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천의 얼굴 (6)
* * *
한편, 미국 뉴욕의 한 식당 안.
장진혁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태주.
적당히 취한 알딸딸한 기분에 괜히 실실 미소가 나왔다.
그 옆에서는 얼떨떨한 기분의 장진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챙겼다.
술을 마시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며 연신 미안해하는 태주 때문이다.
“제가 혹시 실수하지는 않았겠죠?”
“저 두고 잠든 것 빼고는, 없습니다. 하하.”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수많은 사람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태주가 나오자마자 눈을 광적으로 반짝였다.
“한태주다!”
“사진 찍어, 얼른!”
“실물 진짜 멋있다. 데스 게임에서 봤을 때보다 더 멋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인파에 태주는 당황했다.
옆에 있던 장진혁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희가 식사한 곳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서 팬분들이 이렇게 몰린 모양입니다. 어떻게든 제가 뚫어 보겠습니다.”
“아니에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렸는데, 진혁 씨가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요.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그럼 현지 에이전시에 전화해서…….”
그때, 옆에서 어린아이가 노트와 펜을 불쑥 내밀었다.
“사인해 주세요!”
수줍은 듯 떨리는 목소리에 태주가 눈을 마주쳤다.
어린아이와 그를 감싸 안은 중년의 여자가 얼굴을 붉히자.
태주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펜을 들었다.
“이름이 뭐야?”
그렇게 예정치 않았던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일제히 줄을 섰고, 핸드폰이나 노트, 펜을 들고 다들 수줍은 듯 사인을 받았다.
몇몇은 경호원처럼 태주 곁을 지키는 장진혁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옆에서 이중협은 태주를 보고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다.
[밥 먹으러 왔다가 사인회라? 역시 슈퍼스타 한태주의 이름값은 무시할 수 없구만.]‘그만 좀 놀려요.’
[놀리는 거 아냐. 길거리 사인회를 훌륭하게 해내는 한태주 배우님을 보고 감격스러워서 그래!]그때, 여러 사람에게 정신없이 사인해 주던 태주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커다란 비니를 쓴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이름을 알려줄래?”
수줍어 보이는 아이는 글씨가 적힌 수첩을 보여주었다.
삐뚤빼뚤한 알파벳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던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L, I, L, Y…… 릴리가 맞니? 성은 뭐야?”
태주가 그녀를 쳐다보자, 아이는 수줍은지 자꾸만 비니로 얼굴을 덮었다.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은가?’
때마침 옆에서 있던 여자는 태주를 보고 변명하듯 말했다.
“아이가 좀 아파서요. 말을 못 해요.”
[아이고, 안타까워라.]아이를 살피던 이중협이 눈을 내리깔았다.
태주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렇게 예쁜 릴리를 만나서 기뻐. 사진도 찍을까?”
태주의 다정한 말에 아이는 우물쭈물했다.
그러나 이내 태주의 곁에 꼭 달라붙어 사진을 찍었다.
태주를 향한 망설이던 눈빛이 어느덧 확신으로 변한 아이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혹시 우리 병원에 와주실 수 있어요?
“병원?”
-우리 병실 친구들, 오빠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오빠 보러 가지 못하거든요.
태희 또래로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던 태주는 마음이 아팠다.
항상 태희와 비슷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건 왜일까.
태주는 옆에 있던 장진혁을 보고 슬쩍 물었다.
“저희 내일은 스케줄 없죠?”
“네, 쉬는 날이긴 합니다만…….”
“오케이, 좋네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태주는 아이의 자그마한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내일 오빠가 갈게. 기다리고 있으면 짠, 하고 나타날 테니까, 기대해!”
눈앞에 아이의 환한 미소가 퍼진 순간.
태주도 덩달아 아이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다음 날.
태주는 이른 아침부터 장진혁을 이끌고 바쁘게 장난감 가게를 돌았다.
얼마 후.
