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한태주와 이중협의 연결고리 (3)
* * *
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차용석은 그때의 의문을 아직도 간직한 채였다.
“7년 전에도 형님은 저더러 그냥 넘어가라 하셨었죠.”
“그러는 너는, 도대체 왜 이 사건에 그렇게 매달리는 거냐?”
“형님!”
“너란 녀석도 참 독하지. 일 그만두었던 동안 중협이 사건 혼자서 조사하더니 결국에는 검찰까지 끌어들이고.”
차용석은 주먹을 꼭 쥔 채 이현식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 정말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야산에서 발견된 중협이 형의 시체, 검찰에서 조사 들어간 경과들도 있고요.”
“용석아, 그런데 잘 생각해 봐라. 7년 전에는 너 혼자였지만, 이제는 너한테 딸린 식구들이 있잖아.”
그 말에 차용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자.
이현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무엇보다 너, 한태주 생각은 안 해?”
그 말에 차용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곡을 찔렀다 확신한 이현식이 말을 이었다.
“중협이 매니저였을지 몰라도 너, 지금은 한태주 매니저다. 지금 걔한테 걸려있는 대형 프로젝트만 몇 개냐. 너, 그거 중협이 사건 때문에 전부 포기할 거냐?”
그 말에 차용석의 눈이 번뜩였다.
“누구보다 태주가 중요한 건 저예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태주도 저만큼이나 아니, 저보다도 더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더군요.”
“……하긴, 한태주가 이 사건과 관련돼 있기는 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현식의 말을 차용석은 놓치지 않았다.
“네? 한태주가 중협이 형 사건에 어떻게 관련됐는데요? 검찰 측에서도 못 알아낸 부분인 거 같은데.”
“당연히 검찰 측에서는 모르지. 한태주 관련된 건 그쪽 고위급 인사가 덮었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이현식이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뭐, 나도 들은 이야기야. 확실하지는 않고…….”
* * *
동 시각.
미사리 카페에서의 볼일을 끝내고 나온 태주.
그리고 그런 그를 배웅하는 이정은과 장지숙.
그 둘은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살펴 가세요, 태주 씨.”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태주.
그런데 문득 일전에 심은설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다.
“이정은 씨, 혹시 예전에 그린 그림 중에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큰 나무가 자리 잡은 거, 기억나세요?”
“아, 그거 지숙이 언니한테 준 그림 같은데요.”
“맞아. 그런데 태주 씨가 그건 왜요? 그거 사 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저희 드라마 소품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주인공의 성격을 제일 잘 나타낼 수 있는 소품이라 꼭 쓰고 싶대요.”
태주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혹시 드라마에 사용해도 될지 여쭤보려고요.”
이정은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히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제 작품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 드라마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니에요, 아주 대단한 작품이죠.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으로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태주의 가슴속에서 묻고 싶은 것이 꿈틀거렸다.
이제껏 함께 다니던 백구가 없는 게 사뭇 허전했다.
이중협에게 백구가 성불했다는 말은 들었다.
이제껏 백구가 주인을 잊지 않고 노력했던 만큼, 주인인 이정은도 백구를 잊지 않았나 궁금했다.
“그런데 혹시, 예전에 키우시던 하얀 개 생각나세요? 장지숙 씨한테 들었던 것 같아서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이정은은 흔쾌히 대답해 줬다.
“사실 아까, 노래 부르면서 우리 백구가 생각나지 뭐예요. 주책맞게.”
“그러셨어요?”
“제가 가수 시절부터 쭉 키운 강아지였는데,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존재였거든요. 가족한테도 못 털어놓은 것들, 우리 백구한테는 다 털어놨으니까요.”
이정은이 그리움 가득한 눈을 깜빡였다.
“우리 백구가 나 노래하는 거, 참 좋아했어요. 내 노래 들으면서 자는 게 취미였거든요. 그런데 아까 노래할 때, 발밑에서 꼭 백구가 내 노래를 듣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니까요. 정말 신기하죠.”
