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처음 도전하는 연기 (7)
“My love is you!”
힘을 빼듯, 애절하게 방청석을 바라보며 무릎 꿇은 미스터 버터플라이.
그렇게 마지막 소절을 끝으로 무대가 마무리됐다.
방청석은 환호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기립박수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태주가 그들에게 인사를 끝마쳤을 때도, 엠씨가 조용히 해달라 손을 내저었을 때도.
무대에 열광한 이들의 흥분은 쉽게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패널석에서 태주의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미첼 커티스는 더더욱.
광기 어린 방청석이 진정되고 엠씨가 마이크를 들었을 때,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당황할 만큼, 그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쟤 진짜로 운다. 이번 무대에 제법 큰 충격을 받았나 봐.]‘제 노래가 그렇게 이상했어요? 장조 노래를 단조로 바꾼 게 많이 충격적이었나요?’
[그게 아니라 노래가 너무 좋아져서 충격받은 거지.]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했다.
[쟤, 네가 무대 하기 전부터 걱정하더라. 왜 이 곡을 선곡했냐면서. 안 그래도 SNS 챌린지 때문에 욕 많이 먹고 있는데, 굳이 또 욕먹을 필요가 있냐고 말이야. 그런데 뭐, 결과는…… 대박이지.]“이 곡이 이렇게 환영받을지 몰랐습니다.”
마이크를 집어든 미첼 커티스가 태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튜브로 인기를 끌던 제가 16살에 멋모르고 데뷔한 곡이 바로 이 노래입니다. 그때도 너무 유치하다고 욕을 먹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라 저 자신도 이 곡은 잘 소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의 재해석을 듣고 놀랐습니다. 곡이 성장했더라고요.”
태주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엠씨가 그런 그를 보고 눈짓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곡을 선곡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맨 처음에 이 곡을 접한 건 SNS였습니다.”
태희가 SNS 챌린지를 한다며 이 곡을 듣고, 또 들은 게 시작이었다.
SNS 챌린지에 사용되는 노래답게 유치한 가사와 발랄한 멜로디가 계속 귀에 맴돌았는데, 잘 듣다 보니 이 곡이 좋아졌다.
회사에 가져가 오희운 피디에게 들려주니, 그는 이 곡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편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신, 태주가 그 컨셉을 잘 소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수 없는 연습 끝에 완성한 게 바로 오늘의 무대였다.
“SNS를 통해 접한 노래지만. 이 곡이 비단 챌린지에만 이용될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분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좋은 노래니까요.”
“그래도 가왕전에서 승부를 걸기에는 좀 약하다거나 불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3라운드까지 올라온 ‘시뇨리따’ 씨는 2000년대 그래미를 휩쓸었던 노래를 선곡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곡에 확신이 있어서 전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태주는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돌았다.
“솔직히 이 노래, 좋았잖아요?”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져 나오는 환호성.
엠씨도, 패널도, 밑에서 바라보던 스태프들도 다들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원래는 당연히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가왕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
그때 스태프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여기, 가왕전 투표 결과입니다!”
엠씨의 손에 결과지가 들린 건 한순간이었다.
놀란 얼굴로 결과지를 펼쳐 든 그의 시선이 태주를 향한 순간.
“역시, 이번에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스크 스타의 시즌 2 가왕은…….”
그의 입에서 망설임 없이 나온 한 이름.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했다.
* * *
“이야, 이걸 어떡해야 하나.”
제법 거만한 포스로 대기실에 들어온 미스터 버터플라이.
아니, 가면을 벗어던진 태주는 자신도 이제는 모르겠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나는 부담 없이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해 주면 어떡하냐, 이 말이야.”
“유튜브 핫 뮤직으로 미첼 커티스의 ‘My Boo’가 뜨는데요? 미국에서는 마스크 스타가 노래 파급력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장진혁은 존경심이 가득한 눈으로 태주를 바라보았다.
“역시 태주 배우님. 이런 것까지 다 예상하고 이 곡을 선곡하신 건가요?”
“뭐, 아니라고는 안 할게요.”
[태주 이 녀석,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갔어. 이럴 땐 인우가 분위기를 딱 잡아줘야 하는데.] [그래도 보기 좋은데요. 그리고 대장 귀신님도 태주 씨 저런 모습 보기 좋은 거 아니에요? 입이 씰룩거리는데.] [국영이 너, 조용히 해.]그러나 이중협도 태주의 활기찬 모습에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항상 태주는 뭘 잘해도 마냥 기뻐하기보다는 겸손하기 바빴다.
자기가 잘한 게 아니라며, 남한테 공을 돌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롯이 기뻐하는 지금, 이중협은 그런 태주가 솔직히 좀 더 좋았다.
그때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저기, 로저입니다. 미첼이 인사하고 싶다고 하는데, 안에 계시죠?”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태주가 화들짝 놀랐다.
서둘러 장진혁이 건네주는 탈을 쓴 후 방문객을 응대했다.
그 앞에는 눈이 발개진 미첼과 그런 그를 위로하는 로저가 서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미첼이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나도 말할 수 있거든.”
미첼이 로저를 가볍게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황금빛 나비 가면을 쓴 태주를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고마워요. 솔직히 그 노래 택했을 때, 나와 그 곡을 우습게 만들려고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더 멋지게 만들어준 걸 보고……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저는 처음부터 그 노래 우습다고 생각 안 했어요.”
