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네가 숨기고 있는 것 (2)
“흠흠.”
이 어색하고도 당황스러운 침묵을 깬 건 지휘자다.
그는 화려한 나비 가면을 쓴 미스터 버터플라이에게 중앙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가면 속 미안한 얼굴을 하던 태주는 놓여 있던 마이크를 잡았다.
더욱 진실하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말이 길어지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말을 줄인 게 이런 여파를 불러올 줄이야.
[첫인상 하나는 정말 강렬하게 남겼다. 다들 너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그만큼 제가 연기를 잘했다는 거죠. 태주로 의심받는 것보다, 차라리 의심을 안 받고 이렇게 띠꺼운 시선을 받는 게 나아요.’
[크흐흐, 태주 너, 깡이 아주 대단한데?]그를 따라오는 수십 쌍의 따가운 시선들은 곧이어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자 싹 사라졌다.
“흠흠. 간단히 노래 한번 훑어봅시다.”
간주가 시작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합주가 조화롭게 연주되는 이때.
다들 태주가 부를 첫 소절에 한껏 집중했다.
“Sunny day~ the day you left me~”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색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밴드 이곳저곳에서 반주가 살짝 흐트러졌다.
연주에 집중하던 지휘자도 태주를 힐끗거렸다.
미국판 ‘마스크 스타’에서는 파워풀하고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가왕의 자리를 거머쥔 미스터 버터플라이.
이미 유튜브를 통해 수없이 그의 노래를 들었기에, 그 감동은 덜할 거로 생각했는데.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부르는 노래는 방 안의 모두를 전율로 떨게 했다.
“But I will love you always~”
황금빛 나비 가면을 뚫고 나온 목소리는 서서히 방 안을 자신의 노래로 장악했다.
곳곳에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이들도, 감탄하던 사람들도 다들 노래에 빠져들어 무아지경 그 자체였다.
높은 고음역을 시원스레 몰아치는 목소리도.
층층이 쌓아 올린 화음을 연주하는 백밴드도.
다들 한데 조화롭게 어울려 완벽한 무대가 탄생한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수염 난 남자, 박인우는 전율했다.
‘진짜 잘하네. 진짜로…… 잘해.’
그는 확신했다.
태주는 분명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인격으로 바꿔 끼우는 게 틀림없다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인격과 성격, 목소리로 저렇게 완벽한 무대를 꾸밀 수 있겠는가?
* * *
얼마 후.
한 남자와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배회하는 이때.
우성림은 건물을 꼼꼼히 훑으며 중얼거렸다.
“분명히 이 근처가 맞는 것 같은데. 여기 어디에서 마스크 스타 연습한다고 했단 말이야.”
“저 불러서 긴급 취재한다는 게, 이런 거였어요? 실망이에요, 선배님.”
황유나는 오랜만에 우성림의 부름에 흥분해서 뛰쳐나왔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일이 흘러감에 입을 비죽 내밀었다.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취재할 거라는 얘긴 안 하셨잖아요.”
“그럼 기자가 항상 앞에서 당당하게만 취재하는 줄 알았어? 우리 홍 선배가 그러셨다, 알짜배기 기사는 태양이 아닌 그 그림자에 숨어 있다고.”
“그게 뭔 소리예요?”
“남들 다 아는 곳만 뒤지지 말고, 이렇게 남들이 모르는 곳도 쥐새끼처럼 파고들어야 좋은 기사가 걸린다는 거지.”
“아, 그래도 저희 여기서만 몇 시간째 돌고……”
“쉿! 저기 누구 나온다!”
인적이 드물었던 한 건물에서 수상해 보이는 두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는 양동이를 뒤집어쓴 채 옆에 있는 남자의 손에 의지하며 더듬더듬 걷고 있었다.
양동이 쓴 남자의 손을 잡은 남자는 각진 선글라스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재빨리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에게, 우성림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
갑작스레 들이친 기자들에 남자들이 흠칫했다.
