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톱스타의 자격 (5)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다들 핸드폰에 빠져 있는 이때.
그들 중 몇몇이 보는 건 바로 연예란의 대문을 장식하는 기사였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ABS ‘마스크 스타’의 추석 특집에 미국판 마스크 스타의 초대 가왕,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출연한다는 소식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박진주 피디는 이번 추석 특집은 가왕전으로 진행할 계획인데, 그중 미스터 버터플라이 VS 태양왕의 구도를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드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한편,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미국판 마스크 스타 시즌 1의 최종 우승자이자 가왕으로 최종전에서 폴라리스의 ‘Utopia’, 즉 K-pop을 불러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그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
그런 그가 태양왕과 가왕전에서 붙는다는 소식에 여러 시청자는 벌써 그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런 와중에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한태주라는 의견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큰 화제를 몰고 있다.
과연 배우 한태주가 태양왕이자 미스터 버터플라이일까?
아직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이상,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즐겁게 말이다.
-스타뉴스, 홍은지 기자-
그리고 이 기사를 읽는 또 다른 이가 있었으니.
“아, 뭐야, 홍 선배님!”
계절학기를 듣는 학생들로 꽉꽉 찬 강의실에 황유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마다 연예란 뉴스를 읽는 게 습관인 그녀.
오늘 올라온 기사에 눈이 빠져라 집중하고 있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니, 선배님께서 확실하지 않아서 안 쓰겠다고 했는데, 여기 이렇게 떡하니 태주 선배 이야기를 써 놨잖아.”
옆의 친구들이 덩달아 황유나가 가리키는 기사를 읽었다.
“아, 이거. 기자님도 커뮤니티 글 보셨나 보네.”
“커뮤니티에서 조회수 1위 글 읽어봐. 거기 진짜 자세하게 써 놨어. 왜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한태주일 수밖에 없는지.”
“발목에 흉터는 진짜 빼박이더라. 부인할 수가 없을걸.”
“그런데 한태주 측은 이거 해명 안 하나? 진짜 궁금한데, 한태주가 미스터 버터플라이인지.”
생각 없이 내뱉은 친구의 말에 황유나가 버럭 했다.
“너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태주 선배가 이런 썰에 왜 일일이 대응해야 해?”
“아니,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태주 선배인지 궁금하잖아. 넌 정체가 궁금하지도 않냐?”
“그건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미국판 마스크 스타 가왕전에서 지면 자연스레 밝혀질 문제잖아.”
살짝 짜증이 난 듯한 황유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 홍 선배님은 왜 이런 기사를 써서는! 괜히 태주 선배한테 전화 몰리게 생겼잖아.”
‘아니, 잠깐만……. 좋은 건가?’
자고로 연예인은 관심이 업이자 밥줄이라고 홍 선배가 늘 강조한 게 문득 생각났다.
황유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홍 선배가 일부러 태주 선배 띄워주려고 이런 기사를?”
* * *
그날 정오, 넥스트 엔터 홍보실.
사무실에 들어찬 직원들은 다들 전화 응대하느라 바빴다.
“스타뉴스에 난 기사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와 한태주 씨의 관계성은 저희가 아니라 미국판 마스크 스타를 방영하는 XTV 측에 문의하셔야 할 내용 아닌가요?”
“그에 관해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바쁜 직원들 사이로 박연수 팀장이 보인다.
“다들 고생하네요.”
박 팀장이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스 커피를 한 잔씩 팀원들 책상에 올려놓았다.
기자들과의 통화가 끝나자, 다들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죽겠네, 다들 왜 이렇게 달려들어?”
“한태주하고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관계가 너무 궁금한 거지. 오늘 스타뉴스에서 그렇게 기사를 터뜨려 놨으니.”
직원이 살짝 분통이 터진 듯 박 팀장에게 하소연했다.
“홍은지 기자, 그렇게 안 봤는데 상도덕이 없네요. 기사를 그런 식으로 써놓으면 어떡합니까?”
