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톱스타의 자격 (6)
* * *
“자, 모여봅시다.”
본격적인 촬영을 하기 전.
주인식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의 촬영을 이끌어 갈 한태주, 윤수안. 그리고 강재하는 감독의 말에 집중했다.
“오늘 촬영은 조금만 방심해도 실수가 나올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이니, 다들 집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케이, 리허설 하고 촬영 시작합시다.”
태주는 굳건해진 마음으로 제 자리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그도 유독 기대했던 시간이었다.
쫓고 쫓기는 씬.
경찰로 활동하는 신윤재가 후배인 이주희에 의해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상황을 담아낼 예정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던 신윤재가 그의 하수인인 부랑자를 붙잡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자신이 오히려 살인범으로 몰리게 될 뻔한 급박한 장면이다.
몇 번이고 대본을 확인한 태주는 역시나 대본을 보고 있던 강재하에게 향했다.
“형, 저희 합 좀 맞춰볼까요?”
“그래.”
강재하는 잔뜩 힘이 들어간 얼굴로 대본을 내려놓았다.
어느새 옆에 무술감독까지 와서 그 둘의 합을 지켜보는 상황.
태주와 강재하가 몇 번 주먹을 부딪치다가 강재하가 툭, 하고 바닥에 쓰러지자.
무술감독이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좀 더 자연스럽게 하면 좋을 것 같네요.”
강재하가 무안한 듯 재빨리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긴장했나 봅니다.”
“형, 저랑 하는데 긴장할 게 뭐가 있어요?”
굳어진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태주가 피식 웃자, 강재하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너랑 하니까 긴장되는 거지.”
“최고의 칭찬이네요.”
어깨를 으쓱한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형, 촬영 들어가면 긴장 못 할걸요? 제가 형한테 그럴 시간도 안 줄 거거든요.”
배우로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한 태주의 말.
속뜻을 알아챈 강재하는 당연하게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촬영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떴다.
옆에 있던 이중협이 태주에게 끌끌 혀를 찼다.
[거참, 너무 도발하는 거 아니냐?]온재훈도 너무하다는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태주 씨는 톱스타씩이나 되어서 너무 거만하네요.]‘일부러 그런 거예요. 재하 형은 강현이처럼 두부 멘탈이 아니라서, 좀 자극을 받아야 더 잘하는 스타일이니까요.’
팔짱을 낀 태주의 시선에 마침, 촬영장으로 돌아오는 강재하가 보였다.
한층 독기가 오른 눈이 태주와 마주친 순간.
태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 빛냈다.
더 이상 친한 형과 동생 사이는 없다.
‘굿맨’ 속 부랑자와 그를 쫓는 신윤재만 있을 뿐.
“자, 슛 들어가겠습니다!”
탁.
슬레이트가 쳐짐과 동시에 ‘굿맨’의 세계가 펼쳐졌다.
* * *
어둑한 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타탁, 거리는 발소리만 가득한 골목.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빛을 내는 이곳에서 두 남자가 죽기 살기로 뛰고 있다.
더러운 행색의 부랑자와 그를 쫓고 있는 경찰, 신윤재였다.
“헉…… 헉…….”
방금 살인이 벌어진 현장에서부터 부랑자를 쫓아 외딴 골목까지 흘러들어온 신윤재.
혹시나 이곳을 순찰하는 경찰에게 들킬까, 그는 최대한 은밀하게 부랑자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뒤를 힐끔거리던 부랑자가 힘들었는지 이내 발걸음이 느려졌다.
확!
그때를 놓치지 않고 신윤재가 부랑자의 뒤를 덮쳤다.
“이거 놔! 이거…… 읍읍!”
“조용히 해, 죽고 싶지 않으면.”
부랑자를 단숨에 제압한 신윤재가 고요한 목소리로 그를 협박했다.
커다란 손으로 입이 막힌 부랑자가 겁먹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가쁜 숨을 갈무리한 신윤재가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누가 너한테 살인을 사주했지?”
