다.
[자기도 요즘 애들 아닌가?]* * *
어둑한 공간 속 옅은 푸른빛 조명만이 흩어지는 이곳.
촬영장은 고운 모래들이 가득한 모래사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곳에서 태주는 바다에서 모래사장으로 떠밀려온 인어 왕자를, 송고은은 그를 발견한 공주로 연기 중이었다.
한창 촬영하던 이때.
“컷, 컷!”
태주를 빤히 보던 감독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촬영을 끊었다.
송고은이 바짝 긴장해서 태주에게 속삭였다.
“저 뭐 잘못했어요?”
“아뇨, 다 괜찮았는데…….”
그때, 태주는 감독이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태주 씨, 연기가 너무 남자다워요. 좀 더 중성적이었으면 좋겠는데.”
자신에게 향하는 피드백에 태주의 눈이 반짝거렸다.
“중성적인 연기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남자인데 좀 부드러운 남자?”
“그럼, 좀 더 부드럽게 가보겠습니다.”
‘광대 촬영했을 때처럼 하면 되려나?’
“그런 결이 아니라 좀 더 아름다우면서 중성적인 느낌으로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태주 씨한테 빠질 수 있는, 그런 식의 연기를 해 봐요.”
광고 감독의 애매모호한 말에 태주가 고민에 빠진 그때.
옆에 있던 유키가 슬쩍 그에게 힌트를 던져 주었다.
[본인이 경국지색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한번 연기해 봐요.]‘네?’
[보니까 태주 씨는 연기의 선이 제법 굵어서, 의도적으로 여성의 부드러움을 섞으면 그게 중화될 것 같아서요. 저도 옛날에는 연기의 선이 굵은 편이었는데, 여자 배역을 오래 맡으니까 제법 선이 중화되었거든요.]“알겠죠? 그럼 다시 해 봅시다.”
감독이 돌아가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았다.
태주는 그 순간에도 복잡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경국지색의 연기? 여성적인 모습? 하지만 왕자의 모습으로는 안 어울리지 않을까? 낯설 것 같기도 하고….’
태주의 망설임에 이중협이 그를 격려했다.
[낯선 연기는 그 어떤 연기자한테나 두렵기 마련이지. 그런데 태주야. 내가 뭐 하나 알려 줄까?]‘네?’
[연기자란 말야. 항상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기보다는 ‘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고!’ 같이 색다른 면도 시도를 해봐야 해. 너 자신에게 낯선 부분을 보여준다는 건, 대중에게 네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니까.]그 말에 태주가 앞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그는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의 연기를 해 왔다.
도전이라고 했던 연기도 결국은 자신이 예전에 했던 연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자신이 잘하는 연기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때로는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날것의 신선함을 줄 수도 있는 법.
‘해 볼게요.’
태주가 각오를 단단히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를 다시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뇌쇄적이면서도 유혹하는 듯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변해 있었다.
* * *
하얀 별빛이 쏟아지는 모래사장.
그 위에서 인어 왕자는 별빛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에게 뻗는 공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왕자에게서 은하수와 같은 따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나의 손을 잡아준 순간, 나는 너만의 조각이 되어버린 거야.”
공주가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자.
왕자는 그녀를 마주 보며 붉은 입꼬리를 올렸다.
“너만을 사랑할게. 내가 물거품이 되는 그날까지, 영원히.”
분명 공주에게 구애하는 대사였지만, 마치 인어 왕자가 헤어나올 수 없는 덫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모니터를 보던 감독이 연신 감탄하며 울먹였다.
“아, 역시 한태주란 배우는 1을 가르키면 10을 해내는 배우라니까! 공주를 향한 저 절절함, 공주를 유혹하는 저 아름다움. 얼마나 완벽해!”
“확실히 저희가 원하던 그림이에요. 공주를 유혹하는 세이렌 같은 느낌이랄까?”
촬영장의 제작진도 숨죽여 태주의 연기에 푹 빠진 이때.
뒤에서 보고 있던 이중협은 유키가 묘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얼굴을 훔친 유키는 손에 묻어나오는 눈물을 발견했다.
[평생을 무대 위 가부키의 연기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태주 씨의 저런 연기에 충격받아서 그런가 봐요.] [너는 거기에 충격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카에데는 거기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매, 매료되었다고요?] [그래.]이중협은 당황한 듯 보이는 유키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제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에게, 가부키 외의 다른 연기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을 거야.]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카에데에게 가부키는 평생을 바친 업이나 마찬가지였다고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너도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가 없네. 제가 아는 세상이 다인 것처럼 살고 있잖아. 죽어서까지.]새로운 충격받은 듯 멍해진 유키에게 이중협이 눈을 찡긋했다.
[그쪽을 떠나 이쪽을 선택한 거면,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것 아닐까? 네가 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이중협이 태주에게 시선을 돌리자, 유키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이 꽂혔다.
영롱한 눈동자를 반짝이는 태주는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여태껏 가부키 이외의 연기를 낯설어하던 유키도, 단번에 그 매력으로 끌어들일 정도로.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