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48
348화
뿌린 것을 거둘 때 (5)
* * *
“태주가 ‘라디오티비’ 출연하겠다고 했다면서?”
“네. 박 실장한테 들었는데 지금 태주 씨, 예능에 한창 재미가 들린 것 같답니다.”
대표실에서 차용석은 김 부장과 면밀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태주가 토크쇼 ‘라디오티비’에 출연한다고 해서, 그날 나눠야 할 주제와 나누지 말아야 할 주제를 선정하는 중이었다.
“특히 이현제한테는 최대한 태주 질문 안 주는 걸로 하자고. 그 인간, 워낙에 말이 걸어서.”
“이현제는 알려진 독설가니까요.”
차용석과 김 부장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뜯을 여지를 애초에 주지 말자고.”
차용석과 김 부장은 한참을 머리를 맞댔다.
예능은 양날의 검.
화제성을 끌어모으기에 최고였지만, 그렇기에 따라오는 단점도 있다.
그 화제성이 좋은 흐름이냐, 나쁜 흐름이냐는 결국 예능 엠씨들이 잘 포장해 주기 나름.
그런데 라디오티비의 엠씨 중 하나인 이현제는 제법 독설가였다.
그는 유명하다고 봐주지 않고, 무명이라고 업신여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유명인일수록 더욱 세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 태주 내보내도 될까, 정말?”
“류퀴즈와 더불어서 제일 핫한 프로잖습니까.”
“아니, 태주가 예능에서는 온실 속 화초라 그렇지.”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류퀴즈 엠씨들은 좀 온화한 면이 많았잖아. 류인환, 오세인 둘 다 개그계의 신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이현제는……”
“‘개그계의 망나니’라고 불리죠.”
김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벼려진 혀로 칼춤을 추듯 게스트를 난도질한다는 명성이 자자하고요.”
“그러니까. 태주가 뭐, 논란거리나 그런 게 별로 없기는 한데. 그래도 그 인간 혀에 걸리면 뭐라도 나올 것 같아서…….”
“에이, 대표님. 너무 걱정이 많으십니다. 애초에 태주 씨한테는 ‘라디오티비’ 같은 예능도 필요해요. 일전에 나갔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태주 씨가 분위기 띄우려고 했던 말들과 마지막에 했던 그 뭉크 포즈. 예상 밖으로 빵 터져서 한참 회자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태주한테 그런 웃긴 면도 있는 줄은 몰랐어. 진작에 그런 걸 꺼내줬어야 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던 차용석이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애를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운 거 같기도 하네.”
“태주 씨를 믿어 보시죠. 저는 이번 ‘라디오티비’ 출연으로 시청자들이 좀 더 진솔하고 솔직한,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 같은 태주 씨의 매력을 알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오케이.”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디오티비’ 측에 연락해. 태주, 출연한다고.”
* * *
그날 저녁.
식당의 깊숙한 룸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두 사람.
‘라디오티비’의 피디와 메인 엠씨인 이현제였다.
다음 녹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이현제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도 신나서 번뜩였다.
“오. 이번에 임강현, 하강웅하고 한태주가 나온다고? 드디어, 내가 한태주를 요리하는 날이 오는군.”
이현제가 눈을 번뜩였다.
“요즘 한창 핫한 사람들만 나오네. 드디어 일 좀 했구나. 수고했어.”
“흠흠. 그런데 현제 형, 이번에는 좀 조심스럽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내가 왜?”
불도그 같은 볼을 부풀린 이현제가 말했다.
“좋은 재료를 내줬으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요리하도록 내버려 둬.”
“형 혀가 보통 독해요? 특히 한태주는 요즘 폼이 좋단 말이에요. 칸 영화제 신인상도 받은 데다가 이번 ‘탈출’은 천만 갈 것 같은데, 괜히 흠집 내서 천만 안티 만들지 말자고요.”
“톱스타라고 봐주지 않는 게 내 일이야.”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이현제가 말을 이었다.
“특히 한태주에 대해서 말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해외 일정에 뽕 차서 국내 드라마 캐스팅된 거 아직 시작조차 못 한 것도 그렇고. 넥스트 엔터가 온통 한태주 위주로 굴러가는 것도 그렇고. 한태주가 아역배우 출신에다가 연기를 잘해서 묻힌 게 많은데, 걔도 까놓고 보면 찝찝한 게 많다고.”
