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화양연화 (1)
* * *
2000년대 중반, 칸 영화제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
각국에서 온 영화인들로 붐빈 파티장의 중앙에는 폴 벨포르 부부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 배우인 폴과 그의 아름다운 부인 에바는 세간의 관심이었다.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어, 폴! 부와 명예. 그리고 이렇게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부인까지 있으니 말일세!”
“부인께서도 정말 좋으시겠어요. 이런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잘난 남편을 두셨으니.”
남편에게 향하는 칭찬에 에바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다.
폴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제껏 그녀가 남편을 내조하느라 어떤 고생을 했는지.
오직 겉으로 보이는 건 화려한 트로피와 화려한 드레스뿐이었다.
한편, 모두의 중심에 있는 에바와 달리 구석에서 홀로 와인을 홀짝이는 이도 있었으니.
어색한 듯 주변을 힐끗거리는 박용찬 감독이었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단편영화로 이곳에 온 그는, 다른 유명한 영화인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 덕분에 간간이 들려오는 프랑스어를 알아들은 박용찬의 귀가 쫑긋거리는 이때.
그는 저 멀리서 여러 귀빈과 인사하는 우아한 귀부인을 발견했다.
“에바?”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박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과거에는 배우 지망생과 감독 지망생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배우 부인과 감독으로 한 공간에 있게 된 이때.
박용찬은 조금 떨어졌으나 대화는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에바와 지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도 한때는 배우 지망생이었다면서요. 남편의 배우로서의 출세가 질투 나지 않으세요?”
그 말에 박용찬이 움찔했다.
분명 자신이 기억하는 에바는 너무나도 열정적인 배우 지망생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혀 질투 나지 않아요. 저는 남편을 내조하는 지금의 삶에 너무나도 만족하거든요.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연기할 생각은 없고요?”
“어머,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폴이 한창 활동하고 있는데, 저라도 가정을 지켜야죠.”
그 말에 박용찬은 일말의 미련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폴의 부인인 자신의 역할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를 뜬 이때.
에바는 그리움에 젖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연기는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어요. 예전에 어떤 감독님하고 약속한 게 있거든요,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해요.”
박용찬의 시놉을 생각하던 에바의 얼굴이 꿈에 부푼 순간이었다.
그러나 때는 지나갔고, 시기를 놓친 두 남녀는 서로를 아스라이 지나칠 뿐이었다.
* * *
한편, 원스타 엔터테인먼트.
씩씩거리며 회사로 돌아온 박준택은 전전긍긍하며 그를 맞이하는 부사장을 마주쳤다.
“다녀오셨습니까? 어떻게 됐나요, 미팅은…….”
“하, 미치겠다. 그쪽에서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나왔어!”
“예? 하지만 1년 동안 의식이 없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이! 대역을 데리고 나왔는가, 하고 봤더니 그것도 아니야! 진짜야!”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부사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박준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보니까 깨어난 지 좀 된 것 같더라고. 근데 문제는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의료진들을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나한테 전달이 안 됐다는 거야.”
“아무튼 그래서요. 감독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태주 씨와 차용석 씨도 있었던 자리였잖아요.”
“미친 소리를 지껄이던데? 아들인 내가 아니라 옥장파 감독한테 ‘영웅’ 리메이크 권리를 넘긴다고, 나는 상관도 말라는 거야.”
그 말에 부사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그러니까 이 건은 손 떼자니까요.”
“뭔 소리야, 이렇게 쉽게 물러날 거면 시작하지도 않았어.”
씩씩거리던 박준택은 불현듯이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오늘까지 폴라리스 애들 재계약 답변 듣기로 한 건 어떻게 됐어? 다들 고개 숙였지?”
“아, 그게…….”
“뭐야, 아니야?”
부사장이 눈치를 보며 답했다.
“지호랑 강웅이가 폴라리스 그룹 전원이 아니라면 계약을 안 한다고 강경하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재계약 성사는 아직입니다.”
“여전히 그룹이 전체로 가야 한다는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얼굴을 잔뜩 찡그린 그의 귀에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지호입니다.”
“들어와!”
밤늦게 찾아온 윤지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창백했다.
큰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한 그의 얼굴에 박 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동안 오래 버티더니, 웬일이냐?”
“대표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애들 챙기는 자비로운 행색 하느라 지겨웠던 거지? 너도 이제 깨달을 때도 됐잖냐, 자기 자신 하나 챙기기도 힘든 세상이 이 연예계야.”
“네, 대표님의 말씀이 맞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겁먹은 듯, 아무 표정도 없는 윤지호의 얼굴은 박준택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폴라리스로 데뷔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눈에는 연습생 윤지호만 보일 뿐이었다.
가계를 책임지는, 독기를 잔뜩 품은 소년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가진 것 하나 없이,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를 쓰던 그 모습이.
“내 말이 맞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윤지호가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이자, 박 대표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아니, 내가 말할게. 너, 이제라도 재계약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잖아.”
