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할리우드에서의 비상 (7)
태주는 놀란 얼굴로 이중협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왼손, 그다음에는 몸통과 오른손, 그리고 이제는 얼굴까지.
귀신의 상징인 창백한 빛에서 건강한 살색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정말 내 얼굴색이 돌아왔단 말이야?]‘네, 정말로요.’
이중협은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볼을 이리저리 꼬집어 보았다.
[나 왜 이러지? 거울로 확인하고 싶은데. 아……, 귀신은 거울을 봐도 안 보이지, 참.]‘형, 아무래도 형의 마지막 유해가 발견됐나 봐요.’
태주 역시 상기된 얼굴로 이중협을 바라보았다.
이중협의 시신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매우 가슴이 아팠던 일이다.
그렇기에 이중협의 시신을 모두 찾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정말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이중협이 언제든지 떠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이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연기하면서 고통스러웠을 때, 기뻤을 때, 그 모든 순간을 이중협과 함께했기에.
그가 언제나 항상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이기적이라는 걸 아는 태주는 남몰래 표정을 가다듬었다.
언젠가 이중협은 보내줘야 할 사람이니까.
‘일단은, 용석이 형한테 한번 전화해 볼게요.’
태주가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접했을 사람은, 형과 가장 가까웠던 용석이 형일 테니까.’
* * *
동시각, 한국.
차용석은 뜻밖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중…, 중협이 형 마지막 시신이 발견되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보도할 때까지 저는 입 싹 닫고 있겠습니다.”
강승민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화를 받은 차용석.
다시금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째깍 받았다.
“네, 여보세요?”
-형, 혹시 중협이 형 시신이 발견되었나요?
차분한 태주의 목소리에 차용석은 벌떡 일어났다.
미국에 있는 태주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너는 어떻게 알았냐? 아, 강 검사가 알려준 거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가 긴장감이 풀려 다시 주르륵,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래, 중협이 형…….”
차용석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채 추스르지 못했다.
그는 훌쩍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중협이 형 시신이 드디어 모두 발견되었다더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나는 이것도 모르고 중협이 형 장례를 치렀던 거야. 완전히 다른 사람 뼈를 중협이 형 납골묘에 안치했던 거고.”
-그건 형 잘못이 아니잖아요. 당시에 중협이 형… 아니, 이중협 선배님 장례식은 장희재 대표가 치렀다면서요. 그럼 그쪽에서 시체를 바꿔치기한 거겠죠.
“맞아. 그러고 보니 검찰에서 그 부분도 조사 들어간다고 했는데. 조만간 검찰에서 장희재 대표한테 영장 청구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태주야.”
벌게진 눈을 한 차용석의 머리는 현재의 일로 가득 찼다.
그가 가장 아끼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인 태주로.
“너는 미국에서 촬영에 집중하고, 영화 홍보에 신경 써. 한국은 조만간 시끄러워질 거지만, 그걸 네가 신경 쓸 이유는 전혀 없어. 알지?”
-형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요. 제가 괜히 한국 연예계 일 때문에 집중 못 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잠시의 침묵 후, 태주가 고백했다.
-일은 열심히 할 거예요. 하지만 이중협 선배님 일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저.
“도대체 왜? 나는 중협이 형을 담당한 매니저였다지만, 너는 단순히 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중협이 형은 형만큼이나 제게 도움을 많이 줬으니까요. 제가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중협이 형 덕분이니까요.
* * *
전화를 끊은 후.
“태주 이 녀석은 항상 중협이 형 일에 대해서는, 제 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을 낸단 말이야. 평소에는 그렇게 차분하던 녀석이.”
차용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3년째 태주와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때, 그의 눈앞에 예전에 한유경이 넌지시 건넨 말이 생각났다.
-태주가 이중협이란 배우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난 알 거 같아요. 닮았거든요. 스스로의 실력과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꾸준히 하는 그 모습이.
하지만 예전에는 이선우를 좋아하지 않았냐는 차용석의 말에, 한유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태주가 항상 말했어요. 자기는 이중협이란 인간 자체를 존경한다고.
“이중협이란 인간 자체를 존경한다, 라…….”
그 말에 차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중협이란 인간을 존경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꺾이지 않는 마음, 연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한 여자를 향한 충성심까지.
마음 한구석에서 아른거리는 그리움에 그는 핸드폰을 열었다.
미국 촬영장에 도착했다는 태주에게서 온 사진이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씩 웃는 태주를 보던 차용석이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그의 과거의 꿈은 이중협이었고.
현재의 꿈은 한태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가 엮인 게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차용석은 알 수 없는 마음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때, 그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발신인을 확인한 차용석의 눈이 왈칵 커졌다.
“병……, 병래 형?”
* * *
드라마 ‘웜 데드’ 촬영장.
거의 마을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고 봐도 될 만큼 촬영장은 거대하고도 디테일했다.
그의 옆에는 미술 스태프인 서현빈이 동행했다.
좀비들이 습격한 마을이라는 설정인 만큼, 곳곳이 폐허 그 자체였다.
식당에서부터 학교, 마트까지 전부 벽이 뜯어지고 먼지로 자욱했다.
특히나 인공적으로 만든 공동묘지는 거미줄이 쳐진 묘비로 가득해서, 매우 분위기가 음산했다.
늘 이중협과 다니며 음기에 익숙하다고 자신했던 태주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 정도로.
“여기는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이네. 몰입하기에 아주 좋겠어요.”
