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1)
* * *
얼마 후.
이른 아침부터 드라마 포스터 촬영을 위해 방송국 세트장에 도착한 태주.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 감독님, 제작진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도중.
딩동,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에 태주의 시선이 쏠렸다.
[유나한테서 온 문자잖아?]-선배, 저희 선배 인터뷰 따러 세트장으로 향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홍 선배님께서 이번에 선배와 미스터 버터플라이 관계성을 묻는 질문도 하실 모양이에요. 그냥…… 미리 얘기해 드리는 거예요.
태주가 킬킬거리며 박인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스타뉴스 인터뷰 오기로 한 거 말이야. 미스터 버터플라이랑 나의 관계성을 의심하는 인터뷰도 딸 모양인가 봐.”
“뭐? 애초에 드라마 관련해서만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홍은지, 우성림 기자님은 나한테 특별한 사람들이잖아. 이분들에게는 소스를 조금은 흘려도 좋을 것 같아. 재밌는 기사가 나올 것 같거든.”
말을 하던 도중 태주는 촬영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은설아! 아니지, 심 작가님!”
심은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태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배우님. 진짜 오랜만이다, 반가워! 작업실에만 있다가 네 얼굴 보니까 왜 이렇게 반갑니?”
[은설이 살 엄청나게 빠졌네. 너랑 독립영화 찍을 때보다 훨씬 말랐다.]‘그래도 얼굴은 그때보다 훨씬 좋아 보여요. 뭔가 힘이 넘치는 느낌이랄까.’
그때, 심은설이 동그란 얼굴을 태주 앞에 들이댔다.
“날 왜 그렇게 쳐다봐? 얼굴에 뭐 묻었어?”
“흐흐, 아니.”
태주가 머리를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
“그냥, 우리 예전에 독립영화 찍던 때가 생각나서. 지금이랑 환경, 위치도 다른데, 널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네.”
“흥흥, 그건 나도 그래.”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둘 사이로 윤수안이 쓱, 지나갔다.
“어라, 미안해요. 길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만.”
단발의 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가는 그녀.
그런 윤수안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태주를 보며 심은설이 재밌다는 듯 큭큭거렸다.
“이야, 한태주 둔한 건 여전하네.”
“무슨 뜻이야?”
“배려심은 많은데 눈치는 여전히 없어.”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저 멀리 떠난 심은설.
그런 그녀를 보던 태주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뭐라는 거야?.”
게다가 옆에서 이중협마저 킬킬댔다.
‘형은 또 왜 웃어요?’
‘뭐가 정확한데요?’
[모르면 그냥 있어, 흐흐. 넌 연기하는 데만 집중하고.]* * *
포스터 촬영 직전.
주인식 감독은 심은설 작가. 그리고 세 명의 주연 배우를 데리고 브리핑을 진행했다.
“우리 드라마의 주요 메시지는 ‘눈’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심 작가, 설명 부탁해요.”
“네.”
심은설은 한태주, 추석대, 윤수안을 각각 보며 말을 이었다.
“신윤재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사회에 녹아들어 있고. 이성용은 완벽한 신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위장했으나 뒤로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또한 이주희는 존경하는 선배를 의심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를 믿고 싶은 마음에 진실을 숨기는 캐릭터입니다.”
“그럼, 저희에게 배정된 이 포즈가 각각의 캐릭터를 대변하는 건가요?”
“추석대 씨, 정확해요.”
바퀴 달린 칠판에 붙어 있던 세 장의 그림.
신윤재는 외눈박이 안경을, 이성용은 은테 안경을 썼고. 이주희는 한쪽 눈을 가리는 포즈였다.
자신의 포즈를 본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안경을 한쪽만 쓴 건, 이중생활을 하는 신윤재의 삶을 나타내는 거로군요.”
“맞습니다. 자자, 그럼 개인 컷 촬영부터 시작해 봅시다.”
제일 먼저 촬영할 사람은 태주.
경찰복 차림에 외눈박이 안경을 쓴 그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신윤재는 가릴 게 많은 사람이잖아요. 정면보다는 살짝 사선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 그거 좋네. 태주 씨, 그렇게 해봐요.”
찰칵!
환한 플래시가 몇 번이나 터졌을까.
뒤에서 보던 추석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요.”
“태주 씨의 장점이 바로 그거죠.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작품 속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잖아요.
윤수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작품 생각밖에는 안 해요, 태주 씨.”
끄덕.
추석대는 눈앞의 태주를 응시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채 차가운 외눈박이 안경을 반짝이는 그.
다정하고 빛이 나는 한태주는 어디로 가고 없었다.
