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천의 얼굴 (7)
* * *
환한 불빛으로 아름다운 뉴욕의 밤.
한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두 중년의 남자가 식사하고 있다.
그들은 20여 년간 알고 지낸 하퍼 크로츠와 로렌조 가르시아.
둘 다 미국 문화계의 큰손 투자자로 주목받는 이들이었다.
하퍼 크로츠는 배급사 Readie로 미국 영화계의 돌풍을 일으켰고.
로렌조 가르시아는 케이블 방송국 ATC를 인수해 드라마 ‘웜 데드’에 거액을 투자한 장본인이다.
‘웜 데드’는 하반기에 론칭할 드라마 중 가장 많은 기대감을 받고 있었다.
“여기 맛있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정말 인기 많은 곳인가 봐?”
하퍼의 물음에 로렌조가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는 나 같은 마니아들만 아는 식당이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드라마 촬영하고 나서 손님들이 부쩍 늘었어.”
“드라마 촬영? 아, 웜 데드?”
“응.”
로렌조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여기서 찍었던 씬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장면이었거든? 한태주가 코미디언 연기를 했는데. 웬걸, 너무 연기를 잘한 거야. 덕분에 여기 인기도 올라가게 됐어.”
하퍼가 검은 눈을 재밌다는 듯 번뜩였다.
“주연배우 하나는 잘 뽑았어. 연기도 되고 화제성도 되는 배우가 어디 흔한가.”
“그러는 자네야말로 주연배우를 기가 막히게 뽑았지.”
로렌조가 눈썹을 씰룩였다.
“자네 영화, 다음 주에 있을 LA 프리미엄 시사회에 벌써 사람들 미어터진다면서? 거기 취재하고 싶은 기자들만 200명이 넘는다던데.”
“그리 대단하지는 않아. 지역 신문사까지 다 합쳐서 그렇지.”
“뉴욕 타임지까지 취재를 온다면서. 그리고 XTV에서 영화 관련 인터뷰까지 따고. 이야, 자네 배급사에서 두 번째 영화치고 꽤 화려한 시작 아닌가?”
“화려한 시작 뒤에는 수많은 이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라고.”
하퍼는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이 영화,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투자도 못 받고 배회했었어. 피셔 감독이 끝까지 이 영화를 붙잡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우연히 한태주를 만나 독립영화로 이걸 탄생시키며 모든 단추가 끼워졌지.”
“아, 그렇게 된 거였어?”
“응. 독립영화로 대성공을 한 다음에야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 나 또한 그 가운데 한 명이었고. 아무튼,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자네 욕심에 여기가 끝은 아닐 텐데. 화려한 시작만큼이나 화려한 결말을 원하지 않아?”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웜 데드, 이번에 화려한 서막을 올린 만큼 시청률도 잘 나오기를 바라고 있잖아?”
하퍼의 물음에 로렌조가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한태주라는 좋은 배를 가지고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잖아.”
“다음 주 LA 시사회가 기대되는군. 그게 한태주의 아메리카 쇼케이스나 다름없으니까.”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야!”
그 둘은 누가 뭐랄 것 없이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 * *
한편, 호텔로 돌아온 태주.
LA에서 열리는 시사회는 3일 후지만, 출발은 내일이다.
그래서 태주와 장진혁은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장진혁은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도 받았다.
“네, 대표님. 태주 씨가 연락이 안 된다고요? 지금 짐 싸느라 바빠서 그렇습니다. 대신 말씀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네, 나중에 LA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장진혁이 태주에게 돌아와 전했다.
“고모님과 태희가 LA 잘 다녀오라고 전해달랍니다. 아, 그리고 태희는 LA에 유명한 장난감 가게가 있다고, 거기서 어글리 인형을 사다 달라고 하네요. 초록색 머리로요.”
[어글리 인형이 뭐냐?]‘태희가 푹 빠진 프로그램 주인공이에요. 초록색 레게 머리한 캐릭터인데, 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고요.’
그때, 태주의 눈에 띈 모습.
이중협 옆에 붙어 있던 여자아이가 바비 인형을 꼭 안고 있었다.
손에 바비 인형을 들고 눈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아이.
또래 아이들보다 다소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는 미나 크로츠로, 일전에 병원에서 만났던 릴리의 쌍둥이 자매이자 귀신이다.
‘얘는 왜 여기 있어요?’
[네 곁에 있고 싶대.]‘네?’
[흠흠, 네 옆에 있으면 안정이 되는 모양이야. 나도 네 옆에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달까, 아무튼 평온하거든. 그러니까 네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런데 네 눈치가 보여서 나한테 왔나 봐.]이중협은 제게 꼭 달라붙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한테 피해 가지 않게 잘 돌볼게. 그리고 얘도 조용히 있기로 약속했어.]‘……정말요?’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미나는 제법 얌전했다.
그러나 태주는 아직도 병원에서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난동을 부리던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스케줄을 할 때 혹시라도 옆에서 그 난리를 피운다면,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왠지 벌써 지끈거리는 머리에 태주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나 스케줄 할 때도 계속해서 따라다니겠다는 거야? 너 조용히 있을 수 있어?’
끄덕, 끄덕.
‘병원에서처럼 그렇게 난리 치면, 못 데리고 다녀. 알았지?’
그 말에 미나는 겁먹은 듯 고개를 수그렸다.
금발을 가지런히 땋은 양갈래 머리가 힘없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이중협은 아이가 태주의 눈치를 보는 게 안타까웠다.
[좀 이해해 줘. 얘가 오죽하면 자기 가족이 아니라 널 따라다니겠다고 하겠냐.]‘알았어요. 제가 좀 심했네요.’
