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묻혀있던 과거, 발굴하다 (3)
* * *
동 시각, 한적한 술집.
여병래와 연락이 닿은 차용석은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형, 왜 이제야 연락한 거예요? 내가 그렇게 찾고 있었는데.”
“얌마, 일단 티비부터 보자. 자, 저기 JABC 뉴스 나오네.”
갑자기 티비를 찾는 여병래에 차용석이 이상한 듯 받아쳤다.
“갑자기 티비? 형, 그러지 말고 좀 말해봐요. 여태껏 어떻게 지낸 거냐고요, 네?”
그러나 차용석은 곧 티비에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티비 속에서 여병래가 JABC 마이크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기 때문.
깊은 산속의 별장부터 7년 전 일을 기억하는 별장 인근 펜션 관리인들의 증언까지 취재하는 듯했다.
-저쪽 별장은 고급 차들만 왔다 갔다 하지, 놀러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저긴 펜션 촌이 아니거든요.
-소문으로는 돈 많은 사람들이 노는 놀이터 같던데요. 여자애들 싣고 다니는 운전기사들을 몇 번 봤거든요.
-주중에는 조용한 걸 보면, 주말에 주로 와서 노는 것 같아요. 오밤중에 저기 보면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더라고요.
인터뷰 화면에 이어 여병래가 굳게 닫힌 우창균의 별장 앞에서 멘트를 이어 나갔다.
“촬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진 이중협 씨가 예상과 다르게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곳은 바로 이 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티비 속에는 모자이크 범벅이 된 영상이 재생되었다.
유일하게 모자이크가 되지 않은 건, 세 사람.
이중협, 우창균, 그리고 부형윤.
피투성이가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중협을 부형윤이 마구 차고 있었다.
그리고 우창균은 괴로워서 비틀거리는 이중협을 붙잡는 역할을 했다.
이중협의 피가 그의 파란 셔츠에 가득 묻은 모습이 보이는 이때.
이제까지 티비를 뚫어져라 보던 차용석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미치겠네, 진짜…….”
이제껏 이중협 사건에 덮여있던 베일이 걷히며 나름 마음의 각오를 했었다.
이중협이 편하게는 눈을 못 감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직접 저런 광경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괴로움에 신음하는 차용석에게 여병래가 술 한잔을 건넸다.
“약해지지 마, 이제 시작이야.”
차용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중협이 형 사건 취재하고 다니느라, 이제까지 연락 안 됐던 거예요?”
“그래, 임마. 나도 정말 어렵게 취재했다. 우창균이 심어둔 사람들이 어찌나 곳곳에 숨어있던지, 자칫하면 그쪽한테 걸릴 뻔했어. 그렇지만 내가 누구냐.”
여병래가 씁쓸한 입꼬리를 올렸다.
“진격의 똥개, 여병래 아니냐. 취재가 안 될 것 같은 기사도, 어떻게든 끝까지 물어뜯는 거 알지? 특히나 중협이 관련된 사건인데…….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책임감을 느꼈어.”
“형.”
차용석이 대뜸 그의 손을 잡았다.
지난 7년간, 함께 고생한 동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자.
“정말 고마워요. 제 한은 물론, 중협 형의 한도 좀 풀렸을 거예요.”
“내가 아까도 말했지, 이제 시작이라고. 그러니까 여기서 만족하지 마.”
의미심장한 표정의 여병래가 차용석과 눈을 마주쳤다.
“중협이의 한은 진범을 찾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을 거야. 진범이 적법한 벌을 받는 것, 거기까지 원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용석아, 앞으로 잘 지켜봐. 권선징악이 뭔지 중협이한테 보여줘야지.”
* * *
다음 날 오전.
어제 JABC 9시 뉴스에서 방영됐던 소식의 여파가 한국을 강타했다.
7년 전 죽은 이중협이란 배우가 촬영장에서 사고로 죽은 게 아닌, 사실은 모종의 사건으로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검사장 부형윤과 건설업자 우창균이 있다는 것.
연예부, 정치부 기자들은 가릴 것 없이 다들 이중협 살인사건을 기사로 다뤘다.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도 다들 그 기사만을 읽는 가운데.
