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빛과 그림자 (2)
* * *
그날 저녁.
이태원 모처의 ‘루이스 모드’ 플래그쉽 스토어.
초가을의 다소 더운 기온이었지만,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이 모였다.
이곳에 초청받은 유명인 셀럽을 구경하기 위해.
“오, 윤수안 진짜 예쁘다! 진짜 실물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단 말이지.”
“윤지호랑 하강웅도 왔다!”
“와, 설채빈 진짜 예쁘다.”
수명의 셀럽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한데 모아 기다리던 이는 따로 있었으니.
목이 빠지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 건 한순간.
“한태주다!”
팔을 드러낸 흰색 반팔 셔츠, 그리고 연하늘 바지를 입고 나타난 태주가 시원스러운 걸음을 옮겼다.
한국에 입국한 이후 공식 석상에는 처음 보이는 얼굴.
포토월에 그가 서자마자 쏟아지는 수많은 플래시는 그에 관한 관심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를 보던 구경꾼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거듭했다.
“어쩜 더 멋있어졌냐. 몸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좀 탄 것 같은데?”
“이야, 저 반달 웃음은 여전하네! 한태주 트레이드 마크 미소!”
최대한 자연스럽게 여러 곳을 향해 포즈를 취한 태주였지만, 이내 눈이 시려왔다.
태주의 가늘어진 눈을 본 이중협이 귀엽다는 듯 킬킬거렸다.
[이게 셀럽의 숙명이라고.]태주는 이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옆에서는 행사 진행자가 질문지를 힐끔거렸다.
루이스 모드 앰배서더 자격으로 온 그를 인터뷰하려는 이유.
이곳이 태주가 처음으로 참석하는 공식 석상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외국 일정을 소화한 태주의 일정이 궁금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한국 들어오신 지 이제 하루 지나셨죠? 피곤하시겠어요.”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한국에 들어와 저를 아시는 많은 분의 관심을 받으니, 피곤한 눈도 번쩍 떠지는 느낌입니다. 흐흐.”
[뭐야, 미국에 다녀오더니 느끼해졌는데?]태주도 멋쩍어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를 보는 기자들의 눈빛은 이미 하트로 변해 있었다.
충분히 스타병에 걸릴 법도 한데.
여전히 많은 관심에 쑥스러워하고, 본심을 늘 솔직하게 전하는 한태주가 그저 대견했다.
그러나 사심은 사심. 그들은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해 예리한 질문들을 던졌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계실 예정인가요? 미국에서의 촬영은 다 끝나신 겁니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화 시사회도 있고, 새로 들어가는 영화도 촬영해야 해서 적어도 한 달 이상은 체류할 것 같습니다. 미국 촬영은 그 후에 이어서 할 듯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 ‘나의 미래’가 ‘이글맨’과 근소한 차이로 예매율 2위를 달린다고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이글맨’과 ‘나의 미래’가 개봉하는데요. 한국에서의 개봉 성적은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이 자리에서 감히 제 생각을 말하기는 뭐하지만, 영화가 좋은 만큼 많은 분이 보러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영화, 정말 재밌다는 평이 많거든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그때.
인포트리의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오늘 저녁, 드림액터스 장희재 대표가 검찰 소환조사에 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라 합니다. 전 소속사 대표의 이런 행적에 대해 한태주 씨는 덧붙일 말씀 없으신가요?”
[잘 나가다, 갑자기 왜 저러냐.]태주와 관련된 게 아닌 전 소속사 대표를 저격하는 듯한 질문.
이곳 관계자들은 물론, 곁을 지키던 태주의 매니저, 박인우도 꿈틀거렸다.
급하게 태주와 눈이 마주친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질문은 적당히 넘겨.’
고개를 끄덕인 태주가 마이크를 들어 짧게 대답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한 태주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 남은 기자들은 인포트리 기자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그런 질문은 왜 했어요, 태주 씨 기분만 상했잖아.”
“연예 행사에 와서 그런 정치색 짙은 질문을 해야 했어요?”
그러자 인포트리 기자가 뻔뻔하게 응수했다.
“자기들도 다 궁금해했잖아. 내가 총대 매 줬더니 지금 누구한테 큰소리야? 그리고, 막말로 한태주도 해명해야지. 장 대표 아니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텐데, 지금 장 대표를 버리는 꼴이잖아?”
그때, 가만히 있던 홍은지가 날카로운 한마디를 날렸다.
“백시영도 장 대표 버리는 마당에. 지금 누가 누굴 챙긴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홍 기자?”
“오늘 드림액터스 취재하다 안 사실인데요. 백시영도 검찰 참고인 조사 받았는데, 장 대표 비리 다 털었다고 하더라고요.”
홍은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괜히 한태주 씨 괴롭히지 말아요.”
* * *
사람들로 북적이는 행사장 안.
한데 모여 수다를 떨던 윤지호, 하강웅, 설채빈은 태주를 보자마자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태주는 한국에 들어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설채빈은 그런 태주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빠 한국에 왔으니까 내가 안 놓아줄 거예요.”
“뭔 소리 하는 거야, 태주 형은 내 거야!”
“하강웅 넌 빠져. 너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난 태주 형이랑 같은 회사라고, 같은 식구!”
동생들이 투덕거림에 태주가 킥킥거렸다.
“둘이 투덕거리는 건 여전하구나. 하긴, 이런 게 그리웠어.”
“저기 태주 널 그리워하는 사람이 또 있는 거 같은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윤지호가 가리킨 곳에는 윤수안이 있었다.
하얀 정장을 입고 붉은 와인을 홀짝이던 그녀.