자동차 트렁크를 가득 채운 인형, 장난감들을 본 이중협이 입을 쩍 벌렸다.
[태희한테 줄 장난감 사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만. 태주 너 통 큰 건 알아줘야 해.]‘그래도 애들 보러 가는 건데, 어떻게 빈손으로 가요.’
[하여튼 나중에 자기 애 생기면 엄청나겠어. 애들 보러 간다고 의상까지 맞춰 입은 거 봐. 아주 그냥 제대로라니까.]이중협이 감탄한 태주의 옷은 피에로 의상.
똥 싼 바지처럼 축 늘어진 하의, 뽕을 넣은 엉덩이 부분, 딱 붙은 상의.
무척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장진혁은 태주의 부탁으로 피에로 의상을 구해 주었다.
그냥 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분장해야 아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태주의 의지 때문이었다.
곧이어 묵직한 선물을 실은 차가 출발했다.
이윽고 태주는 뉴욕 인근의 아동 병원에 도착했다.
최대한 조용히 방문하려던 태주의 의도와 달리, 병원 측에서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병원 관계자들이 다들 마중을 나온 건 물론, 병원 로비를 가득 채운 여러 환자가 태주를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당황한 태주는 옆에 있던 장진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안내자 2명 정도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핸드폰 속 병원 관계자와 주고받은 연락을 확인하던 장진혁도 얼굴을 붉혔다.
“분명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옆에 있던 이중협은 이 상황이 그저 웃긴다는 듯 크게 웃어젖혔다.
[천하의 한태주가 병원에 온다는데, 구경 나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정도쯤은 각오했었어야지!]‘이렇게 마중 나올 줄 알았으면 좀 제대로 입고 왔을 거란 말이에요. 이것 봐, 다들 웃고 있잖아요.’
태주가 다가가자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게다가 옆에서 장진혁은 이런 태주를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이야, 배우님. 세상에 이렇게 멋진 피에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기분 어떠세요?”
“굿입니다, 굿!”
멋쩍은 대답을 한 태주는 서둘러 선물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린이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3층으로 향하기 위해.
* * *
태주는 어린이 병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 주었다.
다들 피에로 분장한 태주를 알아보곤, 열렬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와, 데스 게임의 한태주다!”
“너희, 그거 어떻게 봤어? 너무 어린데?”
“부모님이랑 같이 봤어요. 엄청 재밌었어요!”
어린아이들인 만큼 수다가 상당했는데, 다들 태주에게 말을 시키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원래 지금 낮잠 자는 시간인데, 태주 오빠 온다고 해서 안 자고 있었어요. 잘했죠?”
“저 여기다 사인해 주세요. 이제부터 사인받은 이 모자는 제 인생의 보물이에요.”
“형, 저 한 번만 안아 주세요!”
아이들이 끊임없이 재잘대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진정시킬 정도였다.
이윽고 여러 병실을 돈 태주는 마침내 어제 길거리 사인회에서 자기 병원으로 와달라고 한 아이를 만났다.
창백한 몸으로 누워 있던 여자아이는 태주를 보더니 벌컥 몸을 일으켰다.
“릴리! 내가 약속했지, 온다고! 자, 여기 선물.”
태주가 인형을 안겨주자 아이는 멍하니 인형을 바라보다, 이내 태주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태주는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하. 좋아해서 기쁘다.”
괜히 쑥스러워진 태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 옆으로 릴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보였다.
릴리보다 어린 5~6살 같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이마를 가린 앞머리와 양쪽으로 양 갈래를 한 금발의 여자아이는 낡은 바비 인형을 꼭 안고 있었다.
그러다가 태주를 쓱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동생이 있었나? 그럼 선물을 두 개 준비할 걸 그랬네.’
그 말에 이중협이 코웃음을 쳤다.
[잘 봐봐, 쟤가 정말 사람으로 보이니?]이중협의 으스스한 말에 태주가 눈을 비비고 그쪽을 볼 무렵.