“그러게요. 미술팀과 소품팀이 고생했겠어요. 현빈 씨, 여기 세트장 만드느라 몇 달 전부터 고생하셨죠?”
귀를 쫑긋한 서현빈이 그렇다는 미소를 지었다.
“토머스 감독님의 지시대로, 정말 모든 것을 리얼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군데군데 좀비들이 가로등을 물어뜯은 이빨 자국도 있는데, 고증을 아주 철저히 했답니다.”
[어휴, 깜짝이야! 진짜 사람 시신인 줄 알았네!]미나와 손을 잡고 세트장을 구경하던 이중협.
피를 흘리는 리얼한 시체 모형을 보고 놀라는 이때.
“저런 것도 직접 만드신 거예요? 여기 밤에 오면 깜짝 놀라겠어요.”
“어차피 진짜 시체도 아니고, 실리콘 덩어리인데요, 뭘. 이래 봬도 제가 더미(Dummy) 전문가라고요, 팀장님한테도 인정받았답니다?”
“하하, 역시 프로페셔널하시네요.”
태주는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서현빈이 안쓰러우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이 그저 자랑스러웠다.
한참을 걷던 도중, 세트장과 마을이 접하는 경계선 부근에 도착한 이때.
태주는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묘비를 발견했다.
묘비가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이 무척이나 음산해 보였다.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이.
“그런데 저쪽도 세트장인가요? 공동묘지가 또 있네요.”
“아, 저기요? 저긴 아니에요.”
서현빈이 고개를 저었다.
“저쪽은 마을의 공동묘지예요. 사실 저희 세트의 공동묘지도 저쪽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많이 따왔어요.”
옆에서 이중협이 혀를 끌끌 찼다.
[보통 마을 사람들이 자주 헌화하고 가꾸면 묘지가 저렇게까지 음산하진 않던데. 내가 안치된 납골묘를 생각해 봐, 얼마나 분위기가 밝고 경쾌했니.]“그러고 보니 이곳은 마을 사람들도 잘 안 다니고, 좀 음산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곳은 큰 공장도, 회사도 없어서 그럴 거예요. 기껏해야 패스트푸드 체인점 정도? 노인들이 많고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서, 마을이 정체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서 공동묘지도 저렇게 버려진 거고요?”
“네,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소문으로는…….”
서현빈이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태주에게 속삭였다.
“옛날에 여기서 아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잖아요. 쌍둥이였는데 하나는 기억상실증에 실어증 걸리고, 하나는 실종돼서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요.”
그 말에 태주는 이중협과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미나 얘기네요! 예전에 여기서 살았다고 했었잖아요.’
[안 그래도 미나가 유독 말이 없어졌어.]이중협은 미나를 내려다보았다.
자기 손을 꼭 잡고, 무서운 듯 눈을 깜빡이는 아이를.
그때, 태주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무래도 이 아이의 시신은, 이곳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하다고.
* * *
그날 밤.
로저 싱클레어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모인 공동묘지 세트장 안.
그들은 모두 먼지투성이에, 찢어진 옷차림이었다.
이번 씬은 좀비와 대처하는 액션이 동반되는 장면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좀비들에게 쫓겨 공동묘지로 몸을 피한 가운데. 늘 조용하던 대런 킴이, 좀비들을 퇴치하는 활약을 담은 씬이었다.
태주는 무명 개그맨 대런 킴이었지만, 지금은 좀비 사태를 맞아 살아남은 자들의 리더로 활약하는 주인공을 맡았고.
로저는 거만한 톱스타로, 사사건건 무명 개그맨인 대런을 무시하는 스티븐 콕스 역할을 맡았다.
투톱 주인공인 태주와 로저는 무술 감독에게 총 다루는 기술을 점검받는 중이었다.
총기 담당 스태프는 의외라는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태주 씨? 어떻게 이리 총기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죠?”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군요.”
[역시 군필이 도와준 보람이 있다, 이 말이지.]사실 드라마 내 총기 액션이 있다고 전달받은 후.
이중협은 태주에게 열심히 총기 다루는 법을 전수해 줬다.
덕분에 태주는 곧 익숙해져 뛰어난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열심히 연습한 것도 있었지만, 특등사수였던 손국영의 능력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옆에서 태주를 보던 로저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감독님한테 나는 얼굴 위주로 잡아달라고 그래야겠다.”
“하하. 안 그래도 그러려고. 그리고 태주 씨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토머스 감독은 태주가 머스탱 권총을 휘리릭, 돌리며 앞으로 겨누는 포즈를 감상했다.
그의 눈은 이미 사랑에 빠졌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서 이 멋있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자, 한번 찍어 봅시다. 다들 제 자리로!”
총감독 토머스는 제 자리에서 마이크를 들어 배우들을 지휘했다.
공동묘지 주변에서 좀비들과 함께 서 있던 태주. 그는 들고 있던 총을 장전했다.
그의 시야에 피로 가득한 좀비들과 묘지 곳곳에 숨어있는 동료들이 보이고.
코끝에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촬영이라는 것도, 이곳이 분명 완벽하게 기획된 세트장이라는 것도 아는데.
이상하게 온몸에서 느껴지는 시체 썩는 냄새에 태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레디, 셋……. 액션!”
감독의 호쾌한 신호가 울려 퍼진 순간, 태주의 눈이 반짝 떠졌다.
그는 더 이상 한태주가 아니었다.
대런 킴으로,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로 뛰어들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