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3)
지난 며칠간 듣고, 또 들었던 그 가사.
가슴이 저리도록 의미가 새겨졌던 내용이었기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입 모양으로 따라부르고 있었다.
“널 생각하면 숨 막힐 듯 갑갑하지만, 그럼에도 널 사랑하는 이 마음이 더 좋아서~”
태주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숨이 막힐 듯 긴장되는 가슴이 쿵쿵거렸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더러 좀 알아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긴장감이 곧 실망감으로 변한 건 한순간이다.
[저 여자, 이정은 아니래.]뒤에서 우뚝, 멈춘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백구의 말을 이중협이 옮긴 순간.
태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뚝 멈춰 섰다.
‘그렇지만 주인의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한 건 백구잖아요.’
[그건 맞는데, 냄새만 났을 뿐이래. 무대 위의 저 여자는 자기 주인이 아니고.]‘하지만…….’
[주인과 14년을 같이 산 백구야. 설마 자기 주인의 목소리도 모르겠어? 그리고 태주야, 잘 생각해봐. 네가 유튜브에서 들었던 노래랑 저 사람 목소리가 좀 다르지 않아?]정곡을 찌르는 이중협의 말.
그제야 태주는 안개가 걷히는 듯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었다.
분명 무대 위 여가수는 노래를 무척이나 잘했다.
그러나 유튜브 속 이정은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바로 느낌이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는 ‘나 좀 알아줘’라는 느낌이라면.
태주가 유튜브에서 들었던 원곡은 담담하게 제 마음을 털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맞아요, 목소리가 달라요. 제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보네요.’
실망감에 젖은 태주의 어깨가 축, 늘어진 순간.
가게를 가득 채웠던 음악이 툭, 하고 꺼졌다.
무대 위에만 집중됐던 조명은 팟, 하고 흩어지며 가게 전체를 밝게 밝혔다.
“누구세요?”
무대 위에서 태주를 향해 다가온 중년의 여자는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러다가 태주를 알아보곤 눈이 왈칵 커졌다.
“아니, 한태주 씨 아니에요? 여기에는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태주가 멋쩍은 얼굴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이때.
[컹컹!]옆에서 짖어대는 백구의 말을 이중협이 놀랍다는 듯 번역했다.
[이 여자한테서 자기 주인의 냄새가 희미하게 난대. 혹시 알고 지내던 사이 아니야?]‘오!’
태주는 즉시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정은 씨를 좀 만나 뵙고 싶어서요.”
“아, 정은이요.”
하지만 여자는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지는 모르겠지만. 정은이, 여기서는 못 찾으실 거예요.”
“네? 그럼 어디서 뵐 수 있을까요?”
“그게, 사실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은 여자는 태주에게 객석의 빈자리를 권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 * *
달칵.
따뜻한 쌍화차를 대접한 여자는 맞은편의 태주와 시선을 마주쳤다.
여자의 이름은 장지숙.
예전에는 코러스 가수를 했다가 지금은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저도 정은이 본지, 한참 되었어요.”
“두 분, 친한 관계셨나요?”
“친했죠. 저, 정은이 데뷔곡 준비할 때부터 알던 사이예요.”
여자는 씁쓸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은이 데뷔곡 코러스를 제가 넣어줬거든요. 한때는 같이 산 적도 있어요. 2년인가?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그때를 회상하던 장지숙의 얼굴이 점점 들떴다.
“그런데 지금은 이정은 씨와 연락이 안 되고요?”
“네. 30년 전쯤 연락이 똑 끊겼어요.”
“그래서 이정은 씨의 그림도 기증하신 건가요? ‘장지숙’ 씨께서 두고 가셨다고 들었는데, 본인 맞으시죠?”
“충동적이었죠.”
장지숙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정은이가 하루아침에 말도 없이 저랑 연락을 끊었어요. 사는 곳도, 전화번호도 다 바꿔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그 그림을 내놓으면 그걸 알아본 정은이가 저한테 어떻게든 연락을 하지 않을까 했어요.”
“이런 말씀 실례인 줄 압니다만, 혹시 장지숙 씨랑만 연락을 끊은 건 아닌가요?”
