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개척자와 숨기는 자 (5)
* * *
똑똑.
태주가 문을 두드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용석이 형, 김 팀장님. 저 자선 야구대회 가기 전에 인사드리려 잠깐 들렀습니다.”
그의 등장에 차용석이 냉큼 일어났다.
“태주야, 바쁜데 무슨 인사를 한다고.”
“그래도 형 얼굴은 보고 가야죠. 형 기운도 좀 받을 겸 해서요. 흐흐.”
“그럼 기운 팍팍 받아라, 팍팍!”
태주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던 그의 시선은 한껏 뭉클해져 있었다.
[하이고, 저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컸냐. 막내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이중협이 묘한 표정으로 차용석을 응시했다.
자신과 함께했을 때는 마냥 막냇동생처럼 굴었던 그가 대표로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신기했다.
동시에 차용석의 팔자주름을 보니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고.
“그런데 제가 아까 본의 아니게 대화를 들어버렸는데요. 미팅에 저를 데리고 오면 좋겠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아, 이번에 투자 제의 들어온 게 있어서.”
“XJ에서 투자받은 걸로 모자란 거예요?”
태주의 질문에 차용석이 턱을 쓸어올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작품 기획 겸 제작으로 영역을 넓히려고 생각 중이야.”
그 말에 이중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쟤가 또 어디서 헛바람 들었나? 매니지먼트 일이나 열심히 하지 웬 제작?]‘형, 요즘에는 배우 기획사에서 예능이나 드라마 제작도 많이 해요. 좋은 작품을 기획해서 자사 배우들을 끼워 넣으면, 윈윈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드림액터스‘에서도 제가 출연한 예능 제작 지원해서 이익 본 적 있었잖아요.’
[아, 그런가? 하긴, 요즘 트렌드는 멀티가 대세기는 하더라.]차용석은 태주의 의견을 구하듯 고개를 까딱였다.
“네 생각은 어때? 우리 회사가 배우 매니지먼트만 몰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뇨, 저도 우리 회사가 콘텐츠 제작까지 발을 넓히는 거, 좋다고 생각해요. 형 역량이면 충분히 좋은 작품 가려내서 제작할 능력도 되고요.”
“믿어줘서 고맙다.”
태주를 보던 차용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영화 대본들이 그렇게 들어오는데, 나중에 우리 쪽에서 제작해서 네가 주연을……. 아니다, 이건 먼 얘기고.”
재빨리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서 추가 투자를 받으려고 하거든.”
“YH 캐피털에는 타진해 보셨어요?”
태주의 여러 작품을 통해 연을 맺은 YH 캐피털.
그러나 차용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진작에 미팅은 해봤는데, 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이쪽 업계에서 생각한다고 하면 거의 거절이야.”
“흐음.”
“그래도 다른 곳에서 투자 제의가 들어왔어. 액수가 워낙 커서 내가 직접 나가야 할 것 같아.”
“누군데요?”
“CK 건설에 우창균 대표. 일산에 암병원 지은 건설업자인데, 들고 있는 돈이 좀 많은가 봐. 주변에 물어보니까 이 양반, 시원하게 투자하는 걸로 유명하더라.”
그 말에 이중협이 귀를 쫑긋거렸다.
[아, 이름을 들으니까 생각나네! 예전에 드림액터스에도 투자해서 장 대표하고도 잘 지냈던 양반이야.]‘그럼, 좀 의심스러운데요. 장 대표하고 친했던 사람이면…….’
기억을 더듬던 이중협이 눈을 찡그렸다.
[사람은 점잖았던 것 같아. 신사도 그런 신사가 없었긴 한데……. 뭔가 싸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럼 제가 직접 가서 만나보는 게 좋겠어요. 뭐든지 타인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 저하고 형이 직접 보는 게 나으니까.’
결심한 태주가 차용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 저도 오늘 미팅에 함께 참석할게요.”
“그게……”
뭐라 말하려는 차용석의 입을 그가 막았다.
“거절은 거절합니다. 형의 곁에서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그럼 나야 너무 고맙지! 태주 너한테 내가 참 많이 의지하네!”
차용석이 냉큼 태주를 안아버렸다.
