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할리우드에서의 비상 (4)
* * *
정원 귀퉁이에 있는 어둑한 창고 안.
곳곳에 거미줄이 처져 있고 먼지가 소복한 이곳은 상당히 더러웠다.
창고 구석에는 오래된 아틀란타의 지역신문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쓰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한 이곳에 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서로의 등을 마주한 채 앉아 있었으니.
천으로 눈과 입이 막힌 쌍둥이, 미나와 릴리였다.
“하… 하….”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엄마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 아이들.
엄마가 핫도그를 사러 간 사이, 엄마 친구라던 아줌마를 만나 납치당했다.
무언가에 마취됐던 아이들은 이곳 창고에서 정신을 차렸다.
겁먹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의 귀에 쾅, 하고 열리는 문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확!
눈을 가리던 두건이 스르륵, 풀어지는 순간.
아이들 눈앞에 나타난 건 아까 그 여자였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거짓말로 자신들을 속이고 납치한 그 여자.
“읍읍, 읍읍읍!”
겁먹은 릴리와 달리 성격이 불같은 미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려 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쌍둥이 언니와 함께 탈출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끙끙거리며 소음을 만드는 게 여자에게 거슬렸던 걸까.
“좀 닥쳐!”
여자가 있는 힘껏 미나를 발로 찼다.
몸에 멍이 들 만큼 세찬 발길질에 미나는 신음을 삼켰고, 옆에 있던 릴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나오기 시작했다.
“흐윽…….”
“너도 그만 찔찔 짜. 너희가 아무리 소리 지르고 몸부림쳐봤자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
“읍읍!”
“입 닥치라니까, 시끄럽다고!”
잔뜩 신경질이 난 여자가 또다시 미나를 발로 찬 순간.
손발이 묶여있던 아이는 그대로 툭, 넘어지며 머리가 근처에 있던 날카로운 도구에 찍혔다.
그리고 그 순간,
미나의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피가 바닥을 적시다 그녀의 빨간 하이힐에 묻은 순간.
동생의 부상에 릴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물을 흘리며 읍읍거리자, 여자는 이내 그녀의 입에 물렸던 재갈을 풀어 주었다.
‘제발 내 동생 구해 주세요!’
있는 힘껏 소리 지른 릴리.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힘없는 입술만 벙긋거릴 뿐.
당황한 릴리는 피투성이가 된 쌍둥이를 보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이내 스르륵 기절했다.
그것을 본 여자는 가소롭다는 듯 아이의 이마를 쿡, 눌렀다.
“잘됐네. 앞으로도 그렇게 조용히 살아. 그리고 너희 엄마한테도 전해, 죽은 듯이 살라고.”
여자는 이내 쌍둥이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말 못 하는 릴리를 CCTV가 없는 한적한 도로에 버린 뒤.
이내 사람의 인적이 드문 황무지로 진입했다.
뜨거운 기온 속에서 얼마나 달렸을까.
정신을 잃었던 미나는 여자가 자신을 어딘가로 툭, 던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고통으로 휩싸이는 이때, 저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이건 다 너희 엄마 때문이야, 안나 휠러. 안나가 날 찾지만 않았어도, 내 앞에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너희를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고.”
표정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표독스러운 눈동자만이 번쩍였다.
“그러니 날 원망하지 마. 너희 엄마를 원망해.”
* * *
[태주야.]저 멀리서 그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태주야, 정신 차려! 어서 돌아오라고!]귓가에 또렷하게 들리는 이중협의 목소리에 태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팟!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니 여러 사람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느껴지는 여자의 손길.
식당 주인의 부인, 마리아가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안색을 확인하고 있었다.
화려한 화장 속 다정한 표정이 있었지만,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다정한 그녀의 얼굴 위에 조금 전 봤던 무시무시한 얼굴이 겹쳐졌다.
미나를 경멸하던, 그 끔찍한 얼굴이.
마리아는 태주의 반응에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아니, 나는 태주 씨 어디 아픈가 보려고…….”
“저는 괜찮습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태주는 여전히 마리아를 보고 있었다.
생글거리던 여자가 점점 의아하다는 듯 표정이 변하던 순간.
그녀는 헛기침하며 살짝 떨어졌다.
축 늘어진 미나를 업은 이중협이 옆에서 조언했다.
[일단은 물러나. 아무리 저 여자가 미나를 죽인 범인이더라도, 증거가 없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끄덕.