“어차피 터질 관심이었어.”
박연수 팀장이 팔짱을 끼었다.
“지금 커뮤니티 중심으로 미스터 버터플라이랑 태양왕이 동일 인물이라는 썰 돌아다니는 건 알지?”
“알죠. 태주 씨 발목 사진까지 찍어서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던데, 지독하더라고요. 목소리가 아니라 신체적 특징으로 들이댈 줄이야.”
“아무튼 태주 씨 더 이상 잡힌 예능 스케줄이나 그런 건 없지?”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당장은 없습니다.”
“더 이상 잡지 마. 지금 출연해 봤자 기자들이랑 방송가만 배 불려줄 뿐이야.”
박 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다음 예능은 ‘마스크 스타’ 추석 특집으로 한다. 그때까지 태주 씨는 잡혀 있는 촬영 스케줄만 열심히 소화하는 걸로 하자고.”
“아, 맞다.”
그러자 마침 생각났다는 듯 옆에서 직원이 말문을 열었다.
“내일인가, 강재하랑 같이 드라마 촬영 스케줄 잡혀 있잖아요. 그거 가지고 기자들이 엄청나게 기사 쓸 것 같은데…….”
“비교하라고 해. 오랜만에 컴백한 강재하가 태주 씨가 주연인 드라마에 특별출연하는 거라 기자들이 물어뜯을 거리가 많겠지. 그런데 그럴수록 오히려 우리한테는 좋아.”
씩 미소 짓는 박 팀장이 의견을 덧붙였다.
“태주 씨가 재하 씨보다 연기를 못할 리 없잖아? 존재감이 묻힐 리도 없고.”
* * *
한편, 아티스타 컴퍼니.
곱슬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강재하가 연습실에서 몇 번이고 대본을 보고 있다.
그런 강재하 옆에는 그의 매니저가 간절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재하야. 굿맨 출연하는 거 말이야. 너…… 진짜 괜찮은 거냐?”
“형, 연습 방해할 거면 나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솔직히 나 네가 회사 허락 없이 주인식 감독 찾아간 것도 그랬는데. 주연도 아니고 특별출연으로 일회성 촬영하는 것도 불만스러워.”
매니저가 못내 못마땅한 듯 강재하를 바라보았다.
“너, 왜 네 멋대로 결정하고 그러냐? 저번에 드라마 하나 그렇게 됐다고 회사는 없는 취급 한다, 이거야?”
“형, 이번이 나한테 터닝 포인트인 걸 왜 몰라.”
휙.
대본을 내려놓은 강재하가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나도 자존심 있는 인간이야, 톱배우로서의 자존심이 누구보다 대단하다고.”
“그럼 다른 좋은 작품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왜 하필이면 특별출연이냐? 그것도 한태주가 주연인 드라마에?”
급기야 강재하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단어까지 등장했다.
“한태주가 주연인 드라마에 네가 특별출연으로 들어가는 거, 쪽팔리지도 않냐?”
“강현이도 특별출연하고 왔잖아. 기자님들이 그러던데, 아주 성공적인 연기 변신이라고. 다음 연기가 더욱 기대된다고. 나도 그런 걸 바라는 거야.”
“그러니까 다른 작품에서도 할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태주 작품이냐고.”
한껏 달아오른 매니저가 강재하의 시선을 잡아챘다.
“너도 알잖아. 한태주, 네 대역 배우로 시작했던 애라는 거.”
“태주의 연기 인생은 아역배우 때부터였어.”
“걔가 성인 배우로 본격적인 커리어 시작한 건 네 대역부터잖아. 그런 한태주는 승승장구해서 주연하는데, 너는 고작 특별출연……”
“형! 진짜 날 생각한다면, 이대로 내버려 둬.”
폭발한 강재하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괜히 머리랑 수염을 길렀을까? 괜히 특별출연에 찬성했을까? 나도 이 역할에 진심이야. 평소 내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낸다면. 앞으로 더 깊은 연기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한다고 한 거야.”
