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연기의 진정성 (3)
그날 밤.
작업실에서 촬영본을 정리하던 양군보 감독.
오늘 낮에 찍은 씬을 거듭해서 돌려보는 중이었다.
화면에는 태주의 벌건 눈빛이 가득 걸렸다.
“와……. 이건 뭐 편집할 것도 없네. 다 갖다 쓰면 되겠어.”
똑똑.
“네, 들어오세요.”
작업실에 들어온 사람을 양군보가 반갑게 맞이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현바하는 그에게 커피를 건네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들렸습니다. 첫 촬영본 나왔다기에 OST 영감도 받을 겸 해서요.”
“언제든 웰컴입니다.”
“이게 오늘 찍은 촬영본인가요?”
“네. 김선정 씨, 손우현 선배, 한태주 씨. 이렇게 셋이서 찍었는데, 대단했어요.”
태주를 빤히 바라보던 현바하가 눈을 찡그렸다.
“저 친구가 저런 연기도 할 줄 알았나요?”
“솔직히 저는 저런 연기는 기대를 못 했죠. 그런데 저 친구, 제 생각보다 훨씬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저것 좀 보세요.
화면 가득히 잡히는 충혈된 눈.
김선정을 지키기 위해 독기 가득한 말을 내뱉는 태주가 보였다.
“저렇게 선한 얼굴에서 저런 악스러운 말이 나오는 게, 모순 같으면서도 너무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네요.”
현바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구, 오디션을 회칼 들고 봤다고 했죠?”
“맞아요.”
“똘기가 가득하네요, 좋은 쪽으로요.”
“배우는 적당하면 성공 못 해요. 모 아니면 도로 연기에 미쳐야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현바하.
손가락을 튕겼다.
“아, 내가 저 얼굴을 어디서 봤나 했네. 요즘 SNS에 핫한 ‘홍대 버스킹남’ 아닙니까?”
“어, 맞아요.”
“안 그래도 제가 지금 죽정의 시선에서 OST 쓰고 있는 게 있거든요. 저 친구, 노래도 담백하고 괜찮던데요.”
현바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 태주 씨 좀 봐야겠네요. 목소리 톤도 좋고요.”
* * *
며칠 후.
“아니, 그렇다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어떡하냐. 내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네가 제일 잘 알면서.”
-내가 아무한테나 알려준 것도 아니고, 좀 봐주라.
“아무나가 아닌 사람이 기자니까 그렇지. 이제 보니 서동락, 네가 내 안티였구만.
-그래도 태주야, 언론인터뷰야. 그것도 스타뉴스. 연예 언론사 중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스타뉴스면 ‘마지막 승부’ GV 때 나한테 다짜고짜 지난 10년간 뭐 하고 지냈냐던 언론 아냐?”
-그건 수습기자가 어떻게든 기사 따내려고 달려든 거지. 그래도 우성림 기자, 우리 영화에 대한 좋은 리뷰도 써줬잖아. 남들은 임강현 얘기만 잔뜩 썼는데.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심은설 봐서라도 인터뷰 좀 해줘라. 은설이 이모가 스타뉴스 홍은지 기자라는데, 어떡하냐.
결국, 이게 본심이었군.
‘심은설 이모가 스타뉴스 기자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이중협도 옆에서 거들었다.
[우성림이라는 기자, 그렇게까지 기레기는 아닌 것 같던데. 어차피 너도 이제 아역배우 과거 다 까고 활동하는 건데, 인터뷰하지 그러냐.]고민하던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인터뷰할게. 대신 조건이 있어.”
* * *
성인이 되고 처음 하는 언론인터뷰.
미리 질문지를 이메일로 받아 답을 작성해, 이중협과 리허설을 몇 번이고 해봤다.
[부모님 얘기는 적당히 끊어. 네 연기보다 그쪽에 치중될 수 있으니까.]‘네, 그럴 생각이에요. 안 그래도 그 얘기 나오면 사람들이 자꾸만 딱한 시선으로 보는데, 그건 딱 질색이거든요.’
이중협과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스타뉴스가 위치한 빌딩.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카페에서 인터뷰하자는 우성림의 제안에 태주는 굳이 자신이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중협의 부탁 때문이었다.
인터뷰한 다음, 과거에 이중협과 친했던 기자를 찾을 계획이다.
‘의외로 연예인이 많네요.’
[옛날보다는 많이 없는 것 같은데. 그때는 연예인이 언론사 건물에 찾아와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런데 요즘엔 바빠서 전화나 이메일로 많이 딴다면서?]‘맞아요. 이동하면서도 전화로 많이 한 대요.’
