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묻혀있던 과거, 발굴하다 (5)
* * *
“저런 썅놈의 새끼를 봤나.”
탁시준과의 대담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장희재.
그는 연신 씩씩거렸다.
“늑대 새끼를 키운 줄 알았더니, 호랑이 새끼였네? 키워준 주인을 감히 물어?”
어린 후배였을 적부터 봐온 탁시준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결국 탁시준이 노리는 건 딱 하나였다.
-지금 곱게 퇴진하시면, 최대한 명예롭게 물러나게 해드리죠. 어차피 대표님도 검찰에 얼굴 쪽팔리긴 싫으시잖아요.
당당하게 협박을 하는 모양새에 장희재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탁시준을 내치기에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제까지 탁시준은 자신의 오른팔로, 모든 일을 함께해왔으니까.
그런데 그 말인즉슨,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는 뜻.
장희재는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다.
“막말로, 중협이한테 별장으로 오라고 전화한 것도 시준이었잖아. 내가 여기에 개입된 건 하나도 없다고. 다 밑에 따까리들이 처리한 일이었지.”
차에 올라탄 장희재는 운전대에 두 팔을 올려놓았다.
그는 이미 탁시준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고 결심한 표정이었다.
전화기를 들어 변호사와 무어라 짧은 대화를 나눈 그.
곧이어 다시 전화를 건 상대는 강승민 검사였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혹시 소환 전 만나서 굵직한 딜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 * *
한편, XJ 엔터테인먼트, 해외영화산업본부.
영화 ‘나의 미래’ 배급을 담당하는 이곳은 요즘 들어 정신이 없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에 매몰된 직원들은 각기 업무를 하기 바빴다.
그들의 모니터에 떠 있는 기사의 대다수는 다름 아닌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나의 미래’와 관련된 거였다.
“자, 자. 다들 모여봐요. 회의합시다.”
이번 회의는 본부장을 주축으로 영화 ‘나의 미래’ 홍보 및 배급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미국에서 개봉한 ‘나의 미래’가 꽤 반응이 좋습니다. 이글맨과 예매율이 불과 2%밖에 안 날 정도니까요.”
“로튼 토마토에서도 85%로 좋은 성적을 받아 팬들의 기대가 많았었는데, 실 관람 후기는 더욱 좋다고 합니다.”
“디에고 크루즈와 한태주의 케미스트리가 얼마나 좋을지 궁금했는데, 이 영화의 묘미가 바로 그 둘의 티키타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북미에서의 기세가 대단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 한국 개봉일을 확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기를 잘 조율해야죠.”
신중한 기색의 본부장이 달력을 뒤적거렸다.
“당장 9월에 개봉할 건 확실하지만. 9월의 어느 주에 개봉하냐, 이걸 잘 정해야 합니다. 일단 우리가 두 영화와 관객싸움을 하는 건 기정사실화됐어요. ‘이글맨’, 그리고 안종현의 ‘미스터 핸썸’.”
어깨를 으쓱한 본부장이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이글맨은 9월 5일 개봉 확정이라 하고, 미스터 핸썸은 9월 셋째 주쯤에 개봉이라 하네요. 여기서 우리는 어디와 붙는 게 좋을지, 손익을 따져서 타켓을 정해야 합니다.”
“전, 이글맨과 붙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안종현 주연의 미스터 핸썸은 3년간 묵은 창고 영화라, 우리가 붙으면 관객들을 우리 쪽으로 끌고 올 만한데요.”
직원들을 시험하는 듯한 본부장의 말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9월 셋째 주 개봉을 목표로 한다면. 그때는 지금 미국에서, 그리고 유튜브에서 난리가 난 이 기세가 이미 꺾여있을 겁니다.”
“원래 분위기라는 게 파도처럼 한껏 달아올랐을 때 타야 하는 거잖아요.”
“안종현의 영화는 저희 쪽에서 굳이 견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영화 자체로만 봐도 관객들이 충분히 보러 오실 겁니다.”
“제 생각도 9월 첫째 주에 이글맨과 붙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9월 3일에 한태주 씨가 ABS에서 마스크 스타로 예능에 얼굴을 비추니, 그 기세를 저희 쪽으로 끌고 올 수도 있고요.”
직원 대다수가 맞붙을 상대로 이글맨을 꼽는 상황 속, 누군가 확신에 찬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 미국에서 ‘나의 미래’ 영화 개봉 후에 인터넷에 재밌다는 후기가 넘쳐나고. 해외 체류하는 영화 유튜버들도 하루가 멀다고 리뷰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한국에서도 이어가야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관심이 높길래, 그래요?”
“이거 보십시오.”
유튜브를 검색한 직원이 몇백만 뷰를 기록한 여러 영상을 보여주었다.
“지금 북미에서 ‘나의 미래’가 개봉한 지 2주 차인데, 벌써 수십 개의 영상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 안 그래도 나도 이 영상 중 몇 개는 본 것 같아요. 요즘 SNS에 한국어로 번역해서 돌아다니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인 본부장이 말을 덧붙였다.
“이글맨도 리뷰 영상이 많기는 한데, 피셔 감독의 역량을 비판하는 영상이 주가 되네요.”
“스타 감독이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를 맡았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그에 비해 ‘나의 미래’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 신선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미친 연기로 많은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고요.”