“아뇨. 방송국 피디님들, 주변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 모두 연락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날벼락이었어요.”
[잘 지내다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니. 둘이 싸운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태주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던 장지숙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니, 정은이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잠적한 거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워낙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거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정은이가 목을 다쳤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 하더라고요.”
“아니, 어쩌다…….”
가수에게 목소리는 도구이자, 곧 생명이다.
태주는 조심스레 질문을 이어 나갔다.
“무슨 이유로 다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데뷔곡 반응이 괜찮으니까, 소속사에서 지방행사며, 밤무대며. 애 몸 상태는 생각 안 하고 뺑뺑이 돌리더니, 결국 새벽에 그렇게 됐어요.”
말을 잇던 장지숙의 목소리도 점점 젖어 들었다.
“겨우 목숨은 건졌는데, 식도를 다쳤죠. 그런데 그게 성대까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 하게 됐고. 목에는 수술한 큰 흉터까지 남아서 애가 점점 움츠러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어요.”
[컹컹, 컹컹컹!]백구가 충격받은 듯 거세게 짖어댔다.
[이정은 씨가 사고가 난 줄 몰랐대. 자기가 죽은 후에 사고가 난 것 같다는데.]“사실 정은이가 가족도 없고, 키우던 백구한테 많이 의지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개가 세월이 다해 죽은 게 교통사고 직전이었어요. 만약 백구가 있었더라면 성대결절도 어떻게든 극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장지숙의 눈에서는 방울방울, 눈물이 흘렀다.
태주가 그녀에게 티슈를 권하자 곧이어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해요. 정은이 이야기를 한 건 정말 오랜만이라, 그동안 억눌렀던 그리움이 터졌나 봐요.”
“이정은 씨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팽!
코를 연거푸 풀던 장지숙이 훌쩍였다.
“정은이, 정말 보고 싶네요. 제가 참 아끼던 동생이었는데.”
태주는 주먹을 꼭 쥐었다.
자신이 감명받았던 그 곡으로, ‘마스크 스타’에서 태양왕의 이름을 걸고 승부하고 싶었다.
“사실은, 제가 이번에 마스크 스타에 ‘태양왕’으로 나가는데, 이정은 가수님의 ‘안개비’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정말요? 그 곡 참 좋죠. 잘 부탁해요.”
장지숙의 눈에 글썽거리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런데 곡이 좀 어려울 텐데요. 키가 높고, 노래 자체가 하이라이트로 달려간다기보다는 감정에 푹 젖은 안개 같은 느낌이라서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래서 더 좋았다.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부를 ‘Sunny Day’와 완전히 반대되는 ‘안개비’라서.
“할 수 있습니다. 해낼 거고요.”
“그럼, 제가 도와 드릴게요.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코러스든, 노래의 감정을 짚어주는 것이든.”
장지숙은 태주를 보며 힘찬 미소를 지었다.
“정은이 다음으로 이 곡을 잘 아는 사람은 코로스를 넣은 저니까요.”
* * *
그날 저녁.
잔뜩 초조한 박진주 피디가 연예란의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선곡도 진작에 정해서 연습에 들어갔을 텐데. 한태주 씨는 아직 노래도 안 정했으니…….”
긴장한 박 피디는 이를 드륵드륵 갈았다.
“왜 이렇게 여유를 피우는 거지?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그렇지, 상대는 미국판 가왕이라고.”
그때, 상기된 얼굴로 뛰어오는 조연출이 보였다.
“선배님! 넥스트 엔터 측에서 연락 왔어요. 한태주 씨 노래 정해서 연습 들어갔대요!”
“이제야!”
찌그러진 냄비 같았던 박 피디의 얼굴이 드디어 펴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곡으로 한 대? 오래 고민하고 내놓은 답이니 뭔가 대단한 노래겠지? 20세기 최고의 명곡으로 꼽힌 ‘Yellow Tree’? 아니면 한국 최고의 노래로 꼽히는 ‘도시사랑’?”
“한국노래는 맞는데요, 그게…….”
조연출이 다소 망설이는 듯 작게 말을 이었다.
