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순간 (6)
“이중협?”
강승민은 계속해서 그 이름을 곱씹었다.
옆에 있던 수사관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혹시 여기에 묻혀 있던 저 손이 이중협이란 사람일까요? 명함도 있잖습니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니, 뭘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강승민이 땅에 묻힌 유골을 노려보았다.
“유골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곳에 묻힌 지 오래된 것 같군요.”
“정확한 건 과학수사원 연구팀이 와야 알겠지만. 네, 저도 검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건 최소 몇 년간 땅에 묻힌 사체의 모양새에요.”
수사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사체가 묻혀 있을까요? 혹시 치정사건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왜, 뭐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습니까?”
상사의 날카로운 시선에 수사관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다.
“아니, 그게……. 이중협이란 사람이 만약에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다면, 그림이 좀 그려지거든요.”
강승민의 눈이 번뜩이자 수사관의 목소리가 한껏 작아졌다.
“이 사람이 배우 이중협이라는 가정 하에요. 한태주 배우님이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라고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얘기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강승민은 머리를 쿵, 얻어맞은 듯했다.
이중협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 중이면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이름에 둘을 바로 연관 짓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만약에 이 손의 주인이 정말 이중협이라고 한다면, 의문투성이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강승민이 차분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중협은 분명히 촬영 중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분명 그 유골은 장례 후, 수습되어 한 납골묘에 안치되었다고 했습니다.”
강승민의 시선은 저쪽에 있던 손에 향했다.
“그럼, 납골묘에 있어야 할 손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시체가 바꿔치기 당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설마……. 아, 골 때리네요, 정말.”
강승민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죽어서 제 자리가 아닌 이런 곳에 묻혀 있다면. 이 사람, 꽤 험한 일에 관련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겁니다. 저 손의 신원과 이 별장이 누구 소유인지 알아내는 것. 얼른 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때, 통화를 끝낸 한 수사관이 흥분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검사님, 이 별장의 소유주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요? 누군데요?”
“우창균입니다. 부형윤 검사장님과 한때 형, 동생 하던 건설업자입니다.”
수사관이 조심스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에 강승민이 눈을 찡그렸다.
“부형윤? 그분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단 말입니까?”
여러 연결고리가 단숨에 꿰지는 순간이었다.
연예부 기자 여병래, 그가 취재한 ‘별장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의 핵심이었던 부형윤 검사장.
강승민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 사건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 * *
대본리딩을 끝낸 태주가 동료 배우들과 인사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이때.
평소보다 신이 난 그는 매니저 박인우의 곁에서 재잘거렸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끝도 좋다고 하잖아. 오늘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연기가 죽였던 것 같아.”
“어휴, 오늘 우리 태주 배우님의 연기에 저도 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뒷좌석에 있던 귀신들의 분위기는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유키는 이중협의 왼손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분명 아까는 손이 썩은 듯 검붉은 색이었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겠다.]자신의 왼손을 보던 이중협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분명 아까는 썩은 것처럼 보였던 그의 손에 이번엔 혈색이 돌아왔다.
귀신들은 핏기가 없이 허여멀건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왜 왼손만 혈색이 완전히 돌아온 건지 의문이다.
그때, 뒷좌석을 힐끔거리던 태주가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했다.
‘왜 그래요?’
태주가 놀란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은 순간.
이중협은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소맷자락에 숨겼다.
[아무것도 아니야.]이중협은 태주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잘게 떨리는 것을 본 순간.
최선을 다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주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옮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
어느새 그의 삶의 목표는 바뀌어 버렸다.
자신의 성불보다는, 태주의 성장을 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더욱 커졌다.
생전 자신이 이루지 못한 배우의 꿈을, 태주가 이뤄내는 것에 대한 쾌감이 짜릿했다.
죽은 자의 한보다는 산 자의 희망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그였다.
해서 자신의 손을 입고 있던 트렌치 코트의 소매 속에 단단히 숨기며, 이중협은 한껏 과장된 톤으로 말했다.
[그것보다 한태주! 너 지금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냐? 내가 너라면 아까 대사는 이렇게 쳤을 거야…….]이중협이 도발하는 듯 태주에게 말하자.
태주는 순식간에 그의 도발에 휘말려 연기는 이런 식으로 하는 거라고 토론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그는 이중협의 긴장감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 * *
얼마 후.
대표실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은 차용석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라고요? 이중협……. 중협이 형 명찰을 그곳에서 발견했다고요?”
일전에 태주에게서 차용석이 이중협의 로드 매니저였다는 사실을 들은 강승민이 전화한 것이다.
대표의 체통은 어디로 간 채, 차용석의 얼굴은 흥분과 긴장감, 그 자체였다.
예전에 이중협을 처음 만났을 때의 초보 매니저의 얼굴로 돌아간 듯했다.
그의 긴장된 목소리를 들은 수화기 너머의 강승민은 이상한 듯 되물었다.
-네. 혹시 대표님께서 이 사건에 관해 뭐라도 알고 있는 점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희 수사에 도움이 됩니다.”
“일단, 그 시체가…… 중협이 형이 맞습니까?”
-그건 아직 저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단 과학수사원에 시체를 보내서 검시 중인데. 정확한 결과는 다음 주 중에 나올 겁니다.
“그 시체는, 중협이 형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여기서 이중협 씨의 명찰이 나온 거로 봐서는……`.
“중협이 형은 드라마 촬영 중, 스턴트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바로 장례를 치렀고요. 강원도의 별장에서 시체가 나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장례를 치렀던 사람이 누구죠?
“네?”
