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5)
상처가 있는 목을 만지작거리던 그녀.
그러다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딸의 시선을 느끼고는 서둘러 손을 내렸다.
딸은 그런 엄마에게 회심의 말을 건넸다.
“그래서 엄마, 갈 거지? ‘마스크 스타’ 방청 말이야.”
“그게 말이야……. 좀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아니면 친구랑 같이 가도 되잖아.”
“이미 엄마 이름으로 신청해 놔서 안 돼.”
“음…….”
“엄마, 하나뿐인 딸의 소원인데 그래도 안 돼?”
딸은 제 엄마의 손을 잡으며 간절하게 애원했다.
“엄마랑 콘서트장 가보는 게 소원이었어.”
“……그래도 엄마랑 연극 보러 소극장은 많이 가봤잖아.”
“가수 공연장은 한 번도 못 가봤잖아.”
딸이 섭섭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엄마는 뮤지컬이나 콘서트는 한 번도 같이 가주지 않았잖아.”
“그건, 엄마가 시간이 없어서……”
“그럼 브리짓 드하트 콘서트는? 그거 3달 전부터 예약받았어. 내가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 불렀는데, 끝까지 어물쩍 넘기고.”
그 말에 이정은이 반사적으로 다시 목을 만지작거렸다.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엄마, 사실 노래 싫어하는 거 아니잖아.”
그 말에 이정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사고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가수.
노래에 대한 갈증과 애증이 겹친 그녀는 더 이상 다른 가수들이 노래하는 무대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잘만 노래하는 것을 보면 괜히 자격지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남의 재능을 질투하는 추악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스러웠다.
한때는 저도 노력하면 성대결절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연습을 거듭하면 멋진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가수의 꿈을 다시 키워나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성대의 회복은 너무나도 더뎠고, 그녀의 든든한 지지자인 줄 알았던 소속사는 회복이 늦어지자 가차 없이 자신을 버렸다.
화려했던 유명세는 날아간 지 오래.
세상은 ‘이정은’이라는 가수를 이미 오래전에 잊어 버렸다.
그녀를 인생의 황금기로 이끌었던 노래는, 그녀를 인생의 암흑기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그때부터였다.
노래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신이 노래를 싫어하게 된 것은.
그 후로 이정은은 음악에서 멀어진 채 삶을 살아가는 데만 집중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도 했고, 딸도 낳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가수였던 그녀의 과거를 이따금 털어놓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가수였던 과거를 숨기고, 또 숨겼다.
애증하는 노래를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딸이 애써 노래를 잊고 살았던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 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세계로.
“엄마, 노래를 다시 마주하기가 겁나는 거지?”
“……그렇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어.”
“그럼 내가 같이해줄게.”
딸이 든든하게 엄마의 손을 잡았다.
“사실 엄마는 노래를 좋아하니까. 엄마가 다시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내가 도와줄 거야.”
“……고맙다, 우리 딸.”
‘그리고 사실, 엄마 노래 부를 수 있잖아. 잘 부르잖아.’
그녀는 엄마가 설거지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노래를 똑똑히 들었다.
‘엄마만 모를 뿐이지.’
그러나 딸은 입에서 맴돌던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실은 노래를 잘하지만, 막상 판을 깔아주면 못하는 엄마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일단은, 엄마가 다른 가수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으니까.
* * *
동 시각, 어둑한 밤의 LA 술집에서 만난 두 남자.
로저 싱클레어와 미첼 커티스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아, 드라마 촬영한다고 했나? ‘웜 데드’?”
“응. 내 분량부터 촬영 중이야. 주인공께서 한국에서 다른 드라마를 촬영 중이라.”
“그래서 그렇게 얼굴이 불만스러웠구나? 너는 좀비 분장하고 고생하는데, 한태주는 아직 한국에 있어서?”
“그래도 가을이면 미국에 와서 같이 촬영해.”
미첼이 킬킬거리자 로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와 함께 연기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 그의 에너지, 그의 스킬, 무엇보다 그의 눈빛. 제 감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그의 눈빛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어.”
진지한 로저의 태도에 미첼은 괜히 멋쩍은 코를 훌쩍였다.
“나는 네가 한태주를 경계할 거로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네.”
“뭐랄까 그는…….”
로저가 진한 위스키를 마시며 눈을 찡그렸다.
“내가 그동안 깨지 못했던 단단한 한계를 깨부숴준 사람이랄까. 입스를 해결해준 느낌이야.”
“입스?”
“주로 운동선수들한테 쓰이는 단어인데, 평소에는 잘만 되던 동작이 갑자기 안 되는 현상을 말해. 극심한 부담감이나 긴장감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슬럼프.”
“아, 예전의 너도 ‘연기 입스’에 걸린 느낌이었잖아.”
과거를 회상하던 미첼의 눈이 가늘어졌다.
“잘하려고 어떻게든 애는 썼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됐었지.”
로저가 피식 웃었다.
“그때 생각나네. ‘웜 데드’ 대본 리딩 하던 날, 극도의 긴장감으로 결국 회의실에도 못 올라가고 주차장에서 배회하고 있었는데, 한태주가 왔거든.”
“한태주가? 뭐랬는데?”