태주는 장진혁이 화장실에 있음을 확인하고, 미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가 나한테 온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럼, 네가 내 곁에 있는 동안이라도 즐겁게 지내자.’
다정한 태주의 목소리에 미나의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신이 난 듯 방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이중협은 태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 얘가 이 순간에 네 곁에 온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그런데 미안하지만, 미나의 실종사건이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아요.’
태주가 복잡한 표정으로 미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미나의 한을 풀어주고 싶지만. 5년 전 실종되었던 사건을 제가 풀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요.’
[미국 경찰도 여태까지 유괴범을 찾지 못한 사건이야. 태주 네가 굳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그렇지만……. 마음이 아파요.’
방을 뛰어다니는 미나에게는 한 치의 어두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귀신이 된 걸 보면, 미나는 죽은 게 틀림없으니까.’
* * *
동시각, KTS 예능국.
‘그것이 궁금하다’ 팀은 일전에 찍었던 1화 촬영분 편집에 한창이었다.
똑똑.
편집실에 들어온 이는 양손 가득히 커피를 든 피디였다.
“우리 재석이, 밤늦게까지 편집으로 고생이 많아. 이거 먹고 더 열심히 해!”
마치 사약과도 같은 커피를 받아든 조연출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역시 저희에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한 야식이 없군요. 피디의 숙명이란, 하.”
피디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편집은 잘 돼가냐? 아무래도 범죄 예능이다 보니 좀 감 잡기가 힘들지?”
“진지함과 재미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특히나 이번 편에서 한태주 씨가 워낙에 진지한 느낌이라, 함부로 효과도 못 넣겠어요.”
“한태주 씨 표정이 어떤데?”
“꼭 사람 하나 잡아먹을 거 같아요. 여기 보세요. 컷 편집마다 어찌나 표정이 살벌한지 몰라요.”
조연출의 손길을 따라 피디의 시선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화면에 비치는 태주의 모습은 진지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심각하거나.
이 셋 중 하나였고, 웃는 모습이 거의 없었다.
“정말 그렇네. 물론 범죄 예능이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표정이 이렇게 굳어 있다니.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이중협 사건이라 더욱 진지하게 대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태주 씨가 이중협 씨 광팬이잖아요.”
“아, 그렇네.”
피디가 그걸 미처 눈치 못 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뭐, 괜찮아. 우리는 범죄 예능이고, 게스트가 웃음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게 프로페셔널하고 좋으니까.”
“그런데 선배님. 저희 이번 편, 정말 방송할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이야?”
“요즘 한창 이중협 살인사건에 대해서 말이 많잖아요. 혹시, 이거 방통위에 통과되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그래서 우리가 세컨드 케이스를 준비해 뒀잖아.”
피디가 핸드폰을 뒤적여 저장해두었던 관련 자료들을 찾아냈다.
“여기 있다, 미나 크로츠 사건. 5년 전 미국을 들썩였던 이슈야.”
“무슨 사건인데요?”
“내가 자료, 이메일로 보냈어.”
“핸드폰 화면 작으니까 컴퓨터로 보시죠.”
곧이어 컴퓨터 화면 속 PPT가 촤르르 쏟아졌다.
미국에서는 꽤 유명했다.
아직까지 유괴범을 찾지 못한, 미제 사건으로.
“쌍둥이 자매를 키우던 싱글맘이 놀이공원에 애들을 데려갔다가, 동시에 실종되었군요.”
“맞아. 일주일 후에 언니는 돌아왔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동생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어.”
피디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충격은 받은 아이 엄마는 죽었고, 지금 아이를 키우는 건 생부라고 해.”
“혹시 유괴범이 생부는 아닐까요?”
이것저것 생각해 보던 조연출이 의견을 내놓았다.
“왜, 그런 일들 많잖아요. 양육권 다툼으로 싸우던 부모들이, 자기가 애 키우려고 자작극을 벌이는 사건이요.”
“글쎄, 생부가 유괴범이라고 보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애초에 이 생부라는 사람은 쌍둥이 딸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거든. 애 엄마가 원나잇한 상대였는데, 아이들의 존재를 완벽하게 숨겼대.”
“에? 그것도 이상하네요, 양육비라도 받으려면 아이의 존재를 알려야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실제로 미국에서도 말들이 많았지. 하나도 아니고 쌍둥이인데, 생부한테 양육비를 받아서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한국보다 미국은 이런 양육비 관련 제도가 훨씬 잘 되어있거든.”
목소리를 낮추던 피디가 섬뜩한 눈을 번뜩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그녀가 아이 아빠한테 자신의 임신을 숨겼는지 이해되더라. 애 엄마가 스트리퍼였는데, 애 아빠한테 알리면 양육권을 뺏기는 건 시간 문제 아니었겠어?”
“스트리퍼요? 그…… 옷 다 벗고 공연하는 사람들?”
“외설적이지만 나름대로 미국에서는 돈 좀 번다는 직업이야. 그래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 특히나 미국의 미디어 재벌의 아이 엄마로 서기에는, 더더욱. 애 아빠가 하퍼 크로츠라니까.”
“잠깐, 잠깐만요.”
몰아치는 사실에 조연출이 손을 들었다.
“쌍둥이 자매 생부가 하퍼 크로츠라고요? 이번에 한태주 씨 영화 배급한다는 그 대표?”
“맞아.”
피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너랑 같은 생각을 한 이들도 있었던 거 같더라. 사실은 생부가 모든 걸 알고 애들을 납치해서 없앤 후, 자기 과거를 세탁하려고 한 추악한 간계가 아니었겠냐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