우성림은 당황하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쥐여 주며 말을 이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스타뉴스 연예부 기자입니다. 혹시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 맞으시면 제가 드릴 질문이 몇 개……”
“No interview.”
마치 깡통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사이버틱한 목소리.
그리고 순식간에 남자 둘은 우성림과 황유나의 시야에서 없어져 버렸다.
“저기요, 좀 서봐요! 저희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열심히 쫓았으나 결국 놓친 황유나는 목에 걸린 사진기를 덜렁거리며 우성림에게 돌아왔다.
“뭐 좀 건졌어?”
“연사로 찍긴 했는데, 초점이 흔들려서 다 이 모양이에요.”
우성림은 사진을 빠르게 넘겨 보았다.
양동이를 머리에 쓴 남자가 뛰어가는 모습이 번진 채 찍힌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찍은 게 어디냐. 유나 너 덕분이다.”
그때, 우성림은 지하 연습실에서 나오는 여러 단원을 발견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중 하나를 붙잡았다.
“혹시 ABS 백밴드 세션이신가요?”
우성림을 훑어보던 반주자는 재빨리 눈치를 챘다.
“……기자분이세요? 됐어요, 인터뷰 안 해요.”
“한 말씀만 물을게요. 아까 미스터 버터플라이를 본 것 같아서요. 혹시 그분하고의 연습, 어떠셨어요?”
“미스터 버터플라이요?”
“아까 양동이 쓰고 가시던 분 맞죠? 나비 가면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볼까 일부러 양동이 쓰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
그 말에 반주자가 걸음을 멈췄다.
“음…….”
대답을 기대하는 듯 우성림이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연습 때도 워낙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서요.”
“그럼 한 단어로 표현하면요?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부탁드립니다.”
“거참, 끈질기시네.”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하던 반주자가 순간 떠오른 생각을 내뱉었다.
“괴짜? 그냥 괴짜였어요. 그런데 천재적인 괴짜라고나 할까.”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 버렸다.
뒤에 남은 우성림과 황유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짜 괴짜인가 봐, 미스터 버터플라이.”
“하긴, 아까 양동이 쓰고 걸어 다니는 것만 봐도 그래요.”
“그런데 천재적인 괴짜? 그럼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좀 예술적인 타입이라는 걸까?”
“그런가 봐요, 선배님. 그런데 이것만으로 기사 쓸 수 있으세요?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제대로 인터뷰도 못 하고 바로 까인데다가 취재한 것도 별로 없는데요.”
“유나야, 원래 기자는 이야기꾼이야. 한 단어로 한 문단을 쓸 수 있는 게 우리 기자들이란 족속이지.”
우성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서둘러 특급 기사를 써보도록 하지!”
* * *
다음날, 연습실에 가득 모인 백밴드 세션들의 수다로 방 안이 가득 찬 가운데.
“안녕하세요.”
태양왕으로 ‘안개비’를 연습하러 온 태주가 연습실에 들어서자.
핸드폰을 든 채 단원들이 씩씩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 봐라, 기사 제목이 왜 이래? 미스터 버터가 우리 태주 씨를 이긴다고?”
“스타뉴스에서 어떻게 우리 연습실 위치를 알아내 취재했지?”
“우리 뒤를 밟은 거 아니에요? 저한테 인터뷰를 시도하더라니까요.”
짐을 풀어놓은 태주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며 그제야 태주를 발견한 단원들은 서둘러 그에게 핸드폰 기사를 보여 주었다.
“태주 씨 왔어요? 그런데 이것 좀 봐요. 미스터 버터플라이에 관한 기사가 났어요.”
“무대에서 붙어야 할 라이벌인데, 태주 씨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요?”
태주는 크흡,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옆에서는 이중협이 기사에 동봉된 사진을 보고 더욱 크게 웃고 있었다.
[크흐…… 크하하! 천하의 한태주가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뛰는 모습이라니, 진짜 웃겨 죽겠네!] [컹컹컹!]옆에 있던 백구도 몰아치는 웃음소리에 신이 난다는 듯 크게 짖어대는 가운데.