“재하야.”
“저번에 ‘청룡검신’으로 너무 많은 걸 잃었어. 그동안 쌓아왔던 젠틀한 이미지와 안정적으로 이어왔던 연기 커리어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단 말이야. 그걸 덮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강재하는 자존심으로 흔들거리는 멘탈을 애써 잡았다.
“압도적인 연기력. 그러니까 이번 작품에서 꼭 증명해 보일 거야. 태주랑 부딪히는 씬에서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 * *
다음 날.
드라마 ‘굿맨’ 촬영을 하러 태주는 경기도의 한 실내 촬영장에 와 있다.
허름한 골목길을 재현해 놓은 세트장에서 오늘 그는 액션씬을 소화해야 했다.
여러 번 액션 배우들과 합을 맞춰보는 이때.
태주는 철저하게 계획된 동선으로 골목을 뛰어갔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보고 또 맞췄다.
“아이고…… 잠깐 휴식!”
함께 연습을 진행하던 윤수안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녀는 후배 형사 이주희 역할로 신윤재를 쫓는 대열의 맨 앞에서 뛰고, 또 뛰어야 했다.
땀을 닦은 수건은 이미 젖어서 물기를 짤 수 있을 정도였다.
“태주 씨 진짜 강철 체력이네. 어떻게 이렇게나 많이 뛰었는데 숨 한 번 몰아쉬지를 않아?”
“호흡법 덕분이에요. 가늘게 숨을 들이쉬고, 가늘게 숨을 내쉬는 겁니다.”
태주는 일찍이 온재훈에게서 배운 호흡을 모두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게 해녀 호흡법이라고 하더라고요.”
“해녀 호흡법? 뭔가 요상하긴 한데…….”
호- 후-!
그때 숨을 가늘게 들이마신 윤수안이 후, 하고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태주를 보고는 오, 하는 표정을 지은 건 덤이다.
“뭔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주인식 감독의 목소리.
“태주야, 이리 좀 와 볼래?”
혹시 연기 지도를 하려고 부르나, 태주가 서둘러 가자.
주인식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에게 부탁했다.
“너 노래 한 소절만 해 봐. 폴라리스의 ‘Utopia’ 어때?”
꿍꿍이가 가득한 주인식의 얼굴에 태주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 진짜 식상해요. 요즘에 만나는 사람마다 저더러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태주는 빼는 척하면서도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기대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던 주인식 감독.
“너는 나의 Utopia~”
이내 태주의 목에서 나오는 새된 목소리에 실망스러운 얼굴을 했다.
“왜 이래, 태주야. 너 원래 노래 실력 이거 아니잖아. 왜 연기를 하고 그러냐.”
“이게 원래 제 실력인데요?”
“에잉, 청개구리 같은 녀석. 확인시켜주기 싫다, 이거지?”
어깨를 으쓱한 태주는 괜히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재하 형 아직 안 왔어요? 같이 촬영하려면 리허설도 해 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게, 올 때 되긴 했는데…….”
그때, 저 멀리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강재하 씨, 오랜만이에요!”
“어머, 얼핏 보면 못 알아보겠어!”
북적거리는 소리를 따라 태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강재하가 있었다.
평소 말끔하고 단정한, 멋에 관심이 많던 강재하는 어디로 가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길게 어깨까지 기른 너저분한 부랑자의 모습이었지만.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주와 강재하는 누가 뭐랄 것 없이 다가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림자 무사에서 우리 둘이 연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냐.”
“그때와 달리, 이제는 상대 배우로 마주 보고 연기할 수 있어 영광스러워요.”
“영광? 야, 입에 발린 소리 안 해도 돼.”
“진짜예요. 제가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형의 존재감 덕분이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제가 도와 드릴 차례에요.”
태주의 진심 어린 말에 강재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다시 멋지게 연기해 보자고요, 형.”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