“안개비. 제목이 ‘안개비’입니다.”
“안개비? 가수 이름은?”
“이정은입니다.”
“이정은의 안개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듯 박 피디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그녀는 재빨리 컴퓨터로 검색에 들어갔다.
노래를 몇 번이고 들어보았지만,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태주 씨가 왜 이런 곡을 골랐을까? 곡, 가수 둘 다 인지도가 없는데.”
“그래도 90년대에 잠깐 히트했더라고요.”
“그때 잠깐 히트했을 뿐이지, 지금은 아무도 모르잖아. 안 그래도 추석 특집이라 많은 이들이 볼 텐데, 모르는 노래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는 건 어려울 텐데…….”
“그래도 작곡가는 제법 유명한 분이시던데요? 오훈길 선생님이라고요.”
“오훈길 선생님? 아, 그분. 정말로?”
박 피디는 컴퓨터 화면으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그녀가 제목, 가수에 시선이 팔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곡가 항목에 ‘오훈길’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훈길 선생님이 이런 곡도 작곡하셨어? 발매연도를 보니까 선생님이 작고하시기 바로 직전인데?”
“선배님, 아무튼 작곡가가 유명하니까 이걸로 밀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작곡가가 유명하면 뭐 해, 일단 노래가 유명해야 끗발이 사는 건데.”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헝클어뜨린 박 피디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 태주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 곡으로 어떻게 미스터 버터플라이와의 승부에서 이기겠다는 거지?”
“아니면 일부러 이 곡을 골랐을지도 모르죠.”
조연출이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선곡은 ‘Sunny Day’로 강하고 파워풀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곡이잖아요. 그에 반해 태주 씨가 선곡한 ‘안개비’는 촉촉이 젖어 드는, 다 같이 가라앉는 듯한 음률이 특징이죠.”
“……그건 그러네.”
“비슷한 느낌으로 선곡하는 것보다는 이게 승산이 있을 수 있어요. 방청객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보다도 완전히 다른 노래로 놀라움을 주는 게, 태양왕의 전략일 수도 있고요.”
“노래 자체는 아주 좋아. 다만 대다수 사람이 이 곡을 잘 모른다는 게 문제지.”
박 피디가 주먹을 꼭 쥐었다.
“태주 씨가 생각 없이 이 곡을 고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숨겨진 비책이 있을 겁니다.”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5층에 있는 넓은 음악 작업실에 세 명의 남자가 자리했다.
영화 ‘영웅-리메이크’ OST 작업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옥장파 감독과 윤지호는 머리를 시원하게 민 남자 뒤에서 긴장한 듯 앉아 있었다.
단단한 인상의 그는 이번에 ‘퓨처 스튜디오’에 팀을 이끌고 들어온 뮤직 프로듀서, 오희운 피디였다.
일전에 폴라리스 데뷔곡 작업을 하며 윤지호와 연을 맺은 그.
지금은 윤지호가 작업한 영화 음악을 봐주는 중이었다.
“잘했는데, 지호야. 스트링을 이렇게 쓰니까 긴장감이 극대화돼서 좋네. 그런데 이렇게 뒤에 효과를 줘보면 어떨까?”
오 피디는 즉석에서 음악을 만졌다.
곧이어 작업실에 울려 퍼진 수정본에 옥장파는 허벅지를 탁, 쳤다.
“오, 좋은데요? 제가 딱 상상하던 음산한 느낌이에요.”
“지호가 뼈대를 잘 쌓아놔서 작업하기 쉽네요. 감독님, 우리 지호,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얘가 상상력이 풍부해서 작곡에도 재능이 많아요.”
훈훈한 분위기로 흘러가던 대화.
그러던 도중, 윤지호는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요, 쌤. 혹시 작곡가 오훈길 선생님이라고 아세요?”
그 말에 오 피디가 흠칫했다.
“네가 그분을 왜 찾는데?”
“아뇨, 제가 아니라 태주가요. 아까 혹시 아냐고 전화가 왔었거든요.”
“흠흠. 그런 거라면 내가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네.”
오 피디는 복잡한 얼굴을 쓸어올렸다.
“그분이 내 아버지거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