태주는 이 혼잡한 소란에서 얼른 고개를 들어 단원들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어제 미스터 버터플라이랑 연습하셨죠? 어땠어요, 그분?”
그 질문에 단원들은 봇물이 터진 듯 대답했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거만한지!”
“거만한 게 아니라, 사람이 좀…… 괴짜였던 것뿐이지.”
“아니에요. 사람이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말은 안 통해도 마음으로 통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 미스터 버터는 아주 거만해 빠졌더라고!”
“크흠.”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가다듬었다.
일부러 ‘미스터 버터플라이’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최대한 자신답지 않은 모습으로 연기한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스터 버터플라이를 옹호했다.
“긴장하신 거 아닐까요?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몰랐을 수도 있어요.”
“아무튼.”
대화에 은근슬쩍 끼어든 지휘자가 태주를 보고 의지에 찬 눈빛을 불태웠다.
“태주 씨.”
“네?”
“오늘 저희가 태주 씨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러니까 태주 씨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지휘자는 잔뜩 의지에 불타오른 채 덧붙였다.
“우리는 태주 씨가 미스터 버터한테 지는 꼴, 절대로 못 보니까!”
* * *
몇 시간 후, 넥스트 엔터 대표실.
서류가 쌓여 있는 책상에서 몇 시간째 업무를 보던 차용석.
그는 핸드폰으로 전송된 무언가를 보고 코를 훌쩍였다.
“하아……. 태주 이 녀석, 사람을 이렇게 울리면 어떡하냐.”
매니저 장진혁이 찍어 보내준 태주의 연습 영상.
노래 ‘안개비’를 밴드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태주의 목소리가 차용석의 마음속을 촉촉이 적셨다.
“혼자도 견뎌야 하는 거겠지~ 고독한 안개만이 나를 감싸고~”
목이 찢어져라 내는 고음이 있는 것도, 파워풀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촉촉하게 젖어 드는 묵직한 목소리가 차용석을 정곡으로 찌르자.
주르륵.
차용석은 제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노래를 감상 중이었다.
그때, 문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김진수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응, 들어와.”
서둘러 핸드폰을 치운 차용석은 김진수를 맞이했다.
“여기 결제하실 서류입니다.”
차용석의 얼굴을 힐끗하던 김진수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표님, 일이 힘드시면 저희한테 좀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왜?”
“아니, 눈물 자국이 볼에…….”
그제야 차용석이 거울을 확인하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진혁이가 보내준 태주 마스크 스타 연습 영상을 보다가, 워낙에 감동적이라 눈물을 다 흘렸네. 김 팀장도 봐봐, 정말 잘하더라고.”
차용석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김진수.
이내 영상을 감상한 그는 아무 말 없이 먼 산을 보며 감정을 가다듬기 바빴다.
“저거 봐, 김 팀장도 눈물 글썽거리는 거 아니야?”
“흠흠, 노래가 참 감동적이네요. 그 흔한 고음 하나 없어도 이렇게 노래에 빠져들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늘 사무적이고 프로페셔널한 김진수가 이렇게나 몰입할 수 있다니.
차용석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태주의 진심은 그 누구에게나 통하기 마련이라니까.’
그때,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서가 들어왔다.
김 팀장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그녀.
차용석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요, 무슨 일인데요?”
“익명으로 소포가 하나 와서요.”
“소포?”
미심쩍은 표정으로 차용석이 소포를 건네받아 열어보자.
자그마한 USB가 툭, 떨어졌다.
“이게 뭐지?”
“USB 아닙니까? 라벨로 무슨 날짜 같은 게 쓰여 있는데요.”
옆에서 지켜보던 김진수가 라벨이 쓰여 있던 날짜를 천천히 말했다.
“20XX년 5월 5일.”
날짜를 생각하던 차용석의 눈이 왈칵 커졌다.
“이날은 중협이 형이 죽은 날인데?”
또한, 그가 이중협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