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7)
어안이 벙벙한 태주에게 브리짓이 씩 웃으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어머, 얼어있는 것도 귀엽네.”
그리고 쪽!
눈 깜짝할 사이에 볼 인사를 한 그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계속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태주. 로저한테 당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꽤 남자답다고 하던데, 의외로 귀여운 데가 있었네요?”
[서양 여자들은 만나면 일단 볼 인사부터 하네. 저번에 디에고 크루즈 부인도 너한테 볼 인사하더니…….]므흣한 표정을 짓던 이중협은 이내 태주에게 말을 건넸다.
[태주야, 정신 차려!]얼굴이 살짝 발개진 태주는 자신의 볼에 남은 라벤더 향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 네. 저야말로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 색이 바뀌셨네요? 백발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태주는 브리짓의 다정한 모습에 한껏 집중했다.
분명 ‘마스크 스타’ 녹화장에서는 ‘백발의 마녀’ 그 자체였는데.
[뭐가 진짜 모습인지 정말 모르겠다. 독설가로서의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이렇게 점잖은 레이디로서의 모습이 진짜인지.]그때, 브리짓은 주변에서 번쩍이는 플래시를 힐끗거렸다.
몇몇 사람들은 태주와 자신을 번갈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게 신경 쓰였다.
“어디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나는 솔직히 스캔들 나도 상관은 없는데…….”
“옮기겠습니다!”
브리짓이 농담처럼 던진 말에 흥분한 건 장진혁.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태주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배우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기는 너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
그제야 태주는 브리짓에게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새 호텔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핸드폰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뭘 하는지 꼬치꼬치 캐내려는 것처럼.
태주가 황급히 얼굴을 가리자, 브리짓이 피식 웃어 보였다.
“이미 다 찍혔는데 가려서 뭐 해요. 그리고 걱정 마요. 어차피 우리 둘은 나이 차이 때문에 열애설 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연하 킬러라는 건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걸요.”
퉁퉁거리며 태주가 한 말에 브리짓이 호탕하게 웃었다.
“오호라, 나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하셨군요, 미스터 핸섬?”
* * *
얼마 후.
야근을 자처한 우성림은 어두운 사무실에서 환한 모니터를 몇 시간째 응시하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서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뭔가 건질만 한 기사가 있을 법도 한데, 다 본 것들 뿐이네.”
그때, 옆에서 누군가 아이스 커피를 탁, 내려놓았다.
퇴근한 줄 알았던 홍은지였다.
“성림아, 내가 늘 말했잖아. 좋은 기삿거리는 해지기 전에 생긴다고. 이렇게 해가 다 졌을 때는 연예인들도 다 어딘가에 들어가서 모습을 감춰. 그게 호텔이든, 술집이든.”
우성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선배님도, 제가 혹시 좋은 소스 잡았을까 봐 기대하면서 오신 거 아닌가요?”
“……그래서 뭐 찾은 건 있어?”
홍은지가 조금 머쓱해야 하다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옆에 앉았다.
그런데 마우스를 클릭하던 우성림은 힘 빠진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아뇨. 선배님 말씀대로 지금 시각에 뭔 일이 생길 리가…….”
그때, 그의 눈에 띈 인터넷 커뮤니티 글 하나.
“이게 뭐지?”
“얼른 읽어 봐!”
홍은지의 닦달에 우성림은 서둘러 클릭했다.
모니터 속에는 한태주를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태주의 모습.
선글라스를 벗으며 금발의 여자와 대화하는 모습.
금발의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태주에게 볼 키스를 하는 모습 등등.
우성림이 뭐라고 하기도 전, 홍은지의 우렁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 여자 뭐야! 뭔데 태주 씨한테 엉겨 붙어?”
“선배님, 진정하세요.”
“이 여자가 지금 우리 태주 씨한테 달라붙었는데, 내가 어떻기 진정해!”
“여기 글 좀 읽어 보세요. 태주 씨가 억지로 당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잖아요. 그리고 매니저도 동행했대요.”
우성림은 서둘러 글의 내용을 가리켰다.
