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영원한 비밀은 없다 (5)
* * *
“굿맨의 성공을 위하여!”
우렁찬 건배사가 터져 나오는 늦은 밤의 횟집.
“크으, 주인공 없는 회식이라니 너무 아쉽잖아. 이 여사님, 태주 좀 잡지 그러셨어요.”
“애가 바쁜데 잡는 것도 실례죠.”
담담한 표정의 횟집 사장, 이숙자는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나중에 서울에서 태주 만나기로 했어요. 밥 사준대요, 우리 태주가.”
이숙자는 아까 태주가 떠나기 전, 잡아준 손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태주에게서 따스함이 전해졌다.
꼭 톱스타여서, 함께 연기해서, 재훈이를 알았던 아이여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그녀의 행복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
-저를 아들이라 생각하시고, 언제든 연락하세요.
이숙자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가지러 떠났다.
주인식 감독이 주변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태주 씨, 스케줄 미룰 수는 없었대? 도대체 뭔 일정이길래?”
“정확한 건 말 안 해줬는데, 매니저 말로는 급하게 화보 추가 촬영이 잡힌 것 같더라고요.”
“오, 화보? 그럼 뭐, 인정.”
주인식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아쉬운 기색은 가득했다.
“오늘 태주 촬영 정말 오졌고 지렸는데. 그래서 공개적으로 띄워주려고 했더니, 당사자가 없네.”
“감독님 정말 신나셨네요. 오지고 지렸다는 말, 유치하다고 안 쓰시더니.”
“젊은 애들 말로 한태주 오늘 연기 찢었잖아. 누가 생각했겠어. 일반인 해녀를 상대로 그렇게 깊은 연기를 끌어낼 줄. 그리고 그녀를 상대로 한태주가 그런 폭발적인 연기를 할 줄.”
“맞아요. 마치 그 해녀분의 아들이 빙의한 것 같았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연출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설마, 한태주 씨한테 그런 능력도 있었던 걸까요? 여사님의 눈빛에서 엄마의 눈빛을 읽은 거죠. 그리고 그분 아들과 조금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던데, 혹시 빙의……”
“야, 벌써 취했냐? 태주가 무슨 무당이냐? 죽은 귀신이 빙의하게!”
주인식의 일침에 조연출은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아니, 그만큼 연기가 실감 났다는 말이죠. 진짜 엄마랑 아들이 대화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초 치는 얘기는 그만하고, 그림 구하는 건 어떻게 됐어?”
많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조연출은 주인식이 뭘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 심은설 작가님께서 신윤재가 그린 그림으로 원하는 소품이요? 그거 구하기가 어렵던데, 다른 그림으로 대체하면 안 될까요?”
“그래도 최대한 심 작가가 원하는 대로 구해 줘. 특징도 정확히 짚어 줬는데, 구하기 그렇게 힘들어?”
“지금 몇 달째 매달리고 있는데 안 구해지는 거 보면……. 다른 그림으로 타협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주인식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작중에서 신윤재의 유일한 취미가 그림 그리기인데, 맑으면서도 파괴적인 그림은 그 작가 것밖에 없대.”
“이름도 모르고, 5년 전에 인터넷 서치하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그 그림을 어떻게 찾으란 말이에요?”
술에 취해 얼굴이 발개진 주인식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도 심 작가가 기억하는 단서가 하나 있어. 그 작가가 블로그를 운영했었나 봐.”
“아니, 그런 귀한 정보는 진작에 좀 알려 주시지! 주소 뭐예요, 지금 인터넷에 검색해 보게요.”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 블로그 폐쇄된 지 오래야.”
“그게 무슨 단서예요.”
“아무튼 심 작가가 그 작가 블로그를 종종 들어가 본 적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작가가 바닷가에 살았다는 거래.”
“바닷가요? 그럼 부산에 살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건 모르지. 백구 한 마리 벗 삼아서 바닷가에 살면서 그림 그렸다고 하니까.”
그 말에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백구가 짖었다.
[컹컹!]주인식과 조연출이 하는 말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듯 말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듯한 백구의 색은 희끄무레하면서도 투명한 색이었다.
