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처음 도전하는 연기 (1)
통화를 마친 후.
태주 곁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용석이 그를 힐끗했다.
“잘 됐어? 어떻게 됐냐?”
“없던 사실을 가지고 오만하게 군 협박범의 말로가 어떻겠어요.”
태주가 자기 목을 손가락으로 쓱, 그었다.
“파멸이죠.”
“이야……. 태주 네가 우리 편이라 정말 다행이다. 이 치밀하고도 빈틈없는 녀석.”
차용석이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스르륵, 자리에 무너졌다.
그동안 제작사 대표로서 영화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출연자 이슈로 영화를 갈아엎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출연자 이슈는 거짓으로 판명 났고, 시진영의 결백을 증명하러 그의 개그맨 시절 동료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형, 설마 시진영 씨를 의심한 거예요?”
온몸에 힘이 빠진 듯한 차용석을 본 태주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형이 그렇게까지 멘붕에 빠진 건 처음 봤어요.”
“내가 이제야 알았다. 매니지먼트 대표로서 배우들 관리하는 거랑 제작사 대표로서 작품을 무사히 잘 끌고 가는 건 결이 다르다는 걸. 특히나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이슈가 터져 나오면, 그것도 연기를 잘해서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배우와 관련 있으면 더더욱……. 어휴.”
이번 사태를 겪은 몇 시간 동안 차용석의 얼굴은 폭삭 늙은 듯 보였다.
“제작사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영화인데 괜한 이슈에 휘말렸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천만다행이다, 태주야. 네 덕분에 살았어.”
그때, 박인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ABS 28기 개그맨분들, 도착하셨습니다. 인터뷰 준비 완료입니다.”
“수고했다, 인우야. 그럼 대회의실로 그분들 모시고……. 진혁이는 어디 있어?”
“진혁이는 개그맨분들 에스코트하느라 정신없죠. 그런데 정말 친했나 봐요. 오랜만에 만났다는데 다들 반갑게 인사하고 난리가 났어요.”
“우리도 가봐요.”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인터뷰가 진행될 대회의실로 향했다.
차용석은 성큼 안에 들어가 스타뉴스의 우성림 기자와 장진혁, 오늘 인터뷰를 해줄 28기 개그맨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태주도 막 들어가려는 찰나, 옆에서 쭈뼛거리는 시진영을 발견했다.
동료들을 오랜만에 봤다는 반가움과 쑥스러움, 그리고 멋쩍음이 그의 눈에 어지럽게 얽힌 듯했다.
그가 문가에서 발을 떼지 못하자, 태주가 그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들어가 보세요. 시진영 씨가 정직하게 여기까지 노력한 것을 아는 동료분들이니,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겁니다.”
그 말에 시진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이어 용기를 얻은 듯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진영이 대회의실에 들어선 순간.
마이크를 차며 인터뷰 준비 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시진영이 멋쩍어하며 한 발짝, 두 발짝 그들을 향해 발을 내딛자, 동료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와락 안았다.
몇 년간 보지 못했던 그리움을 보상받으려는 건지.
아니면, 밑바닥부터 여기까지 열심히 일해서 올라온 동료가 괜한 모함을 받는 것이 서러웠던 건지.
인터뷰 전인데도 벌써 다들 감정에 가득 젖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그 감격의 도가니에서 장진혁은 홀로 멀리 빠져 있었다.
“이제 시작하시죠.”
우성림 기자가 진행하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시진영을 주축으로 한 28기 개그맨들이 바쁘게 증언했다.
“저희 28기 개그맨들끼리는 사이가 좋았어요. 그런데 저희보다 2년 선배였던 황철용 선배가 군기를 잡아서 힘들었죠.”
“저희가 낸 좋은 아이디어를 그 선배가 다 가져갔어요. 뺏은 거나 다름없었죠.”
“그 선배는 걸핏하면 휴게실로 저희를 불러서 각목으로 때렸어요.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개그맨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진영이는 끝까지 버텼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마’ 코너로 성공했을 때 기뻤고, 배우로 전향한다고 했을 때도 응원했어요.”
“진영이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온 희극인이에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갈취한 적도, 군기 잡은 적도 없죠. 특히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은 더더욱 없어요.”
불이 붙은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는 이때.
창문 너머로 새빨간 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둑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밤은 저물고, 희망의 아침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 *
아침 7시.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올라 하루를 시작하는 시각.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시진영의 저격 글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밑으로 해당 글의 진위성을 의심하는 댓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시진영 저격한 글 어디 갔음? 튀었음?
-시진영이 개그맨들 군기 잡고 엄청 악질이었다고 하던데. 배우로 전향한 것도 개그 같이 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그거 전부 거짓말이었다던데요. 지금 스타뉴스에 올라온 기사 못 봤어요?
-애초에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야기는 걸러 들어야 함. 커뮤니티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글삭하고 튀는 사람들 천지인데.
-지금 시진영 인터뷰 떴던데요. 배우병 걸려서 배우로 전향한 건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황철용이란 선배의 괴롭힘 때문에 개그계를 떠난 거라네요.
