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언더독의 반란 (5)
그 뒤로 태주와 커플룩으로 맞춘 듯한 이선우가 들어왔다.
그는 연푸른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시선을 잡아끈 건 태주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송도준.
하얀 셔츠에 푸른 바지를 입은 도준은 의젓해 보이면서도 태주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손에 잡힌 아이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알아챈 태주.
고개를 숙여 도준의 귀에 속삭였다.
“도준아. 지금 찍히는 사진, 나중에 태희도 찾아본다? 이왕 찍히는 거, 멋지게 찍히고 싶지 않아?”
“아, 네!”
태주의 일침에 도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도준을 자랑스럽다는 듯 보는 태주에게 이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주야, 너의 다정한 아빠 같은 모습이 보기 좋다만. 나는 네가 쿨한 스타의 모습도 보였으면 좋겠다.”
“이미 쿨한 스타입니다만.”
태주는 이선우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득한 시선이 오고 가는 가운데.
그들은 누가 뭐랄 것 없이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이 귀한 모습을 서둘러 찍기 시작했다.
기자들 속에 섞여 있던 우성림이 재빨리 셔터를 누르자, 옆에 있던 황유나가 속삭였다.
“저, 지금. 기사 제목도 생각났어요. ”
“좋네. 이따가 프레스룸 들어가서 바로 속보로 내보내면 되겠다.”
한태주를 바라보던 우성림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얼마 후.
기자들과 관계자들로 빽빽이 채워진 프레스룸.
그곳에서 영화 ‘탈출’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각각 다른 국적을 지닌 기자들은 앞다투어 질문을 하려고 열심이었다.
그들 중 태주의 눈에는 단연 익숙한 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스타뉴스 우성림, 황유나 기자 외에도 샐럽패치, 인포트리 등등의 기자들이 와 있었다.
“태주 씨는 양군보 감독님과 독립영화를 함께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출연하게 된 계기는 의리 때문인가요?”
인포트리의 기자가 던진 질문에 태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단순히 감독님과의 친분만으로는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부족하죠. 이번 작품은, 시놉시스와 대본을 받은 그때부터 제가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주는 양군보 감독을 슬쩍 바라보았다.
“감독님도 그때 생각나지 않으세요? 제가 이 작품,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매달렸었잖아요.”
“태주 씨의 그런 열정에 제가 감동했던 기억이 있네요.”
마이크를 받아들은 양군보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때, 태주 씨가 열정적으로 영화를 밀어붙인 덕분에 이렇게 완성본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태주 씨가 유치한 크라우드 펀딩이 기대 이상으로 아니, 폭발적으로 성공한 덕분에 화제성과 제작비를 동시에 모을 수 있었고요.”
“그때는 그저 시놉시스만 나온 상태, 아니었나요? 이선우 씨가 캐스팅된 단계도 아니었고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만 출연 의사를 밝힌 상태였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의 눈이 왈칵 커졌다.
조연출 경력은 많지만 본인 작품은 독립영화 하나밖에 없는 양군보 감독.
시놉시스만 나온 상황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감행할 정도의 대범함을 보이긴 쉽지 않았을 터다.
물론 영화가 칸에서 최초 공개된 지금, 영화를 본 이들은 ‘탈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시놉만 가지고 영화에 과감히 배팅한 태주의 선구안에 관심을 가졌다.
“시놉시스만 나온 상태에서, 양군보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을 함께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영화의 어떤 매력에 이끌리셨습니까?”
미국 연예지의 질문에 태주가 씩 웃었다.
“재미였습니다. 저는 늘 작품을 고를 때, ‘재미’를 살피는 편입니다. 제가 재미를 느낀 작품에서 연기를 재밌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탈출’이 여러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가장 호평받은 부분은 도저히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점이었다.
뻔한 장면도 있었지만, 감독의 유머 있는 연출 덕에 그 또한 재밌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기자회견.
당연히 이곳저곳에서 날카로운 질문들도 등장했다.
“한태주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글맨에 출연한 백시영 씨와 이번 영화의 흥행을 두고 라이벌 관계라고 하실 수 있는 건가요?”
마치 승리한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인포트리의 기자.
그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애초에 저는 그쪽을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아드리엘 샤하 씨와 한태주 씨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본인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 질문에 태주의 입이 턱, 막혔다.
그동안의 질문은 머릿속에 답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었기에 막힘없이 답했다.
그러나 이 질문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태주 자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때, 옆에서 이선우가 마이크에 대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질문은 심사위원들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상을 타고 싶지 않은 배우는 없습니다. 안 그러냐, 태주야?”
끄덕.
피식 미소 짓는 태주의 모습에 모두 폭소가 터진 순간.
태주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확실한 건, 저희 작품은 정말 최선을 다해 만든 재밌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저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저희 작품으로 사랑받을 자신이.”
* * *
한편, 늦은 밤인데도 불이 켜져 있는 넥스트 엔터.
대표실에 한데 모인 차용석, 김진수, 송유리는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칸 영화제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집중한 눈이 벌게진 차용석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주가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고? 이야, 유경 씨가 알면 아주 기뻐하겠어.”
그리고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양옆에 앉아있던 김진수 팀장, 송유리 대리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태주 씨의 남우주연상도 팍팍 밀어보시죠!”