“아이고, 형. 그런 식으로 보면 안 찝찝한 사람 없어요. 그리고 드라마 ‘굿맨’은 작가진이 대본을 완벽하게 다듬느라 촬영이 지연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이현제가 눈앞에 놓인 육회를 꿀꺽, 집어삼켰다.
한태주라는 톱스타는 이제껏 연기로밖에 만난 적 없는 스타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예능에서 한태주를 상대할 그 날만이 기다려졌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사냥감을 찾은 것 같네. 내가 마음껏 칼춤 춰줄, 그런 상대를.”
* * *
며칠 후.
버스를 대절해 지방으로 무대인사를 가던 태주는 고성열과 나란히 앉아 호두를 까먹고 있다.
그러다 저 앞에서 현필름의 신 대표 전화를 받던 직원이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저희 개봉 6일 차에 400만 돌파했어요!”
그 말에 버스 안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오, 세상에 이런 일이!”
“진짜 우리, 천만 갈 수 있겠는데?”
“지난 2년간 천만 영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잖아.”
한껏 흥분한 고성열이 손을 모아 소리쳤다.
“에이, 기분이다! 오늘 프리허그 하는 관객분들은 다 내가 위로 띄워드린다! 태주, 너도 무슨 공약 걸어라.”
“나?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해 안아드려야지. 진심 어린 눈빛과 함께?”
태주가 느끼한 눈빛을 반짝이는 그때.
박인우가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태주야, 라디오티비 작가님이셔. 이번 주 녹화 때 쓸 정보들 수집하려 전화하셨대.”
“알겠어.”
태주가 핸드폰을 받아들고 조용한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수화기에 대고 통화하는 그의 얼굴은 긴장된 한편, 신이 나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고성열이 박인우에게 물었다.
“쟤는 ‘라디오티비’ 나가는 게 그렇게 좋은가 봐요? 나는 거기 엠씨 때문에 좀 무섭던데.”
“이현제 씨요? 아, 그러고 보니 고성열 씨, ‘라이징스타 특집’에 나갔을 때, 이현제 씨한테 꽤 시달렸었죠?”
“말도 마요.”
고성열은 그때를 생각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 필모에서 망한 작품들을 일일이 열거하지를 않나, 흑역사 연기를 꺼내서 웃기게 풀어내지를 않나. 제가 진짜 얼굴이 두꺼우니까 코믹하게 넘어갔지, 안 그럼 저 거기서 울어버렸을지도 몰라요.”
“성열 씨가 울지 않을 걸 아니까 이현제 씨도 그런 식으로 토크를 전개했겠죠. 어쨌든 고성열 씨는 토크쇼에서 흑역사를 극복하고 연기에 매진해서, 다시 열심히 연기하는 라이징 스타로 마무리됐잖아요.”
“네, 결국 그렇게 되긴 했는데…….”
고성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태주를 힐끗했다.
“아무튼 ‘라디오티비’는 예능 초보가 나가기엔 좀 힘든 곳이에요. 태주는 류퀴즈 같은 곳이나 계속 나가지, 왜 굳이 거길 나간대요? 영화도 요즘에 잘 나가는데.”
“잘 나갈 때 홍보로 더욱 굳혀야죠. 그리고 임강현 씨, 하강웅 씨랑 같이 출연하기로 해서 괜찮을 거예요.”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현제가 아무리 독설가인들, 꼬투리 잡을 게 없는 태주한테 그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면서.
* * *
며칠 후.
DBC 방송국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태주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기실로 향했고.
옆에서 박인우가 그의 어깨를 풀어주며 말한다.
“너무 긴장하지 마. 작가님하고 얘기한 거, 그대로만 나올 거야.”
“아냐. 성열이 형 말로는 ‘라디오티비’ 엠씨들이 워낙 짓궂어서, 즉석 질문도 막 던진다던데. 특히 이현제 씨.”
어젯밤, 유튜브에서 라디오티비 영상들을 훑어본 태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분이 아는 게 정말 많더라고. 출연자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혈액형, 가족관계 뭐 그런 것까지 박사더라.”
“그렇다고 태주 네가 꿀릴 건 없잖아?”
“맞아. 그런데 나도 혹시 몰라서 엠씨들 프로필은 다 외우고 왔어.”
태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이현제 씨가 어떻게 개그맨으로 데뷔했는지. 인터넷 방송 시절이 길었던 것과 그 인기로 지상파 엠씨로 부상한 역사도 다 꿰뚫고 있다고. 그리고…….”
벌떡 일어난 태주는 박인우에게 눈짓했다.
“누구보다 예의를 따지는 사람인 것도 알지. 인사하러 가자, 형.”
