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8
428화
빛과 그림자 (1)
* * *
5년 전, 조지아 주의 한 마을.
허름한 집, 계단 가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아이들이 재잘거린다.
학교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책가방도 벗어놓지 않은 채, 이제 곧 집에 올 엄마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엄마는 언제 올까?”
“이제 곧 오실 거야.”
“학교 다녀오면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오늘 맛있는 거 해준다고. 나는 칠면조 고기가 좋아.”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쌍둥이가 고대하며 엄마를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허둥지둥 뛰어오던 한 여자가 보였다.
허름한 옷에 화장도 하지 않은 주근깨 많은 얼굴, 그리고 뛰어오느라 잔뜩 뻗친 퍼석한 머리카락.
“얘들아, 미안해. 엄마가 좀 늦었지?”
엄마의 인사도 듣는 척, 마는 척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녀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
“맛있는 거 뭐 사 왔어, 엄마?”
결국 참을성 없던 미나가 먼저 엄마의 장바구니를 낚아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늘 먹던 패스트푸드가 들어 있었다.
“맥도날드 햄버거잖아?”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쌍둥이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릴리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고.
미나는 종일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찡얼거렸다.
“이건 매일 먹는 거잖아! 맛있는 게 아니야! 분명히 맛있는 거 해준다고 해서 다른 거 기대했는데…….”
“미안해, 미나. 오늘 밀린 공과금 내는 바람에 돈이……. 다음에는 꼭 맛있는 거 사줄게.”
아이들의 얼굴을 살피는 여자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 하나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어린 딸은 엄마의 그런 미안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했다.
“내가 한 달 전부터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꼭 사준다고 했잖아!”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이 젖은 아이가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뛰쳐나간 미나.
릴리는 즉시 동생을 잡으려다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미나는…….”
그러나 여자도 단단히 화가 났다.
“그냥 내버려 둬! 엄마가 굶긴 것도 아니고, 먹을 걸 사와도 저러다니. 릴리, 들어와!”
무척이나 벌게진 얼굴의 여자는 하나 남은 쌍둥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엌에서 릴리에게 저녁을 차려준 여자.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엄마, 미나 찾아서 올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미나를 찾으러 나선 여자.
그녀는 곧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새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쭈뼛거리며 현관을 맴돌고 있었다.
“미나, 이리 와!”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가 망설이자.
여자는 아이에게 뛰어가 제 품에 아이를 냉큼 안았다.
아이가 어색한 듯 몸부림쳤지만, 여자는 제 품에 안은 아이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미안해, 미나. 미나가 한 달 동안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엄마 생각만 했어. 내일은 꼭 미나 먹고 싶은 거 사줄게.”
“……괜찮아, 엄마.”
“뭐가 괜찮아, 엄마가 우리 미나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진심이 가득한 엄마의 말에 미나는 슬며시 제 마음을 내보였다.
“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것보다, 엄마가 이렇게 안아주는 게 더 좋아. 엄마는 맨날 릴리만 챙겨주잖아.”
그제야 여자는 깨달았다.
미나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며 매번 투정을 부리고.
같은 쌍둥이라도 철이 들지 않은 채, 악동처럼 속을 썩이는 이유를.
그게 다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우리 미나 없으면 하루라도 못 살아.”
“……정말?”
그러자 여자는 미나의 얼굴을 제 가슴에 푹, 파묻었다.
“정말로! 미나, 들어 봐. 미나를 생각하니까 이렇게 엄마 심장이 쿵쿵쿵 뛰잖아.”
쿵쿵, 쿵쿵.
아이는 엄마의 가슴에서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 * *
황금빛이 태주 집 거실에 흩뿌려지듯 흩어진 이때.
술자리는 이미 파했고, 태주는 뒷정리한 뒤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벌렁 누워 핸드폰을 하던 태주의 품에 하얀 고양이가 안겼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은지 그르릉, 하는 소리가 태주를 몽롱하게 했다.
이중협 곁에 졸졸 따라다녔던 미나는 더 이상 없었다.
‘정말 성불한 거예요?’
[애가 자기를 누가 죽였냐, 그것보다는 마지막까지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지 못한 그 한이 더 컸던 것 같더라고.]안타까운 표정의 이중협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게요. 어, 잠시만요.’
지잉, 울리던 핸드폰을 확인한 태주가 놀란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로저? 웬일이야, 나 지금 한국인데?”
-알아요,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어서 연락했어요.
로저는 흥분한 목소리로 새로 알게 된 소식을 전했다.
-얼마 전에 우리 촬영장에서 발견했던 미나 크로츠 시신 있죠? 그 범인이 잡혔대요.
“정말로?”
놀란 마음에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미나가 성불한 이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다.
-마리아 마르티즈라는 여자인데, LA에서 유명한 오너쉐프 페르난도의 아내라네요.
그 말에 태주는 이중협과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디에고의 소개로 갔던 식당에서 만났던 그 여자네!]‘마리아라고 제게 인사했던 그 여자가 역시 범인이 맞았네요. 미나가 그 여자를 범인이라고 콕 집었었잖아요.’
태주는 다시 로저와의 통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5년 전 실종 사건을 수사할 당시에는 범인을 쉽게 못 찾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범인을 검거한 거야?”
