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언더독의 반란 (4)
* * *
칸 영화제의 꽃, 뤼미에르 극장.
영화감독들의 꿈이 이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뤼미에르의 위상은 대단하다.
한마디로 이곳에 작품이 걸린다는 건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하여 현재 그곳에 깔린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배우들에게 집중하는 뜨거운 시선은 전율 그 자체다.
그리고 세계의 관심을 받는 이들이 있다.
영화 ‘탈출’의 감독과 주역들.
그중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건 단연 태주였다.
능숙하기보다는 다소 어색한 모습으로 이선우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양군보 감독을 이선우와 함께 내세워 자신은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 당당하게 동료 배우들을 이끌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기자들 속에 섞여 있던 우성림과 황유나는 그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어라, 저 모습은 뭐죠?”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 않게 하려는 태주 씨의 배려?”
“정말 그런가 봐요. 작품에 참여한 감독님과 다른 배우들에게 골고루 관심이 돌아가게 하려는 배려심 말이에요.”
그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역시 한태주라니깐!”
* * *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우성림과 황유나가 봤던 태주의 실상은, 사실과 조금 달랐다.
그에게는 생애 첫 칸 영화제.
여태껏 많은 영화제를 다녔지만, 그럼에도 칸은 태주에게 특별했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최고의 가치를 지닌 건 물론.
예전에 아빠랑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 태주, 열심히 해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 밟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입을 턱시도는 아빠가 특별히 맞춰줄게. 우리 태주가 제일 빛날 수 있도록.
그때의 대화가 아직도 선연한 태주였다.
괜한 그리움과 뿌듯함. 그리고 긴장감이 뒤섞여 심장이 점점 쿵쿵댔다.
도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주변의 함성도 그의 심장 소리에 가려진 이때.
“태주야.”
이선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잘생긴 얼굴은 태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네?”
“태주야, 발 헛디디겠다. 좀 천천히 걸어.”
“아, 차례 밀리지 않으려고…….”
“저기 진행요원들이 천천히 가라고 손짓하는 거 안 보여? 긴장해서 못 봤나 보네.”
태주는 그제야 이선우가 가리킨 곳을 발견했다.
양옆으로 늘어선 진행요원들이 태주더러 좀 천천히, 다른 배우들과 발을 맞춰달라고 요청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도준이 자기 손을 잡아끄는 것도 느껴졌고.
옆에서 에바 벨포르와 팔짱을 낀 채 걸어오던 이중협이 배가 터질 듯 웃어대는 것도 그제야 발견했다.
[아이고, 웃겨라. 너 지금 흥분했지? 긴장했지? 생애 첫 칸 영화제라서?]‘긴장이라뇨, 안 했습니다.’
[무슈 태주, 긴장한 모습도 귀여워요.]노부인마저 태주를 향해 확인 사살하는 이때.
옆에서 이선우도 귀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천하의 한태주도 긴장할 때가 다 있네? 짜식, 형도 처음 칸에 왔을 때, 너보다 더 긴장했었어.”
3년 전, 영화 ‘느티나무 아래’로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이선우.
이번이 두 번째라고 제법 여유로운 모습으로 영화 ‘탈출’ 팀을 리드했다.
얼굴이 빨개진 양군보 감독을 이끈 것도.
저 멀리 혼자서 앞서가던 태주를 붙잡은 것도 그였다.
괜히 멋쩍어진 태주는 그에게 말했다.
“선배님이 계시니까 역시 든든해요.”
“이럴 때만 선배님이지? 촬영장에서 연기할 때는 나를 잡더니.”
훈훈한 그들 사이, 뒤에서 따라오던 고성열이 섭섭한 듯 끼어들었다.
“선우 선배님, 섭섭합니다. 영화에서는 저랑 더 붙어 있었는데 왜 여기서는 태주만 챙기세요.”
“너는 기자들 앞에서 포즈 취하느라 정신없었잖아.”
그 말에 고성열의 얼굴이 빨개졌다.
태주도 옆에서 큭큭댔다.
뭐가 어떻든, 칸 영화제에 처음 온 둘 다 흥분한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침내 칸에서의 시그니처 포즈를 할 때가 되었다.
뤼미에르 극장에 들어가기 전, 계단에서 사진을 찍는 이때.
태주는 감격을 삼킨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쪽에는 손을 꼭 잡은 도준이가 반대쪽에는 이선우가 있는 채였다.
* * *
떠들썩한 입장 후, 극장 안으로 들어선 태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극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원형으로 쭉 둘러싸인 2층 객석.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앉아있는 1층 객석.
모든 게 인상적인 태주는 1층 제일 맨 앞줄에 앉았다.
태주 옆에 있던 양군보 감독이 뒤를 힐끗거렸다.
“태주 씨, 우리 뒤에…….”
그를 따라 태주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나란히 있었다.
스크린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유명한 배우들이 태주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는 가운데.
그 옆에는 이글맨의 피셔 감독과 폴 벨포르도 있었다.
그들에게 태주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폴이 내키지 않는 듯 굳은 얼굴을 숙였다.
“그러니까 어제 ‘한국 영화의 밤’ 행사에 저 사람 왔을 때,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인사했어야 한다니까. 점수 딸 좋은 기회였는데.”
이선우가 안타깝다는 듯 태주에게 귀엣말했다.
“심사위원들이 아무리 널 좋게 봐도 위원장 마음에 안 들면, 상은 저 멀리 날아가는 거라고.”