무언가를 숨기는, 어두운 그림자에 반쯤 잠식된 듯한, 서늘한 신윤재만이 있을 뿐.
그리고 그런 그를 유심히 보던 이들이 또 있었으니.
“이야, 포스터부터 진짜 재밌네.”
홍은지는 옆에 있던 우성림, 황유나에게 속삭였다.
“포스터 속 신윤재만 보더라도 이 드라마, 어떻게 흘러갈지 감히 전개를 짐작할 수 없겠어.”
* * *
촬영이 끝난 후.
태주에게 스타뉴스 기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태주 씨, 오늘 촬영 잘 봤습니다. 포스터 잘 나올 것 같던데요?”
“제작진분들께서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포즈나 설정을 잘 잡아주신 덕분이죠.”
“그런 겸손함은 여전하네요. 그런데 과연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도발에도 태주 씨, 겸손할 수 있을까요?”
훅 들어온 홍은지는 황유나에게 준비한 질문을 하라고 손짓했다.
황유나는 태주에게 머뭇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 유튜브에 공개된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선전포고 영상을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태양왕을 이기겠다는 그의 선언에 태주 씨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흠…….”
저쪽에서 어떤 답변을 기대하는지 안다.
그래서 태주는 그들이 기대하는 답을 해주기로 했다.
그들이 내보내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미스터 버터플라이 VS 태양왕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곧 그것이 흥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
“원래 실력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법이죠.”
‘그렇지!’ 하는 모두의 표정에 태주가 덧붙였다.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도발? 전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모든 건 무대에서 증명될 테니까요.”
태주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나중에 마스크 스타, 본방사수 부탁드려요.”
* * *
얼마 후, 퓨처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한창 영화 준비에 몰입하던 옥장파 감독.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하다, 연예란의 조회수 1위에 오른 기사를 발견했다.
“이야, 한태주 씨 대단하네. 하긴, 이래야 한국 대표로서의 면목이 서지.”
옥장파는 은근히 태주의 이러한 인터뷰에 자부심을 느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와의 대결에서 태양왕이 이겼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제작 피디의 방문에 옥장파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셨어요?”
“오디션 접수 결과가 아주 좋아요. 영화 ‘영웅-리메이크’ 여주인공 역에 정말 많은 이들이 지원했습니다.”
제작 피디의 말에 옥장파가 만연한 미소를 띠었다.
“특히 우리 영화는 여주인공이 중요하니, 최대한 많은 이들이 오디션을 보면 좋죠.”
“그런데 이들 중, 설채빈은 명단에 없더라고요.”
“그래요?”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옥장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분명, 이 배역에 욕심이 있어 보였는데……. 아니면, 다른 배역으로 신청했으려나?”
“사실은 말입니다.”
제작 피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옥장파에게 말했다.
“원스타 엔터 측에서 비공식적으로 감독님과의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원스타에서요?”
“아무래도 설채빈 씨가 아이돌이잖아요.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따낸다는 게 좀 그림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뜻밖의 소식에 옥장파는 눈을 찡그렸다.
“결국 그게 문제인가 보네요.”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뭔데요?”
“설채빈 씨가 오디션을 ‘김채빈’이라는 본명으로 신청한 거 같습니다. 프로필 확인해 보니 본인이 맞더라고요.”
그 말에 옥장파 감독은 재밌다는 미소를 지었다.
“이야, 소속사의 눈을 피해서라도 우리 영화에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네요.”
“아이돌과 소속사의 힘을 빌려서 한자리해 먹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네요. 얼마나 연기를 잘할지도요.”
옥 감독은 씩 웃었다.
“오디션이 벌써 기대되는군요.”
* * *
한편, 동 시각.
헨델 엔터테인먼트.
‘마스크 스타’ 출전 이력이 있는 달의 여신 이서희와 원더우먼 윤보라가 속해 있는 소속사다.
이곳에 홍은지가 ‘마스크 스타’ 특집 관련해서 그들에게 물어볼 게 있다며 인터뷰를 왔다.
“이야, 이거 진짜 재밌겠어요. 태양왕하고 미스터 버터플라이라니!”
뮤지컬 배우 윤보라가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한태주 씨 팬이어서, 개인적으로 태양왕이 이겼으면 좋겠네요!”
“그럼 공통 질문드리겠습니다. 두 분 모두 태양왕과 겨뤄보셨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홍은지가 궁금한 눈초리로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ABS에서 개최하는 추석 특집에서 맞붙게 되는 태양왕과 미스터 버터플라이. 그 둘 중에서 누가 이길 거로 생각하세요?”
