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2)
그 말에 태주의 눈이 반짝 빛났다.
태주는 옆에서 꼬리를 신나게 흔드는 백구를 바라보았다.
여느 백구와 달리 다리가 무척이나 짧았고, 전체적으로 통통한 인상이 꽤 귀여웠다.
그러나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으로 보아하니, 나이가 좀 든 듯했다.
유심히 개를 보던 태주는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개, 부산에서 본 것 같기도 해요. 재훈이 형 어머님 횟집에서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중협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영도 횟집 말이지? 그래, 맞아. 네 주변을 어슬렁거렸던 거 같다. 그럼, 거기서부터 널 따라온 걸까?]‘형이 한번 물어봐 줘요.’
무릎을 굽힌 이중협은 개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응, 그래. 네 주인이 예전에 부산에 살아서, 주인을 찾으려고 거길 배회하던 중이었구나?]둘이 눈으로 무슨 대화를 한참 동안 나누자, 동동거리며 기다리던 태주가 슬쩍 말을 걸었다.
‘뭐래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겪었대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얘 나이가 14살이래. 죽기 전까지도 별다른 아픈 데가 없었다니까, 천수를 누리고 죽은 셈이라고 볼 수 있지.]‘그런데 무슨 한이 있는 거죠?’
[주인이 세상과 등을 지고 잠적한 게 걱정이 된다네.]‘그런데 아까 얘 주인이라는 분이 90년대 유명한 가수였고, 히트곡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백구가 억울하다는 듯 크게 짖어댔다.
[컹컹, 컹컹컹!] [‘안개비’라는 그 곡이 히트친 건 겨우 1년이었고. 그 후로는 사기도 당하고 몸도 안 좋아지면서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대. 그래서 지금은 세상과 단절한 상태라나 봐.]‘그럼 이 그림은 도대체……. 지금도 활동하니까 여기에 그림을 출품한 거 아니에요?’
그때, 옆에서 윤지호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 그림에 관심 있어? 아까부터 계속 이것만 보네.”
“어? 아……. 응.”
태주가 황급히 그에게 시선을 돌리자, 윤지호가 눈을 반짝이며 제안했다.
“가지고 싶은 거면 구매도 가능해. 여기 출품한 그림들,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작가가 그린 거라 그렇게 비싸지 않을 거야. 아무리 비싸봤자 100만 원 정도? 저번에 지민이 그림도 20만 원에 팔렸었거든.”
“그럼, 이 그림 사고 싶어.”
태주가 의사 표시를 하자마자 윤지호는 저쪽에서 단정한 인상의 큐레이터를 데려왔다.
태주는 그녀를 보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이 그림을 사고 싶은데요. 혹시 이걸 그린 작가님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건…… 곤란합니다. 저희도 사실 이 작가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이 그림을 기증하신 분이 30년 전 즈음에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작가분과는 연락이 끊어졌고요.”
뭔가 짐작 가는 구석이 있던 태주는 백구를 힐끗거렸다.
[네가 죽은 지가 몇 년이나 됐지?] [컹컹!] [30년이래.]‘그럼 정황상……… 이분은 백구가 죽고 난 후, 슬픔을 못 이겨서 세상과 단절하게 되었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백구의 울음소리.
[끼잉……. 끼잉…….]“그럼, 그림을 기증하신 분의 성함이나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림을 원하는 이가 있다면 팔아도 된다는 말만 전하고 떠나셔서 성함이 ‘장지숙’이라는 거 이외에는 모릅니다.”
큐레이터의 말에 태주는 조금 실망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아쉽네요. 그래도 사겠습니다, 이 그림. 무척 마음에 들거든요.”
* * *
얼마 후.
태주는 백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한쪽에는 자그마한 그림을 낀 채였다.
“다녀왔습니다.”
다정하게 태주의 다리에 몸을 비비던 고양이는 갑자기 하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크게 부풀렸다.
당황한 태주가 손을 뻗었지만, 고양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표할 뿐이었다.
“엘사야, 왜 그래?”
“야옹! 야~옹!”
태희가 조르르 엄마에게 가서 일러바쳤다.
“엄마, 엘사가 이상해! 오빠한테 화났나 봐, 털이 엄청나게 부풀었어!”
“무슨 소리야, 엘사가 왜 오빠한테 화가 나.”
