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처음 도전하는 연기 (3)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이중협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권혁중을 바라보았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싸인 미스를 낸 스턴트가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그것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형사에게 밝히고 싶은 그의 양심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해본 말?]‘아니에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의미 없는 말을 했을 리 없잖아요.’
태주는 이중협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분명히 저 발언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요. 저분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그때, 다른 형사들이 끼어들었다.
“형사님, 그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왜 당시에 공표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권 형사님,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만약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냥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사건입니다.”
“그때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그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유언도 남기지 못한 상황이라 증언의 신빙성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다소 회피하는 듯한 시선의 권혁중.
그런 그를 보던 이중협이 팔짱을 끼었다.
[저 형사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아쉽긴 하다. 저 말을 7년 전에 발표했더라면, 내 사건의 진실이 좀 더 빨리 밝혀지지 않았을까 싶어서.]그때, 엠씨가 태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태주 씨는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예계 선배고, 시상식에서 공공연하게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배우라고 말했던 이중협 씨와 관련된 일이잖아요.”
“이건 분명 사고가 아닌 사건입니다. 그것도 아주 재능있었던 배우가 목숨을 잃은 비운의 사건이죠.”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태주의 시선은 권혁중에게 향했다.
“제가 매 순간 아쉬워하는 건, 이중협 선배님의 뛰어난 연기에 감동해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정작 선배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겁니다.”
“정말 안타깝군요.”
“이중협 선배님은 분명 억울하게 목숨을 잃으신 거예요. 그러니 그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면, 후배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때 어둠에 잠겼던 권혁중이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번쩍 빛냈다.
* * *
녹화가 끝난 후.
태주는 서둘러 권혁중 형사의 뒤를 쫓았다.
“형사님, 형사님!”
“한태주 씨?”
당황스러운 듯 뒤를 돌아보는 권 형사에게 태주가 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형사님, 7년 전 이중협 선배님 관련해서 혹시 그때 알아낸 정보들, 더 없습니까?”
“이미 윗선에서부터 막혀버린 수사였어요. 내가 알아낸 건 별것 없었습니다.”
“아니요, 오늘 스턴트맨의 증언처럼 분명 형사님은 무언가를 더 알고 계십니다.”
“…….”
“형사님이 현직에서 물러나신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 더는 숨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정곡을 찔린 듯, 형사의 눈이 와르륵 흔들렸다.
“당신 같은 배우가 뭘 압니까. 내가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 또 얼마나 고뇌했는지 당신이 뭘 아냐고.”
“그러면 함께해요, 형사님.”
태주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검찰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당시에 사건을 끝까지 붙들었지만, 외압으로 피치 못하게 사건을 종결했던 형사님이라면 더더욱, 환영할 겁니다.”
그 말에 권혁중의 눈이 번뜩였다.
* * *
동 시각.
허름한 카센터에 와 있던 강승민 검사와 정 수사관.
그들의 시선은 차를 고치는 나이 든 노인에게 향해 있었다.
차를 살피던 노인은 허름한 옷차림의 강승민과 정 수사관을 쓱 훑어보았다.
“오래된 차를 타시네. 형편이 안 좋아도 차는 좀 괜찮은 거 타야 해요. 안 그럼 목숨 날아가.”
“하하,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돈만 있으면 당장 좋은 차로 갈아타죠.”
“돈이 많다고 꼭 좋은 차 타는 건 아니에요.”
“부잣집 사모들, 좋은 차 타지 않아요? 벤츠? BMW 같은?”
“에이, 좋은 차는 내연녀들이 타는 거고, 조강지처들은 그냥 그렇고 그런 차 타죠.”
그 말에 강승민의 눈이 반짝 빛났다.
‘됐다!’
“그런가요? 어르신은 경험이 많으셔서 아는 것도 많으시군요.”
자신을 추켜세우는 말에 노인은 신이 난 듯 입을 털었다.
“있는 것들이 더하다니까요. 제가 옛날에 어떤 고위직 공무원 부인 차를 수리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차가 엄청나게 낡았더라고.”
“차종이 뭐였죠? 혹시 본인이 직접 왔나요?”
“에이, 그런 양반들이 카센터까지 직접 올 일이 있겠어요? 그리고 그 차는 카니발이었나, 아무튼 엄청나게 컸어요. 사모님이 몰고 다닐 차는 아니었지.”
그때를 회상하는 듯 차를 고치던 노인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그런데 그 차를 손보다 보니까, 브레이크였나? 거기가 좀 끊어지려고 하더라고.”
“브레이크가요? 그 정도로 차가 낡았었나요?”
“엄청나게 낡았다니까. 사모님이 끌고 다닐 차는 절대 아니었어요.”
노인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차 가져온 양반한테 차 좀 바꾸라고 했죠, 이거 자칫하면 운전 중에 저세상 간다고. 그런데 화를 내면서 나더러 차나 고치라고 하데. 그래서 그 차에 꽤 애착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 * *
차를 고치고 난 후.
강승민과 정 수사관은 차에 올라타 이제껏 알아낸 정보를 정리했다.
“확실히 부형윤의 첫 부인은 고의적인 사고로 죽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운전 미숙으로 그랬다는 건 틀린 조사였습니다.”
“사건이 조작된 경위가 이중협 씨 사건과 매우 흡사한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자꾸 뭐가 빠진 것 같지……, 아!”
생각에 잠긴 강승민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정 수사관. 애초에 7년 전에 이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있었잖아요.”
“아, 권혁중 형사님이요?”
“그분한테 연락해 보셨어요?”
수사관이 머리를 긁적였다.