서울 XX 호텔에 갔다가 로비에서 우연히 한태주 만났어요. 옆에는 매니저인지 경호원인지, 덩치 좋은 남자가 같이 있었고요.선글라스 썼어도 한태주인 건 금방 알아보겠더라고요, 워낙에 잘생겨서.
호텔 카페에서 약속 있어서 왔다가 한태주 보려고 좀 더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태주한테 어떤 금발 여자가 달려들더라고요.
몇 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 달라붙는 나시 원피스 입었는데, 엄청 몸매 좋았어요.
아마 한태주와 가까운 사이 같았어요. 이렇게 볼 키스도 스스럼없이 하고 같이 어디론가 사라진 거 보니까.
아직 올린 지 얼마 안 된 글이었지만 ‘한태주’라는 이름값 덕분에 화력이 장난 아니었다.
폭발하는 관심만큼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으니까.
-매니저까지 대동하고 만난 사이인데, 사귀는 사이는 일단 아님. 그리고 한태주 성격에 저렇게 탁 트인 호텔 로비에서 사적인 만남을 가질 리 없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자가 너무 한태주한테 친한 척하는데? 그리고 한태주 취향이 원래 연상 아님?
-그런데 저 여자도 연예인 아닌가요? 아니면 일반인? 암튼 몸매는 엄청나게 좋네요.
-둘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식당? 아니면 호텔?
“도대체 저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네요. 한태주 씨가 스스럼없이 함께 간 거 보면, 수상한 여자는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야심한 시각에 태주 씨가 여자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고.”
“지금 겨우 저녁 8시인데요…….”
“아무튼!”
홍은지가 우성림을 일으켜 세웠다.
“출동이다! 이런 특종은 우리가 제일 먼저 잡아야 한다고!”
* * *
한편, 이 사달이 난 줄 모르는 태주는 한식당의 프라이빗 룸에서 브리짓을 마주하고 있었다.
깐깐할 줄 알았던 팝스타 브리짓은 의외로 편견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홍어회도 코가 뚫린다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나도 못 먹는 홍어회를 시켜달라고 하고, 저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이라니. 범상치 않은 여자야.]옆에서 이중협은 꼬리를 살랑이던 백구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뭐라고? 저 여자 너희 주인 닮아서 이쁘다고? 나 참, 한국인하고 미국인하고 뭐가 닮았다고 그래.]“그래서, 내 노래에서 정확히 어떤 점이 궁금한 거죠?”
술이 들어간 브리짓은 태주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곡의 탄생 비화, 그런 게 알고 싶은 건가요? 그런데 그냥 노래만 잘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런 게 왜 중요해요?”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일단 제가 한번 노래를 불러봐도 될까요?”
“뭐, 오케이. 불러 봐요.”
목을 풀던 태주는 이내 노래를 시작했다.
“Sunny day, the day we parted~”
수없이 연습하고 연습했던 곡.
태양왕의 ‘안개비’의 쓸쓸한 감성과는 달리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힘찬 감정선이 돋보이는 곡.
음역대가 단조로운 ‘안개비’와는 달리 ‘Sunny day’는 높은음과 낮은음을 옮겨 다니기 때문에 상당한 기교가 필요했다.
노래 초반부에는 낮은 음역으로, 중반부에서 후반부에는 높은 음역에서 홀로 서겠다는 주인공의 다짐을 토해내야 했다.
그 점을 명시하며 노래를 부르는 태주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런 그를 보던 브리짓의 발랄했던 얼굴도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마치 마스크 스타에서 심사하던 심사위원의 얼굴이랄까.
“I will stand alone!”
마지막 가사를 끝마친 태주가 숨을 몰아쉬었다.
옆에서는 이중협과 백구가 난리가 났다.
태주의 열성팬을 자처하는 이중협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미국의 팝스타 저리 가라야! 역시 한태주. 장하다, 태주야!] [컹컹! 컹컹컹!]이런 호들갑 속에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태주 씨, 누구하고 헤어져 본 적 없죠?”
“네?”
“지금 노래는 기교적으론 완벽해요. 그런데 소울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요.”
소울이 부족하다고?