“많이 사랑한다, 우리 태주!”
근육질의 다부진 몸이 그를 압박하자 태주가 헉헉거렸다.
“숨 막혀요, 형!”
* * *
오후 2시.
서울의 고척돔에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
오늘 이곳에서는 유명 야구선수인 탁윤도가 개최하는 자선 야구대회가 열린다.
매년 인기리에 열리는 대회였지만, 유독 오늘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오늘 탁윤도와 함께하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인간 승리의 대명사인 황보훈 때문일까?
아니면 야구인 2세 슈퍼스타, 반규연 때문일까?
그 답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치 팝스타가 내한했을 때처럼 가득 모여있던 사람들의 눈이 유독 몰린 곳이 있었으니.
황보훈 팀 소속으로 경기를 뛰고 있던 태주였다.
“4번 타자, 한태주입니다!”
장내 아나운서가 쩌렁쩌렁 외치는 소리에 태주가 타석에 들어서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홈런 부탁합니다!”
“홈런! 홈런!”
그러자 맞은편에 서 있는 상대편 투수가 태주에게 씩 미소를 지었다.
“태주 씨, 쉽게 갈까요, 어렵게 갈까요? 태주 씨 실력으로는 어렵게 가도 될 것 같은데.”
“박진감 있게 가시죠.”
“그럼 전력으로 던집니다.”
태주의 도발에 투수는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2번의 스트라이크, 그리고 3번의 볼.
풀 카운트였다.
“스트라이크 한 번이면 이제 한태주는 아웃이야.”
다들 긴장한 채 지켜보는 이때.
깡!
태주가 휘두른 방망이가 공을 때리며 호쾌한 스윙을 그렸다.
방망이에 제대로 맞은 야구공이 저 멀리 날아가 담장을 넘겼다.
“와, 3점짜리 홈런입니다! 1점 차로 지고 있던 황보훈 팀이 순식간에 3-5로 역전하네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주인공, 한태주 씨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호쾌한 멘트는 곧 관중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에 묻혀 버렸다.
“역시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태주 대박!”
1루에서 3루를 거쳐 다시 홈 베이스까지 태주는 총총히 뛰어갔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한 바퀴를 돌고 덕아웃으로 향하자.
같은 팀 선수들이 손을 들어 그에게 너도나도 하이 파이브를 했다.
“이야, 탁윤도 선배님께서 태주 씨가 야구 잘한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안 믿었는데. 너무 잘하는데요?”
“규연이보다 더 시원하게 스윙하는 것 같아.”
“예전에 황보훈 선배님 배트 돌리는 폼이랑 많이 비슷하네요. 스윙이 호쾌해요.”
“연예인이라고 방심하면 안 되겠어요. 3점 홈런이라니!”
그때, 천천히 걸어온 황보훈이 태주를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역시 내 후계자라니까, 우리 태주 씨는! 지금이라도 배우 말고 야구선수로 트는 게 어때요?”
“그럼 저, 홈런왕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하하, 당연하죠!”
황보훈이 태주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탐나는 눈빛을 반짝였다.
“저한테 트레이닝 2년 정도 받으면, 3년 후에 신인왕, 홈런왕……. 다 휩쓸게 해 줄게요!”
“하하!”
[말은 잘하는구만. 하지만 네가 야구계로 방향을 튼다면 충무로에서 난리가 날걸. 아직 한태주를 써보지 못한 감독들이 그렇게 많은데 가만히 있겠어?]‘형, 농담하시는 거잖아요.’
[농담 아닌 것 같은데? 저 양반, 요즘에 진천 팔콘스에서 타격 코치로 있으면서 인재 찾는데 불이 붙었어.]이중협의 말대로 태주를 보는 황보훈의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야구대회가 끝난 후.
태주는 여러 선수와 함께 경기장에서 팬들과 작은 사인회를 했다.
팬들의 수가 많아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은 태주와 반규연이다.
야신이라 불렸던 레전드 홈런왕, 반기범의 아들인 내야수 반규연.
미스코리아 출신 어머니를 닮은 곱상한 외모와 4년 연속 골든글로브를 거머쥔 뛰어난 실력으로 야구계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인받던 팬들이 자꾸만 태주를 힐끔거리자,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음 야구대회에는 태주 씨 부르지 말아야겠어요. 제 팬들이 태주 씨의 잘생김에 홀려서 자칫하면 변심하겠는데요?”