[저 말은 선우 본인의 경험이 담겨 있어서 그런 걸 거야. 3년 전 칸에 왔을 때, 원래는 남우주연상을 선우가 탔어야 했는데. 위원장이 선우 연기가 너무 호불호가 갈린다고 안 준 거라고 하더라.]그제야 이선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챈 태주.
상을 타면 물론 좋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갈 미래다.
그렇기에 그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팟.
불이 꺼지고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태주의 손을 꼭 잡는 도준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태주는 말을 건네는 대신, 아이의 손을 제 손으로 꼭 덮었다.
저 자신도 떨리고 긴장된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
* * *
팟.
영화에 빠졌던 이들이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스크린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이때.
처음 공개된 영화 ‘탈출’로 감격에 젖어 있는 태주였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도준을 안고 기차 안을 뛰던 순간.
이선우와 고성열과 대치하며 목에 핏대를 올리던 순간.
좀비들에 쫓겨 숨이 막힐 정도로 뛰던 순간.
[태주야, 대단하다.]옆에서 감격에 젖은 이중협이 태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영화도 대단하고, 저 안에서 활약한 너도 대단하고.]쑥스러운 태주는 그것이 이중협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땀으로 흠뻑 젖은 도준의 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 박수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커요?”
도준의 말에 태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그의 귀가 열렸다.
수많은 함성과 귀가 먹먹할 정도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하는 지금.
태주도 일어나 덩달아 손뼉을 쳤다.
1분, 2분…. 몇 분이 지났을까.
이미 크레딧은 전부 지나가 스크린이 꺼진 상황.
그동안 양군보 감독은 감격에 겨워 태주가 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이선우는 여전히 멋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고.
고성열은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도준이 태주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형, 설마 우리 밤새도록 손뼉 쳐야 해요?”
다소 겁먹은 아이의 표정에 태주가 씩 웃었다.
“칸에서는 사람들이 영화가 좋은 만큼 손뼉을 친대. 밤새도록 치면 우리한테 좋은 일이지!”
태주의 장난에 도준의 얼굴이 걱정스러움과 기쁨이 묘하게 뒤섞인 순간.
“아, 그럼 손이 아파도 계속 쳐야겠어요.”
핸드폰을 그들에게 들이댄 사람들은 여러 좋은 장면을 건졌다.
예를 들면 태주가 씩 웃으며 도준을 껴안는 그런 모습을.
* * *
얼마 후.
애프터 파티가 열린 회장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양 감독도, 영화 제작사 현필름 직원들도 다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태주 또한 이곳에서 만나리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마주했다.
“앤디!”
“축하해요, 태주 씨.”
축하를 건넨 앤디가 저쪽에 있던 양군보 감독을 쳐다보았다.
“당신의 감독님인가요?”
“네, ‘탈출’을 연출하신 양군보 감독님이세요.”
그의 말에 앤디는 아쉽다는, 그리고 부럽다는 기색을 동시에 내보였다.
“정말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도, 저런 멋진 영화를 연출한 저 감독의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감독님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분이세요. 다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죠.”
“그럼, 우리의 때는 아카데미인가요?”
불쑥 들어온 앤디의 말에 태주가 응수했다.
“감독님이 우리 영화에 그만큼 자신이 있으시다면, 그렇겠죠.”
“흠흠.”
자신도 모르게 들킨 본심에 앤디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건투를 빌어요. 기자회견이 내일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태주에게 앤디가 덧붙였다.
“원래 관객들보다 기자들의 펜이 더욱 날카롭다는 말이 있잖아요. 부디 그들의 시험을 잘 통과하기를 바라요. 그리고…….”
앤디가 저쪽에 한데 모여 있던 사람들을 힐끗했다.
“저 노땅들의 시험도.”
그의 시선 끝에는 심사위원장 폴 벨포르. 그리고 피셔 감독이 있었다.
* * *
다음날, 오후 12시.
영화 ‘탈출’이 전 세계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가운데.
그때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수많은 기자를 상대로 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팔레 데 페스티발의 프레스 컨퍼런스 룸 앞에 마련된 포토콜 자리.
많은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영화 ‘탈출’의 주역들을 기다리는 이때.
지난 며칠간 칸 영화제를 취재하던 우성림과 황유나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번 영화제는 정말 재밌는 일들이 많네요.”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영화 ‘탈출’의 점수를 공개했는데, 5점 만점에 3.1을 기록했어. 여태껏 칸에 진출했던 장르 영화로서는 최고 점수라더라. 그보다 더 줄 수도 있었는데, 좀 짜게 받은 거 같아서 그건 좀 아쉽지만.”
“심사위원 중에 장르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맞아. 특히 심사위원장이 장르 영화를 안 좋아하는 편이라고 하던데?”
“안 그래도 제가 다른 기자들과 이야기해 봤는데요.”
외국어에 능통한 황유나는 그동안 다른 기자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들을 내뱉었다.
“40여 년이라는 커리어 동안 장르 영화에 출연한 적이 거의 없대요. 원래 연극배우로 시작해서 그런지, 정극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나 봐요”
“괜찮아, 괜찮아. 심사위원장의 편향적인 시선이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는 없을 거야.”
그때, 저 멀리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어머, 한태주 들어 온다!”
하얀 양복을 입고 파란 스카프로 포인트를 준 태주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