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화양연화 (7)
* * *
강원도와 가까운 경기도 인근의 야산.
관광객은커녕 현지인도 거의 드나들지 않는 이곳에, 폴리스 라인이 쳐졌다.
경찰은 경계심과 호기심으로 주변을 기웃거리는 마을 사람들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 밟지 마세요. 조사 중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인데 제대로 말도 안 해줘요?”
고요 속 혼란이 거듭되는 이때.
수사관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강승민이 경찰에게 곧장 향했다.
“안녕하세요. 강승민 검사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현장을 살피던 경찰은 훤칠한 외모의 강승민을 훑어보았다.
연예인 뺨치는 잘생긴 외모에 감탄하기도 전.
강승민은 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을 주민의 신고로 시체를 발견했다고요?”
“예. 야산에서 뼈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경찰이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멧돼지 같은 동물 사체인 줄 알았죠. 그런데 조사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이었습니다.”
“거참.”
주변을 살피던 강승민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했다.
근처에 군부대가 있는 야산의 외딴곳에서 뼈만 남은 시체가 발견됐다.
특이사항으로는 몸통은 있었으나, 두개골과 왼손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으로 강승민은 이중협의 시체임을 거의 확신했다.
한숨을 쉬며 현장을 바라보던 강승민은 옆에 있던 경찰에게 속삭였다.
“혹시 사체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아마, 뼈만 남은 상태라서 어려울 겁니다. 특히 마약 성분은 신체의 혈액이나 단백질 성분을 통해 검출되는데, 아시다시피 피는커녕 머리카락이나 체모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끄덕.
심각한 표정의 강승민은 수사관을 데리고 저 멀리 떨어졌다.
수사관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우창균 회장의 별장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이중협 씨의 왼손이 발견되었던 그곳이죠.”
“역시.”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그가 말을 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우창균의 별장, 조사 들어가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철저히 준비해 영장 때리겠습니다.”
“하……. 걱정되네요. 이 일이 연예계를 흉흉하게 할까 봐.”
“검사님이 그걸 왜 걱정하십니까?”
의문을 가지던 정 수사관은 그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한태주 씨가 사촌 동생이라고 하셨죠? 그럼 뭐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한태주 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도 아니고. 조사받을 것도 아닌데 뭐 그리 걱정하십니까.”
“그렇죠, 연루된 것도 아니고, 조사받을 것도 아니죠.”
그런데 이 사건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있죠.
이중협의 열성 팬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니, 어쩌면 열성 팬보다 더할지도 모르겠지만.
* * *
번쩍.
이중협이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가 펄럭, 거리는 순간.
[이게 뭐지?]이상한 느낌이 든 이중협은 서둘러 몸을 살폈다.
왼손만 혈색이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제는 머리를 제외한 모든 곳이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그는 옆에 있던 태주를 힐끔거렸다.
그는 정두홍 액션 아카데미에서 보내준 액션 합 영상을 핸드폰으로 몇 번이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 공기 중에 펀치를 날려 보기도 하고.
대본을 확인하며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잡힌 액션 촬영에 들뜬 게 확실했다.
이중협은 슬그머니, 트렌치코트 자락을 꽁꽁 여몄다.
나중에 태주가 뭐라고 하는 건 그때의 일이다.
배우가 현재 배역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그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온재훈이 눈이 튀어나올 듯 중얼거렸다.
[대장 귀신님, 혈색…… 읍!] [입 좀 닫아라.]‘왜 그래요, 둘이 싸워요?’
투덕거리는 온재훈과 이중협을 본 태주가 물었다.
그러자 이중협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씩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싱겁기는.’
피식 웃던 태주가 다시 대본에 집중하자, 이중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 몸이 하나둘씩 생기를 찾는 건 분명, 흩어져 있던 시체를 찾았다는 뜻일 터다.
분명 생전에 험한 일을 당한 것은 분명한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던 그때, 기적적으로 스쳐 지나간 기억의 파편 하나.
