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묻혀있던 과거, 발굴하다 (6)
“한태주 씨, 여기 좀 봐주세요!”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태주를 에워쌌다.
그를 기다리던 기자들, 엄청난 팬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가온 구경꾼들까지.
태주를 반기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마치 왕의 귀환이라 해도 될 정도.
태주는 어느새 기자들이 쥐여준 마이크를 들고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우선, 애틀란타 영화제에서 ‘나의 미래’로 남우주연상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에 오신 건 미국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기 때문인가요?”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소화할 일정들이 있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애틀란타 영화제에서 영화 ‘나의 미래’가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등 5개의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는데요. 이제 곧 XJ 엔터 배급으로 ‘나의 미래’가 한국에서도 개봉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이글맨’과 관객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에서 인기가 대단한 ‘이글맨’을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시나요?”
다소 의도가 있는 기자의 질문.
그러나 태주의 짬밥으로는 이제 능숙하게 넘길 수 있었다.
“저희 영화가 정말 재밌으니. 관객분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어느덧 인터뷰가 끝났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 공항을 빠져나온 태주.
기자들과 팬, 그리고 구경꾼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였던 태주.
그러나 매니저들과 함께 있는 차 안에서는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암. 이제 저희, 회사로 가는 거죠?”
“네, 지금 그쪽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좋네요.”
마치 집으로 가는 듯한 이 느낌.
그곳에 가면 차용석이 있다.
그를 보고 싶은 그리움이 태주의 마음에 가득 찼다.
* * *
몇 시간 후. 태주가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안으로 들어가자.
대표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차용석이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약 한 달 만에 만난 그는 배가 나오고, 다크서클이 더 내려오는 등, 다소 고생한 듯 보였다.
그러나 태주를 반기는 그의 얼굴에는 환희만이 가득했다.
“태주야! 이게 얼마 만이냐!”
[누가 보면 군대 보낸 아들내미 상봉하는 줄 알겠네. 겨우 한 달 떨어져 있었다, 한 달!]이중협이 옆에서 투덜거리는 이때.
차용석은 태주를 와락 안으며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앞으로 더 고생할 것 같은데, 어떡하냐. 그리고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아무래도 미국 음식만 먹으니까 좀 물리더라고요. 그런데 형은 왜 이렇게 살이 쪘어요?”
태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한국인은 한식이지.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9월 초, 저녁이지만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저녁 7시.
그들이 들어간 곳은 부대찌개 맛집이다.
태주가 미국에서부터 그리워하던 곳.
“너는 고작 이런 거로 괜찮겠어? 소고기라도 사줘서 몸보신시켜주려고 했건만.”
“형, 미국에서 제일 그리웠던 게 회사 근처 맛집인 여기였어요.”
태주가 얼큰한 국물을 쫙 들이켰다.
“이야, 진짜 맛있다.”
맛있는 음식이 입 안에 들어가니 태주도, 그런 그를 어미 새처럼 흐뭇하게 보고 있던 차용석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운데.
“촬영은 잘했어? 미국 드라마 촬영은 어때? 처음이라 좀 낯설었지?”
“스케일이 커서 좀 놀랐죠. 아니, 아예 마을 전체를 빌려서 세트장을 짓더라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드라마 방영으로 자기네 마을 홍보가 돼서 좋고, 드라마 제작진은 마을을 통째로 세트장으로 쓸 수 있어서 좋고요.”
“그건 그렇고. 인우한테 들었는데, 거기 마을에서 무슨 시체가 발견됐다면서? 그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너라,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고. 어떻게 된 거야?”
“아, 저도 정말 놀랐어요.”
태주가 옆에 있던 미나의 초롱초롱한 눈을 힐끗거렸다.
“촬영 중에 모래바람이 들이쳐서 놀란 로저가 운전대를 순간적으로 틀어버렸어요. 그러다 차가 우물을 들이받았고, 그 안에 있던 시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어요.”
“어휴, 아무튼 놀랐겠다. 어쩜 네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냐.”