[임강현 같은 애들?]‘그렇겠죠, 뭐.’
임강현 얘기가 나오자 태주가 갑자기 심드렁해졌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한때 라이벌이었던 그가 라이징 스타로 우뚝 선 건 다소 신경 쓰였다.
최근 임강현의 ‘뱀파이어의 첫사랑’ 언플 기사가 유독 많이 떠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귀여운 녀석.]이중협이 킬킬거리며 태주를 따라가던 그때, 화장실에서 남자들이 한 무더기로 나왔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확 쏠렸다.
“어, 폴라리스다.”
“하강웅 봐. 존나 잘생겼네. 저게 인간이야?”
“윤지호도 대박인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잘생겼냐. 눈에 별 박혀있는 것 같아.”
대한민국 최고의 보이그룹 ‘폴라리스’.
그들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며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태주가 그들을 빤히 쳐다보자 이중협이 물었다.
[쟤네, 누군지 알아?]‘태희가 좋아해서 알아요. 그리고 재하 형이…….’
[아, 저번에 강재하가 말했었지. 원래 너랑 찍기로 한 화보, 윤지호랑 찍었다고.]게다가 폴라리스는 강성광이 데뷔조로 있던 그룹이었다.
태주는 폴라리스에 강성광을 끼워 넣어 보았다.
‘잘 어울렸겠다, 성광이도.’
한참을 쳐다보다 윤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쳐다봤나?’
태주가 막 떠나려는데,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저기요.”
윤지호였다.
“네? 저요?”
“홍대 버스킹남…… 한태주 씨, 맞죠?”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태주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윤지호가 너무나도 열렬히 그의 팔을 붙잡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윤지호는 그만큼 절실해 보였다.
“저번에 홍대에서 부르신 그 노래, 성광이가…… 제게도 들려준 적 있어서요.”
강성광의 노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태주는 조금 놀랐다.
“성광이랑 저, 친했었거든요. 그 노래, 뒷부분도 있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태주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윤지호가 어떤 경로로 내 버스킹 영상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광이랑 친했던 건 확실하다.
내가 부른 성광이의 곡에 아직 미완성된 뒷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걸 보니.
‘그런데 알면 아는 거지, 뭐가 저렇게 절절해?’
꼭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쟤 눈 좀 봐, 꼭 울려는 것 같은데.]이중협의 말에 윤지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운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다.
그때, 멤버들과 매니저가 그를 부른다.
“지호야, 가자!”
“형, 뭐 하는 거야, 스케줄 있잖아.”
난감한 듯 허둥대던 윤지호.
매니저에게서 종이와 펜을 빌려, 전화번호를 빠르게 적어 건넸다.
“이거, 제 번호입니다. 꼭 좀 연락해주세요.”
태주가 뭐라 할 틈도 없이 그는 급하게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폴라리스의 윤지호와 만나고, 강성광이란 연결고리를 확인한 것은.
이중협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쟤는 왜 저러는 거냐?]‘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서…….’
[나 참, 여기까지 와서 별일을 다 겪네.]‘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요.’
태주는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5분이다.
‘분명 오전 11시에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우성림에게 전화를 걸려는 그때.
한 남자가 뛰어오며 헉헉거렸다.
“죄송…해요. 제가 방금까지 혼난… 아니 컨펌을 받느라…고요!”
그렇게 숨에 차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우성림과 만났다.
* * *
태주는 우성림을 따라, 곧장 환한 조명과 카메라가 세팅된 인터뷰실로 향했다.
곧이어 칼단발의 여자가 옅은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배우님. 홍은지라고 합니다. 은설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는데……, 정말 들은 대로 잘생기셨네요.”
심은설의 이모라고 했던가.
강단 있는 눈매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인사를 나누고 사진부터 찍었다.
그런데 화면을 보던 홍은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머, 태주 씨. 손에 상처가 왜 이렇게 많아요?”
태주는 슬며시 자신의 손을 가렸다.
권혁두의 능력을 받아들이기 전, 칼질을 연습하며 상처가 났는데 보기 안 좋은 모양이다.
“요즘에 찍는 영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칼을 많이 쓰는 역할이라서요.”
“연기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상처들을 보니 속상하네요.”
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우성림은 선배의 눈치를 보면서도 열심히 진행했다.
“어……. 피르마 영화제에서 연기 특별상 받으시고, 이중협 배우님께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이중협 배우님의 연기에 감명받아,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성림아, 잠깐만.”