부엌에 있던 고모가 서둘러 달려왔다.
그녀가 제일 먼저 발견한 건 태주가 가져온 그림 한 점.
“무슨 그림이야? 유명한 화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방에 두려고.”
“평소 그림에는 전혀 관심 없던 애가 웬일로 그림을 다 사 왔대?”
여전히 고양이가 계속해서 그르렁거리는 모습을 본 고모가 태주에게 바짝 다가와 킁킁거렸다.
“너 다른 길고양이 만나고 왔니?”
“아니?”
“그럼 왜 엘사가 이렇게 경계하는 거지? 참 이상하네. 네가 촬영 때문에 늦게 들어와도 애교부리던 아이였는데.”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모도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씻고 저녁 먹어. 오늘 비도 오고 해서, 네가 좋아하는 김치전 하려고. 태희야, 와서 수저 놓자.”
고모가 태희와 함께 부엌으로 향하자, 태주는 간단하게 씻고 제 방에서 옷부터 갈아입었다.
나가기 전, 그는 침대에 기대 핸드폰을 두드렸다.
“일단 그 곡부터 찾아봐야겠다.”
오늘 산 그림의 주인이자 가수, 이정은에 대해 궁금했다.
유튜브로 ‘안개비’를 찾아보는 태주는 잔뜩 집중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양반다리를 한 그의 무릎 안에는 고양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태주 곁에 꼭 붙어 있는 백구를 경계하는 듯 그르렁거리는 건 덤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백구는 어린 고양이의 경계심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만 뀌었지만.
스크롤을 내리던 태주는 동영상을 발견했다.
“여기 있다! 이정은-안개비.”
클릭과 동시에 강렬한 색소폰 소리가 귓가를 사로잡더니.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곁들어지고, 이윽고 담백한 여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나 홀로~ 당신을 생각하며 내뱉는 숨소리~”
앳되면서도 세월이 가득 담긴 목소리.
간절하게 부르는 고음과 한스럽게 내뱉는 저음.
노래나 한번 감상해보자고 틀었던 영상.
그러나 1분, 2분, 3분이 지나도 태주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자신이 노래에 압도된 것도 모르고, 그는 듣고, 또 들었다.
* * *
동 시각, ABS 예능국.
자그마한 몸집의 박 피디가 예능국장에게 불려갔다.
“미스터 버터플라이 정체가 뭐야?”
다짜고짜 묻는 예능국장의 말에 박진주 피디는 한숨을 내쉬었다.
“국장님, 그건 저희도 아직 모릅니다.”
“XTV 측에 문의 안 해봤어? 우리가 ‘마스크 스타’ 원저작권자인데, 그 쪽한테 정보 좀 협력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그쪽에서도 미스터 버터플라이 정체가 밝혀지기 전이라, 그 어떤 것도 알려 줄 수 없다네요.”
“아, 미치겠네. 그럼 박 피디, 당장 녹화가 코앞인데 어떻게 할 거야.”
국장은 무표정한 박 피디를 닦달했다.
“아니, 애초에 둘이 무슨 곡으로 대결하는지는 알아?”
“그게, 미스터 버터플라이 측에서는 ‘Sunny Day’로 무대를 꾸미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태양왕 측이 아직…….”
“뭐야, 미적거리는 게 한태주였어?”
“아무래도 미국판 가왕을 어떤 곡으로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는 한 곡으로 승부가 나니까요.”
“한태주 씨도 유명한 올드 팝송 같은 거 하면 어때? 저쪽에서 브리짓 드하트를 내세웠으니까. 우리는 음……. 찰스 잉글소프 어때? 팝 제왕의 곡을 부르면 체급도 얼추 맞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태주 씨한테 괜찮은 팝송 몇 개를 추천해줬는데요. 정작 본인이 시큰둥하더라고요.”
“팝송에 시큰둥한 거면 한국노래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일까?”
“지금 생각한 노래는 있는데, 확정하기까지 좀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태주 씨가 워낙에 신중한 성격이잖아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노래길래 그래?”
국장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씰룩였다.
“반드시, 가왕전에서 태양왕의 명성을 빛낼 만한 그런 대단한 노래여야 할 거야!”
* * *
다음 날, 정오.
넥스트 엔터테인먼트의 한 작업실.