“읍읍!”
“네가 진범이 아니라는 걸 알아. 내가 살인 현장에 도착했을 때, 너는 마치 연출된 장면 속에 끼워 넣은 배우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었지. 그러니까 말해.”
고개를 숙인 신윤재가 부랑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너, 이성용 따까리지.”
푸흡!
신윤재에 의해 막혔던 부랑자의 입에서 조롱하는 듯한 웃음이 튀어나오더니.
살짝 생긴 틈으로 부랑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쉽게 불 것 같았으면, 애초에 그분을 따르지도 않았어.”
“잘 생각해. 네가 진실만 말하면 너는 그냥 풀어줄 수도 있어.”
“경찰 나리의 허접한 자비 따위 바라지도 않아. 나는 그분을 따를 뿐이야.”
비아냥거리는 부랑자의 태도에 신윤재는 점점 열받았다.
“말해, 너는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잖아! 안 그럼 현장을 지켰던 네가 모든 죗값을 뒤집어쓸 거야.”
“싫은데?”
“빨리 말해. 네가 진범이 아니라고! 넌 그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이성을 잃은 신윤재의 말에 푸흡, 비웃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신윤재의 밑에 깔려 제압당했음에도 부랑자는 한 치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강렬한 믿음으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꼭두각시가 뭐가 나쁘지? 그분께서 날 조종하시는 걸 나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 세상에서 하등 쓸모없던 나를 인정하고 내 능력을 쓸모 있게 써주셨으니까!”
“닥쳐.”
“아무도 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나를 인정해 줬어. 그러니까 끝까지 충성을 다할 거야.”
커헙!
혀를 깨문 부랑자의 입에서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낭패다!
신윤재는 뒤에서 들려오는 이주희와 경찰들의 타탓, 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추욱.
신윤재의 품에서 힘없이 늘어진 부랑자의 무게가 사뭇 무겁게 느껴졌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홀로 움직인 터라 자칫하면 살인자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
경찰 신윤재의 얼굴이 처음으로, 완전한 공포에 점령당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의 얼굴은 사이코패스 신윤재로 바뀌었다.
“하, 한심하긴. 튀면 그만이잖아.”
그는 수 명의 살인범을 처단한 연쇄살인범이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도망갈 준비를 하는 신윤재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 * *
“우와…….”
배우와 스태프들로 가득한 촬영장이었으나 억지로 감탄을 삼키느라 고요했다.
그러나 컷 사인이 떨어지는 즉시 다들 환호할 기세였다.
“강재하 생각보다 진짜 연기 잘한다. 솔직히 아까 리허설 때는 좀 불안한 것 같았는데.”
“화장실 다녀오더니 눈빛이 달라지더라고. 역시 배우야.”
“그런데 한태주 연기도 좋아. 나는 이 씬에서 부랑자 연기가 더 강렬할 줄 알았거든, 더 돋보이고. 그런데 저 표정 변화 봐라.”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하는 순간이었어.”
스태프들은 조금 전 본 한태주의 연기를 회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인마를 쫓던 경찰 신윤재에서, 사이코패스 신윤재로 인격을 바꿔 끼던 그 순간.
그때의 전율에 아직 모두가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한태주랑 강재하 얼굴 클로즈업 샷 좀 잡아줘.”
“원래 여기는 와이드 샷으로 가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너무 가까우면 긴장감이 깨질 것 같다면서요.”
“내가 잘못 생각했어.”
조용한 촬영 속, 주인식 감독은 촬영감독과 한층 집중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는 상황보다 배우들의 표정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니, 지금 한태주랑 강재하가 보여? 내 눈에는 신윤재랑 부랑자밖에 안 보이는데.”
그 말에 부인할 수 없는 듯 촬영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라고 해도 되겠어요.”
그는 화면 속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랑자이지만 강렬한 시선으로 한태주를 도발하는 강재하.
