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언더독의 반란 (6)
그렇다. 폐막식이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
바다가 보이는 한 노천카페에서 태주는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느라 바빴다.
영화 ‘탈출’이 칸에서 최초 공개된 이후.
한국 일간지는 물론, 해외 매체의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데스 게임’으로 월드 스타가 된 한태주가 영화 ‘탈출’에서도 가슴 울리는 연기를 선보이자 그들은 확신한 것이다.
칸에서 한태주가 분명 일을 내리라고.
하여 해외 언론과 한창 인터뷰를 하는 지금.
태주의 곁에는 양군보와 앤디 피셔가 함께했다.
양군보는 ‘탈출’을 통해 감독상 후보로 주목받는 신예.
앤디 피셔는 ‘나의 미래’로 할리우드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신인 감독이자, ‘이글맨’으로 전세계에서 주목받은 거장 피셔 감독의 친아들이다.
일각에서 올해 말은 피셔 가문의 피 튀기는 전쟁이 될 거로 전망했다.
또한, 한편에서는 한태주의 성공기가 될 것이라는 추측도 팽배했다.
칸에서 최초로 공개한 영화 ‘탈출’은 이미 좋은 평을 받아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직 공개 전인 ‘나의 미래’도 할리우드에서 제일 기대되는 작품이라며 기대감이 솔솔 피어올랐으니까.
칸에서 끝을 모르고 오른 태주의 주가는 할리우드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켰는데, 그 일례로 오늘 태주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는 뉴욕 타임즈의 문화부 기자, 진 캘거리였다.
“이제 칸 일정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요. 이제 모두가 주목하는 건 수상 후보들입니다. 특히 태주 씨의 유력한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이 너무나도 쟁쟁한데요.”
진 캘거리가 태주를 보고 능글맞은 눈을 반짝였다.
“황금종려상은 ‘블랙 피플’과 ‘탈출’ 중 하나가 받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고요. 남우주연상은 ‘블랙 피플’의 주연, 아드리엘 샤하와 태주 씨 중 한 명으로 좁혀지는 추세입니다.”
“흠흠.”
태주는 무표정인데 정작 옆에 있던 양군보가 뿌듯하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 그에게 진이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졌다.
“피셔 감독의 ‘이글맨’은 비경쟁 부문임에도 수상 가능성이 제일 낮아 보이는데요. 여태껏 칸의 총아로 불리며 한 번도 수상하지 않은 적이 없던 피셔 감독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앤디 씨?”
그녀의 의도적인 질문에 앤디는 정면으로 응수했다.
“글쎄요. 수상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더욱이 그 영화는 제 작품도 제 배우가 출연한 작품도 아닙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저의 배우 한태주와 그가 출연한 작품 ‘탈출’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앤디 씨는 태주 씨와 ‘나의 미래’를 함께한 바 있는데요, 하반기 개봉이라 들었습니다. 좋은 결과를 예측하시나요?”
“물론이죠. 영화 ‘탈출’에서 좋은 결과를 낼 테니, 저희 영화도 그 기운을 받아 좋은 결과를 낼 겁니다.”
“오, 그럼 앤디 씨는 태주 씨가 폐막식에 초청받은 이 시점에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앤디는 태주를 보며 씩 웃었다.
“보수적인 칸도 지금 시류가 배우 한태주에게 흘러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 * *
그날 저녁.
숨 가쁜 인터뷰 일정을 마친 태주는 한 술집에 두 기자와 함께하고 있다.
그들은 스타뉴스의 우성림과 황유나 콤비.
폐막식 전, 태주를 마지막으로 인터뷰하기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황유나는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태주를 보았다.
“태주 선배, 아무리 떴다고 해도 너무 뜬 거 아니에요? 해외 매체에서 이렇게 많이 인터뷰가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유나야, 이제 너의 태주 선배는 너만의 선배가 아니라는 걸 잊었니? 태주 씨는 한국의 아니,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스타라고. 솔직히 난 우리하고 이렇게 저녁 먹으면서 인터뷰 진행해주는 것도 감사하구나.”
“선배님의 이런 느긋한 모습, 어색하네요. 어젯밤에 태주 선배가 해외 언론하고는 인터뷰 잘만 하면서 우리는 이제 논외인가, 하고 전전긍긍하시던 것 아니었어요?”
“유나야!”
황유나와 우성림의 투덕거림에 태주는 씩 웃으며 그들을 다독였다.
“제게는 오랜 인연이 있는 스타뉴스 기자분들이 제일 소중해요. 특히나 홍은지 기자님과 함께 뵈었던 우성림 기자님, 인턴으로 들어온 유나는 제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칸의 마지막 날을 여러분과 함께 보내고 있는 거예요.”
태주의 말에 감동한 듯 두 기자는 얼굴을 붉혔다.
이윽고 음식과 술이 나오고 술자리에 취한 이때.
“그런데 도준이는 어디 있어요? 맨날 태주 씨만 졸졸 쫓아다니던데.”
“오늘은 이선우 선배님이 데리고 가셨어요. 지금 영화 팀, 회식하고 있거든요. 현필름 신예지 대표님도 오셨죠. 저도 이따가 2차는 참석하려고요. 후후.”
“우와. 다들 사이 엄청 좋네요! 이따가 저도 2차 같이 참석……”
“선배님. 저희 작성해야 할 기사만 몇 개가 밀렸거든요? 오늘 자정 안에 홍은지 선배님한테 보내드리기로 했잖아요. 네?”
“아, 맞다……. 일해야지.”
더없이 상냥한 표정으로 우성림을 협박하는 황유나의 모습에 태주는 큭큭거렸다.
“유나 너, 동아리에서 선배들 닦달하던 모습하고 똑같구나.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변한 게 없는 건 선배죠.”
