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6)
‘어라?’
이중협의 말을 들은 태주는 티비 속 이서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옆에 있던 피터에게 향했다.
피터 역시도 티비 속 이서관에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한국어를 말하는 건 어렵지만, 듣는 건 할 수 있다던 피터는 티비에 가까이 귀를 대고 있었다.
“저 양반, 돈이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지방의대 다니던 때에도 돈이 궁해서 과외를 열 개나 뛰었다니.”
차용석이 미간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아무리 가난한 의대생이었던 과거가 있다 해도, 중협이 형 사망선고를 가지고 장난친 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네. 안 그러냐, 태주야?”
그러나 태주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옆에 있던 피터를 예의 주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난한 의대생. 돈이 없었고, 젊었을 적 어떤 여자랑 동거.]피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태주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이거, 우리 아버지 이야기랑 너무 닮지 않았어요?]‘피터 씨, 진정해요.’
[아까 대장 귀신님이 그랬잖아요. 저 남자랑 나, 닮은 것 같다고. 닮았으면, 닮았다면 우리 관계는….]‘피터 씨!’
태주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를 진정시켰다.
‘만약 당신이 이서관 씨와 부자 관계라면,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라도 떠올려 봐요. 평범한 부자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무언가 있었을 텐데요.’
그 말에 피터는 움찔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어떤 작은 기억이라도 좋아요.’
[없습니다.]피터는 그저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저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네요.]‘그것 보세요.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태주가 논리적으로 피터를 설득하는 사이.
이중협은 본능적으로 짚이는 점이 있었다.
피터 또한, 자신처럼 악귀였다가 자신의 의지로 그 껍데기를 깨고 나온 당사자라는 걸.
누가 봐도 피터는 이서관과 닮았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악귀였다가 스스로 그 껍데기를 깨는 대신, 분노했던 순간을 완전히 잊어버린 거라면?
지독한 분노에 휩싸여 악귀로 변한 게, 아버지에게 실망했던 순간이라면?
[이런 가설이 성립될 수도 있겠군. 피터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절망해, 그 순간 악귀가 되었고.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즉 이서관과 접촉했던 기억들은 다 잊은 거지.]그렇다면 그의 한은 더욱 풀기가 힘들 것이다.
정작 자신도 한을 풀지 못해 아직도 이승을 떠다니는 신세 아닌가.
아무래도 피터 그레인스키의 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스타뉴스.
이른 시각 출근한 홍은지.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출근한 우성림에게 슬쩍 진한 커피를 건넸다.
“어제 리뷰 기사 쓰느라 야근했다면서? 자, 이거 마시고 에너지 충전해라.”
깜짝 놀란 우성림은 얼떨결에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니, 선배님이 어쩐 일로 커피를 다 사주세요? 생전 이런 일은 처음이네.”
“흠흠, 내가 그렇게 악덕 선배는 아니지 않았나?”
옆에 자연스레 앉은 홍은지는 우성림이 보고 있던 기사를 읽었다.
“네가 자정 즈음에 올린 그 리뷰 기사 맞지? 이거 반응 좋더라.”
“반응이 좋아야죠, 제가 어제 퇴근도 못 하고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쓴 건데.”
쓴 커피를 생수처럼 들이킨 우성림이 말했다.
“그런데 어제 ‘그것이 궁금하다’ 방영할 때, 커뮤니티 반응 보셨어요? 진짜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는 교양 프로 하면서 그렇게 반응 뜨거운 건 처음 봤어요.”
“그래? 지금 볼 수 있어?”
“네, 잠시만요.”
우성림은 마우스를 몇 번 달칵거리더니, 이내 인기 커뮤니티 사이트를 켰다.
그가 우측의 인기 검색어를 훑었다.
“여기 보세요, 인기 검색어에 한태주, 이중협, 익숙한 이름들 많이 보이죠?”
“하긴, 어제 한태주가 ‘그것이 궁금하다’ 게스트로 나오니까 좀 신선하긴 하더라. 일전에 기사로 예고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사물 프로그램 골수팬들도 태주 씨가 게스트로 나온 걸 좋게 본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태주 씨가 프로그램에 진지한 태도로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중협 배우 사건을 다뤘었잖아. 드라마 홍보 차원으로 나왔다고 했는데, 태주 씨가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정말 깊이가 있더라.”
“맞아요. 패널로 나온 권혁중 형사만큼이나 당시 상황이나 수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죠.”
“아마 사촌이 이중협 사건 담당 검사라 그런가? 아무튼 이중협 관련해서 태주 씨가 자기 일 못지않게 열심히 챙기는 건 분명해요.”
생각에 빠진 홍은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
“왜 웃으세요?”
“아니, 사실 태주 씨는 그 누구보다 정의로운 사람이잖아. 그런데 드라마 ‘굿맨’에서는 연쇄살인마로 나오는 게 아이러니해서.”
“경찰로 위장한 연쇄살인범 캐릭터 말이죠? 그런데 전 조금 다르다고 봐요. 악한 자들을 처단하는 비질란테 같은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평상시의 정의감 넘치는 태주 씨와는 결이 다른 캐릭터지.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닌 건 확실해.”
홍은지가 커피를 쓰읍, 마셨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에서 태주 씨 역할이 중요하지. 연기가 어색하면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테고, 연기가 제대로면 금세 드라마에 몰입할 테니까.”
“이미 시청자는 한태주 씨의 연기에 몰입한 것 같던데요? 어제 프로 말미에 ‘굿맨’ 예고편 나온 거, 반응이 대단하더라고요.”