[……수정이?]그가 환하게 염수정과 웃으며, 어느 별장으로 향하는 장면이었다.
* * *
액션 아카데미에 태주가 도착하니, 그곳에는 윤수안이 이미 와있었다.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는 땀에 젖은 채였고.
“먼저 와서 연습하고 있었어요. 태주 씨랑 합 맞춰야 하는데, 질 수 없으니까.”
그녀가 승부욕 넘치는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태주도 씩 웃으며 주먹을 흔들었다.
“저는 차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서 왔어요. 저도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오늘 연습할 씬은 밤에 활동하는 살인마, 신윤재가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낮에는 경찰, 밤에는 살인마를 죽이는 살인자로 활동하는 신윤재.
그러나 연쇄살인마를 쫓던 그는 실수로 경찰에게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검은 후드를 쓴 그는 경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치지만. 그 과정에서 그를 쫓아 온 그의 동료, 이수안과 대치하게 된다.
“자, 자. 오늘 맞춰볼 액션은 맨몸 액션이라, 철저한 리허설에 기반해 한 치라도 어긋나는 게 없도록 연습할 거예요. 다들 정신 바짝 차려요.”
액션 감독의 지시하에 태주는 자리를 잡고 리허설에 들어갔다.
상대는 윤수안과 경찰들.
실수가 나면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기에, 태주는 심혈을 기울여 약속한 합을 완벽하게 지켰다.
“다시! 태주 씨, 상대가 수안 씨라고 너무 봐주는 것 같다. 좀 팍팍 해도 되겠는데?”
“그래요, 태주 씨.”
윤수안이 태주 코앞까지 잽, 주먹을 날리며 도발했다.
“이렇게 주먹이 솜사탕 같아서야, 주 감독님이 NG만 내실걸요.”
그 말에 태주는 꼭 주먹을 쥐었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신윤재는 상대가 누구든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을 텐데. 그럼, 다시 가보겠습니다.”
다시 시작된 연습.
맞은편에서 달려드는 윤수안의 주먹이 코앞으로 날아오는 순간.
휘릭.
허리를 숙인 다음, 태주는 옆에 있던 배우에게 돌진해 그대로 뒤로 넘겼다.
팍!
옆에서 윤수안이 재차 달려들었지만, 태주는 순식간에 피했다.
“테이저건으로 제압해!”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태주는 그대로 다른 배우의 손을 뒤로 묶어 앞으로 끌고 왔다.
그때 뒤에서 태주에게 달려드는 윤수안.
그런데 등에 눈이라도 달린 것일까, 태주는 그녀를 가뿐히 피했다.
쿵!
순식간에 쌓여버린 배우들의 산.
태주는 여유롭게 현장을 떠났다.
손수건을 남긴 채로.
놀랍도록 달라진 모습에 감독도, 스태프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이거 카메라로 담으면 엄청나게 멋지겠는데?”
“역시 태주 씨는 고삐를 풀어야 해. 그래야 무아지경으로 저런 멋진 연기가 나온다니까.”
주변에서 짝짝거리는 박수갈채가 터지는 순간.
이중협 옆에서 구경하던 온재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주 씨도 저렇게 잘하는데, 왜 나는 톱스타가 못 됐지? 나도 저렇게 몰입할 자신 있는데.]그 말에 이중협의 귀가 쫑긋거렸다.
[뭐라고 했냐, 너?]그의 추궁에 온재훈은 팟, 평소의 도도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나도 저런 연기 따위 할 수 있다고요. 밥 먹듯 한 게 저런 액션이었으니까요.] [그러냐?]이중협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온재훈은 동경과 질투의 눈빛으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나는……. 저렇게 못 했지?]* * *
액션 아카데미에서 계속된 연습은 저녁에서야 끝났다.
회사로 돌아온 태주는 대본을 좀 더 연습하려고 연습실로 들어가려다가 복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윤지호를 만났다.
“형!”
“태주야!”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인사한 둘.
“눈은 좀 괜찮아?”