-시신에서 단서가 나왔대요. 아이의 손톱에서 사람의 피부를 긁은 듯한 세포가 발견되었는데, 신상을 확인해 보니 마리아였던 거죠. 아마 그 여자한테 납치당하고 나서 반항하다가 결국 죽은 것 같더라고요. 지금 미국에서도 난리예요.
“그런데 그 여자, 도대체 그 쌍둥이를 왜 납치한 거래?”
-아, 그 여자가 전직 스트리퍼였는데, 쌍둥이 엄마와 일터에서 만나 친구가 된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쌍둥이 엄마가 혼자서 애 키우며 고군분투하다가, 마리아한테 돈을 빌리러 간 모양이에요. 그런데 마리아는 혼자서 지레짐작했던 거죠. 쌍둥이 엄마인 안나가 자기 과거를 폭로하러 왔다고.
“마리아 씨의 남편은 아내가 전직 스트리퍼였다는 걸 모르고 결혼했던 거야?”
-결혼할 당시에는 전혀 몰랐대요.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서 정숙하게 자란 아가씨로 알고 결혼했더라고요. 더욱이 시댁 집안은 며느리가 그런 과거가 있는 줄 알았다면 결혼을 극구 반대했을 거래요.
“그렇다고 마리아가 친구의 아이를 납치할 이유는…….”
-어제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이들을 납치해 겁만 주려는 계획이었대요. 그래서 자기한테 두 번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요. 그런데 자기도 예상치 못하게 미나가 죽어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짐작하기로는, 미나가 반항하자 마리아가 아이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짐작하고 있어요. 릴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거고요.
[그런데 그 아버지는 하퍼 크로츠 아니야? 그 양반은 지금 괜찮대?]이중협의 말을 들은 태주가 곧바로 로저에게 물어보았다.
“쌍둥이 아버지가 하퍼 크로츠 씨……, 맞지? 그분도 경찰에 출석했대?”
-어제 CNN 뉴스에서 인터뷰한 거 봤는데, 뭔가 평온해진 얼굴이랄까? 미나를 잃고, 애 엄마는 그렇게 죽고, 하나 남은 쌍둥이는 실어증에 걸렸는데. 이제라도 그 범인이 밝혀져서 마음이 조금은 풀린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어요?
수화기 너머 로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촬영장이 예전에 그 실종사건이 일어난 곳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촬영하다 그 시신을 발견한 것도요.
“그 시신이 우리를 불렀던 것 같아.”
태주는 성불한 미나를 생각하며 덧붙였다.
“뭐든 이유 없는 일은 없는 것 같더라고.”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태주는 매 순간 깨닫고 있었다.
* * *
다음 날 오전.
이른 시각임에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여러 사람으로 붐볐다.
평소에는 정치부 기자들과 유튜버들로 가득했을 이곳.
그러나 오늘은 수많은 연예부 기자들이 섞여 혼잡했다.
오늘 소환될 인물이 정치, 연예계에 두 발을 걸친 거물이라 그런 것이리라.
“포토라인에서 물러서 주세요!”
북적대는 이곳을 통제하던 직원들만 더욱 바빠졌다.
“이제 곧 도착하겠다.”
이곳을 취재하러 온 스타뉴스 소속, 홍은지와 우성림도 덩달아 긴장된 침을 삼켰다.
“성림아, 나 왜 이렇게 긴장되냐? 내가 수사받는 당사자도 아닌데.”
“생전 이런 검찰청에 올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죠. 어휴, 저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때, 저쪽에서 도착한 고급 세단 한 대.
그곳에서 변호사와 함께 내린 훤칠한 남자 한 명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때.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건 검찰에 공개 소환된 장희재.
검은 양복을 미끈하게 빼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를 찍는 배우 같았다.
평소 연예인 뺨치는 얼굴과 탄탄한 몸으로 대중에게는 ‘멋쟁이 장 대표’라 알려진 그.
오늘도 그 기세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당당하게 그가 천천히 건물로 향하자.
정치부 기자들과 연예부 기자들이 혼재한 가운데,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이중협 씨 살인 사건에 본인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점, 인정하십니까?”
“부형윤 검사장에게 유희를 목적으로 여러 여자를 소개해 준 브로커 역할을 하신 점, 인정하십니까?”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우뚝, 자리에 섰다.
창백한 얼굴로 기자들을 바라보며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책임을 물을 자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그건……. 검찰에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진술할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기자들이 질문할 틈도 주지 않고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몰려들었던 수많은 기자는 아쉬운 침을 삼켰다.
“에이, 좀만 더 말해주고 가지, 감질나게.”
“그보다도……. 천하의 장 대표가 검찰 포토라인에 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지. 그런데 장 대표가 소속 배우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엮였을 줄은 몰랐어.”
홍은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뿔뿔이 흩어져 어딘가를 가는 기자들이 담겼다.
덩달아 그녀의 마음도 급해져 우성림을 재촉했다.
“우리도 어서 가자. 이러다가 루이스 모드 행사에서 좋은 자리 놓치겠어.”
“아, 맞다. 오늘 한태주가 앰배서더 자격으로 거기 행사에 참석하죠? 거기 취재도 정말 치열하겠네요.”
“그렇지. 한태주가 이중협의 열렬한 팬으로서,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게 알려졌으니까.”
“한국에 돌아온 한태주 씨가 이렇게 뜨거운 감자일 줄이야.”
우성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쩌면 한태주 씨가 연예계로 돌아온 것도 이중협 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