황유나는 태주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분명 닿을 수 없는 톱스타가 된 게 분명함에도, 누구보다 열심이고 성실한 한태주 선배가 어디 안 갔으니까요.”
* * *
동시각, 현필름.
회의실에 한데 모여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각자의 앞에 놓인 컴퓨터의 자료들을 김 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다.
“영화 ‘탈출’ 개봉날짜가 잡혔습니다. 5월 31일, 영화관은 XGV 확정되었습니다.”
“좋아요, 좋아.”
김 부장은 만족스러운 듯 손을 비볐다.
“개봉날짜를 잘 잡았네요. 이런 좀비 영화는 추운 날보다는 이렇게 점점 더워지는 날에 보는 게 제맛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대표님, 폐막식까지 보시고 오시는 거죠?”
궁금한 듯 묻는 직원의 질문에 김 부장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와, 여기 있는 저희 마음도 이렇게 뛰는데 대표님은 어떠실까요? 기쁘시겠죠?”
“아마 긴장했을 거예요.”
그동안 동고동락한 신 대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 부장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평소 냉정한 신예지가 영화 ‘탈출’의 폐막식 초청 소식에 얼마나 날뛰었던가.
십수 년을 보아왔지만 처음 본 대표의 그러한 모습에 김 부장은 놀랐지만,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영화 제작사 ‘현필름’을 설립한 이후, 그들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경쟁 부문에서 수상 가능성이 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 * *
“영화 ‘탈출’을 위하여!”
우렁찬 건배사가 호텔 방에 울려 퍼졌다.
신예지 대표까지 합류한 지금, 영화 ‘탈출’ 팀은 천하무적이었다.
칸 현지 분위기상 ‘탈출’의 주요 상에 대한 수상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영화 팀원들은 모두 누가 할 것 없이 긴장감과 흥분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이곳, 태주의 방에 함께 자리한 이선우, 고성열, 박인우도 마찬가지였다.
술을 마셨음에도 유일하게 거뜬한 태주는 그들을 침대에 낑낑거리며 눕혔다.
[하여튼 선우 저 녀석은 옛날부터 긴장되면 이렇게 술을 퍼마시더라. 저렇게 퍼질러져서 우리 태주만 고생시키고 말이야.]‘형, 그래서 진혁 씨가 도와주고 있잖아요.’
장진혁 또한 술에 강한 터라 얼굴이 태주와 마찬가지로 멀쩡했다.
태주와 장진혁이 힘을 합쳐 남자 셋을 침대에 눕힌 이때.
땀에 젖어 헉헉거리던 태주에게 옆에 있던 에바가 제안했다.
[밤에 해변가 걸으면 정말 좋은데, 술도 깰 겸 걷는 건 어때요?]좋은 생각이라 여긴 태주는 장진혁에게 제안했다.
“진혁 씨, 저희 땀이나 식힐 겸 산책 다녀올래요?”
“좋은 것 같습니다. 거기서 제가 사진도 찍어드리겠습니다.”
내심 그도 칸의 해변이 궁금했던 모양이던지, 냉큼 태주를 따라나섰다.
* * *
밤중의 해변가는 낭만 그 자체였다.
파도가 쏴, 모래사장을 쓸었다 물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상황.
장진혁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걷기만 했다.
덕분에 태주는 옆에 있던 에바 벨포르의 수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이와 칸에 몇십 년 동안 왔으면서, 한 번도 이곳을 거닐어 본 적은 없어요.]‘에이, 정말요?’
[일에만 파묻혀 있던 사람이라고 했잖아요.]에바는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팔랑거렸다.
[우리는 아이도 없고, 서로뿐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폴은 항상 연기에 전부를 걸었죠. 뭐, 배우 대부분이 당연히 그렇겠지만요.]‘그래도 오늘 에바 씨 덕분에 칸에 처음 온 제가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맨날 남편 따라서 이곳에 왔는데, 그것도 모르면 안 되죠.]수줍은 미소를 짓던 노부인에게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순간.
태주는 그녀의 한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장 피에르가 무명 시절이었을 때부터 뒷바라지했다.
열정적인 배우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남편이 여러 영화 스케줄로 바빠지자.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로 결심, 그의 매니저가 되었다.
‘사실은 에바 씨도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네……, 네?]‘제가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도, 개막식 행사에 설 때도, 에바 씨의 부럽다는 시선을 느꼈어요. 남편이 성공적인 배우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을 때, 에바 씨도 자신의 연기로 관객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을 애써 숨겨왔을 거 같아요.’
정곡을 찌른 태주의 말에 온화한 노부인의 얼굴이 혼란으로 가득 찬 순간.
옆에서 온몸을 비틀던 장진혁이 새파래진 얼굴로 태주에게 다가왔다.
“저 잠깐 화장실 좀…… 큰 겁니다.”
“아!”
“저기에 있는 화장실 좀 쓰고 오겠습니다.”
장진혁은 어지간히 급했던지 태주의 답도 제대로 듣지 않고 쌩하니 뛰어갔다.
그가 뛰어간 곳은 불이 환하게 켜진 한 호텔.
일전에 폴 벨포르를 내려준 곳이었다.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안에 로비에서 기다리자. 바닷바람 때문에 은근히 춥잖아.]이곳에는 폴 벨포르가 묵고 있어 조금 신경 쓰였지만, 태주는 추워진 날씨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호텔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몇몇이 그에게 다가와 도와드릴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태주는 일행이 화장실을 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저쪽에서 피셔 감독과 폴 벨포르가 나란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들키겠다!’
[왜 숨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그냥요.’
태주가 자신도 모르게 소파에 납작 엎드린 그때.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던 그들의 대화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아무래도 다수의 의견은 거스르기 어렵더군. 이번 결과는 모두가 환호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아쉬워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