그렇게 감정을 쏟아부었는데?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브리짓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 노래를 만든 계기는, 사랑하는 약혼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서였어요. 결혼을 앞둔 우리였기에, 앞으로 행복한 나날들만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 온다고 나간 그이는 총기사고에 휘말려서 두 번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했어요.”
“아…….”
“그날은 태양이 작열하는 맑은 날이었죠. 그런 날에 나는 연인과 영원히 이별했고 그 감정을 담아 이 노래를 쓴 거예요.”
이제는 괜찮다는 듯 담담하게 말한 브리짓.
그제야 태주는 가사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태양이 작열하는 날 연인과 헤어졌다는 건, 말 그대로 헤어진 게 아닌,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갈라졌다는 뜻이었다.
홀로 서겠다는 가사는 독립적으로 생활하겠다는 게 아닌,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잘 버텨보겠다는 의지였다.
연인과의 행복했던 나날들처럼, 혼자서도 행복해 보겠다는.
‘……내가 부모님 잃었을 때도 딱 이런 마음이었는데.’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모님을 잃었을 때, 저 혼자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고.’
[그 마음이 ‘Sunny day’의 가사와 맞아떨어진다는 거지?]이중협이 태주를 다독였다.
[그럼 네 경험을 투영해서 노래를 불러봐. 그 몰입도가 훨씬 좋아질 거야.]“태주 씨, 내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알 것 같아요. 저도 당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어요. 저희 부모님이죠.”
그 말에 브리짓이 눈을 크게 뜨자, 태주는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잃고 얼마나 망연자실했던가.
하지만 버텨야만 했기에, 꾹 참고 여기까지 살아왔다.
그런 태주의 감정을 알아차렸는지, 브리짓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한 순간이었다.
* * *
동 시각, 서울 모처의 술집.
얼굴이 흙빛인 남자들이 술을 연신 들이켜는 가운데.
사뭇 초조해 보이는 석월근 차장검사는 옆에서 담담하게 술을 마시는 우창균에게 애원했다.
“우 대표,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지금 우 대표가 실수해서 우리 목숨까지 위태롭게 생겼단 말입니다.”
“그게 어떻게 제 실수입니까.”
우창균이 이를 드러냈다.
“제 별장에서 노시겠다고 한 건 검사장님 뜻이었고. 당시에 여자들 불러서 잘 노셨지 않습니까.”
“말 돌리지 말고요! 지금 그 시체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는지 압니까!”
석월근은 긴장된 숨을 헐떡였다.
“그 시체…… 시체는 다른데 묻었어야지! 왜 거기다 묻어서! 제가 그거 때문에 검사장님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요? 안 그래도 청문회 준비로 정신없는데 그거 때문에 우리 검사장님, 목에 칼 들어오게 생겼단 말입니다!”
“아직 기사 안 떴잖아요. 검찰도 아직 확실하게 잡은 게 없는 겁니다.”
“상대가 칼잡이 강승민이에요! 그 새끼가 얼마나 독한지, 우 대표가 몰라서 그래요.”
“그런 어린놈을 어찌 그리 두려워하십니까. 차장님, 너무 겁이 많으시네요.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놈이 증거를 확실히 잡았다면 왜 아직 기사를 내지 않았겠습니까. 진작에 여론을 이용해 승기를 잡았겠죠.”
그 말에 석월근은 탐탁지 않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우창균은 괜찮다는 듯 담배를 한 대 건넸다.
이내 허연 담배 연기가 그들을 감싸자, 우창균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전에 제가 손을 다 써 놓았습니다.”
“어떻게요?”
“원래 이런 정치권 기사는 연예계 핫한 기사 한방이면 묻히게 된다는 거, 차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연예계에 그런 큰 건수가 있습니까?”
“없다고 해도 만들면 되는 겁니다.”
히죽 웃던 우창균이 말을 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사람이 누굽니까. 한태주죠.”
“……그래서요?”
“한태주 열애설 한방이면 검사장님 기사는 즉시 묻힐 겁니다.”
띠링.
우창균은 자신의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한태주에게 따라붙은 인포트리 기자가 그에게 보내준 기사 초안이 보였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