우성림이 커뮤니티 반응을 쭉 내려서 보여주자, 홍은지는 당연하다는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인터넷 여론이 이렇게나 호의적인 걸 보면, 정말 괜찮긴 한 모양이야. 정말 한태주 씨 많이 올라왔네. 이선우의 후계자라고 언론에서 떠들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녀는 인상 깊다는 듯, 한 글을 가리켰다.
“정형화된 로맨스 드라마에 갇힌 이선우,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태주에게 시청률 잡힐 것이다?”
* * *
동 시각, KTS 드라마국.
직원들을 한데 모아놓고 회의를 하던 주인식 피디의 얼굴이 사뭇 밝았다.
“어제 교양국에서 방영한 ‘그것이 궁금하다’ 첫 회 시청률 몇 퍼센트 나왔어요?”
“3% 나왔습니다.”
조연출이 재빨리 시청률에 관해 브리핑했다.
“아주 준수한 편이에요. 저희가 신생 방송국이고, 해당 프로그램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것을 감안하면요.”
“프로그램 끝나고 우리 드라마 예고편 때리던데.”
주인식 피디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일단 기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입니다.”
조연출이 노트북을 펴 여러 기사를 보여주었다.
“역시 흐름이 이렇게 흘러가는군. 굿맨 예고편에서 한태주의 연기가 인상 깊으니, 이걸 이선우하고 비교하네.”
주인식이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알기로 ‘연인’은 김옥현 작가부터 엄청나게 홍보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얼마 전에 라디오에도 나와서 자기 드라마 선전하고 갔다면서?”
“저녁 4시경 라디오였나, 아마 거기서 홍보했을 겁니다.”
“김옥현 작가가 저번 작이 실망스러워서, 이번 작품에선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를 쓰나 본데. 그렇다고 해도 홍보가 너무 심하잖아.”
드라마 ‘연인’은 스타 제작진과 스타 배우들이 결집해 야심 차게 만든 드라마.
QVN 방송국 창사 20주년 드라마로 밀고 나가는 드라마는 업계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제작사인 ‘현필름’은 이번 드라마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는 말이 있었다.
지난 작품 ‘탈출’이 벌어다 준 수익을 이번 드라마에 가져다 바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신 대표는 정말 이번 드라마에 목숨 걸 생각인가? 한태주 덕분에 영화사 수익률이 그렇게 높았는데. 이제는 자기 드라마를 위해서 우리 태주를 짓밟으려 한다고?”
“에이, 감독님. 저희 업계에서 영원한 편이 있나요.”
“그런데 감독님, 마범수 대표님한테 말씀은 해 보셨어요?”
제작진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저희 액션 씬 때문에 제작비가 올랐는데. 대표님께서 허락하신다면 PPL 장면을 넣어서 제작비를 좀 해소할 수도 있잖아요.”
“PPL?”
“저희 드라마, 제작비에 비해 작품 안에 들어간 PPL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요. 만약에 넣으려면 지금 빨리 얘기해 주셔야 해요. 심은설 작가님이 이런 쪽으로는 초보라서 저희 쪽에서 컨펌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글쎄, 마 대표가 지금 들어간 그 이상의 PPL은 안 한다고 하던데.”
“네?”
“마 대표 지론은 이거야. PPL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망친다. 그럼,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 제작비는 희생해야 한다, 이거지.”
“아니, 한태주, 윤수안 씨 덕분에 협찬하겠다는 곳이 차고 넘치는데요. 화장품, 사탕, 링클 크림 등등….”
“이봐, 나는 드라마 보면서 그런 장면에서 몰입이 확 깨지더라.”
주인식이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 씬 내내 긴장감이 이어져야 하는데, 갑자기 여자주인공이 눈 밑에 웬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면서 대사를 치는 거야. 그리고 화면에는 크림 회사 이름이 크게 잡히는 거지.”
그는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 대표도 이번 드라마에 목숨 거는 건 마찬가지라고. 그런데도 PPL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건, 분명 생각이 있어서일 거야. 그러니까 다들 믿고, 이대로만 가자.”
* *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그곳에서 차용석과 김 팀장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주한테 다큐멘터리 나레이션 작업이 들어왔다고?”
“네, ABS에서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인데, 해외로 입양된 한국계 입양아들이 친부모를 찾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합니다.”
“기획은 좋네. 그런데 태주 이제 곧 옥장파 감독과 영화 촬영인데, 스케줄 되겠어?”
“하루 빡세게 잡고 녹음한다고 하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태주 씨가 목소리랑 이미지가 좋아서 ABS 측에서 강력히 원하는 분위기고요.”
“그럼 일단 태주한테 말해 보고, 진행 결정하자고.”
한 건을 넘긴 김 팀장은 다른 건을 꺼내 들었다.
“그보다 대표님. 드라마 ‘굿맨’에 PPL 넣고 싶다는 회사들 오퍼 편지가 이렇게나 많습니다.”
“이걸 왜 우리한테 보낸 거래? 굿맨 제작사에 보내야지. 마범수 대표한테.”
“아무래도 마범수 대표가 지나친 PPL 사용을 경계하는 것 같더라고요. 드라마 몰입감 망친다고. 그래서 저희한테 대신 넣어주십사,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대본 수정이랑 추가 촬영은 지금이라도 하면 되니까요. 제작비는 얼마든지 추가지급 가능하다고 하네요.”
“하긴, 태주가 오랜만에 드라마 하는데, 나라도 PPL 넣고 싶겠어.”
차용석은 PPL 오퍼가 들어온 회사들 리스트를 쭉 훑어보았다.
그런 그의 눈이 놀란 듯, 한 곳으로 향했다.
“여기는 받을 만하지 않아? 한국 드라마 역사상 한 번도 PPL을 하지 않은 곳인데?”
귀신 보는 배우님