그녀는 한참 동안 어떤 여자와 대화를 나누다,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그에게로 걸어왔다.
그러자 윤지호는 두 동생을 데리고 초인적인 힘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마치 그와 윤수안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오랜만이에요, 태주 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본 윤수안의 모습에 태주는 괜히 와인을 홀짝였다.
‘굿맨’을 찍는 동안 단발이었던 윤수안의 머리칼은 이제 어깨를 스치는 중단발이었다.
깨끗한 피부도, 발그레한 볼도, 선이 고운 얼굴도 여전했다.
밤하늘을 박아놓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도.
[이야, 윤수안은 더 예뻐졌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이쁘냐?]이중협의 감탄에 태주도 자신도 모르게 동조했다.
‘그렇죠. 더 예뻐졌……, 흠흠.’
그때, 그의 눈앞으로 불쑥 들어온 윤수안.
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녀의 머리칼이 찰랑거리는 순간.
상큼한 플로럴 향이 태주의 코끝에 스쳤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요? 우리 벌써 어색해진 사이인가?”
“우리가 몇 달 안 봤다고 어색해질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안 그래요, 수안 씨?”
태주의 응수에 윤수안의 입가에는 발그레 미소가 돌았다.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부끄럽게.”
그런 그들을 보던 이중협은 한발 물러섰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 *
그날 밤.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임에도 많은 기자가 검찰청 앞에 몰린 이때.
조사를 마친 장희재가 건물에서 나왔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져 나오며 차로 향하는 그에게 따라붙었다.
건물 안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강승민이 이를 꽉 악물었다.
“조사받는 중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위풍당당하네. 누가 보면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인 줄 알겠어.”
“제 인생에서 저렇게 당당한 피의자는 처음입니다. 도대체 자기가 뭘 잘했다고 저렇게 당당한지.”
혀를 내두르던 수사관이 슬그머니 강승민 옆에 다가가 섰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시죠, 검사님. 저 인간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지셨을 텐데.”
“수사관님도 수고하셨어요. 저 인간이 그동안 부형윤 검사장 뒤치다꺼리한 그 더러운 일들을 생각하니, 으아……. 나도 더러워지는 느낌이네.”
강승민은 녹초가 다 된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올렸다.
“끝까지 자기가 아니라 탁시준 본부장이 모든 일을 꾸몄다고 말하는 것도 참…….”
“물적 증거가 확실하니 저렇게 버티는 것도 얼마 못 갈 겁니다.”
“하긴, 저번에 태주와 대화 나눈 걸 녹취하길 잘했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우리도 이리 안심할 수 없었을 거예요.”
수사관의 말에 강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오늘 조사에서 얻은 건 한 가지 있네요. 이중협이 죽은 후, 왜 이현식 팀장과 차용석이 다른 행보를 보였는지.”
“그건 정말 충격이었어요. 이현식이 불법 도박에 빠졌던 과거가 있을 줄은.”
“그래서 이중협이 죽은 후, 한동안 잠적했었던 거죠. 그 일을 봐준 건 역시 부형윤의 힘을 빌린 장 대표였고요.”
강승민이 생각으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모든 조각이 모였어요. 앞으로 남은 조사는 하나.”
그가 수사관을 비장하게 바라보았다.
“부형윤 전 검사장, 소환합시다.”
* * *
다음 날 오전.
태주는 아침 일찍부터 ABS 건물로 향했다.
어제 ‘루이스 모드’에서는 다소 세련된 모습을 보였지만, 오늘은 편하게 검은 티와 평소에 입는 청바지를 입었다.
오늘은 임강현의 초대로 보이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날.
영화 ‘나의 미래’ 홍보도 할 겸, 나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자기 쇼에 출연한 태주에 임강현은 한껏 들떠 있었다.
“이것 보세요, 청취자 여러분들. 제가 말했잖아요. 이번 주에 태주 씨가 게스트로 나온다고요!”
임강현이 왜 이렇게 들떴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던 태주가 물었다.
“왜 이렇게 들떴어요, 강현 씨?”
“아니, 청취자분들이 이번 주에 태주 씨가 게스트로 나온다니까 도대체 믿지를 않잖아요. 스케줄이 꽉 차서 바쁜데, 어떻게 여기 나올 시간이 나겠냐면서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한태주는 내 죽마고우다, 내 부탁이라면 분명 화장실에서 똥도 끊고 나올 녀석이다, 라고요.”
[하여튼 저 녀석 개그 코드는!]태주는 킬킬거리며 임강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네 친구는 맞지만, 화장실…… 아무튼 그건 좀 너무했다.”
“아무튼 네가 내 부탁으로 여기 나온 건 맞잖아.”
“아닌데? 나는 우리 영화 홍보하러 나온 건데?”
태주의 장난기로 엇나가는 대화의 방향.
임강현이 울상이 되기 전, 태주는 얼른 그를 달랬다.
“청취자 여러분들, 강현 씨 부탁으로 여기 나온 거 맞아요. 강현 씨는 제 베스트 프랜드니까요. 그런데 오늘 영화도 홍보할 거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영화라면, 이번에 미국에서 선개봉한 ‘나의 미래’요?”
“네, 맞습니다.”
“태주 씨가 디에고 크루즈와 합을 맞춰 주목을 받았던 영화죠. 그런데 이번 영화 재미…… 아, 잠시만요.”
제작진과 무언가 소통하던 임강현의 얼굴이 점점 놀라움으로 커졌다.
“이야,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요. 지금 미국에서 ‘나의 미래’가 영화 ‘이글맨’을 제치고 예매율 1위 자리를 탈환했다는 소식입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