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처음 도전하는 연기 (2)
“연…, 연쇄살인이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듯 수사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방향으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은 정 수사관도 짐작하고 있었잖아요. 이 사건, 단순히 이중협을 표적으로 죽인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고개를 숙인 수사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네, 이중협 씨를 표적으로 해서 죽인 것은 분명하죠.”
“맞습니다. 다만, 부형윤 씨의 전부인 사건도 그 사고와 결이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특히나 천경실, 이중협 이 두 사람이 부형윤이 꼭 처리해야 할 사람이라고 치면 말이죠.”
“잠, 잠깐만요. 부형윤 씨가 전부인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정 수사관, 얼마 전에 들어온 제보 기억나죠? 내연녀 관련된.”
그 말에 수사관이 분노의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전부인의 친한 친구에게서 온 제보였었죠. 지금 부인이 원래는 부형윤 검사장의 내연녀였다고요.”
강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 그 여자에게 한창 빠져 있던 부형윤 검사장이, 전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전부인은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 사실을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나 검찰 측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겉으로 보기에 검사장과 전부인, 무척이나 금슬이 좋았던 부부였으니까요.”
“그런데 부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도 전, 교통 사고가 나서 죽어버린 겁니다.”
강승민은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사고는 천경실 씨의 운전미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분명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거였을 겁니다.”
“그런데 검사님, 차는 이미 폐기되었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즈음에 전부인의 차를 카센터에 수리 맡기 기록이 있더라고요. 그때 차를 봐준 정비사가 아직도 일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쪽을 파보면 될 것 같아요.”
끄덕.
그때 생각을 정리하던 수사관이 의견을 냈다.
“그럼 천경실 씨의 사고와 관련된 한태주 씨도 증인으로 불러서 사건 진술을 다시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주를, 왜요?”
한태주의 이름을 거론하자 한껏 예민해진 강승민.
“그 사건으로 부모를 잃었고, 그때의 기억은 고통으로 남았을 겁니다. 굳이 증인으로 부르지 않아도 차량에 결함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있을 거예요.”
“검사님이 늘 말씀하신 것, 잊으셨습니까?”
수사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검사님은 유독 한태주 씨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과잉보호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그가 멈칫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날 일이 사고가 아닌 의도적인 사건이었던 거로 시점 전환하고, 서둘러 참고인 조사부터 합시다.”
그리고는 말문을 돌린 강 검사에게 수사관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시선을 던졌다.
그렇지만 도로 굳게 닫힌 그의 입을 보며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달칵.
문이 닫히자 강승민은 책상 위 놓여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태주와 그가 단둘이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가 한태주에게 약한 건 사실이다.
때문에 부형윤의 전 부인의 사고에 그가 아끼는 사촌이 엮인 것이 무척이나 찝찝했다.
그렇지만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협과 한태주, 둘 다…….”
부형윤의 계략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것을.
* * *
동 시각.
방송국에 미팅을 위해 방문한 태주는 KTS 드라마국 국장과 악수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예능국장은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한숨도 못 잔 얼굴이시네요. 박인우 실장한테 들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익명의 글 때문에 고생하셨다고요.”
“그래도 잘 처리했습니다.”
“다행입니다.”
국장이 다행이라는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우리도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이번에 영화 관련해서 액땜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원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시진영 씨의 결백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해 국장님을 긴장시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태주 씨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야 태주 씨가 촬영 앞두고 다른 일로 머리가 안 아팠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말이 길어지자 국장은 그에게 절실한 눈빛을 보냈다.
“드라마 촬영하러 미국 가기 전에, 태주 씨가 우리 드라마를 위해서 한 가지만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메이킹 영상이며, 캐릭터 인터뷰는 다 따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 가지 홍보만 더 해줘요.”
국장이 눈을 찡긋하며 부탁했다.
“‘굿맨’에서 태주 씨 캐릭터가 사이코패스 살인범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KTS에서 교양 프로그램으로 ‘그것이 궁금하다’를 런칭하거든요. 거기 첫 화 패널로 한태주 씨가 형사들과 함께 출연하면 어떨까 싶어요.”
“드라마 홍보 차원에서요? 흠…….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형사분들이 출연하시나요?”
“박창현 형사님, 권혁중 형사님, 그리고 위성곤 형사님이에요. 다들 입에 모터 단 분들입니다. 게다가 현직에 계실 적에도 제법 성과가 좋으셨고요.”
국장의 곁에서 출연자 명단을 살피던 이중협.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내 사건 담당했던 형사인데?]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권혁중이란 이름.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막 귀신이 되자마자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경찰서를 찾았거든. 갑자기 죽은 걸 도저히 인정하지 못했으니까.]‘형이 악귀로 변했던 때 말이에요?’
[그 직전이야. 내가 악귀로 변한 건, 경찰서를 다녀간 후였으니까. 아무래도 경찰에서 급히 사건을 덮은 것에 분노했었나 봐.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이중협이 심각한 얼굴을 태주와 맞췄다.