온 국민의 시선은 7년 전 촬영장 사고로 죽었던 이중협에게 향했다.
한편, 묘한 얼굴을 한 강승민은 우창섭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이런 큰 건을 보도하시기 전에 저와 상의하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수화기 너머 우창섭이 재밌다는 웃음소리를 냈다.
-오히려 강 검사가 제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요.
우창섭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니, 수사가 훨씬 수월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국민적 관심이 쏠린 만큼 훨씬 압력이 많이 들어오겠죠. 제 상사가 석월근 차장님이라는 거,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강 검사는 검찰 라인 같은 거 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어차피 법조계의 성골인데.
우창섭이 냉소적인 웃음을 킬킬거렸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강시경 대표한테 좋은 일 해드렸네요. 그쪽, 지금 부형윤 검사장하고 법무부 후보 자리 놓고 경쟁 중이잖아요.
그 말에 강승민이 코웃음을 쳤다.
“안 그래도 큰아버지한테 전화 왔습니다. 당에서 부형윤 검사장의 부적절한 동영상 때문에, 법무부 장관 후보직에서 떨어뜨리려 한다고요.”
고개를 흔든 강승민.
“아무튼, 이제 시작입니다. 분명 저쪽에서는 티비에 나온 그 영상 속 인물이 자기가 아니라고 부인할 거예요.”
-윗선에서 압력 많이 들어올 테지만, 버텨야 합니다.
“네, 버틸 겁니다.”
강승민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장을 보겠다, 맹세한 사건이었다.
태주처럼 이중협 광팬인 것도 아니고, 우창섭처럼 형에 대한 반감도 없다.
그러나 검사로서의 정의, 그것 때문에 자신은 끝장을 봐야 했다.
“정 수사관.”
“네, 검사님.”
그는 비장하게 서 있던 수사관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결단을 전했다.
“드림액터스의 장희재 대표, 검찰 소환 조사합시다. 일단은, 거기부터 시작하죠.”
* * *
한편, 드라마 촬영이 한창 이어지고 있던 조지아 주.
그러나 오늘 촬영팀은 세트장이 아닌, 인근의 황량한 황무지에서 찍는 중이었다.
고온 건조한 기후의 이곳은 죽은 풀들로 가득해서 목초지로도 쓸 수 없는, 군데군데 말라버린 우물로 가득한 곳.
그저 거대한 도로만이 나 있고, 때때로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러나 날씨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곧 태주는 영화 ‘나의 미래’ 홍보 일정에 돌입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동안 자신의 분량을 몰아 찍는 중이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시간 따위 없었다.
그래서 태주는 오늘 찍을 대본에 한창 몰입해 있느라, 박인우와 장진혁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뉴스를 확인한 그들이 그 내용을 태주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으리라 맹세했다는 건, 그가 알 수 없을 터였다.
태주의 집중력이 유일하게 흐트러질 때는, 이중협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라는 걸.
그들은 차용석에게서 단단히 주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스티븐과 대런 킴이 지프차에 타고 좀비들을 쫓아내는 액션씬을 펼칠 예정이었다.
로저가 운전하고, 태주가 조수석에서 열린 창문으로 좀비들의 머리를 격추하는 역할이었다.
민소매 티에 카고바지를 입고 목덜미까지 자란 머리는 물을 묻혀 뒤로 넘긴 태주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메이크업 스태프는 물론, 연출팀, 액션팀 스태프도 다들 눈에 하트가 박혀 있었다.
한편, 이러한 시선은 태주가 로저와 함께 좀비 분장한 엑스트라들과 합을 맞춰볼 때도 계속되었다.
그 모습에 이중협은 좋아죽는 것 같았다.
[아주 너한테 홀딱 빠졌다, 야. 안 그래, 미나야? 너도 태주 멋있다고 생각하지?] [네, 멋있어요.]사르륵 녹은 미나에게 태주가 씩 웃어 보였다.
‘귀여운 녀석.’
“이야, 태주 씨 오늘 컨셉 마음에 드네. 딱 람보야.”
