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할리우드에서의 비상 (2)
‘괜찮아, 괜찮아.’
태주는 자기 품에 파고드는 시늉을 하는 미나를 연신 달랬다.
[흐앙…….]이제는 말도 제대로 못 잇는 채 그저 울음만 터뜨리는 아이였다.
태주도, 이중협도 서로에게 혼란스럽다는 시선만을 마주쳤다.
‘무서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남자 공포증이라도 있나?]그때 페르난도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태주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태주 씨?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네?”
“아까부터 절 계속 쳐다보셔서요.”
그제야 태주는 자신이 그를 무례할 정도로 쳐다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뇨, 그저……. 역시 스페인 남자는 다들 잘생겼구나 싶어서요. 디에고가 남자답게 잘생긴 건 알았는데, 사장님도 정말 잘생기셨습니다.”
그 말에 페르난도와 디에고.
두 명의 중년 남자가 유쾌한 웃음을 빵, 터뜨렸다.
그러나 태주는 아직도 눈동자에 깃든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분명, 미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 * *
식사를 끝마친 시각.
“아직도 날이 환하네요.”
“7시 반쯤에 해가 지니까. 원래 LA는 9월까지 쭉 이래.”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많네요.”
“아, 오늘 낮에 이글맨 시사회를 했거든. 이글맨 시리즈는 광팬들이 많으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몰렸겠지.”
디에고는 태주를 힐끗하며 덧붙였다.
“이글맨에 출연한 한국 배우도 아마 왔다지?”
[백시영도 왔었나 보네.]“거기에 피셔 감독 영화라니까 팬들이란 팬들은 다 왔었나 봐. 역시 존재감이 대단하다니까.”
“크흠. 저는 잠시 담배 좀.”
못마땅한 얼굴로 듣고 있던 앤디는 결국 담배를 피운다는 명목으로 저쪽으로 가 버렸다.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한 모양이야.]‘그럴 만하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그 비참한 기분이 결코 잊혀질 리 없잖아요.’
[태주야, 페르난도의 과거에 대해 더 물어봐. 미나가 괜히 그 양반을 무서워하는 게 아닐 것 같아서 말이지.]그 말에 태주는 대화의 흐름을 돌렸다.
“그런데 페르난도 씨 말이에요. 너무 잘생겼더라고요, 전직 배우였다고 했죠?”
“맞아. 그런데 솔직히 연기 실력은 그저 그랬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들이 많이 몰렸다고 하더라.”
“그분하고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셨어요?”
“한 3~4년 됐나? 음식이 맛있어서 자주 방문하다가 알게 됐는데, 사람이 정말 괜찮더라고. 무엇보다 가족을 무척 사랑하는 가정적인 녀석이야. 예전에 길거리에서 자기 와이프 희롱한 놈을 한 대 쥐어패서 경찰서에 간 게, 그 녀석이 한 유일한 나쁜 짓이었다고 그러더라.”
“아…….”
태주는 슬며시 미나를 힐끗했다.
미나는 이중협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자그마한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었다.
디에고는 혼란스러운 태주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아, 그게…….”
굳은 얼굴을 펴고 애써 미소 지은 태주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처음 뵙는 분이라 제가 괜히 궁금했었나 봐요. 하긴, 디에고 씨가 소개시켜 주셨는데 어련히 좋은 분일까요.”
“뭐, 아무튼. 우리 오늘 한잔하고 갈래? 원래 시사회 전날에는 긴장도 풀 겸 가볍게 한잔하는 거라고.”
“아,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요……. 내일 시사회 때 뵙겠습니다.”
태주가 먼저 자리를 뜨자마자, 앤디가 다가왔다.
“태주 씨는요?”
“쉬고 싶다고 먼저 갔어. 어때, 나하고 한잔할래?”
“글쎄요…….”
태주가 없다는 말에 앤디는 다소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까딱했다.
“……시간이 늦었네요. 저도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일 봐요, 디에고.”
그리고는 쌩, 하니 저 멀리 가버린 그.
홀로 남겨진 디에고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2차 가려고 했더니 다들 도망가 버리네. 요즘 젊은 애들이란.”
* * *
얼마 후.
직원들이 퇴근한 선플라워 프로덕션에 모인 두 사람.
대표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앤디와 그렉이었다.
그렉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앤디를 바라보았다.
“LA에 널린 게 술집인데,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 떨림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요.”
“애송이처럼 왜 그래. 설마, 긴장한 거야?”
“아뇨, 이 흥분감을 도저히 가라앉힐 수가 없다는 뜻이었어요.”
앤디는 그렉이 가져다준 위스키를 단번에 들이켰다.
“여러 제작사를 방황하면서 문가에서 거절당한 것만 수십 번이 넘어요. 그런데 한태주 씨를 만나서 단편영화를 찍고, 장편으로 만들어서 여기까지 온 게 믿기지 않아요.”
“아직도 쫄보 근성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봐, 앤디. 그때 거절당한 시놉으로 당당하게 여기까지 온 건 자네야.”
“운이 따라줘서 그런 거죠. 특히 한태주 씨는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운도 실력이야. 그리고 자네가 실력이 있으니 한태주라는 배우가 자네 시놉에 매력을 느끼고 꼬인 거지. 아무튼, 이제 시사회 개봉이 내일인 마당에, 이제는 즐겨.”
땅!
술잔을 부딪치는 청명한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지자.
그렉은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그에게 덧붙였다.
“자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
뚝.