-같은 이유로 떠난 사람이 제법 있는 것 같던데요? 28기 개그맨들도 그렇고.
-28기 개그맨 중에 손국영이란 사람도 있었는데, 암으로 투병하다 죽었대요. 아마 그것도 황철용이 군기 잡고 괴롭혀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해요. 쯧쯧.
-악의 축은 따로 있었네요. 그럼 인터넷 커뮤에 시진영 저격글 쓴 것도 황철용인가 봐요.
어느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는 시진영, 그리고 황철용이 점령한 지 오래.
아침 일찍 올라온 우성림의 기사는 인기 검색어의 인기를 뒷받침했다.
* * *
동 시각.
스펙타클했던 새벽이 지나고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향하던 태주.
운전석에 앉은 건 장진혁이었다.
태주는 잔뜩 굳은 그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인터뷰를 마친 28기 개그맨 동기들과는 반가운 인사를 나눴지만, 시진영과는 데면데면하며 악수도 하지 않은 그였다.
‘맞아요, 화해하라고 하는 거 저도 들었어요.’
궁금증이 슬금슬금 올라와서 그런 걸까.
은근슬쩍 고개를 돌린 태주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진혁 씨는 시진영 씨랑 친해 보이지 않던데, 이렇게 결백을 위해서 나선 이유가 있어요?”
“……그냥요.”
장진혁이 고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진영이 형, 제가 미워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즐겁게 연기하는 사람이 속에 그런 추악한 마음을 가졌을 리 없잖아요.”
그 말에 장진혁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이 녀석, 시진영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본드를 붙인 것처럼 군단 말이야. 지금도 이야기하다 말고 입 다문 것 좀 봐.]“제 생각에는 장진혁 씨와 시진영 씨, 두 분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조심스레 말을 거는 태주에게 장진혁이 쓱, 고개를 돌렸다.
이제껏 담담한 표정만을 보였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날것의 표정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오해는 무슨. 그냥……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뿐입니다.”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저 때문인 것 같아요.]옆에서 손국영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제가 아프기 전에는 진영이하고 진혁이, 둘의 사이가 더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나빠진 이유가요.]역시 둘의 사이를 회복시키는 게 손국영의 한을 알아낼 키포인트인 듯했다.
* * *
“이야, 연예계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네요. 또 이슈가 터진 걸 보니.”
“무슨 이슈요?”
아침 일찍 출근한 정 수사관은 강승민에게 진한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한태주 씨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에 개그맨이 캐스팅됐었거든요?”
“개그맨 누구요? 태주한테 그런 말 못 들었는데.”
“태주 씨가 검사님 애인입니까, 사촌 동생이지. 뭘 이런 캐스팅 소식까지 시시콜콜 공유하겠어요.”
“흠흠. 그래서 캐스팅된 개그맨이 누군데요?”
“포기하지 마! 아세요? 시진영이라고 그 코너로 떴었는데, 배우로 전향했더라고요. 배우병 걸려서 전향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선배의 괴롭힘에 질려서 그런 거였데요.”
“이런 소식은 순식간에 잘만 퍼지면서 이중협 소식은 이슈조차 되지 않는군요.”
냉랭한 표정의 강승민이 정곡을 찔렀다.
“다들 마음이 얼어붙은 건지, 아니면 이중협이란 배우가 그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던 건지.”
“다들 외면하고 싶은 거겠죠.”
수사관이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항상 즐겁고 화려해야 할 연예계가 그런 끔찍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다들 믿을 수 없을 테니까요.”
강승민은 신중하게 서류를 한 장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사고로 죽었다던 부형윤 검사장의 전부인, 천경실의 사고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태주의 부모님을 죽인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태주가 이번 사건과 이렇게 엮여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태주를 괜히 건들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여러 상처를 입은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에만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이 너를 가만히 놔두지를 않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강승민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가득 찬 한순간.
“천경실 씨가 몰았던 이 차 말입니다. 혹시 아직 남아있습니까? 찾을 수 있겠어요?”
“기록에도 남아있지만, 한태주 씨가 탔던 차랑 정면으로 부딪쳐서 보닛이 완전히 찌그러졌어요. 아마 차는 사고 직후 폐차시켰을 걸로 파악됩니다.”
“그랬겠죠. 사고가 난 차를 그냥 두었을 리는 없으니. 그런데 저는 왜 자꾸만 누군가 이 차에 장난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사건 기록에 의하면, 아니 정확히는 사고를 냈던 천경실의 남편, 부형윤 검사장의 증언에 의하면요.”
기억을 더듬던 수사관이 덧붙였다.
“자기 부인이 장롱면허나 다름없었대요. 운전 경험이 적어서, 아마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을 밟은 것 같다고. 그런 식으로 진술했네요.”
“급발진일 수도 있습니다.”
강승민은 속에 있던 의심을 털어놓았다.
“그것도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고장으로요.”
“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그런데요, 검사님.”
계속해서 이어지던 설전에 수사관은 강승민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는 도대체 한태주 씨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건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이중협 씨 살인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연쇄살인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줬죠.”
강승민이 눈을 번쩍였다.
“부형윤이 전부인을 죽인 것처럼, 이중협도 처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