-그 사람이 거짓말했다는 가정은, 안 해 보셨습니까?
강승민의 날카로운 지적에 차용석은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장희재 대표의 얼굴이 선연했다.
이중협이 죽었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서 기절했던, 그 시절의 장희재가.
분명 그때만 해도 장희재에게 이중협은 제법 소중한 배우였을 것이다.
안 그럼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렇게 놀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설마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가지고 장난을 쳤겠습니까.”
-대표님, 세상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는 건 대표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참 동안 계속된 통화는 결국 사건 협조를 부탁하는 강승민의 말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은 차용석은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중협이 형,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저 한심했다.
생전 이중협의 로드 매니저였음에도 그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인 자신이.
그때, 대표실을 똑똑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으니.
“형.”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주였다.
“저 보컬 레슨 좀 받아도 될까요? 이번에 팬미팅 때 부를 노래 때문에 음정이랑 스킬을 마지막으로 확인받고 싶어서요.”
“보컬 레슨?”
“아, 원래는 강웅이나 지호 형한테 받으려고 했는데…. 언제든 노래 연습 봐준다더니, 인제 와서 안 된대요, 바쁘다고.”
태주의 멋쩍다는 듯한 표정에 차용석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내가 태주를 두고 무슨 딴생각을 하는 거야.’
그의 별이자 스타, 한태주는 한 새도 쉬지 않았다.
대본 리딩을 방금하고 왔는데, 이제 곧 있을 팬미팅을 위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한다.
조금 전까지 이중협 때문에 심란했던 차용석은, 태주를 보고 금세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스타이자, 미래인 한태주를 보고.
“내가 아는 보컬 선생들 많으니까, 지금 당장 연락해 볼게. 오늘 저녁으로 약속 잡으면 될까?”
“그러면 좋죠. 고마워요, 형.”
태주의 해맑은 미소에 차용석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내가 더 고맙지, 한결같이 열심히 해 줘서.’
이중협 일도 중요하지만, 현재 그의 품에 있는 태주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건 이중협도 마찬가지였다.
* * *
2일 후, 어스름이 깔린 저녁.
서울의 한 대학교 대강당에는 ‘한태주 팬미팅’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태주가 아역배우 이후 처음으로 갖는 팬미팅의 인기는 대단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차곡차곡 사람들로 채워진 강당도.
대기실에서 있던 태주도.
모두가 설렘으로 가득 찬 이때.
태주는 벅찬 마음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형,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깜짝이야, 왜 그런 소리를 해, 갑자기?”
“나 평생 팬미팅 해보는 게 소원이었거든? 솔직히 저번에 강현이 팬미팅 하는 거 보고 부러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많은 팬이 와줘서 너무 기쁜 것 같아.”
“벌써부터 감동하면 어떻게 하냐?”
박인우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태주에게 쥐여주었다.
자그마한 편지였다.
“형!”
“야, 지금 읽지는 말고, 나중에 읽어봐.”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꼬던 박인우는 서둘러 전화를 받는 척 밖으로 나갔다.
편지에 고정된 태주의 눈길이 호기심으로 꿈틀댄 건 한순간.
옆에 있던 이중협도 그를 부추겼다.
[한번 풀어봐. 인우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한데?]‘에라, 모르겠다.’
태주는 꼬깃꼬깃 접힌 편지를 풀어보았다.
그런데 편지 속 내용을 확인한 순간.
“이게 뭐야!”
박인우가 태주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안으로 들어와 킬킬거렸다.
“하하, 하하하!”
태주는 ‘속았지?’라고 적힌 편지를 휘둘렀다.
“나 형한테 완전 감동했는데, 이게 뭐냐고!”
“네가 긴장한 것 같아서 내가 장난 좀 쳤다.”
“아, 형!”
“날 칭찬해야지, 이렇게 능력 있는 매니저가 어딨냐? 몇 초 만에 긴장감을 다 풀어버렸잖아.”
박인우의 자화자찬에 태주는 그만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첫 단독 팬미팅에 덜덜 떨리던 마음이 진정된 것은.
* * *
얼마 후.
강당을 꽉 들어찬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빛이 반짝거리는 가운데.
태주가 노래를 부르며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폴라리스의 노래 ‘Utopia’.
희망적인 가사로 그가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기도 했다.
“너와 나의 천국, 우리들의 희망으로 가득 찬 그곳으로 함께 발맞춰 갈 거야~ You are my Utopia!”
태주의 노래를 듣던 팬들은 감탄을 거듭하며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폴라리스의 제7의 멤버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다니까.”
“우리 배우님은 노래도 잘해!”
가창력을 요구하는 이번 노래를 위해 그동안 받았던 보컬 레슨의 효과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그는 무대 위에서 임강현을 만났다.
이번 팬미팅의 MC는 임강현이 해주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했던 약속인지라, 임강현은 무척이나 고대하면서 준비했다고 한다.
라디오 디제이 경력이 상당한 임강현은 능수능란하게 팬미팅을 진행했다.
그리고 염수정, 이선우, 윤수안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 한태주에게 감동했던 순간들을 말하는 코너를 할 시간이 됐다.
그중 이선우의 말이 태주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좋은 배우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죠. 태주는 후배지만 정말 배울 점이 많고,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그 말에 태주는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이윽고 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답하는 코너가 이어졌다.
랜덤으로 뽑은 팬이 무대 위로 올라와 직접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었다.
“38번 올라오세요!”
태주의 호명에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수줍게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태주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 궁금했던 건데요. 태주 배우님께서는 혹시 귀신들을 보실 수 있나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