유튜브에서 인터넷 기사로 눈을 돌려도 관심의 중심은 여전했다.
“다들 한태주한테 관심 폭발이네요.”
손가락을 탁, 튕긴 본부장.
“여러분 의견처럼 이런 관심의 물결을 그냥 둘 수는 없죠. 이 기세를 우리도 이어 나갑시다. 아, 그리고 유튜버 여럿 섭외해서 영화 리뷰 영상 올리게 하는 게 좋겠어요.”
다들 본부장의 말을 수첩에 적는 등 적극적으로 회의에 임하는 가운데.
본부장이 달력의 한 날짜를 가리켰다.
“그럼, ‘나의 미래’ 개봉날짜는 9월 6일로 확정하고, 시사회 일정도 잡읍시다.”
“한태주 씨에게도 일정 확인받겠습니다.”
“그래요. 한태주 씨는 지금 미국에서 드라마 찍고 있다고 했죠?”
시간을 확인한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지금은 드라마 촬영 끝내고 애틀란타 영화제에 참석 중일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글맨’과 ‘나의 미래’가 동시에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는 거예요.”
* * *
[이제는 영화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구만. 글로벌 스타 한태주 씨!]‘형, 저 지금 포즈 취하고 있잖아요. 옆에서 그렇게 자꾸 웃기지 마세요.’
[내가 뭘 웃겼다고 그래. 당연한 말을 한 것뿐인데.]레드카펫에 선 태주와 이중협이 투닥거리는 이곳은 유수의 작품들이 출품된 애틀란타 영화제.
8월 말에 열리는 이곳엔 여러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그중에는 ‘나의 미래’도 있던지라 여러 팬이 몰렸다.
게다가 감독상 부문에 오른 ‘이글맨’의 피셔 감독이 이 자리에 직접 온 것 때문에 팬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최근 개봉한 ‘이글맨’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에, 다들 그가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제에 온 그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영화제가 시작됐고,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미래’를 보다 많이 비추는 모양새였다.
현재 영화관에서 ‘이글맨’이 주춤하는 사이, 예매율 1위 자리를 탈환하는 건 시간 문제라던 ‘나의 미래’.
그 인기를 증명하듯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름이 가장 많이 불렸다.
특히 감독상을 수상한 앤디 피셔에 대한 주목은 대단했다.
비단 그가 피셔 감독의 아들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글맨’을 제치고 받은 상이라는 것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태주의 인기도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
얼마 전 방영된 ‘마스크 스타 시즌 2’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미스터 버터플라이라 강력하게 의심받는 것은 물론.
드라마 ‘웜 데드’의 주인공인 대런 킴 역할로 아주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소문은 덤이었고.
무엇보다 영화 내 디에고 크루즈와 기가 막힌 케미를 보여줬다는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특히나 한 청년이 빛나는 과거로부터 절망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희망으로 빛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정교하게 보여준 태주의 훌륭한 연기력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태주는 디에고 크루즈와 함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 작품에서 두 명의 주연배우가 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건 정말 드문 경우인데. 태주야, 기분이 어떠냐?]‘솔직히요? 당연히 욕심이 나죠. 세상에 욕심 없는 배우가 어딨어요.’
그때 익숙한 배우가 스테이지 위로 나와 수상자의 이름이 담긴 봉투를 천천히 뜯었다.
칸에서 만났던 폴 벨포르는 봉투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곤,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칸에서 제가 말했었죠. 이 친구의 시대는 5년 안에 올 테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런데 제가 틀렸군요.”
그러더니 그가 고개를 들어 선언했다.
“남우주연상은 한태주가 수상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태주는 몽롱한 기분으로 무대에 올라 상을 받아 들었다.
“좋은 감독님과 좋은 배우분들, 좋은 스태프분들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은 저희 팀원들 모두에게 주는 상이라 여기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떻게 수상소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태주는 황망했다.
품에 트로피가 들려 있음에도 여전히 몽롱한 기분으로 그가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디에고가 태주를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이제 너를 한국인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인식하는 건 좋은 도약이야. 나도 스페인 배우에서 그냥 ‘배우’로 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역시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답이더라고.”
“아니에요. 저는 디에고가 곁에 함께 있어 줬기 때문에, 덩달아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태주 씨는 정말 좋은 배우예요.”
옆에서 앤디도 그에게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생각은 말아요. 아직 갈 길이 머니까. 알죠? 한국에서도 우리 영화 개봉되는 거. 우리도 한국에 입국해서 시사회 함께할 거니까, 태주 씨가 잘 리드해 줘야 해요.”
“알아요. 한국 영화 시장은 전세계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태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한국에서 저희 영화의 선전은, 제게 특별할 것 같습니다.”
* * *
9월의 첫 번째 날.
추석 연휴가 막 시작된 이때, 오후 4시 정각.
인천공항의 한 출구 앞에 여러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세팅하는 기자들, 바닥에 앉아 노트북으로 기사 초안을 작성하는 기자들 등등.
공항에서 종종 보이는 광경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연예인 입국하나?”
“누군데? 아이돌이야?”
그때, 출입구가 활짝 열리자.
여러 명의 남자와 함께 들어오는 익숙한 인영에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한태주다!”
순식간에 터진 엄청난 플래쉬.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스타 한태주에 대한 기자들의 엄청난 관심이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