마치 귀신인 것처럼.
* * *
그날 저녁.
이미 퇴근 시각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지만, 강승민 검사는 사무실에 남아 서류를 보고 있다.
탁.
“검사님, 이거라도 드시고 하십시오. 그러다가 쓰러지십니다.”
식사도 거른 채 여러 자료를 살피던 강승민 검사의 앞에 놓인 오트밀 커피.
몇 날 며칠 밤을 새운 강승민은 날카로운 눈매를 수사관에게 고정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정 수사관도 커피 사러 나갔다 올 시간에 얼른 서류 한 장이라도 더 봐요.”
“예.”
정 수사관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사무실에는 사각사각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퍼뜩. 강승민은 수사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건 조사해 봤어요? 염수정 씨와 부형윤 검사장과의 관계?”
“아, 네. 연예계에서는 쉬쉬하는 소문이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더라고요.”
수사관이 안타까운 얼굴로 쯧쯧거렸다.
“부형윤 검사장이 예전부터 염수정의 팬이라고 자청하며 그녀에게 찝쩍거렸답니다. 드림액터스의 장희재 대표는 그걸 막지 않고 오히려 둘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요. 물론 염수정 씨가 단칼에 거절했지만요.”
“염수정 씨도 참 딱하네요. 청순하고 연기 잘해서 인기 많았는데, 그게 이런 쪽으로 안 좋게 작용할 줄이야.”
“그러니까요.
“그래도 염수정 씨가 깡이 좋은 거 같아요. 장 대표가 접대하라고 협박했다는데 거절한 걸 보면. 그런데 거절의 대가는 뭐였죠?”
“라이징스타로 올라간 염수정에게 별 볼 일 없는 시놉만 줬나 봐요. 그런데 또 사람 일이 모르는 게, 영화 리메이크 ‘귀부인’으로 염수정이 충무로를 휩쓸었잖아요. 운과 실력이 뒷받침된 사례죠. 그런데 그 영화를 추천해준 게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중협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중협……. 이렇게 또 엮이는군.”
깊은 생각에 잠긴 강승민.
그가 정리한 바로는 이중협은 염수정의 남자친구, 그 이상이었다.
그녀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자이자, 그녀의 흑기사이기도 했다.
이중협의 죽음에 부형윤이 있음은 확실했다.
다만 그 둘이 어떻게 엮였느냐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었는데.
“이제야 좀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네요.”
그때, 일전에 그의 아버지가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게 생각났다.
-너 요즘에 부형윤 검사장 조사하지? 네 큰아버지도 법무부 장관직 걸고 부형윤 조사했다는데. 그쪽 정보, 어떻게든 캐내는 게 좋지 않겠냐?
벌떡.
“내키지는 않지만,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아요.”
“검사님?”
“나 지금 퇴근합니다. 커피에 입 안 댔으니, 정 수사관이 다 마셔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 강승민.
그가 없어지자마자 정 수사관은 투덜거리며 강승민의 책상에 올려뒀던 커피를 집어 들었다.
“뭐야, 이 커피 마시고 서류 정리 내가 다 하라는 거야 뭐야.”
* * *
얼마 후, 늦은 시각의 호텔 카페.
구석 테이블에서 훤칠한 외모의 남자 둘이 서로를 마주한 채 앉아있다.
“네가 웬일이냐, 만나자고 하고.”
“웬일이긴, 가족이잖아. 서로 일이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봐야지.”
“식사 아니지, 차를 마시기에도 너무 늦은 시각 아니냐?”
“그래도 만나니까 좋잖아. 그리고…….”
강승민이 씩 웃으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내 초대에 응한 형도, 뭔가 속셈이 있으니까 이 자리에 나온 거 아냐?”
그 말에 강승원은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눈앞의 사촌 동생, 강승민이 저녁을 대접한다며 이렇게 먼저 나선 건 처음이었기 때문.
특히나 청렴결백한 작은아버지를 꼭 닮은 승민이가 저를 먼저 찾는다?
그것도 큰아버지가 법무부 장관 후보에 올라 한창 뜨거운 감자인 이 시기에?