“내가 자신을 의식해서 긴장한다는 게 영광스럽다고 말하더군. 나의 기대에 지지 않을 만큼 자기도 더욱 열심히 할 거라면서.”
“거참, 그런 식으로 상대를 격려하면 감동받지 않을 배우가 어딨어. 나를 최고로 인정해준 건데.”
“그래서 그날부로 나의 ‘입스’는 싹 날아갔지.”
로저가 시원스레 술을 들이켰다.
“사실 연기든 노래든, 한번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답이 없거든. 남이 꺼내줄 수 없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한태주의 진심 어린 격려가 계기가 돼, 벗어났지만.”
“하긴, 가수 중에서도 입스 걸린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나도 그런 경험이 있고.”
과거를 더듬던 미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유튜브에 자작곡 영상 올릴 때는 세상 그렇게 반응이 좋았는데, 나중에 앨범 내고 대중의 냉정한 평가를 받으니까 점점 두려워지더라. 나중에는 잘 부르던 노래도 못 부르게 되고.”
“넌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데?”
“브리짓이 날 따로 불러서 혼내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 같은 회사 식구잖아.”
미첼이 킥킥거리며 덧붙였다.
“남 반응 신경 쓸 시간에 너 자신의 발전부터 신경 쓰라고 했어. 근데 그게 맞는 말이더라, 그래서 입스가 바로 풀렸지.”
“우리 둘 다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슬럼프를 깰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군.”
로저가 킥킥거렸다.
“그런데 지금 한태주는 뭘 하고 있을까?”
* * *
“안개처럼 축축이 내게 젖어 드는 너~”
오희운 피디의 작업실에서 태주는 밤늦게까지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장 ABS 백밴드와의 합주 연습이 2일 뒤였다.
그 안에 완벽하게 이정은의 ‘안개비’를 마스터하는 것이 태주의 목표.
오 피디의 디렉팅을 받으며 몇 번이고 노래를 되풀이했다.
그 모습이 기특했던 오희운은 마치 자신의 무대처럼 태주의 노래를 열심히 봐주었다.
“이 부분은 좀 힘을 빼는 게 나아요. 처음부터 힘이 들어가면 감정 과잉처럼 보일 수 있어서. 힘은 나중에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주는 게 좋거든요.”
“명심할게요.”
태주는 오 피디의 조언을 악보에 꼼꼼히 적었다.
여태껏 여러 무대를 꾸며 봤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곡을 분석하며 연습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이들을 위해 그저 신나게 불렀었다.
그런데 이번 ‘마스크 스타’ 경연을 위해서는 가사의 음절 하나하나, 음표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그런 태주를 보던 오 피디가 녹음실 안 마이크를 켰다.
“힘들죠? 좀 쉬었다가 합시다.”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적절히 쉬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오세요.”
오 피디의 완강한 제안에 태주는 밖으로 나왔다.
노래에 온 힘을 쏟아서 그런 걸까.
그는 비틀거리며 소파로 다가가더니 단번에 널브러졌다.
“아, 힘들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
오 피디는 피식했다.
“태주 씨가 제대로 연습했다는 증거예요. 노래 연습 대충하면 몸에 힘이 남아있는데, 제대로 하면 그렇게 힘이 빠지거든요.”
태주는 그가 건네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얼마간 쉬고 나니 힘이 좀 돌아오는 것도 같았다.
그런 그를 유심히 쳐다보던 오 피디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어쩌다가 알게 된 거예요?”
“음……. 미술관에서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미술관이요?”
그 말에 옆에서 백구가 컹컹댔다.
태주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호 형이랑 같이 미술관에 갔었는데,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화가분이 원래는 가수셨다고 하더라고요. ‘안개비’를 부른. 그렇게 알게 됐죠.”
“거참, 신기한 인연이네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꼭 소설 같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피디님. 제가 ‘안개비’ 원곡을 유튜브에서 들어 봤거든요.“
태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원곡은 처연하고도 쓸쓸한 짝사랑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제 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그런데 태주 씨, 원곡 커버를 할 때는 원곡과의 비교는 절대 금지예요.”
“네?”
“그 어떤 노래를 부르든, 디렉터들이 가수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 있어요.”
오 피디가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관객들에게는 만 번의 기교보다 한 번의 진심이 통한다.”
“한 번의 진심이요?”
“네. 그런데 그 ‘한 번의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만 번의 기교, 그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죠. 진심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수가 곡에 대해서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 하니까요.”
[배우랑 비슷한 결이 있네. 배우도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서 작가에게 캐릭터의 취미는 뭔지, 캐릭터가 왜 빨간색을 좋아하는지 등등을 물어보기도 하잖아.]태주도 이중협과 마찬가지로 공감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던 오 피디는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태주 씨, 마스크 스타에서 미스터 버터플라이하고 붙잖아요. 긴장되지 않아요?”
“뭐, 긴장은 늘 되죠.”
태주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미국판 마스크 스타 가왕이잖아요.”
“그래요?”
오 피디가 재밌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럼 미스터 버터플라이를 이길 생각 있어요?”
“당연히 있……, 그런데 왜요?”
“왜긴요.”
그가 태주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를 이길 방법을 내가 태주 씨한테 가르쳐 주려고 그러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