“흐음…….”
둘 다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빠진 가운데.
먼저 입을 연 이서희는 홍은지가 얄밉다는 듯 바라보았다.
“기자님, 이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아니에요? 저는 당연히 한태주 씨 편을 들고 싶죠.”
“자기야, 이거 말 잘해야 해.”
옆에 있던 윤보라가 이서희를 톡톡 쳤다.
“지금 인터넷에서 미스터 버터플라이하고 한태주 씨하고 동일 인물 썰 돌고 있는 거 몰라?”
“아, 맞다. 그랬었지.”
“기자님, 제 말이 맞죠? 한태주 씨랑 미스터 버터플라이, 둘 다 발목에 흉터 있잖아요.”
“후훗,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태주 씨를 미스터 버터플라이로 특정할 수는 없죠.”
“맞아요. 제가 일전에 영상을 좀 봤는데요. 둘이 창법이 다르더라고요.”
이서희가 확신에 찬 시선을 반짝였다.
“한태주 씨는 좀 담백하면서도 섬세하다면,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창법이에요.”
“어느 쪽이든 이번에 마스크 스타 본방송을 보면 알겠죠.”
윤보라는 홍은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맞췄다.
“저희도 이번에 마스크 스타 방청객으로 가거든요. 거기서 꼭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정체를 알아내 보일게요.”
* * *
‘마스크 스타-추석 특집’ 녹화를 하는 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태주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태양왕과 미스터 버터플라이, 두 명의 인물로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
그러나 오늘 저녁은, 윤지호가 일전에 제안했던 미술관 나들이를 가는 날이다.
윤지호의 여동생이 다니는 센터에서 마련한 전시회에는 컬러풀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이게 우리 지민이가 그린 그림이야. 잘 그렸지? 색감 조화도 좋고, 균형감도 훌륭해.”
팔불출의 마음으로 자랑하던 윤지호는 태주를 힐끗했다.
사실 태주는 마음을 비우고자 이곳에 왔지만,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태주의 상태를 알아챈 윤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너 바쁜데 여기까지 불러내고.”
“아니야, 형. 머리도 식힐 겸 온 거야. 이렇게라도 일부러 시간을 내야 쉴 수 있으니까.”
“노래는 잘 골랐어?”
“응……. 진작에 고르기는 했는데…….”
‘그런데 아직 태양왕 노래를 못 골랐지.’
[태양왕 선곡을 도대체 며칠 동안 고민하는 거냐.]이중협의 말에 태주가 눈을 씰룩거렸다.
사실 미스터 버터플라이 노래는 이전부터 생각해 놓은 게 있었다.
미국의 팝스타, 브리짓 드하트가 1980년대 발표한 곡, ‘Sunny Day’.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날, 연인과 헤어져 홀로 서게 된 독립적인 마음을 담은 곡으로, 발매된 해에 온갖 상을 휩쓴 명곡이다.
그런데 이에 대적할 태양왕의 곡을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말을 아끼는 태주를 보던 윤지호가 그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다양한 그림을 보면 색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저기도 가보자.”
“글쎄, 나는 그림에는 영 문외한이라.”
“그래도 일단 봐봐. 맨날 생각만 한다고 뭐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냐? 이렇게 머리를 비우다 보면 다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지.”
윤지호가 이끈 곳은 같은 층의 다른 전시관.
그곳엔 프로 느낌이 물씬 나는 감각적인 그림들이 가득했다.
“뭔가 영감이 좀 떠오르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처음엔 시큰둥한 태주도 점차 여러 그림을 진지하게 감상하기 시작했다.
다채로운 색감에 다양한 소재를 다룬 그림을 보니, 뭔가 기분이 환기되는 것도 같았다.
그때, 그가 한 그림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태양이 가득 비추는 해변에서 우뚝 서 있는 한 나무.
[상상력도 참. 해변에 이런 큰 나무가 어떻게 있어. 그런데 넌 이게 마음에 드는 거냐?]‘이거 그린 작가가 누군지 궁금하네요. 뭔가 그림에서 찬란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게 특이해서요.’
그가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정은…….”
그때였다.
[컹컹!] [이게 뭔 개소리냐?]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태주가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그는 자신의 옆을 맴도는 뜻밖의 백구를 마주했다.
개에게 귀를 기울이던 이중협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정은이라는 이 화가가 자기 주인인데, 잠적해서 지금 찾을 수 없대. 태주, 네가 좀 찾아달라는데?]‘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이정은이라는 이 사람, 90년대에 가수로도 활동했대. 그 당시 ‘안개비’라는 곡이 제법 히트했다는데?]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