이곳에는 화려한 가발과 가면. 그리고 여러 의상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모두 ‘마스크 스타’에서 태주가 입고 쓸 의상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곳에 없는 상황.
“그런데 태주 씨는 어디 간 거예요? 오전에 피팅만 하고 급하게 가던데.”
의상 다림질을 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묻는 말에 장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노래 연습하러 간다는 것 같던데요.”
“진혁 씨도 같이 따라가지, 그랬어요. 여기서 내 일 도와주지 말고.”
“안 그래도 같이 가려고 했는데, 태주 씨가 혼자 가겠다고 하셨어요. 혼자 가겠다는데 제가 굳이 끼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서요.”
“하긴, 태주 씨도 무대를 2개나 준비하느라 엄청나게 부담되겠죠. 더욱이 뭐든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성격이니까요.”
스타일리스트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저는 녹화를 어떻게 할지도 궁금해요. 두 명 다 무대에 실제로 나오는 거래요? 그게 가능할까요?”
장진혁이 설명해 주었다.
“일단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먼저 무대하고, 간단한 인터뷰를 한 다음 퇴장해요. 그다음에 태양왕이 무대를 하고, 인터뷰 후에 무대에서 투표수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행될 거예요.”
“원래 투표수 기다릴 때는 두 명 다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일정이 바빠서 먼저 이동하는 걸로 입 맞췄어요. 태주 씨가 복제인간도 아니고, 두 명이 무대 위에 오를 수는 없잖아요. 특집이라 얼굴 공개가 없어 다행이죠.”
끄덕.
스타일리스트의 긍정에 장진혁은 덧붙였다.
“그래서 경미 씨가 이렇게 똑딱이 단추도 달아주고, 의상 갈아입기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 줘서 다행이에요.”
“5분 이내로 의상 갈아입어야 한다니까, 제가 최대한 머리를 굴려 봤어요. 아, 그리고 태양왕하고 미스터 버터플라이 의상에 변경이 좀 있어요.”
스타일리스트가 검은 스타킹을 그에게 내밀었다.
“요즘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발목부터 본다면서요? 그러니까 다리를 꽁꽁 가려야 해요.”
옆에서 장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누나도 무릎에 흉터가 있는데 살색 스타킹보다는 검은색을 주로 신더라고요. 이런 이유였군요.”
“정확해요, 진혁 씨. 그리고 검은색이 착시효과를 줘서 다리가 좀 갸름해 보이기도 하고……. 뭐, 태주 씨는 워낙 각선미가 좋아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주변을 둘러보던 스타일리스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태주 씨, 노래 연습을 어디로 간 거예요?”
장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미사리인가? 거기로 간다는 것 같았어요.”
“미사리면 라이브 카페가 있는 곳 아니에요? 회사에 연습실도 많고, 새로 생긴 음악실도 있는데. 왜 굳이 거기까지 간 걸까요?”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한참이나 머리를 맞댄 둘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태주는 이따금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 * *
동 시각,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이곳.
라이브 카페촌이 줄지어 있는 미사리였다.
헐렁한 반팔과 청바지. 그리고 캡모자를 쓴 태주는 최대한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너무 느리게 걸어서 주변에 지나가는 이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는 땅에 코를 킁킁거리며 걸어가는 백구를 향해 물었다.
‘아직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걸어야 해?’
그러자 이중협이 태주를 달랬다.
[좀만 기다려 보래. 개코를 감히 의심하지 말라고. 그리고 미사리촌을 이렇게 걸으니까 좋기만 한데 뭘 그래. 문 사이 들리는 음악도 공짜로 듣고.]‘형은 귀신이니까 안 보여서 괜찮을지 몰라도. 저는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잖아요.’
[알아보면 어떠냐? 여기가 뭐 불법 도박장도 아닌데.]‘아니, 괜한 관심받는 게 신경 쓰여서 그렇죠.’
말을 하던 태주는 여전히 자신을 힐끗거리는 시선들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때, 코를 땅에 박고 걷던 백구가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컹컹컹!] [여기래, 주인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곳.]끼익.
경칩이 덜컥거리는 낡아빠진 문을 열고 태주가 안에 들어서자.
손님이 없는 어둑한 조명 속 무대만이 환히 빛이 나는 가운데.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홀로~ 당신을 생각하며 내뱉는 숨소리~”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