푸른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술잔에 물결을 일으켰다.
마치 고요했던 그의 마음에 파장이 일어난 것처럼.
그리고 그 파장은 이어진 그렉의 말에 더욱 커졌다.
“아마 이번 영화가 성공하면, 자네 아버지도 자네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게 자네의 평생소원이었잖아, 영화 감독으로서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거.”
그 말을 부인할 수 없는 듯, 앤디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 * *
다음날, LA의 가장 큰 극장인 ‘리젠시 극장’.
스타를 맞을 레드카펫이 놓여있는 곳에서 수많은 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태주는 언제 와?”
“디에고 크루즈가 영화 찍은 게 얼마 만이야?”
“여기 감독이 그렇게 잘생겼대! 배우 못지않다는데?”
이곳은 LA 프리미엄 시사회.
영화 ‘나의 미래’ 주역들이 곧 등장할 예정이었다.
원정 취재를 온 스타뉴스의 우성림은 바쁘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질문지를 정독, 또 정독하는 황유나가 있었고.
오늘 레드카펫에서 그들은 한태주를 정식 취재할 계획이었다.
한국 언론 중 유일했다.
그때, 입구 쪽에서 팬들의 요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한태주다!”
“오 마이 갓, 한태주! 아이 러브 유!”
쏟아지는 환호가 향한 곳은 검은 리무진.
그곳에서 미끄러지듯 내린 태주는 멋스러운 검은 양복을 입고 머리는 뒤로 넘긴 채, 남자다움을 물씬 뽐내고 있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디에고와 앤디에게도 사랑스러운 시선이 쏠리는 건 마찬가지.
“진짜 잘생겼다.”
“여기는 배우부터 감독까지, 어쩜 이리 미남들밖에 없지?”
수많은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걸어가던 태주.
포즈를 취하려 잠시 멈춘 순간.
기자들 속에 껴, 그를 카메라에 담으려 애를 쓰는 우성림과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찡긋, 태주가 윙크하자.
“안녕하세요!”
또다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태주와 디에고 크루즈, 앤디 피셔가 포토월에 자리를 잡으니.
파팟, 눈이 멀 것 같은 환한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관심은 그들이 콘퍼런스장에 들어갔을 때도 계속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영화가 재생되기 직전까지도.
그러다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상이 틀어지자, 그제야 엄청난 관심이 영화로 향했다.
어제 시사회를 진행했던 ‘이글맨’과 비교하려는 기자들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 * *
영화가 끝났다.
불이 켜지자 어둠에 잠겼던 관객들과 기자들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어제 본 이글맨보다 훨씬 나은데?’
‘피셔 주니어가 압승했군.’
‘두 남자의 인질극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어.’
“지금부터 질문받겠습니다. 질문하실 분은 손을 들어 의사를 표현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에 기자들이 누가 뭐랄 것 없이 손을 들었다.
지정된 자리에 앉은 태주는 뜨거운 열기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한태주 씨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한태주 씨는 매번 작품에서 다른 연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번 앤디 피셔 감독 영화에 합류하게 된 건 특히 태주 씨의 의사가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매력에 반해서 그런 거였나요?”
“일단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라 흥미로웠습니다. 원래는 꿈이 있던, 희망이 가득했던 소년이 가난 때문에 사기꾼이 된 것도, 그런 그가 애정이 고팠던 남자에게 잘못 걸려 인질이 된 것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솔직히 제겐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도전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철저한 약자의 포지션에서도 마냥 비참한 게 아닌, 저렇게 강인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해줬습니다.”
디에고의 추가 설명에 기자들은 노트북에 코를 박고 바쁘게 적었다.
“이번 영화에서 디에고 씨와 호흡을 맞추셨는데요. 디에고 씨와 한 화면 안에 담겼음에도 전혀 존재감이 밀리지 않더라고요. 혹시 그 비결은 뭔가요?”
그 말에 태주는 디에고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디에고 씨는 명배우고, 그 존재감이 대단해서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런데 같이 연기하는 게 워낙 즐겁다 보니, 이내 그 생각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럼 디에고 씨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가정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하시며 연기를 잠시 중단하셨는데요. 이 영화로 복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앤디에게는 미안하지만, 태주한테 열렬히 끌려서입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짐작하고 있었어요.”
쿨한 앤디를 힐끗한 디에고가 대답을 이었다.
“사실은 연기를 몇 년 더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태주 씨가 저와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강렬한 러브콜을 보내더군요. 흐흐.”
“한태주 씨가 디에고 씨에게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사인을 보냈던 겁니까?”
“처음에 제작사에서 시놉을 보내줬지만, 저는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한태주 씨가 절 직접 찾아와서, 합을 맞춰 봤습니다. 직접 보니 마음이 달라졌죠. 아, 한태주란 배우와 연기를 안 해보면 나, 평생 후회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태껏 말하지 않았던 비하인드에 기자들은 신이 난 듯 기사 초안을 작성했다.
이윽고 질문은 피셔 감독에게 향했다.
“이번에 ‘나의 미래’는 피셔 감독의 ‘이글맨’ 시리즈와 개봉 시기가 며칠 차이로 비슷한데요. 이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버지의 아성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일종의 정면 승부 같은 건가요?”
마이크를 잡은 앤디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저의 개인적인 승부와는 무관하게, 제 영화로 영화계의 거목이자 존경하는 선배님에게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개봉 시기가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앤디가 어꺠를 으쓱했다.
“저희 영화, 이글맨과 붙어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