깜빡.
윤지호의 날카로운 눈매가 부정하듯 파르르 떨렸지만, 자신의 자비로운 모습에 도취한 박 대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네가 남들 눈에 안 띄는 이런 시간에 찾아온 것도 이해된다. 그동안 그룹으로 재계약한다고 뻐팅기다가 이렇게 찾아온 게 쪽팔렸겠지. 그래, 내가 기회를 주마. 불쌍한 중생 하나 구제한다 치지 뭐.”
그러자 윤지호가 어이없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 저희가 그룹 전원 재계약으로 몇 번이고 제의를 드렸는데, 왜 계속해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그건 또 왜 물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박 대표가 눈을 찡그렸지만, 윤지호는 강경했다.
“오늘 대표님께 마지막으로 여쭤보려 했습니다. 저희, 그룹으로 재계약 가능할지요.”
“뭔 개소리야? 너 아직도 그깟 애들한테 동정심 갖는 거냐? 너라도 살려면 나한테 기어야 한다는 거 몰라?”
전혀 변함이 없는 대표의 말.
내심 기대했던 윤지호는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
“저는 생각이 변함없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윤지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을 나갔다.
그러자 박 대표가 황망한 듯 부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얘네들, 어디 비빌 구석이라도 있어서 이렇게 세게 나오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폴라리스 같은 8년 차 보이그룹은 재계약해봤자 이해타산이 맞지 않죠. 신선한 맛도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얘들이 다른 회사랑 해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 그렇지?”
부사장의 위로 아닌 위로에 박 대표는 침을 삼켰다.
분명 저게 맞을 텐데, 이상하게 찝찝했다.
* * *
몇 시간 후.
깜깜해진 밤,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실에는 8명의 남자가 바글거리며 모였다.
윤지호, 하강웅을 비롯한 폴라리스 멤버들과 태주. 그리고 차용석이었다.
걱정과 기대감이 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이 한데 흐르는 이때.
윤지호가 차용석에게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폴라리스 전원 계약을 원하는 겁니다. 개인으로 하는 계약이 아니라요.”
“알고 있습니다. 태주가 저한테 처음 말할 때도 그룹 계약이라고 설명했는걸요. 저희가 비록 가수 계약은 여러분들이 처음이지만. 서포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프로듀서 팀, AR 팀 등등 여럿을 영입했습니다.”
차용석이 굳건한 시선을 내보였다.
회사를 확장하겠다는 그의 계획에는 한서경 부회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저희는 폴라리스가 그룹으로서도, 멤버 개개인으로서도 능력이 출중하니 앞으로 보여줄 매력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독한 연습생 생활을 견뎠지만, 폴라리스 그룹 생활에서 유독 윤지호와 하강웅만 주목받는 이때.
차용석의 희망적인 발언에 나머지 멤버들은 버려지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희망에 가득 찼다.
윤지호, 하강웅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매력이 있다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길이 보였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그룹의 존속을 기뻐하는 이는 리더 윤지호였다.
핸드폰을 하던 그는 태주에게 시선을 맞췄다.
“보냈다, 태주야.”
파일을 확인한 태주는 곧장 차용석에게 윤지호가 보낸 녹음파일을 공유했다.
커다란 화면에는 이렇게 떠 있었다.
[원스타 박 대표-윤지호 인격모독 발언 녹취록.]“고마워, 형. 형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흘러갈 것 같아.”
태주의 말에 윤지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너한테 고맙지. 난 우리 그룹 유지한다고 말로만 그랬지,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을 거야.”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태주가 핸드폰을 흔들며 씩 웃었다.
“형 덕분에 일타쌍피 하게 생겼으니까.”
* * *
깜깜해진 밤.
스타뉴스 본국에서는 두 명의 기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까 태주 씨가 보내준 녹음파일 잘 정리했어?”
“네. 텍스트로 대화 내용 정리했고, 이미지 형식으로 편집해서 기사에 실으려고요.”
“기사 밑부분에 실제 대화도 싣는 게 좋을 거야. 텍스트로만 실으면 기사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
이들이 야근하면서까지 기사를 작성하는 이유.
한 시간 전, 태주가 건네준 대박 소스를 그들이 단독 기사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이야, 내일 아침이 진짜 기대된다. 사람들이 이 특종들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솔직히 저는 기사 내용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태주 씨가 가는 곳마다 그렇게 소설 같은 일이 생기는 거예요?”
우성림이 혀를 내둘렀다.
“저번에 황보훈 선수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도 그렇고, 이번에 노감독님이 일어나신 것도 그렇고요. 사람들이 이거 보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꾸며낸 거 아니냐며 믿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원래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잖아.”
홍은지는 확신에 찬 시선을 내보였다.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확실한 예시인 거지.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한둘쯤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깨를 으쓱한 홍은지는 모니터 속, 업로드를 앞둔 기사를 바라보았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