“맞아요. 솔직히 태주 씨의 연기는 칸에서도 인정받을 만하죠. 시사회 직후 나온 평론가들의 평을 보니까 호평 일색이던데요.”
송유리는 핸드폰에 적어둔 여러 평을 떠올렸다.
-관객을 울리는 부성애, 20대 중반 배우 한태주의 재발견.
-더욱 깊어진 연기로 주연의 품격을 갖추다.
-청춘스타인 줄만 알았는데 스타 그 자체.
-한국의 톱스타 이선우와 함께해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 오히려 몇몇 씬에서는 그를 압도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연기 신성의 탄생.
영화 ‘탈출’이 칸에서 선전하자 모두가 흥분했다.
특히 넥스트 엔터 홍보팀은 태주의 칸 참석으로 인해 매일 같이 야근함에도 눈이 반짝반짝했다.
차용석도 흥분한 건 마찬가지.
그러나 그는 대표로서 중심의 축을 잡고자, 애써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다.
“자, 진정하자고. 너무 오버하고 있어, 우리.”
“하지만 태주 씨가 남우주연상 탈 수도 있다고요. 평론가들 평도…….”
“태주가 아니라 영화에 초점을 맞춰 보자고, 우리.”
냉정하게 머리를 식힌 차용석이 말을 이었다.
“‘탈출’은 지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성이 좋음을 입증한 거야. 솔직히 이제껏 한국 장르 영화 중 칸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 뭐가 있었어?”
“없었죠. 다들 비경쟁부문에 드문드문 초청받기는 했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태주 씨가 만났다는 그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하다가 영화 쪽으로 넘어왔다는 분이잖아요. 특이한 이력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요.”
송유리가 손가락을 튕기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옥장파 감독! 이름도 특이해서 확실히 기억나요. 안 그래요, 팀장님?”
“아, 나도 기억나네요. ‘한국 영화의 밤’ 행사에서 태주 씨가 특별히 관심을 두고 긴 시간 대화했다고 인우 씨가 전해오더라고요.”
그 말에 차용석이 눈을 살짝 찡그렸다.
“옥장파? 애니메이션 감독? 그런 사람한테 태주가 무슨 관심을 가질 일이 있어?”
“그분이 영화 ‘영웅’ 리메이크 작품을 추진하고 있는데, 모황국 감독님도 좋게 봐주신 모양이더라고요. 저희 쪽에도 편지로 추천하신 바 있습니다.”
“아…… 이제야 기억나네.”
차용석은 미간을 한껏 찡그려 기억을 더듬었다.
제작사를 설립한 후 한창 작품들을 고르는 이때.
모황국 감독이 옥장파를 추천했었다.
그때는 ‘영웅’ 리메이크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흘려들었는데.
태주가 칸에서 옥장파 감독과 만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신이 확 깼다.
“옥장파 감독 말이야. 그 양반 이제껏 한 번도 자기 단독 작품을 연출한 적 없다면서? 양군보 감독은 적어도 독립영화 연출이라도 해 봤는데, 옥 감독은 후배들 영화만 근근이 도와줬다며.”
“그래도 모황국 감독님이 특별히 추천한 감독이에요. 애니메이션, 실사영화의 장점만 뽑아서 작품을 만들 능력이 있는 좋은 감독이라고요.”
“그래봤자 신인 아니야?”
“대표님. 모황국 감독님이 아무 신인이나 추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수야, 우리 지금 절실하게 결정해야 해. 모황국 감독 추천이라고 해서 예스, 이렇게 결정할 때가 아니라고.”
차용석은 창백한 얼굴을 쓸어올렸다.
대표직에 오른 후로 1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은 차용석의 얼굴.
한유경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얼굴에 ‘리더의 부담감’이 한결 더해졌다.
“우리 제작사가 제작하는 첫 영화야. 감독도 작품도 정말 잘 될 것 같은, 타율이 높은 작품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그런데 태주 씨가 관심을 가지는 영화라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태주 씨가 여태껏 한 작품들은 다 잘 됐잖아요.”
“맞습니다. 일각에서는 태주 씨를 미다스의 손이라고 하던데……. 한번 믿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용석은 주먹을 꼭 쥐었다.
직원들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제껏 태주의 선택은 늘 옳았으니까.
심지어 드림액터스를 퇴사하고 신생 기획사로 그의 손을 잡고 이끈 것도 바로 태주였다.
그동안의 신뢰와 세월을 생각한 차용석의 표정이 점점 풀어졌다.
“일단 태주가 한국에 들어오면 그때 의논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가 조심스럽게 물은 한 마디.
“그런데 폐막식은…… 참석한대?”
폐막식의 참석 여부를 묻는 건, 수상 가능성이 있냐고 에둘러 표현한 것.
그 말에 송유리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칸에 파견된 여러 기자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알아낸 특급 정보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 * *
“폐막식은 당연히 참석합니다.”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해외 언론지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태주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3일 전인가, 진행부 쪽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저희 영화 관련자들 모두 폐막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요.”
태주가 ‘꼭’에 악센트를 준 것을 눈치챈 기자들은 눈을 왈칵 떴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