[다들 이 사건을 어물쩍 넘어갈 때, 권 형사만이 내 죽음을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여긴 것 같아. 다들 이 양반이 하는 소리에 소설 쓴다고 그랬던 걸 보면…….]‘사실은 옳은 방향을 짚으신 거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상황에 태주의 눈이 반짝 빛났다.
* * *
며칠 후, 주말의 한 카페.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초코 라떼를 마시며 구석에 앉아 있다.
달콤한 음료와 달리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무척이나 걸걸했다.
“선배님, 정말 그 예능 프로그램하실 겁니까?”
후배의 질문에 권혁중은 어깨를 으쓱했다.
“안 할 이유도 없잖아? 그리고 요즘 사건 프로그램에 서로 못 들어가서 난리야. 그냥 앉아서 입만 털고 오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하긴, 선배님은 입담이 워낙 좋으시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번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룰 사건들은 주로 어떤 것들입니까?”
“완결된 사건도 있고, 미제 사건도 있고.”
권혁중이 빡빡 밀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가장 첫 번째로 다룰 사건은 이중협 살인사건.”
“이중협 사건이라면……. 선배님께서 초동 수사를 담당하셨던 그 사건이잖아요? 요즘에 다시 조명되고 있기도 하고요.”
“내 형사 인생 30년 동안 유일하게 풀지 못한, 그래서 후회가 남는 사건이지.”
“풀지 못한 건 아니었죠. 그때는 워낙에 증거가 없었잖아요. 그리고 모든 게 촬영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로 흘러가고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보던 후배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윗선에서 수사를 강제 종료시켰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검찰 쪽에서 다시 수사를 재개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단 말이야. 그 윗선과 분명 대립하는 세력인 게 분명해”
“그런데 이번 첫 화 녹화에서는 형사들만 나오는 겁니까?”
“아니, 게스트도 나와. 한태주라고, 요즘 유명한 배우 있잖아.”
“한태주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배우잖아요. 그런데 그 배우가 왜 나온대요?”
“같은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홍보차 나온대. 거기서 살인범 역할이라더라.
탁.
다 먹은 음료를 테이블에 놓는 권혁중의 표정은 큰 흥미가 없어 보였다.
“홍보 차원에서 나오는 배우가 뭐 얼마나 사건에 대해 깊이 알겠어? 그냥 장단만 맞추다 가는 거겠지.”
* * *
며칠 후.
경찰복을 입은 태주가 KTS 방송국에 들어섰다.
파란색 와이셔츠에 군청색 넥타이, 그리고 군청색 바지를 입은 모습이 무척이나 정갈해 보였다.
그 옆에서 검은 양복 차림의 장진혁이 나란히 걸어가자.
그들을 힐끔거리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기실에서 마이크를 차고 있던 태주에게 여러 스태프가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저희 방송에 한태주 씨가 오실 줄 몰랐어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끊이지 않는 관심은 태주가 녹화장에 들어서서도 이어졌다.
MC 도범수와 패널로 참석한 형사들은 첫 화 게스트가 인기배우라는 것에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한태주 씨 요즘 엄청 바쁘실 텐데 우리 프로에 정말 게스트로 나오시다니.”
“원래 제가 이런 범죄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드라마 ‘굿맨’ 홍보 때문에 나온 거 다 알고 있거든요?”
도범수의 말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퍼진 가운데.
이윽고 ‘그것이 궁금하다’ 녹화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드라마 ‘굿맨’에서 정의로운 경찰이자 비밀을 숨기고 있는 신윤재 역할을 맡은 한태주입니다.”
“한태주 씨는 오늘 사건에 대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평소 시상식에서 이중협 배우를 제일 존경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중협 선배님은 제가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된 원동력입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 노력 등등 정말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야, 언제나 들어도 내 칭찬은 기분 좋단 말이야.]태주는 옆에서 감동받은 듯 서 있는 이중협을 힐끔거렸다.
“그래서 오늘 이중협 선배님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이 시간은, 저에게 조금 더 특별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태주의 인사를 시작으로 녹화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오늘 다룰 주제는 이중협 살인사건입니다. 7년 전, 촬영장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당했다고 알려진 이중협 씨의 죽음이, 최근 XX산에서 발견된 사체를 시작으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형사님들,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엠씨의 물음에 형사들이 열심히 달려들었다.
“7년 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단순한 촬영장 사고라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파헤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연예계에서 피치 못할 사고로 죽는 분들이 한둘입니까. 세트장이 무너져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이렇게 싸인 미스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죠.”
[내가 죽었을 때도 딱 저런 반응이었지.]이중협이 태주의 귀에 속삭였다.
[불의의 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그때, 생각에 빠져 있던 권혁중이 입을 열었다.
“7년 전, 이중협 배우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로서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언론에서 밝혀지지 않은 내용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추측이라 섣불리 말하지 않았거든요.”
권혁중이 태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싸인 미스를 냈던 그 스턴트 말입니다. 사고가 난 직후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술도 받았죠. 물론 정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뭐라고 말했습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태주 뒤에서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던 이중협을 꿰뚫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