머리를 땋은 아이가 번뜩 고개를 들어 태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몸, 어딘가 이 세상 같지 않은 분위기가 분명 귀신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왜 내건 안 사 왔어?]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태주는 깜짝 놀랐다.
‘어……, 어?’
[항상 릴리만 아프다고 챙기고, 나는 뒷전이야. 오빠도 릴리 편이지? 그런 거지, 그런 거잖아!]갑작스레 땡깡을 부리기 시작한 아이는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맨날 릴리만 챙긴다고! 으앙!]귀를 찢을 듯한 울음을 들을 수 있는 건 이곳에서 이중협과 태주뿐.
태주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고, 아이를 돌보는데 서툰 이중협은 그저 다그쳤다.
[야, 그만 조용히 해!]그때, 옆에 있던 중년의 여자가 태주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태주 씨. 바쁠 텐데 릴리 말만 듣고 이렇게 직접 방문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우리 주인님께서도 정말 감사해 할 거예요.”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태주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아, 본인 아이가 아니신가요?”
“네, 저는 보모고 아이의 부모는 따로 있어요.”
중년의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비밀인 듯 보였기에, 태주도 더는 묻지 않았고.
그렇지만 저 옆에 있는 여자아이 귀신이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왜 릴리가 계속 아픈지 알겠네. 귀신이 곁에 오래 붙어있으면, 아플 가능성이 있거든. 특히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더더욱.]태주는 이중협의 설명을 듣고는 릴리와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귀신이 산 사람 옆에 꼭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사뭇 기괴한 광경이었다.
순간 태주는 이상한 궁금증이 들었다.
‘저도 형하고 늘 같이 다니는데, 그럼 저는 왜 안 아픈 거예요?’
[나는 대장 귀신이잖아. 내 몸에서 나오는 음기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해를 입힐 리가 있겠냐?]고개를 끄덕인 태주는 조심스럽게 보모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릴리한테 자매가 있나요?”
“네, 맞아요. 그런데 어디서 들으셨어요?”
태주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럼 혹시 이름이…….”
“미나요. 미나 크로츠. 그런데 그 아이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보모는 슬픈 얼굴로 덧붙였다.
“5년 전에 실종됐거든요.”
* * *
한편, 배급사 Readie.
LA에서 열릴 영화 ‘나의 미래’ 프리미어 시사회 준비를 하는 이들이 바쁘게 회의를 이어나갔다.
“이글맨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사회를 개최한다는 것 같던데요. 어떻게 할까요. 정면으로 붙을까요. 아님, 좀 비껴갈까요?”
“저희는 하루 뒤로 확정하시죠”
“대표님께서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사안이니, 다들 열심히 준비합시다.”
“네!”
마라톤 회의가 끝나고, 직원들이 한데 모여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우리 대표님, 왜 이렇게 일에 몰두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갑부시잖아요. 그런데 명함만 올려놓는 다른 대표들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아이를 잃은 후로부터 저렇게 일만 하셔. 워커홀릭이 되신 거지. 집에도 잘 안 들어가시고.”
“아이가 죽었다고요?”
어느새 속삭임으로 변한 직원들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팀장이 답했다.
“5년 전쯤인가, 놀이공원 아이 유괴 사건 있었던 거 알지?”
“알죠, 유명했잖아요. 싱글맘이 키우던 쌍둥이가 놀이공원에서 유괴당했는데. 한 아이는 실종됐고 한 아이는 발견은 됐으나 말을 못 하게 됐다고요.”
“그래, 우리 대표님이 그 애들 아버지야.”
“네? 무슨 소리예요. 우리 대표님은 결혼도 안 하셨는데.”
“몇 년 전에 원나잇한 여자가 아이를 낳아 길렀는데, 이 사단이 난 거래. 아무튼 불쌍하신 분이야. 아직도 실종된 아이를 찾고 계시거든.”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종된 그 아이한테 걸린 돈이 무려 100만 달러라잖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