옆에 꼭 붙어있던 미나가 태주의 곁에서 꿈틀거리자.
태주는 서둘러 주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저, 내일까지는 쉴 수 있나요? 오랜만에 한국에 온 거라 가족이랑도 시간을 좀 보내고 싶은데.”
“어쩌지. 오늘은 온전히 쉬어도 되는데. 당장 내일 오후부터는 스케줄이 있어. 정확히는 네가 미국에 가 있는 바람에 쌓인 거지만. 박 실장, 내일 태주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네? 아, 네!”
차용석의 물음에 옆에서 부대찌개를 흡입하던 박인우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내일 저녁 7시에는 패션브랜드 ‘루이스 모드’ 브랜드위크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고요. 주말에는 영화 ‘나의 미래’ 시사회와 개봉 행사, 그리고 무대인사에 참석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영화 ‘영웅’ 촬영에 들어가야죠. 오케이, 완전한 자유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군요.”
태주가 시원한 소주를 탁, 들이키자 아쉬운 기색의 차용석이 제안했다.
“오늘 유경 씨하고 태희하고, 나랑 같이 노래방이라도 갈래? 오늘이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몰라.”
“우리 가족 모임에 은근슬쩍 형이 끼는 건 뭐죠?”
“야, 섭섭하네. 그래도 우리가 한 가족 아니냐.”
그때, 태주의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강승민에게서 온 문자였다.
-한국 무사히 도착했니? 시간 되면 오늘 늦게라도 나 좀 보면 좋겠다.
* * *
그날 밤.
저녁을 먹은 태주는 강승민의 차를 타고 강변도로를 달렸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시원한 가을밤의 바람이 들어오는 가운데.
운전대를 잡은 강승민이 운을 띄웠다.
“한국에 오늘 들어왔다면서? 쉬지도 못하게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해. 그런데 네 매니저가 너 내일부터 스케줄로 꽉 차 있다고 해서.”
“네, 맞아요. 이제 영화 시사회 겸 촬영으로 좀 바빠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형?”
“우선, 이제까지 이중협 사건을 조사한 것 중 알아낸 것들을 알려줄게.”
긴장한 얼굴의 강승민이 태주를 힐끗거렸다.
“7년 전, 야간 촬영에서 이중협을 친 그 차량을 몰았던 스턴트의 가족을 찾았어. 현재 노모만 요양원에 살아계시는데, 그분이 증언하더라. 자기 아들이 이중협을 생전에 너무나도 잘 따랐는데, 죽기 전에 죄를 하나 지었다고.”
그 말이 짐작되는 듯 이중협은 눈을 감았고, 태주의 눈동자는 왈칵 커졌다.
“설마…….”
“장희재가 돈을 주고 야간 촬영 때 일부러 사고를 내달라고 했대.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집안 형편도 어렵고 해서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하더라.”
“이런 미친…….”
자신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온 태주는 이중협을 힐끗거렸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분노로 일렁이는 것도 같았다.
태주를 빤히 보던 강승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본론. 장희재가 너와 만나게 해 달라고 했어.”
“저를요? 왜요?”
옆에 있던 이중협도 무척이나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인간이 또 무슨 수작이지? 지금 자기가 궁지에 몰리니까, 너를 이용해서 뭔가 일을 꾸미려고 하는 거 아냐?]“나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강승민은 어이가 없는 듯 헛기침했다.
그의 눈가에는 그의 근심만큼이나 짙은 주름이 잡혔다.
“글쎄 그 인간이. 그동안 부형윤이 벌였던 악행들을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도운 거라며, 그에 관한 증언을 해준다고 하더라.”
태주가 냉랭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건 당연하겠죠. 장 대표가 부형윤과 결탁해서 백시영 선배 마약 건을 덮었으니까요. 그동안 부형윤 검사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얼마나 많은 추악한 일들을 벌였을지, 안 봐도 뻔하죠.”