태주는 울컥한 마음에 대꾸했다.
“그 노래, 제 사촌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그……, 그래요?”
“자신감을 가져요. 당신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을 많이 한 태주.
그런 태주를 진정시킨 장진혁이 서둘러 그를 대기실로 들여보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시죠.”
“아…….”
“Bye.”
무뚝뚝한 답을 끝으로 닫혀버린 문.
미첼과 로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뭐긴 뭐야, 네가 갑자기 찾아왔는데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이렇게라도 응대해 준 게 다행인 거지. 이만 가자.”
“그래도 미스터 버터플라이한테는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 다들 쓰레기라고 욕하던 데뷔곡을 인공호흡을 시켜줄 줄은 몰랐거든.”
터벅, 터벅.
밖에서 그들이 멀어지는 소리를 듣던 장진혁.
“이제 간 것 같습니다.”
“후아, 얼굴에 땀 범벅이에요!”
태주가 서둘러 가면을 벗더니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비밀을 지킨다는 건 정말 힘드네요. 마음 같아서는 정체를 드러내고 미첼한테 당신 곡 진짜 좋다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그건 아직 안 되죠.”
“나도 알아요.”
태주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참 답답하긴 해요. 뭐, 이런 비밀을 지키고 사는 것도 저의 숙명이겠거니,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만.”
* * *
동 시각, 한국.
모두가 퇴근한 시각인 이때, 어두컴컴한 복도를 홀로 밝히고 있는 한 방이 있다.
염수정은 그 안에서 드라마 대본을 영혼 없는 눈으로 대충 훑으며 거듭해서 넘겼다.
분명 대본 연습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정작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 건 다른 생각이었다.
-이중협 씨 사건 관련해서 참고인 조사를 해야 해서요. 염수정 씨가 꼭 좀 참석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출석이 어려우시다면 저희가 직접 찾아갈 테니,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중협 살인사건 관련해서 그날의 행적을 묻고자 강 검사가 그녀에게 참고인 조사를 요청했다.
생애 첫 참고인 조사, 검사와의 대질 신문, 그리고 그동안 묻어 두었던 옛 연인에 관한 질문.
염수정이 사색이 된 얼굴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이때.
홀로 고심하는 그녀의 생각을 흩트려 놓는 거친 목소리가 있었으니.
“뭐해? 너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잦다, 수정아.”
“아, 오빠.”
휴게실로 들어오는 이현식 팀장을 바라보는 염수정.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그의 말을 염수정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오빠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거 같은데.”
“혼자 있으면 불안하니까 그렇지.”
“뭐가 불안한데? 내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두렵다는 거야?”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현식이 괜히 허허 웃어 보였지만, 염수정의 눈길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이현식이었다.
“그래, 수정아. 너 혼자 두면 뭔 짓거리 할까 무서워.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까놓고 말할게.”
털썩.
이현식이 염수정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 받으라고 연락 왔냐?”
“참고인 조사라니?”
“모르는 척하지 마. 저번에 야산에서 중협이 사체 나왔을 때도 네가 신원 확인해 줬다면서. 커플 반지로.”
그 말에 염수정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꼭 내가 확인해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식으로 들리네.”
“당연하지! 너, 검찰하고 괜히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어. 그리고 이걸 기자들이 알아봐, 얼마나 득달같이 달려들겠어?”
“하지만 중협 오빠 일이었어. 그것도 비극적으로, 고통스럽게 죽었을지도 모른다는데, 도저히 모를 척할 수 없었다고.”
“그래도 모른 척했어야지! 수정아, 네 위치를 생각해. 너한테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고!”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현식은 염수정을 와락 붙잡고 흔들었다.
“중협이는 이미 떠났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챙기다가 산 사람들이 힘들어야 하겠냐? 어!”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 오빠?”
염수정은 건조한 눈동자로 이현식을 응시했다.
“오빠는 중협이 오빠가 촬영장에서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누구한테 살해당했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마음 아파 죽겠는데, 오빠가 편히 눈도 못 감았을 것 같아서 걱정돼 죽겠는데!”
“수정아, 제발 가식 좀 그만 떨고 우리 솔직해지자.”
결국 이현식은 염수정을 녹아웃 시킬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는 너도 중협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 중협이랑 비밀 연애했잖아. 죽는 그 날까지.”
“그…, 그건 오빠가 먼저 제안해서…….”
“너도 은연중에 중협이를 무시한 거야, 수정아. 한창 주가 높을 때 공개 연애하면 인기가 식을까 봐 걱정한 거잖아. 그래서 중협이의 그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거 아냐?”
그 말에 아무 말 못 하는 염수정에게 이현식이 피식거렸다.
“중협이 앞에서 비겁한 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끝까지 비겁해야지, 너 혼자 정의로운 척 나대지 말고.”
* * *
이현식이 떠나간 후.
염수정은 결심한 듯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검사님. 염수정입니다. 참고인 조사, 받을게요. 대신, 제가 원하는 곳에서 단둘이 만났으면 해요.”
-혹시 추가 진술할 부분이 있으신 겁니까?
“네.”
결연한 표정을 한 염수정이 떨리는 입술로 말을 이었다.
“7년 전, 중협이 오빠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저였으니까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