태주는 서둘러 환한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저 괜찮습니다. 그냥 좀 피곤해서 멍해졌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걱정 마세요.”
그 말에 다들 ‘피곤했구나’, ‘일찍 들어가 쉬어’ 등등의 반응을 하며 안심했지만.
오직 마리아만이 빤히 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자신의 치부가 들킨 것처럼.
* * *
늦은 밤, LA의 환한 쇼핑센터.
저녁을 먹고 난 후, 태주는 디에고, 앤디와 함께 아이들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지금밖에 태희의 선물을 살 시간이 없었다.
내일은 유명 토크쇼, ‘토미 로즈’쇼에 출연해 영화 홍보를 해야 했고.
그다음 날은 조지아로 날아가 ‘웜 데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
두 아들의 아빠인 디에고와 미혼남 앤디는 태주가 인형 고르는 걸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디에고가 문뜩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까 정말 놀랐다, 태주야.”
“네?”
“마리아를 빤히 쳐다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던데. 그 시선이 너무 공허해서 깜짝 놀랐다고.”
옆에서 앤디도 한 수 거들었다.
“앞으로 다닐 홍보 스케줄이 빵빵한데, 혹시 벌써 지친 건 아니겠죠? 지치면 안 되는데…….”
“하하, 아니에요. 아까는 잠깐 피곤했을 뿐이지, 지금은 괜찮아요.”
태주는 디에고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본 그 마리아라는 분, 잘 아세요?”
그 말에 디에고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페르난도의 부인이라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지, 뭐. 그런데 나는 좀 불편해. 그 여자가 좀 치근덕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거든. 원래 유명인들한테 친한척하는 게 그 여자 특기라…….”
눈앞에 자신의 손과 팔을 만지작대던 마리아가 생각나던 순간.
불쾌함에서 벗어나려던 태주가 서둘러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분, 뭐 하시던 분이에요?”
“자기 말로는 영화도 찍은 전직 배우였데. 그래서 연기학원을 운영하던 페르난도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나, 뭐라나.”
연신 디에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좀 이상한 건, 자기가 어떤 영화에 나왔는지는 말을 안 해주더라고.”
“디에고 크루즈 같은 대배우 앞에서 말하기 껄끄러운 배역이었던 거 아닐까요.”
[아니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작은 역할로 출연한 거 아냐?]‘아니면 영화에 출연했다는 게 거짓말이라던가?’
이중협과 태주의 추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디에고는 자신의 추측을 덧댔다.
“사실 나는 그래서 포르노 배우가 아닐까 생각했지. 보통 포르노 배우들이 남들 앞에서 배우라 소개하지만, 자기가 출연한 작품은 말 안 하거든.”
그 옆에 있던 태주는 디에고가 흘리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쌍둥이 엄마는 스트리퍼라 했는데, 그 여자는 포르노 배우였던 건가?’
분명 미나가 보여준 기억에 의하면, 쌍둥이 엄마와 마리아는 아는 사이 같았다.
아직 무슨 관계였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마리아는 자신의 과거를 덮기 위해, 애꿎은 쌍둥이를 인질로 잡았던 거다.
* * *
호텔로 돌아간 태주는 선물을 정리하며 옆에 있던 미나를 힐끔거렸다.
검은 귀기가 넘실거리던 몸은 축 늘어져 이중협에게 안겨 있었다.
‘정말 이런 어린아이에게 그런 강한 의지가 있었다고요? 스스로 악귀가 되기를 거부할 정도의?’
[네가 자신의 한을 풀어주리라, 믿은 거지.]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아이가 악귀가 되지 않은 대신, 자신의 기억을 네게 전해주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어. 그래도 내일쯤은 깨어날 테니 걱정하지 마.]이중협은 옆에서 짐을 싸던 장진혁과 오늘 합류한 박인우를 힐끗했다.
[그보다 쟤네들한테 수상하게 보이지 마.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괜히 실종 사건에 관심 있는 척…… 어이, 어디 가?]이중협이 말을 끝마치기 전, 태주는 이미 박인우에게 말을 걸었다.
“형, 혹시 크로츠 씨한테 애들이 있다는 거 알아?”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아는 건, 크로츠 씨는 결혼한 적이 없고. 한동안 엄마가 애들을 키웠다가 납치당한 후에, 한 명은 실종되고 한 명은 실어증에 걸린 채 돌아왔다는 거야. 그 충격으로 엄마는 죽었고.”