답답하다는 듯 홍은지가 우성림의 질문을 뺏었다.
“10년 전에는 ‘쌍갑동 식구들’이란 드라마에서 똘똘이로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제는 신인배우나 마찬가지잖아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 이 질문이 안 나오나 했다.’
태주는 연예계 짬밥이 있는 이중협의 조언을 참고해 대답했다.
“아역 때의 화려했던 시간은 감사한 기억들이죠. 그러나 10년의 공백기를 갖고 다시 시작한 지금도 감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연기하는 건 똑같습니다.”
“흠……. 그럼 질문을 이렇게 돌려볼까요? 10년 전, 태주 씨와 아역 계의 투톱으로 불렸던 임강현 씨는 현재, 떠오르는 스타로 자리를 잡았죠. 그런 면에서 태주 씨는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홍은지가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가 진짜. 우리 태주한테 일부러 유도 질문을 하네.]이중협은 태주의 귓가에 대고 빠르게 말했다.
[저런 질문에 말려들지 마. 그냥 이렇게 말해,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니까 비교한 적 없다고.]“각자 페이스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른데요. 전혀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에이……. 대답이 너무 건실하시네요. 인터뷰가 이러면 재미없잖아요.”
“이럴 거 아시고 인터뷰한다고 하신 것 아니셨습니까?”
홍은지도, 태주도 서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서로가 만만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당연했다.
* * *
인터뷰가 끝난 후.
태주는 홍은지 및 우성림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은설이한테 들은 것하고는 좀 다르네요, 태주 씨.”
홍은지가 눈을 반달로 접었다.
“열정 신인배우라고 했는데, 직접 보니까 이건 뭐. 속에 50년 묵은 능구렁이가 들었는지, 짬밥 찬 중견 배우랑 인터뷰하는 줄 알았어요.”
“하하…….”
‘바로 옆에서 이중협이 코치해줬으니 그럴 만도 하지.’
홍은지는 일이 있어 먼저 가고, 우성림이 태주를 배웅했다.
“기사는 다음 주 중 나올 겁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 ‘그림자 무사’ 언론시사회랑 VIP 시사회 하던데, 거기 태주 씨도 가십니까?”
“전 VIP 시사회에 초대받았어요.”
“그래요? 저도 거기 취재하러 가거든요! 그때 또 만나겠네요.”
[태주야, 내가 아까 부탁했던 거 물어봐 줘.]이중협이 속삭이자 태주가 우성림에게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기자님. 혹시 스타뉴스에 여병래 기자님이라고, 계시나요?”
“여병래 기자요? 선배인가? 제가 아직 수습이라…… 잠시만요.”
우성림은 재빨리 전화를 이리저리 돌렸다.
얼마 후,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분 없다는데요.”
“분명히 5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 근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분 말씀하시는 거라면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답니다, 갑자기 그만두셨다네요.”
[태주야, 됐다. 그냥 가자.]결국, 태주는 우성림에게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을 하곤 이중협과 함께 빌딩을 나왔다.
옆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이중협이 신경 쓰였다.
‘여병래 기자님에 대해서 더 알아봐 드릴게요,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아니야, 됐어. 이미 죽었는데, 내 죽음을 파헤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이중협이 애써 한숨을 삼켰다.
태주 앞에서는 늘 힘찼던 그가 처음으로 가라앉은 순간이었다.
여병래는 생전 이중협과 친하게 지냈다던 기자였다.
이중협의 부고 기사를 냈던 기자기도 하고.
그는 드라마 촬영 당시 스턴트와의 신호가 안 맞아 사고를 당했다고.
비극적이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중협은 이 일이 전혀 기억에 없다고 했다.
그러기에 여병래를 만나 죽음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래야 이승을 떠도는 자신의 한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에.
이중협은 태주가 걱정할까 싶어, 부정적인 감정을 금방 털어내고 얇은 입술을 씩 올렸다.
그리고는 태주를 보며 힘차게 말했다.
[태주야, 얼른 집에 가서 대본 연습하자. 아무래도 나는 네가 열심히 할수록 한이 풀리는 것 같으니까.]이중협은 통통거리며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태주.
복잡미묘한 감정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제껏 자신은 이중협의 도움을 받기만 했다.
‘내가 중협이 형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을까?’
이제는 자신이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여병래라는 기자를…… 알만한 사람이 없을까?’
그러던 중 태주의 머릿속을 스친 사람이 있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