태주는 이중협과 놀랍다는 듯한 눈빛을 마주쳤다.
[백구가 죽어서도 자기 주인을 살렸네. 끝내 다시 노래시킨 걸 보니, 역시 명견이야.]‘형의 도움으로 내가 다시 연기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뭐, 굳이 그렇게 비교하자면야. 흐흐.]부인하지 않던 이중협은 태주에게 씩 웃어 보였다.
[나는 너의 백구나 마찬가지니까.]* * *
한편, 이현식과의 만남을 끝낸 차용석이 굳은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왔다.
이현식은 먼저 일이 있다며 간 터라 차용석은 혼자서 차에 올랐다.
“그 옛날 현식이 형이 아니네.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일전에 돈독한 선후배 사이였던 그들.
그러나 이중협 사건 이후에는 완전히 관계가 달라져 버렸다.
착잡한 표정을 지은 차용석의 귓가에 아까 이현식이 한 말이 맴돌았다.
-너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봐. 과거의 일에 매몰돼, 현재 네가 쥔 보석마저 놓칠 거냐? 특히 한태주같이 네가 공들여 키운 원석을?
“하아…….”
운전대를 잡은 차용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다지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때.
김진수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미국 스케줄이 잡혔습니다. ‘나의 미래’ 영화가 미국 개봉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요.
“태주도 동행이지?”
-네. 디에고 크루즈와 함께 주연배우로서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홍보 일정뿐만 아니라 드라마 ‘웜 데드’ 촬영도 병행해야 합니다.
“흐음, 이번에는 미국 일정이 길어지겠네. 그럼 옥장파 감독하고의 영화 일정을 잘 조율해 봐야겠어.”
-안 그래도 옥장파 감독님이 여주인공 공개 오디션을 8월 안으로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주인공 역할에 유명한 배우들 여럿이 미팅을 요청하지 않았었나? 지금 우리 영화에 관심 많잖아, 다들.”
-그런데 감독님은 미팅보다는 직접 오디션을 봐서 뽑는 걸 선호하시는 모양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여주인공이 풋풋하면서도 열정적인 매력이 잘 살아야 하다 보니, 직접 비교해보고 뽑으려는 것 같습니다.
“흠……. 알았어. 그럼 그렇게 진행 하는 거로 하고. 남은 건 나중에 나 회사 들어가면 얘기하자.”
전화를 끊은 차용석의 얼굴이 더욱 진지해졌다.
“태주한테 걸린 프로젝트만 몇 개냐. 진짜 태주 어깨가 무겁긴 하네.”
태주 생각을 하다 보니 이현식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일에 매몰돼서 현재의 보석을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것도 자신이 자식처럼 아끼는, 태주의 일인 경우.
“무슨 일이 있어도 태주는 확실히 챙겨야지. 다른 일에 정신 팔려서 소홀히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의문 하나.
“그런데 태주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 * *
“야간 촬영이 있던 날, 오후에 원주는 왜 갔을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강승민.
그는 이내 수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중협이 차를 타고 원주 XX동으로 향하던 길에 마주친 사람들이 있어요. 뭐 때문일까요?”
“검사님,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사건 파일에 파묻힌 강승민 검사가 중얼거린 말에 정 수사관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오자, 강승민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중협 행적부터 다시 꼼꼼히 조사해 보니, 좀 의문가는 점들이 생겨서요.”
수사관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 언론에 보도된 대로 촬영장 사고 직후 사망한 건 절대 아니라는 거죠.”
“일단은 이중협의 촬영 날 행적을 샅샅이 파헤쳐 보자고요. 이날 오후에 도대체 원주는 왜 갔을까요. 여기 CCTV에 찍힌 사진도 있잖아요.”
“그런데 검사님, CCTV에 찍힌 것만으로는 그 차에 탄 사람이 이중협임을 밝히기가 좀 어렵습니다. 혹시 이중협과 대화를 나눈 누군가가 있었다면 모를까…….”
“원주 별장으로 가던 길에서 이중협은 분명 누군가를 만났어요.”