“네가 먼저? 알았어.”
박인우를 데리고 엠씨 대기실로 향한 태주.
똑똑, 두드리고 들어간 방 안에는 소파에 누워있는 퉁퉁한 남자가 있었다.
코까지 골아가며 곤히 자는 이현제를 보던 박인우가 흐흠, 헛기침했다.
그런데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주무시는 건가? 깨울까?”
“흐음, 글쎄…….”
태주가 이현제의 곤히 자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 양반, 진짜 자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무슈. 자는 척 연기하는 걸 수도 있어요.]주변 귀신들도 갑론을박이 심한 가운데.
이현제를 깨우려는 듯한 박인우를 말린 건 태주였다.
“주무시게 둬. 대신, 인사는 하고 갈래.”
태주는 재빨리 이현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현제 씨. 한태주입니다. 지금 주무셔서 이렇게밖에 인사를 못 드리는데요. 제가 오늘 ‘라디오티비’ 출연이 처음이라 서투른 모습을 보여도 양해 부탁드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야, 무슨 자는 사람을 앞에 두고…….”
“가자, 형.”
태주가 박인우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방 안에 고요함이 찾아온 지금.
소파에서 자고 있던 이현제가 눈을 와락, 떴다.
곤히 자던 잠이 한태주 때문에 깨버렸다.
“골 때리는 녀석이네. 자는 사람 앞에 두고 인사하는 건 뭐야?”
그러나 한태주를 생각하는 이현제의 시선은 한껏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 * *
‘라디오티비’ 촬영장에 온 태주는 스태프의 도움으로 마이크를 찼다.
그때 옆에서 불쑥, 나타난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으니.
“아이고, 칸의 총아 한태주 배우님!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영광, 영광!”
장난스러운 미소의 임강현과 하강웅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날 줄이야.‘
“청춘 캠프 한 이후로 처음이죠?”
“진작 만났어야 했는데, 너무 오랜만이다. 다들 왜 이렇게 바빴냐?”
다그치는 듯한 태주의 말에 임강현과 하강웅은 억울한 듯 한목소리를 냈다.
“형이 제일 바빴잖아요!”
“너 때문이잖아, 이 슈퍼스타야!”
태주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친구, 후배와 투덕거리는 이 순간마저도 너무 즐거워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얼마 후.
촬영장에 자리한 세 명의 스타들, 그리고 세 명의 엠씨.
DBC 예능, ‘라디오티비’ 녹화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청춘스타, 아니 탑스타?’ 특집으로 한태주, 임강현, 하강웅 씨가 출연해 주셨습니다.”
여성 엠씨 김연주의 진행으로 포문을 연 녹화는 매끄럽게 흘러갔다.
“이 세 분은 특별한 관계로 묶여있는데요. A사의 예능에 세 분이 출연하셔서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한 적 있습니다.”
“저희가 시청률 메이커입니다.”
하강웅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오늘 라디오티비 시청률도 잘 나올 거예요. 하하!”
“한태주 씨가 나왔는데 오죽하겠어요.”
메인 엠씨인 독설가, 이현제가 태주를 향해 매의 눈을 번뜩였다.
“저희 예능에 안 나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워낙에 톱스타시기도 하고, 저희 드라마를 많이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어서요. 폐사에 안 좋은 감정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했죠.”
[아이고, 독설가 납셨네. 무슨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이중협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현제의 주변을 맴도는 그때.
“그럴 리가 있나요.”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입니다.”
“타이밍이요?”
“저는 모든 게 다 적절한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오늘 라디오티비에 나오게 된 것도 때가 맞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오, 말씀을 돌려서 잘하시네요.”
자신의 유도 신문에 쉽게 넘어오지 않는 태주에게 이현제가 혀를 휘두르는 그때.
옆에 있던 임강현은 하강웅과 의미심장한 눈을 마주쳤다.
“태주한테 기대하는 대답을 듣긴 힘들 거예요. 이 녀석, 워낙에 여우 같아서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거든요.”
“저희가 그런 것 전문입니다.”
이현제가 태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번뜩였다.
“대중이 태주 씨한테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제일 가려운 부분들만 긁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네,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태주가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역배우 때부터 활동해서 그런지, 웬만한 것들은 대중한테 다 공개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들도 많잖아요.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이현제는 흥미로운 눈을 반짝였다.
“얼마 전에 로버트 피셔 감독이 칸 영화제 신인상이 태주 씨한테 간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인터뷰했다는데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