“연락은 겨우 닿았는데, 이미 형사직에서 은퇴한 지 꽤 되신 것 같더라고요.”
“수사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까?”
“네, 은퇴해서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뿐이랍니다. 아무래도 그때 윗선에서 수사 강제 종료하라고 압박을 한 것 때문에, 꽤 마음고생을 했던 것 같더라고요.”
“가족한테도 협박을 가했나 보군요.”
쯧, 혀를 차던 강승민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숨겼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일단은…….”
그때, 정 수사관의 전화가 띠링, 하고 울렸다.
“네, 정현빈입니다. 어? 권혁중 형사님?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전화를 끊은 정 수사관은 강승민에게 반가운 말을 전했다.
“검사님, 권혁중 형사님께서 이중협 씨 사건에 협력하겠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우창균 씨의 별장 관리인 소재는 자기가 알고 있다는 군요.”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강승민은 두 손을 모았다.
그러다 갑자기 피어난 궁금증.
“그런데 권 형사가 마음을 바꿔서 도와주기로 한 이유가 뭡니까?”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회사 휴게실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태주.
그 옆에서는 손국영이 태주의 기분을 살피며 이중협에게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원래 태주가 내 일에 관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편이지. 게다가…….]‘오늘 형사들과 함께한 예능 촬영에서 뜻밖의 정보도 들었고.’
그 일 때문에 이중협도 기분이 제법 저조한 상태였다.
분명 7년 전, 이중협은 사고를 낸 스턴트를 찾아,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죽음에 가까워진 스턴트는 분명 그를 알아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 그런 말을 했었다.
-원망하지 마요, 형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시에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저지른 사고였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권혁중 형사에게도 그런 말을 했다니.
[그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데. 분명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게 되니까.]각자의 생각으로 조용한 휴게실 안.
“야, 태주야! 너 여기 있었구나?”
갑자기 윤지호가 들이닥쳤다.
최근 들어 회사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는 태주와 자주 마주치는 편이었다.
“교양 프로 촬영하고 왔다면서? 재밌었냐?”
“글쎄. 마냥 즐길 수는 없더라고.”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중협 선배님에 대한 사건을 조명했거든.”
“아, 그랬구나…….”
윤지호는 태주의 어깨를 위로하는 듯 다독였다.
태주가 이중협을 제일 존경하는, 아니, 그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건 아는 사실이었다.
“무거운 마음은 잠시 내려둬. 너 하반기에도 스케줄 꽉꽉 차 있다면서.”
“맞아. 안 그래도 이번 주 목요일에 미국 가.”
“어? 나랑 같은 비행기 타고 가는 거 아냐? 우리도 이번에 미국 가거든.”
“그래? 혹시 아침 10시 비행기?”
“맞아! 진짜로 우리 같은 비행기인가 보네!”
활짝 웃던 윤지호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툴툴거렸다.
“그런데 미국 가자마자 미스터 버터플라이랑 호흡을 맞춰보라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그 말에 태주는 뜨끔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스케줄은 다름 아닌 마스크 스타 가왕전.
‘Thanksgiving’ 특집에 맞춰 더욱 성대하게 펼쳐지는 시즌 2의 초대 무대는 미스터 버터플라이와 폴라리스의 콜라보였다.
“말이 안 될 이유는 또 뭔데?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춤을 잘 춘다면서.”
“태주야, 우리 춤이 쉽지 않은 거 알잖아.”
윤지호는 자부심이 가득한 가슴을 툭툭 쳤다.
“아무리 춤을 잘 추는 댄서라도 우리 안무는 어려워한다, 이 말이지. 아무튼 나는 미스터 버터플라이, 도대체가 신뢰가 안 가더라.”
“흠흠.”
괜히 멋쩍어진 태주는 주제를 돌렸다.
“그럼 형은 미국에서의 스케줄이 축하 무대 그거뿐이야?”
“토크쇼랑 팬미팅도 해. 너도 바쁘지?”
“나야 뭐, 영화 홍보하고 드라마 촬영으로 좀 정신 없지지.”
태주는 얼마 전 온 앤디 피셔의 문자를 회상했다.
얼른 미국에 와서 이 열기를 느끼라고 했던가.
* * *
며칠 후.
이른 아침부터 인천공항은 수많은 팬으로 붐볐다.
그들 사이에 섞여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커다란 밴이 도착하고 태주가 내리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태주다!”
“한태주가 미국에 가 있으면 그동안 무슨 낙으로 사나?”
언제나처럼 팬들과 기자들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멋쩍은 태주.
팬들과 기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후,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곧이어 폴라리스 멤버들이 도착했는지, 또다시 큰 환호성이 들렸다.
“그럼 저는 출국수속 밟고 오겠습니다.”
장진혁이 서둘러 태주의 짐을 들고 리셉션으로 가는 가운데.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던 손국영을 힐끔거렸다.
장진혁을 보는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태주는 손국영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가 스케줄 상 올해 하반기에는 미국에 있을 예정인데, 그래도 영화 촬영 때문에 한국에 들어올 때도 있을 거예요. 시진영 씨와 장진혁 씨의 화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테니, 걱정 말아요.’
그 말에 손국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건 걱정 안 해요. 어차피 제 한은 그게 아닌 것 같거든요.]‘……네? 그럼 도대체…….’
손국영이 태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 한은 나중에 미국 가서 얘기해 드릴게요.]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제법 신이 나 보였다.
‘참 이상하네.’
귀신들도 변덕이라는 걸 부리는 건지, 아니면 그의 한을 자신이 잘못 판단한 건지.
태주는 알 수 없는 귀신의 마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든 간에, 미국에 가면 모든 비밀이 풀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