강승민이 번뜩이는 손길로 CCTV 캡처 사진을 건넸다.
흐릿한 사진 속 차가 한 대 멈춰 있었고, 두 명의 소년이 운전석에 바짝 붙어있는 게 대화하는 듯 보였다.
“여기 보세요. 운전석에 있던 이중협에게 말을 건 게 확실합니다.”
파일을 뒤적거리던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그런데 사건 파일에서는 이 둘을 참고인 조사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이상하네요. 이중협과 마지막으로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조사조차 안 했다니.”
“둘 중 하나죠.”
날카로운 눈빛의 강승민이 눈을 번뜩였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 안 했거나, 아니면 윗선에서 이들을 참고인 조사하는 걸 막았거나.”
“일단 이분들부터 찾아봐야겠군요. 살아있는 이중협 씨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7년 전 자료라 이들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끝까지 노력은 해 보되, 다른 증거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파일을 뒤적이던 강승민이 정 수사관에게 물었다.
“일전에 이현식 씨 조사하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
“이현식 씨도 수상한 점이 많더라고요. 7년 전, 이중협 씨 사건 이후, 이선우 씨 회사로 염수정 씨 데리고 이직했잖아요. 그 후로 이중협 씨 사건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더라고요.”
“차용석 씨는 로드였고, 이현식 씨는 담당 팀장이었어요. 누가 봐도 차용석 씨보다 이현식 씨가 아는 게 더 많은데, 조사에서 배제되었다고요?”
“부형윤 검사장 라인이 힘을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놈의 부형윤.”
“더 충격적인 건 뭔지 아십니까?.”
“이보다 더 충격적일 게 남아 있습니까?”
수사관은 비밀을 말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한태주 씨가 어렸을 적 당했던 교통사고요. 부모님을 잃었던.”
“그게 왜요?”
“한태주 씨가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은 그 여자가 부형윤 씨 전 부인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거예요. 사람이 셋이나 죽었는데도요.”
“뭐?”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강승민이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이 사건에 태주가 엮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부형윤 검사장의 지금 부인이 두 번째 부인이었어요?”
“네, 첫 번째 부인하고 사별한 후 지금 부인하고 재혼했죠.”
“그때 부형윤 씨가 부인과 사별했다고 어찌나 울던지, 그걸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쌍해했지만 저는 안 믿었습니다.”
수사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 아내 장례식에서 그 인간, 분명 웃고 있었거든요.”
* * *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당에서도 문제없이 법무부 후보 자리를 내줄 걸세.”
“물론이죠, 검사장님. 제아무리 강 검사가 까불어봤자 그놈은 송사리입니다.”
“송사리긴 한데, 꽤 거슬리는 송사리지.”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부형윤이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일개 검사라 해도, 그놈은 성골 중의 성골이야. 만만하게 볼 수 없단 말이지, 그놈의 존재감은.”
“검사장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막말로 그놈이 제 분수도 모르고 설치면, 제가…… 쓱!”
우창균이 으스스한 표정을 한 채 손으로 제 목을 그어 보였다.
“처리하는 건 쉬우니까요.”
“이 사람아, 요즘에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조심해.”
“검사장님, 저 못 믿으시는 건 아니시죠? 제가 그동안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 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의미심장한 눈빛이 그들 사이에 오가는 가운데.
부형윤은 지난 20년간 알고 지낸 우창균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하수인으로 살며, 자신을 대신해서 온갖 더러운 일들을 처리해 온 우창균.
아니, 하수인이 아니라 약점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과거를 공유하는 아킬레스건.
부형윤은 우창균과 자신이 한배를 탔음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가 쓸모가 없어지면 배에서 떨어뜨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만큼 우창균은 아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
상황을 꾸며내 전부인이 사고를 내게 만든 것도.
한태주의 가족을 죽인 그 사고를 덮은 것도.
‘이놈부터 처리해야 되는 거 아니야?’
가장 최측근이자 비수를 꽂을 망나니인 우창균에게 부형윤이 처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순간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