“괜찮아. 오늘 드라마 액션 연습까지 하고 왔어. 나 이소룡 뺨쳤다니까?”
태주가 이리저리 손동작해 보이자, 윤지호가 피식 웃으며 그를 휴게실로 이끌었다.
“우리 커피나 한잔하자. 이렇게 만난 것도 오랜만인데.”
“그래.”
휴게실에 들어선 태주와 윤지호.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윤지호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강웅이가 그러던데. 너, 재훈이에 관해서 물어봤다면서?”
“어, 맞아.”
“혹시 부산에 가서 재훈이 어머니 만난 거야?”
태주가 쉬이 답을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윤지호는 회상에 젖어 말을 이었다.
“재훈이 어머님이 횟집 하시거든. 규모가 작지만 진짜 맛있어. 하, 나도 태주 네가 부산 갔다고 하니까 재훈이 생각나더라.”
윤지호가 씁쓸한 듯 커피를 마셨다.
“재훈이는 원스타 소속 배우 지망생이었거든.”
“강웅이한테 들었어. 그런데…….”
태주가 저 멀리서 이중협과 투덕거리는 온재훈을 힐끔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재훈 씨, 어땠어?”
“어땠냐고? 잘 나갔냐는 뜻이야? 그렇다면, 아니야. 원래는 그 녀석도 아이돌 지망생이었는데, 춤이 안돼서 배우 쪽으로 빠진 거거든. 그런데 거기 가서도 좀…… 그랬어.”
고개를 젓던 윤지호는 안타깝다는 듯 대답했다.
“그 녀석, 매번 오디션 합격 직전까지 가서 탈락했어. 맨날 팀장님한테 얼마나 까이던지, 정말 불쌍할 정도더라.”
생각에 잠긴 윤지호의 시선이 내리깔렸다.
* * *
“야, 몇 번째야. 하여튼 이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연습실에 모인 수명의 배우 연습생들.
오디션 결과를 통보받는 그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온재훈! 너는 도대체 오디션에서 떨어진 게 몇 번째냐?”
팀장에게 유독 핀잔을 듣는 온재훈.
영화 오디션 3차까지 갔다가 떨어진 그는 중죄를 지은 것마냥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죄송? 야, 너 어디 가서 원스타 연습생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 쪽팔리니까.”
온재훈의 푹, 수그러진 고개는 들릴 줄 몰랐다.
안 그래도 상한 자존심이 더욱 없어져, 바닥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평가가 끝나고 나서도 그는 연습실에 혼자 처박혔다.
오디션 준비용으로 받았던 영화 대본을 넘기고, 또 넘겼다.
며칠이고 분석한 대본은 색연필로 온통 난장판이 돼 있었다.
“분명히 잘했는데. 뭐가 잘못됐던 거지?”
거울을 보며 윤지호는 오디션 때 했던 대사를 되풀이했지만, 이내 힘이 빠진 듯 풀썩, 주저앉았다.
“하…… 나는 안될 놈인가.”
그는 폴라리스 데뷔 조에 들어간 성광이나 지호 등등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애초에 그도 가수 지망생으로 입사했었다.
그러나 윗선에서 춤이 염 젬병이라며, 연기는 잘할 것 같다며 노선을 바꾸었다.
그러나 막상 연기도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항상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의 반복이었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횟집을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재훈이, 꼭 스타 될 거야! 우리 재훈이는 해낼 수 있어!
홀어머니의 믿음과 희망을 등에 업고 오직 스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에 올라온 그.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응원하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거짓된 자존감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했다.
“그래, 나는 최고야.”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서서히 일어난 온재훈.
힘이 빠진 얼굴은 어디로 가고, 거만하고 오만한 톱스타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는 최고야. 슈퍼스타라고! 세상 모두가 알아주는!”
거짓된 자존감으로라도 자신을 무장해서, 어떻게든 일어선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거짓으로 세뇌해서라도 현실을 버텨야 했기에.
그래서 스타의 꿈을 이뤄야 했기에.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