급기야 감독까지 와서는 태주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태주 씨가 몸이 좋으니까 이런 와일드한 컨셉도 잘 어울리네요.”
“감독님, 저도 와일드한 편이거든요?”
옆에서 섭섭하다는 듯 끼어든 로저를 보던 감독.
금발의 머리를 뒤로 넘기고, 이곳저곳 찢어진 흰 반팔에 청바지를 입은 로저의 얌전한 모습에 감독이 피식 웃었다.
“너는 그냥, 귀여워. 그게 매력이야, 로저.”
곧이어 촬영 준비가 시작되고, 태주와 로저는 각각 조수석과 운전석에 올랐다.
각자의 위치에 자리한 가운데, 마이크를 뚫고 촬영을 알리는 감독의 힘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레디, 셋, 액션!”
* * *
이번 씬은 지프차를 탄 스티븐과 대런이 좀비떼를 유인하는 장면.
스티븐은 좁은 골목으로 차를 몰고, 대런은 열린 창문으로 권총을 빼 좀비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탕, 탕, 탕탕!
태주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권총을 쏠 때마다, 거대한 좀비 떼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차에 달라붙은 좀비도, 무섭도록 쫓아오는 좀비도, 차 천장에 붙어 쿵쿵대는 좀비도.
침착하게 처리하는 태주에 의해 점점 없어지는 이때.
대사는 한 마디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박진감이 넘쳤다.
쏟아지는 모래바람 속, 좀비들을 기가 막히게 피하는 로저의 기예와도 같은 운전 솜씨.
그리고 차창에 반쯤 몸을 걸치고는, 주변의 좀비들을 기가 막히게 명중시키는 태주의 사격 솜씨.
척척 손발이 맞는 액션은 보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쾌감을 선사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감독은 욕심을 내고, 또 냈다.
“한 번만 더 찍자! 이번에는 이 각도로!”
“아, 또 찍자고요? 지금 모래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아요? 바람이 좀 잦아든 다음에 하죠.”
“쏟아지는 석양, 모래바람, 지금이 딱 적기야! 지금 찍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절대로 담지 못할 거라고!”
로저는 삼촌인 감독에게 투정을 부리려 했지만, 태주는 그런 그를 다독였다.
“감독님이 욕심을 부릴 때, 잘해야 해. 우리의 연기가 그만큼 탐난다는 거니까. 그러니 열심히 하자.”
태주의 다독임에 로저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더욱 힘을 냈다.
그렇게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모래바람은 더욱 강하게 불어와 차 안에 들이닥쳤지만, 그 덕에 더욱 역동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조수석 창문에서 좀비들을 퇴치하던 태주.
“태주 씨, 미안하지만 몸을 조금만 더 빼줄래요? 지금 정말 좋거든요?”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태주가 열린 창문으로 몸을 조금 더 빼고 좀비들을 퇴치하자, 그의 등 뒤 노을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Fantastic!”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압도적인 감탄에 숨을 멈춘 이때.
열린 창문을 넘어 모래가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앗!”
그러자 눈에 모래가 들어간 듯 로저가 비틀거렸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차에 매달려 총격을 가하던 태주가 한 손으로 차창을 강하게 잡은 것도.
이리저리 운전대가 꺾이며 흔들리는 차를 좀비들이 다급하게 피한 것도.
쾅!
차가 말라비틀어진 우물을 들이받은 것도.
그리고 충격으로 태주가 폐허가 된 우물가에 부딪히다시피 떨어진 것도 말이다.
큰소리와 함께 차가 우물에 부딪힌 순간, 태주가 몸을 굴려 충격을 최소화했다.
“푸하!”
태주가 우물가에 기대 가쁜 숨을 내쉬는 이때.
[태주야, 괜찮냐?]‘네, 저는 괜찮아요.’
촬영을 끊은 팀원들이 혼비백산 되어 태주에게 달려왔다.
태주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옆에서 미나가 덜덜거리며 떠는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 내 몸이 있는 것 같아요.]‘어?’
[내 몸……, 내 몸이요!]미나가 향한 곳은 말라비틀어진 우물.
모래로 가득 찬 우물을 태주가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자그마한 두개골이, 모래 안에 묻혀있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