경찰의 신분으로 그를 협박했으나 자신이 쫓기는 신분이 되자, 금세 사이코패스의 인격으로 바뀐 한태주.
“소름 끼치네.”
주 감독은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연기를 하라고 했더니 다큐를 찍는 배우들 때문에 아주 소름이 끼쳐 죽겠어.”
* * *
강재하와의 촬영이 마무리되고, 태주는 윤수안과 촬영을 이어갔다.
살인 현장에서부터 부랑자를 쫓아온 윤수안과 경찰은 골목에서 부랑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어디선가 들려온 발소리에 태주를 쫓는 씬이었다.
“거기 서,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여러 순경과 함께 윤수안이 태주를 바쁘게 쫓는 이때.
빠르게 도망치던 태주가 뒤를 힐끗했다.
어둠에 숨어 뛰던 그는 뒤에서 자신을 쫓는 윤수안을 발견한다.
살인 현장에서 한 사람도 벗어나지 못 하게 하려는 그녀의 집념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또한 절대 잡힐 수 없어,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런데 그렇게 죽기 살기로 도망쳐 다다른 곳이 막다른 골목이다.
뒤에서 쫓아오던 경찰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윤수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태주는 주변을 살폈다.
저 뒤에서 테이저건을 꺼내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여기서 잡힐 수는 없다.
아직 자신은 할 일이 남았다.
경찰 신윤재로서 합법적으로 진짜 연쇄살인범, 이성용을 잡아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절대 잡히지 말고 완벽하게 은신하고 있어야 한다.
“헙!”
발목에 힘을 주어 제 키보다 큰 벽을 올라타기 시작한 태주.
그의 도주에 뒤에서 다급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포해!”
탕! 탕탕!
그렇지만 날아온 총알들은 태주가 입고 있던 방탄조끼에 가로막혔다.
탁!
가볍게 담을 넘은 태주가 재빨리 도망친 후.
윤수안은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미 그녀가 쫓는 이는 없어진 뒤였다.
마치 연기처럼.
* * *
이제 촬영장은 완전한 고요의 바다였다.
연기를 보며 감탄하기는커녕, 숨을 죽이며 그저 촬영을 지켜볼 뿐이다.
조명을 들고 있는, 음향을 조절하는, 대본을 넘기는 스태프 모두 눈앞에 펼쳐진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이때.
관심의 중심에는 태주가 있었다.
사이코패스 신윤재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경찰을 농락하는 모습.
분명 그는 도망자임에도 경찰에게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모습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뭐야, 이럴 줄 알았어. 네 연기가 금방 묻혔잖아.”
함께 촬영을 지켜보던 강재하의 매니저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강재하의 눈치를 살폈다.
촬영 전, 한태주의 도발에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그는 더 이상 없었다.
눈앞의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만이 있을 뿐.
“그런데 너 아까 잘 참더라. 촬영 전에 한태주가 도발했었잖아.”
그 말에 강재하가 얼빠진 듯 조용히 대꾸했다.
“……그것도 다 계산에 들어간 거였던 것 같아.”
“뭐?”
팔짱을 낀 채 연기를 지켜보던 강재하는 매니저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태주가 촬영 전에 그랬잖아. 긴장 못 할 거라고. 그럴 시간을 자기가 주지 않을 거라고. 그 뜻을 이제야 깨달았어.”
강재하의 시선 끝에는 한태주가 걸려 있었다.
매 순간 간절하게, 치열하게 연기하는.
마치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틈을 주지 않는.
이 연기를 보는 이들에게 본인이 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숨에 헐떡이게 하는 그가.
단순히 재밌어서 연기를 하던 자신과는 마음가짐이, 시선 자체가 달랐다.
그 인물이 되어 마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은 태주의 연기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연기라는 건, 인생을 거는 거였어.”
태주에게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엿본 강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인생을 바쳐 다른 인생을 사는 거였다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