“그런데 그 증언을 하기 전에, 널 꼭 만나야겠대.”
“왜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다만, 네 얼굴을 보고 꼭 할 말이 있다면서, 널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
[장 대표만큼 응큼한 사람 속을 누가 안다고 함부로 만나?]태주도 마음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그는 궁금했다.
소속사 사장과 배우, 그 인연이 끊어진 장희재가 왜 하필이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지.
그것도 이중협 사건과 관련해서 증언하기 직전에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태주는,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형. 일단은 만나 볼게요. 속이 검은 장희재 대표가 절 만나겠다고 하는 건,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거니까요.”
* * *
밤 11시.
태주는 프라이빗 룸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그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던, 장희재 대표가 앉아 있었다.
옆에 술이 몇 병 놓여있는 걸 보아하니, 벌써 거나하게 술에 취한 듯했다.
[술기운을 빌려 비밀이라도 털어놓으려는 건가?]장희재가 먼저 입을 열려는 것을, 태주가 차갑게 가로챘다.
“할 말이 있으시다면서요. 빨리하시죠. 저 내일 스케줄 있어서 일찍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아서라, 아서. 뭐 이리 급해. 너도 나한테 듣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렇게 온 거 아니야?”
능글맞은 장희재의 태도에 태주와 동행한 강승민이 경고했다.
“장희재 씨, 당신은 검찰에 소환될 사람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의를 베풀었으니, 최대한 빨리합시다.”
“알았어요, 알았어. 본론으로 들어가면 될 거 아니야. 왜 이리 성격들이 급해.”
장희재는 술을 한 잔 따르며 고요하게 말을 이었다.
“그동안 태주 널 많이 원망했었다. 내 인생에 네가 들어오며 회사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내 인생은 많이 어그러졌거든.”
“저를 회사에 영입해서 대표님의 개인적인 명예는 더욱 높아졌던 거로 아는데요? 저 덕분에 여러 곳에서 투자금도 받았고요.”
“이야, 한태주 얼굴 정말 두꺼워졌다.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네? 그런데 너 때문에 나는 와이프랑 이혼하고, 거물 배우들도 놓치고, 내 밑에 있던 차용석은 대표에 오르고. 내가 너 때문에 잃은 게 한둘이 아니야.”
“신세 한탄하려고 부르신 거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주가 벌떡 일어나려 하자, 장희재가 벌게진 얼굴로 그를 만류했다.
“급하기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뭐가 시작이라는 거야? 벌써 취한 거 같은데. 똑같은 말을 계속하고 있잖아?]“태주야, 네가 날 원망하면 안 돼. 나도 부형윤한테 당한 피해자고, 중협이도 피해자고, 사실은 너도 피해자라고. 너는 날 피할 게 아니라, 힘을 모아서 부형윤한테 맞서야 해.”
“저는 전혀 그럴 생각이…….”
“그래야 너도 네 부모의 한을 갚을 수 있지 않겠냐?”
그 말에 처음으로 태주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왜 장희재는 꼭 부모님이 계획된 범죄 때문에 죽은 것처럼 말하는 걸까.
설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아니, 그럼 예전에 귀신으로 만났던 아버지는 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거지?
“저도 피해자라뇨?”
“너, 정말 몰랐구나?”
장희재는 태주의 미동도 없는 표정을 너무 놀라서 얼어붙은 것이라 판단.
더욱 흥분해서는 태주의 앞에 몸을 바짝 기울였다.
“사실 너희 부모님, 부형윤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그 말에 옆에 있던 강승민이 당황한 듯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장희재가 여기까지 말할 줄은 미처 몰랐다.
“장희재 씨, 그건 아직 수사 중인 사건입니다. 함부로 입을 놀리면 당장 일어……,”
“뭘 수사한단 말입니까? 부형윤이 자기 전부인 차의 브레이크에 손을 대서 그 여자가 운전하던 차에 에러가 났고, 그 차에 치여 한태주 부모님이 죽은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 말에 태주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