“제 팬 하시면 저야 좋죠.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과 확실한 팬 사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태주가 팬들에게 능글맞은 윙크를 찡긋, 하자. 주변에서 쓰러지는 팬들이 속출했다.
그 모습에 반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팬사랑이 이렇게 지극해서 우리 어머니하고 여동생이 태주 씨 팬클럽에 가입했나 보네요. 오죽하면 팬미팅까지 다녀오나 했는데…….”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서 내민 아기자기한 수첩 하나.
“여기 사인 세 장 좀 해주십쇼.”
“세 장이요?”
“하나는 제가 가지려고요.”
그 말에 태주가 피식거렸다.
“흠흠.”
반규연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의 귓가가 살짝 발개진 건 덤이었다.
* * *
모든 일정이 끝난 후.
경기장 밖에서 탁윤도와 황보훈이 태주를 배웅했다.
“태주 씨가 오늘 참석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중에 시즌 개막하면 시구, 시타 행사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5월쯤은 어떠세요?”
태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탁윤도는 황보훈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너는 태주 씨가 얼마나 바쁜데 스케줄을 그렇게 타이트하게 잡냐? 한 10월쯤으로 문의드려야지.”
“그때는 너무 늦잖아. 그리고 가을보다는 봄 야구가 시타하기에 낫지.”
죽이 척척 맞는 이 야구 콤비에 태주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확실히 친구의 힘이 크기는 해. 일상을 살아갈 힘을 주니까.]예전에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황보훈이 지금 이렇게 타격 코치로, 자선 야구에서 활약하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리고 황보훈의 이런 기적은 그를 물심양면 지원하고 돕는 친구, 탁윤도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의 우정은 야구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귀감이 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 태주 씨랑 꼭 한번 회식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탁윤도는 태주가 일정 때문에 함께 저녁 회식을 하지 못함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미팅 끝나고 3차 합류하셔도 되는데…….”
“윤도야, 태주 씨 바쁘시다잖아.”
탁윤도의 미련에 황보훈이 끼어들었다.
“미리 공지하지 못한 우리 잘못이지. 태주 씨, 나중에 시간 나면 소주라도 한잔해요.”
“양해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태주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혹시 우창균이라는 분 아십니까?”
“어? 태주 씨가 그 양반을 어떻게 알아요?”
의아해하며 탁윤도가 황보훈과 눈을 마주쳤다.
“그 양반, 야구계에서 이름 좀 알려진 사람이지?”
“내가 항상 선수들한테 말하잖아. 우 대표 같은 사람 조심하라고.”
“그 양반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태주 씨.”
“아시는 분이에요?”
“내가 아는 아나운서가 몇 있는데 그 양반을 좀 꺼리더라고요.”
[여자 밝히는 놈이었구만, 우 대표라는 인간도.]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태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엔터 계에서는 깔끔한 투자계의 큰손이라 알려진 반면.
다른 곳에서는 구린 뒷소문이 흘러나온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런 사람한테는 함부로 투자받으면 안 돼. 너한테도 똥물 튄다.]‘조심해야겠어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 대표와 함께하는 미팅에서 용석이 형은 혹시라도 거액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나름의 기대를 한 모양인데.
저는 그렇게 쉽게 마음을 내줄 생각이 없다.
야구선수들과 헤어진 태주가 매니저 장진혁과 함께 차로 돌아왔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장진혁이 태주가 좋아하는 락 음악을 틀려는 이때.
핸드폰을 든 태주가 그의 손을 막았다.
“잠깐만요, 저 통화 좀 하겠습니다.”
핸드폰 속 수신인은 ‘마루야마 회장’이었다.
태주가 전화를 받자, 장진혁은 서둘러 블루투스 이어폰을 꼈다.
그가 통화하는 내용을 일부러라도 엿듣지 않기 위한 그만의 비책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처 듣지 못했다.
태주와 마루야마 회장 간에 ‘YH 캐피털’, ‘제작사 투자’, ‘이미 확정됐다’ 등등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