그가 아는 강승민은 법대로 일을 척결할 사람이지, 절대로 뒤꽁무니로 큰아버지를 도울 인간이 아니었다.
“너, 무슨 생각이냐?”
“이번에 큰아버지가 부형윤 검사장에 대한 정보란 정보는 전부 모으고 있는 거 알고 있어. 그거, 나한테 공유해.”
그 말에 강승원이 커헉, 헛기침했다.
“뭔 소리야, 우리는 그런 네거티브 마케팅 같은 것 안 해. 그런 건 요즘 트렌드도 아니고.”
강승민의 코웃음이 곧이어 터져 나왔다.
“안 할 리가 없잖아, 큰아버지께서 이번에 법무부 장관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래서 뭐. 너야말로 꿍꿍이가 뭐야? 갑자기 왜 친한 척인데?”
“검찰의 절반이 큰아버지의 뒷배가 되게 해 줄게. 대신, 그동안 알아낸 부형윤 검사장의 정보, 우리 수사팀한테 넘겨.”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강승원이 눈을 껌뻑거렸다.
정의로운 검사로 이름이 높은 강승민이 검찰 내부에서 20~30대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
젊은 뒷배를 등에 업으면 법무부를 장악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럼 뭐……, 좋아.”
애써 여유로운 척을 하던 강승원은 강승민의 귓가에 속삭였다.
“부형윤 그 인간, 여자 문제가 아주 복잡하다 못해 더럽더라.”
“무슨 소리야?”
“영상 남기는 취미가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증거가 없어서, 우리도 찾는 중이야.”
그 말에 강승민의 눈이 번뜩였다.
“영상?”
* * *
깔깔거리는 여자들 소리가 흩어지는 고급 식당에서 마주한 두 남자.
“지금 우리는 한배를 탄 셈이야. 나는 물론이고, 내 사람들까지 뭔 일 터지지 않게 다들 조심해.”
“당연하죠, 검사장님. 저희는 검사장님께서 장관직에 오르실 때까지 몸 바짝 엎드려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형윤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우창균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와이프 단속 잘해. 원래 제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라는 거, 자네가 제일 잘 알지?”
“저희 와이프요?”
갑작스레 대화에 오른 와이프의 존재.
우창균은 재빨리 자신의 아내를 떠올려보았다.
중매로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지금까지 오순도순 잘 살아온 아내는 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마치 충성하는 것도 같았다.
“에이, 저희 와이프는 저를 너무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라. 절대로 저를 배신하거나 의심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저번에 부부 동반 모임에서 검사장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저희 와이프, 제가 사슴을 사자라고 해도 믿을 사람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같은 침대를 쓰는 마누라만큼 뒤통수치기 좋은 사람은 없으니까.”
우창균은 부형윤의 앞에 납작 기어 충성을 맹세했다.
“그 여자는 절대로 저를 배신 못 합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모든 일이 원만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 * *
동 시각.
우창균의 아내는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음에도 망부석처럼 거실에 앉아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를 끔찍이 생각하던 그녀가 이리 정신이 없는 이유는 딱 하나.
남편의 차에서 발견한 몇 장의 CD 때문이었다.
특정 날짜가 적혀 있고, 붙어있는 스티커에는 하트 모양까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창고에서 먼지가 쌓여 있던 DVD플레이어를 꺼내 몇 장의 CD를 재생해 보았다.
혹시나 하고 틀었던 영상들을 본 그녀의 쿵쿵거리던 심장은 죽은 듯 뚝, 멈췄다.
화면에 가득한 살 색의 향연들.
여러 나신의 여자들 가운데 환히 웃고 있는 그녀의 남편.
CD 케이스를 천천히 만지작거리던 여자의 얼굴에서 광기 어린 눈빛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참았던 처절한 분노와 배신감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말았어야지. 이 개자식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로 그녀가 집은 마지막 CD.
“왜 이건 재생이 안 되지? 망가졌나?”
CD의 겉에는 ‘20XX년 5월 5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번이고 재생에 실패한 여자는 이를 악물며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든 복원해서 볼 거야. 이 안에 무슨 영상이 들었는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