“혹시 애들 엄마 이름이 안나 휠러야?”
“어, 너도 크로츠 씨 사연 듣고 그 사건 찾아봤었어? 그래서 이름 아는 거야?”
흥미로운 눈을 반짝이던 박인우는 곧이어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여자한테, 아니 그 사건에 왜 관심 두는 건데? ”
왜냐면 그 여자의 딸이 내 곁에 붙어있거든.
미나 크로츠의 한은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 같거든.
그러나 솔직하게 말할 수 없던 태주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궁금해서. 내가 원래 범죄사건 이런데 관심 많잖아. 드라마도 범죄 드라마 좋아하고.”
“아, 그렇지. 암튼 불쌍하긴 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라니.”
가볍게 넘어간 박인우는 태주의 어깨를 툭, 쳤다.
“그보다, 우리 영화 기세 심상치 않은 거 알아? 잘하면 이글맨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던데?”
* * *
동시각.
서재에서 홀로 술을 홀짝이던 피셔 감독.
얼마 전 미국에서 개봉한 ‘이글맨’이 예매율 1위를 차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나의 미래’가 턱밑까지 위협 중이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화 평론가들의 평과 대중의 냉정한 시선에 초조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마 전 ‘이글맨’ 홍보 겸 참석한 한 행사에서는 팬들의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원작 파괴, 겉 멋든 감독, 배우들의 졸전 등등 이글맨을 망쳤다는 혹평만이 가득한 행사였다.
돋보기안경을 쓴 피셔 감독은 한껏 기사들에 집중했다.
이글맨과는 달리 호평만이 가득한 ‘나의 미래’의 평가.
얼마 전,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본 영화 ‘나의 미래’는 정말 재밌었기에, 기자들의 호평이 더욱 이해가 갔다.
반면, 자신이 연출한 영화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시사회에 초청됐던 관객들의 평을 상기하며 눈을 감았다.
-피셔 감독의 색채가 전혀 보이지 않는걸. 도대체 이걸 왜 했을까?
-뜬금없는 베드신이 옥에 티. 굳이 이소룡 포지션 동양인 캐릭터를 안 넣어도 됐을 것 같은데.
-아시아 시장을 노린 캐릭터 아닌가요? 백시영이 마약 문제로 주춤해도 아직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꽤 잘 먹히는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이글맨은 피셔 감독 커리어에 오명. 완벽한 실수. 애초에 탐미주의 피셔랑 오락 영화 안 맞았음.
거듭되는 혹평을 떠올리며 피셔 감독은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도 예매가 1위를 차지한 것에 만족하려고 했으나.
밑에서 그 영화가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오싹했다.
‘얼마 만인가. 이런 긴장감을 느낀 것이.’
미간을 찡그리던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결심한 듯 전화를 걸었다.
긴 기다림 끝에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는 앤디 피셔.
-누구시죠?
“영화 잘 봤다, 앤디.”
수화기 너머에서 그를 알아본 앤디가 당황스러운 헛기침을 하는 이때.
피셔 감독은 술기운을 빌려 진심을 내뱉었다.
“좋은 영화더구나. 배우들 연기가 흠잡을 데 없고, 연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좋았다.”
그의 절실한 말에도 상대방은 아무 답이 없었다.
크게 들이마시는 숨소리가 그들의 간격을 가득 메우는 이때.
“그래도 네 녀석이 싹수는 있더구나. 앤드류 주니어 이름이 부끄럽지는 않았어.”
피셔 감독의 주름진 눈가가 점점 뜨거워졌다.
앤디 피셔, 한때는 존재조차 몰랐던, 인정하지 않았던 아들. 그러나 지금은…….
그는 몇 번이고 가슴 속에서만 외쳤던 그 말을, 밖으로 내뱉었다.
“이제 난 널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들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너는 날 완전히 굴복시킨 거다, 앤드류 피셔.”
상대는 그 말에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가 정확할 것이다.
평생을 미워한 아버지에게 앤디가 원한 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러나 전화로 전해온 아버지의 진심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수화기 너머 앤디는 무뚝뚝하게 받아쳤다.
-어서 주무시죠. 술도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앤디…….”
-술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일 때 다시 말해주세요.
수화기 너머 앤디의 목소리는 사뭇 밝아진 것 같았다.
-그때, 다시 뵙죠……. 아버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